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God wants to live in peace RAW novel - Chapter 176
마신은 평화롭게 살고 싶다 176화
* * *
계속해서 진동하는 휴대전화에 이라희는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정신을 더 아득하게 만든 건 그 내용이었다.
‘예술고 게이트라면…….’
민간인이 모든 게이트의 위치를 알 순 없다.
하지만 서울의 어린이집 교사들 중에서 어린이 공원 근처에 있는 예술고 게이트를 모르는 교사는 없다.
그만큼 어린이 공원은 어린이집에서 단체로 소풍을 자주 오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아연실색한 그녀의 귓전에 사이렌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관람객 여러분, 실제 상황입니다. 현재 공원 근방에 있는 예술고 게이트에서 폭주 징후를 보이고 있습니다. 모든 관람객들은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신속하게 대피해 주십시오.
그때.
콰콰쾅!
굉음과 함께 저 멀리 불기둥이 치솟는 게 보였다. 바삐 움직이던 장내의 모든 이들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폭음이 들려온 곳을 바라봤다.
누군가의 메마른 입술을 비집고 절망적인 말이 새어 나왔다.
“폭주…….”
그리고 잠시 후.
“꺄아아아악!”
“도망쳐!”
사람들이 새된 비명 소리를 내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관람객 여러분, 예술고 게이트가 폭주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예술고 게이트가 폭주했습니다. 관리국과 군경이 출동하였으니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움직이시고 거동이 불편한 노약자들은 대피소로 이동하여 주십시오.
스피커에서 나오는 말에 이라희는 정신을 차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평화롭던 공원의 혼잡한 분위기에 아이들은 울먹거리고 있었다.
“이 선생님! 이쪽이에요!”
이라희와 함께 6세 반을 책임지고 있는 동료 교사가 그를 불렀다. 이라희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들을 보듬어 동료 교사에게로 달려갔다.
“아이들은 모두 챙겼어요?”
“네. 저희 반 아이들은 모두…… 선생님네는요?”
“저희도요. 그나저나 이제 어떡하죠?”
망연자실해하는 동료 교사에, 이라희는 입장할 때 받은 공원 지도에서 확인한 대피소를 떠올렸다.
“여기 근처에 가까운 대피소가 있을 거예요. 일단 그쪽으로 가요.”
“하지만 대피소도 안전하지는 않을 텐데…….”
“애들 데리고 도망가는 건 더 위험해요. 일단은 대피소로 가요.”
“흠…… 알겠어요.”
이라희와 동료 교사, 그리고 스무 명의 아이들이 대피소에 도착했다.
“어린이집에서 오신 겁니까?”
상주하고 있던, 소총으로 무장한 직원이 물었다.
“네.”
“모두 몇 세 아동들이죠?”
“여섯 살들이에요.”
“저기 캐비닛에 방독면 있습니다. 혹시 모르니 아이들한테 방독면 씌어 주십시오.”
이라희와 동료 교사는 이런 위급 상황을 처음 겪었다.
놀라서 손발이 덜덜 떨렸지만 최대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아이, 한 명 한 명에게 방독면을 씌어 주었다.
그 뒤에 본인들의 방독면을 착용했다.
-통제실에서 알려 드립니다. 예술고 게이트에서 고블린과 스켈레톤이 소환되었습니다. 몬스터들이 모두 공원 쪽으로 이동하고 있으니 아직 장내에 남아 계신 분들은 모두 대피소로 이동하여 주십시오.
대피소의 직원은 동요하고 있는 아이들을 흘긴 채 상관에게 말했다.
“애들이 거의 스무 명은 되는 것 같은데…… 어떡하죠?”
“어떡하긴 뭘 어떡해. 입구 막고 최대한 관리국에서 사람 보내올 때까지 버텨야지.”
“탄창 세 개로 버틸 수 있을까요?”
“고블린이랑 스켈레톤이라잖아. 하급 몬스터들이라 방호벽은 못 뚫어. 총 쏠 일도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한편 이라희와 동료 교사는 동요하고 있는 아이들을 달래고 있었다.
“괜찮아요. 아무것도 아니니까 안 울어도 돼요.”
“진형아, 이거 훈련이래. 진형이 어린이집에서 훈련받아 봤지?”
“흐끅.”
“훈련이니까 걱정하지 말구 가만히만 있으면 돼. 알겠지?”
“다른 친구들도 들었죠? 이거 훈련이에요. 훈련이니까 울지 말구 선생님이랑 저기 아저씨들 말만 잘 들으면 돼요. 알겠죠?”
“선생님, 정말 훈련 맞아요?”
“그럼요. 훈련이에요. 선생님이 거짓말 하는 거 봤어요?”
“못 봤는데…… 그치만 다른 어른들이 막 밀치고 도망치고 했는데…….”
이라희는 한 아이의 질문에 두려운 마음을 떨쳐 낸 채 애써 웃어 보였다.
“그것도 훈련의 일환이에요. 어린이집에서도 대피소로 피하는 훈련받은 적 있죠?”
“네.”
“조금만 있으면 금방 다른 어른들이 올 거예요. 그러니까 다들 앉아서 기다릴까요?”
아직 아이들이라서, 이라희의 말을 말을 믿는다기보다는 이라희의 말이기에 신뢰하는 것 같았다.
울먹거리던 아이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울음을 멈추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이라희와 아이들을 보며 무장한 직원들은 새삼 각오를 다졌다.
“혹시 무슨 일 생겨도 애들은 살리자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 부모님한테 카톡 하나만 보내 둬도 될까요?”
“그래. 그러자.”
그렇게 말한 상관은 자신도 부모님에게 카톡을 보냈다. 그리고 아내에게 보내려 하자.
카톡!
아내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내사랑♥][오후][13:21] 속보 저거 무슨 말인데? 괜찮은 거 맞지?아내의 카톡을 곱씹은 상관이 조심스럽게 타이핑을 했다.
[나][오후][13:22] 아 계속 카톡카톡 거리길래 뭔가 했네. TV 봤구나? 괜찮아. [나][오후][13:22] 나는 이미 다른 직원들하고 빠져나왔어. [내사랑♥][오후][13:22] 다행이다. 그럼 전화 좀 받아 봐. 왜 전화를 안 받아? [나][오후][13:23] 지금 전화할 겨를도 없어. 카톡도 겨우 팀장님 눈 피해서 하는 거야. 일단 집에 가서 얘기하자. 알겠지? 사랑해. [내사랑♥][오후][13:24] 혹시 다쳐서 오면 진짜 죽는다!!상관은 아내의 카톡에 답장하지 못했다.
대피소 철창 너머 붉은 안광들이 번뜩거리고 있던 탓이었다.
“불 켜!”
그의 외침에 부하 직원이 손을 더듬거리며 불을 켰다.
“맙소사…….”
대피소 철창 너머에 진을 친 고블린들이 군침을 삼키고 있었다.
끼에에엑!
끼에엑!
끼에에에엑!
자기들끼리 의사소통이라도 하는 걸까?
기괴한 소리를 내던 고블린들이 손에 든 몽둥이로 철창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까앙!
까아앙-!
“선생님들!”
“네!”
“그 뒤에 빨간색 버저 보이십니까?”
“보여요.”
“그거 누르면 지하실로 연결됩니다. 많이 좁긴 하지만…… 혹시 모르니 아이들과 같이 숨어 계십시오!”
“하지만…….”
“지하실은 너무 좁아서 저희까지 들어갈 순 없습니다! 이거 보통 쇠창살 아니니 걱정 마시고 내려가십쇼!”
고개를 끄덕인 이라희가 버저를 눌렀다. 그러자 딸칵거리는 소리와 함께 포트홀이 푹 꺼지더니 사다리가 나타났다.
이라희와 동료 교사들은 차례차례 아이들을 밑으로 내려보냈다.
깡! 까앙!
까앙!
그사이에도 고블린들은 흉흉한 안광을 번뜩이며 철창을 내려치고 있었다.
“지, 진짜 괜찮겠죠?”
“괜찮지 그럼. 저거 보통 쇠창살 아니다. 고블린 따위는 절대 못 부수지.”
“그럼 다행인데.”
“교사하고 아이들은?”
“다 내려갔어요.”
하지만 직원들은 물론 이라희마저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게 있었다.
대피소 저 모퉁이에서 쉬를 하고 있는 아이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 * *
구석에 있던 서우는 가방 안에서 계속 발버둥치는 역삼이 때문에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살짝 가방 지퍼를 열어 올렸다.
“안 된다니까. 나오면 안 돼. 지금 훈련 중이랬어.”
캉캉.
“오줌 마렵다구?”
캉.
그러고 보니 서우 본인도 쉬가 마려웠다.
“음, 알았어. 대신 조용해야 돼?”
캉캉!
서우는 역삼이를 가방에서 꺼내 바닥에 내려 줬다. 녀석은 하수구로 짐작되는 곳에서 용변을 봤다.
“윽! 역삼이 똥 싼데요!”
캉캉!
너도 싸잖아!
“헤헤헤헤.”
서우는 자신도 바지를 발목까지 내린 채 볼일을 봤다.
잠시 후.
바지를 올리고 역삼이를 다시 가방 안에 넣으려는 그때.
탕!
별안간 총성이 울렸다.
타타탕!
총성은 연쇄적으로 들려왔다. 하지만 서우는 놀라지 않았다. 12구역에서 사는 서우였다. 서우에게 총성은 자동차 경적 소리만큼이나 익숙한 소리였다.
하지만 그다음 들려온 소리는 달랐다.
우지끈!
철창이 짓이겨지는 소리였다.
한편 철창을 지키던 상관은 당혹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호, 홉고블린…….”
일반 고블린보다 두 배는 큰 크기에 백발이 성성한 모습.
녀석의 망치질에 철창이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다.
“계, 계속 쏴!”
탕탕!
타타타탕!
계속 연사했지만 고블린들은 과연 영악했다. 방패를 든 채 홉고블린들 주위로 모여들어 그를 보호한 것이다.
대피소만큼이나 지하실의 상황도 긴급하게 돌아갔다.
“어, 없어요.”
“무슨 말씀이에요, 이 선생?”
“서, 서우가…… 서우가 안 보여요!”
“그게 무슨…… 아까 같이 따라왔었잖아요.”
“화, 확인해 보고 올게요. 우리 반 아이들 좀 부탁해요.”
이라희는 허둥지둥 사다리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위층에서는 교전이 한참인지 총성이 계속해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왜 올라오셨어요!”
그때 탄창을 갈던 상관이 물었다.
“아이 한 명이 안 보여요! 혹시 남자아이 못 보셨어요?”
“아까 다 내려갔…….”
내려갔다고 말하려던 상관이 입을 다물었다. 저 모퉁이에서 남자아이가 보인 탓이었다.
“저기 있네요. 얼른 데리고 내려가요!”
이라희가 서둘러 올라왔다.
“선생님?”
서우의 부름에도 이라희는 대답하지 못했다.
철창이 몬스터들에 의해 거의 다 벌어진 탓이었다. 그녀는 서우를 안아 들었다. 아니, 안아 들려고 할 때였다.
철커덩!
콰쾅!
굉음에 고개를 돌린 순간, 철창이 부서졌다. 그리고 부서진 철창으로 고블린들이 넘어오고 있었다.
키에에에엑!
키에엑!
키에에에에에엑!
고블린들이 상관과 직원에게 달려들었다. 탄창을 다 소모한 건지 상관과 직원은 개머리판을 휘두르며 저지했다.
하지만 각성자도 아닌 일반인이, 그것도 변변한 무기도 없는 두 사람이 수십이 넘는 고블린을 막기란 요원한 일.
키에에엑!
“크아아악!”
가장 먼저 당한 건 직원이었다. 직원의 발등에 고블린 한 마리가 창을 내리꽂은 것이다.
“도, 동석아!”
상관이 얼른 고블린을 떼어 냈지만, 금방 또 다른 고블린이 상관에게 달라붙었다.
퍽!
한 마리는 개머리판으로 떼어 낼 수 있었지만 두 마리, 세 마리까지는 무리였다. 게다가 그에게 달려든 것은 흉흉한 안광을 번뜩이는 홉고블린이었다.
퍼억!
홉고블린이 망치를 휘둘렀다. 견갑골을 타격당한 상관이 비명과 함께 바닥을 나뒹굴었다.
키헤헤헤헥!
승리를 자축하는 것일까?
홉고블린이 망치를 번쩍 들고 웃어 젖혔다. 그러고는 망치를 상관에게 내리찍었다. 거대한 망치에 상관의 두개골이 박살 나기 직전.
크르르르르-.
문득 등골이 서늘한 느낌을 받은 홉고블린은 고개를 돌렸다.
녀석의 시선이 맞닿은 곳에는 새빨간 안광에 뾰족한 귀, 그리고 화염에 휩싸인 갈기를 한 생명체가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