Demon God wants to live in peace RAW novel - Chapter 175
마신은 평화롭게 살고 싶다 175화
* * *
12-Q 던전.
던전 상층부는 한참 보스 몬스터 레이드에 여념이 없었다. 이번에 소환된 보스 몬스터는 ‘셀롭투스’라는 거미 몬스터였다.
그 크기만 자그마치 10m에 육박하는, 말 그대로 괴수(怪獸)였다.
셀롭투스는 총 열여섯 개의 발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열여섯 개의 발은 평범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각각 잡아먹은 생명체의 발을 하고 있었으니까.
지금 철준의 눈에 보이는 셀롭투스의 다리는 심하게 부패된 사람의 다리와 팔이었다.
12-Q 던전에 오기 전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그 사람이 이 지구의 사람일지, 채널 블랙홀 너머의 사람일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쿠에에에엑!
셀롭투스는 보스 몬스터였지만 부하들을 데리고 다녔다. 아니, 부하라기보다는 새끼라고 해야 할까?
배 속에 있는 작은 거미들인데 이것들은 사물과 닿으면 폭발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쾅!
지금도 막 공현우의 실드에 닿았는지 거대한 폭음이 일었다.
“크윽. 형! 다 됐어요!”
사인을 받은 철준은 그의 스킬 하나를 시전했다.
* Lv. 497 광전사의 도발
-시전 대상을 도발하여 이목을 끕니다(레벨이 올라갈수록 도발 반경이 넓어집니다)
-사용 시 이목을 끈 개체 한 마리당 물리방어력 1(+497)이 올라갑니다
-도발에 당한 이들의 물리방어력을 20퍼센트 줄입니다
-사용 제한(1일 5회)
그 도발에 공현우에게 몰려들던 셀롭투스의 새끼들이 일제히 철준에게로 몰려들었다.
“중첩은 얼마나 됐어?”
“다섯 번이요!”
“그거면 충분해. 차서현!”
차서현의 손에 푸른색을 띤 구(球)가 생겨났다. 구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커졌다.
“준비됐어!”
“신호 보내면 나한테 쏴!”
“오케이!”
철준은 착 가라앉은 눈으로 몬스터들을 노려봤다. 그리고 몬스터들이 그에게 몰려들자…….
“지금!”
차서현의 푸른색 구는 몬스터가 아닌 철준의 대검으로 쏘아졌다. 그와 함께 철준의 대검에서 흰빛이 터져 나왔다.
그는 망설임 없이 달려드는 셀롭투스의 새끼들에게 대검을 휘둘렀다.
콰쾅!
굉음과 함께 새끼들의 녹색 뇌척수액이 사방으로 터져 나왔다. 하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었다.
철준은 지면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일반인들이 본다면 놀랄 만큼 가벼운 움직임.
그와 함께 공현우의 손에서 뭔가가 빛나더니 철준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사누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물리공격력이 3,982 상승합니다] [시간 제한 360초]오른쪽 상단의 메시지를 확인한 철준은 대검을 두 손으로 꼬나들었다.
셀롭투스가 거대한 독액을 뿜었지만 소용없었다. 철준은 독액의 사정거리에서 이미 벗어난 뒤였으니까.
철준은 지면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괜히 각성자들을 스포츠계에 몸담을 수 없게 한 조약이 생긴 게 아님을 증명하듯, 철준은 도약 한 번에 30m 가까이 뛰어올랐다.
셀롭투스가 기괴한 소리를 내며 철준의 공격을 막아 내려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퍼억!
쩌어어어억!
쿵!
철준이 역수로 꼬나든 대검이 셀롭투스의 약점이라는 척추골을 파고든 것이다.
끼에에에에에엑!
셀롭투스의 귀를 찢는 비명과 함께 뇌수가 터져 나왔다.
[레벨이 올랐습니다!]철준은 메시지 창을 옆으로 치웠다.
“후.”
대신 호흡을 고르며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생각 이상으로 까다로운 녀석이었다.
“형, 괜찮아요?”
공현우가 다가와 셀롭투스의 뇌수와 피에 흠뻑 젖은 철준에게 물었다.
“어. 아이템 뭐 떴는지나 살펴.”
“와…… 형 대박이에요!”
“뭐 떴는데?”
“네메아의 사자 꼬리요.”
“네메아의 사자 꼬리?”
“네! 오늘 레이드 대박인데요?”
“다른 건?”
“셀롭투스 독니 680개랑…… 셀롭투스의 방적돌기요.”
“나쁘지 않게 떴네. 나머진 너랑 차서현이 갖고 난 독니만 줘.”
“그래도 되겠어요? 독니 이거 필요도 없는 건데…….”
“검에 독액 묻혀서 쓰면 좋잖아.”
그건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셀롭투스의 독니는 개당 십만 원도 하지 않는다.
넉넉히 개당 십만 원을 잡아도 6800만 원에 불과한 것이다.
반면 네메아의 사자 꼬리는…….
이름 : 네메아의 사자 꼬리
등급 : S(에픽)
착용 제한 : Lv. 320
종류 : 무기(채찍)
효과 : 물리공격력 +500, 물리방어력 +200, 크리티컬 확률 70퍼센트 증가, 치명타 확률 15퍼센트 증가, 공격속도 170 증가, 네메아 사자의 불사(720초 동안 무적)
설명 : 네메아의 사자의 꼬리. 전설 속의 영웅 헤라클라스에게 처치된 후 지옥으로 떨어져 수문(守門)했다.
무려 S등급의 에픽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무기에 붙은 고유 스킬, 네메아 사자의 불사.
이것만 봐도 못해도 150억은 호가하리라.
“아무튼 오늘도 고마웠다. 수고했어.”
“고맙긴요. 오히려 형 덕에 부수입 짭짤하게 얻어 가는 제가 더 감사하죠. 근데 진짜 이거 저 주셔도 돼요? 못해도 150억은 받을 텐데?”
“난 필요 없어. 히드라만 잡으면 돼.”
“형 이럴 때 보면 진짜 무섭다니까. 히드라하고 무슨 원수라도 졌어요?”
“졌지. 히드라 때문에 뒈질 뻔한 거 그새 잊었냐?”
“와…… 앞으로 진짜 조심해야겠다. 이 형 보기보다 뒤끝 오래가네.”
“제대로 된 뒤끝 보여 줄까? 그거 다시 내놔. 내가 갖다 팔란다.”
“아, 형. 농담이죠. 흐헤헤헤.”
한쪽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던 차서현은 의아했다. 도대체 어떤 모자란 인간들이 이 바보 같은 두 사람에게 각각 마왕, 광휘의 버퍼라는 별명을 붙였을까?
‘덤앤더머가 따로 없는데.’
촤라라라락!
김철준의 플레이트 아머는 자동 탈착이 가능했다. 순식간에 갑옷을 벗은 김철준이 차서현에게 말했다.
“서현이 너도 수고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부르지 좀 마. 바쁜 사람 귀찮게 만날 부르고 있어. 내가 인건비가 얼만 줄이나 알아?”
“음…… 그러네. 내가 뭐 줄 건 없고 이거라도 대신 받아.”
김철준이 호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이윽고 그가 꺼낸 것은…….
가운뎃손가락이었다.
“죽을래?”
“푸하하하하. 볼 때마다 당하냐.”
“다음에 부르면 와 주나 봐라! 절대 안 와!”
“응. 다음에 또 와 줄 거 알아.”
“내가 미쳤냐? 또 와서 도와주게? 앞으론 절대 안 와!”
“아닐걸. 넌 또 오게 될걸? 안 오면…….”
“안 오면 뭐, 이 미친놈아.”
큭큭큭.
낮게 웃은 김철준이 차서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앞으로는 사장님한테 12구역에 무슨 볼일 있어서 왔다고 말씀드릴래?”
* * *
“날씨 좋네. 소풍 가기는 딱 좋겠어.”
가게 앞으로 날아든 낙엽들을 쓸던 서준이 문득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볕은 따사롭고 하늘은 가을 하늘처럼 높고 청명하다. 기온도 딱 20도 남짓으로 겨울치고는 포근하니 소풍 가기에는 제격인 날씨였다.
“안녕하세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가 인사를 해 왔다. 고개를 돌린 서준의 눈에 차서현이 들어왔다. 그녀는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아, 서현 씨. 안녕하세요?”
서준이 생긋 웃으며 인사하자 서현은 움찔거렸다. 도통 준비한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준비한 말이라고 해 봤자 고작 7음절에 불과했다.
날씨가 참 좋네요.
그런데 서준의 미소에 정신이 나가 준비한 말이 생각이 안 났다.
“서현 씨, 괜찮으세요?”
“네? 아…… 네. 그럼요. 괜찮구말구요. 그나저나 하늘에 뭐 있어요?”
“하늘이요?”
“하늘만 보고 계신 것 같길래…….”
뒷말을 삼킨 차서현은 속으로 ‘아, 씨……’ 하고 자신을 책망했다. 하고많은 질문 중에 하늘만 보고 있냐는 게 뭐란 말인가?
그러거나 말거나.
다시 한번 생긋 웃은 서준이 비질을 이어 가며 대답했다.
“겨울 하늘답지 않게 청명한 것 같아서요.”
서준 씨는 보기보다 감성적인 사람이었구나.
차서현은 내심 생각했다.
“그런데 요새 서현 씨 12구역에 자주 오시네요? 오늘은 어쩐 일로 오신 거예요?”
“아, 오늘도 철준이 그 자식이…….”
“네?”
“……이 아니라 철준이가 불러서요. 보스 몬스터 잡는데 잠깐 도와 달라구.”
“확실히 두분이서 친하긴 친하신가 봐요. 매번 도와드리는 거 보면.”
차서현은 혹시나 서준이 두 사람 관계를 오해할까 다급히 손사래를 쳤다.
“저, 절대 아니에요. 절대 매번 도와주는 게 아니라 어쩌다가…… 그냥 어쩌다가 가뭄에 콩 나듯 한 번씩 도와주는 편이에요.”
“그것도 친하니까 가능한 거죠. 식사는 하셨어요?”
“아뇨. 아직…….”
“그럼 들어오시겠어요? 마침 저도 점심 먹으려던 참이었는데.”
“괜찮은데…….”
말과 다르게 이미 그녀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 * *
도로에는 바디 라인이 매끈하게 이어진 빨간색 라페라리가 주차되어 있었다.
길을 가는 행인들마다 한 번씩 곁눈질을 할 만큼 예술품에 가까운 라페라리였다.
텅텅!
그런 라페라리의 뒷범퍼를 신경질적으로 가격하는 여자가 있었다.
“아, 씨! 또 말 못 꺼냈어.”
차 주인 차서현이었다. 몇 번의 발길질에 예술적인 뒷태를 자랑하던 라페라리의 뒷범퍼가 깊게 파였지만 정작 차서현은 괘념치 않는 눈치였다.
차서현은 인도 턱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또 말을 못 했다.
‘오늘은 서준 씨한테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그녀는 12-Q 던전을 핑계로 몇 번이나 술 한잔해요에 들렀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밥을 얻어먹었다.
오늘은 그걸 핑계로 커피라도 사 주겠다는 말을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를 보고 있자니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아마 차서현의 이런 모습을 네티즌들이 본다면 경악을 금치 못하리라.
한기를 풀풀 풍기는 그 서리 여왕 차서현이 남자 하나에 쩔쩔매는 모습이라니…….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쉬는데 주머니에 넣어 둔 휴대전화가 울렸다. 뭔가 하고 보니 격변 이후 틈만 나면 울리는 안전 안내 문자였다.
서울특별시 광진구 능동의 예술고 게이트에서 폭주 징후가 포착되었습니다. 근방에 계신 시민 여러분들은 서둘러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수롭지 않게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던 그녀가 멈칫거렸다.
‘예술고 게이트라면…….’
그녀는 아까 서준과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그의 조카인 서우가 어린이 공원으로 소풍을 갔다는 사실을 들었다.
대화를 나눌 때는 정신이 없었던지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말았지만…….
서우가 소풍 갔다는 어린이 공원과 예술고 게이트는 바로 지척에 위치해 있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질겁한 그녀가 서둘러 차에 올랐다. 목적지는 당연히 예술고 게이트였다.
그리고 그 시각.
같은 문자를 서준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웬일인지 차서현처럼 질겁하지 않았다. 서두르지도 않았다.
믿는 구석이 있는 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