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God wants to live in peace RAW novel - Chapter 194
마신은 평화롭게 살고 싶다 194화
* * *
습관적으로 탁자 모서리를 톡톡 두들기며 사색을 이어 나가던 철준이 얼굴을 찌푸렸다.
“진짜 모르겠네.”
1층으로 내려가던 찰나.
정신을 잃었다.
헛웃음이 나온다.
이게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일반인들은 S등급의 각성자를 신들의 사자(使者)라고 불렀다.
신의 뜻을 전달한다는 비유를 할 만큼 일반인들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력을 지닌 탓이었다.
그런 신들의 사자 중 한 명인 자신이 어떤 기척도, 기세도 느끼지 못한 채 기절했다.
“그것도 뜬금없이.”
분명 우연이 아니다. 철준은 12-Q 던전에서 발생하는 괴현상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하! 머리 아파.”
오랜만에 머리를 쓰려니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벌써 한 시간째 골몰했지만 도저히 모르겠다.
그나마 단서가 하나 있긴 한데…….
“아니다. 그건 단서도 아니지. 그게 무슨 단서라고…… 내가 개코도 아니고.”
고개를 세차게 흔든 철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를 너무 써서 허기가 졌다. 생각을 할 때 하더라도 뭐라도 좀 먹어야 될 것 같았다.
사무실을 나온 철준은 던전 근처의 편의점을 찾았다. 막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철준이 걸음을 멈춰 세웠다.
‘오늘 신정이었지.’
명색이 1월 1일인데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우기에는 너무 청승맞은 느낌이다.
‘그때 산적 꼬치 진짜 맛있었는데…….’
철준은 추석 때 술 한잔해요에서 얻어먹은 산적 꼬치를 떠올렸다. 자연히 입가에 미소가 번져나간다.
철준은 그때 부모님을 여읜 후 처음으로 명절인데도 외롭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문 열었으려나.’
1월 1일이니 쉴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철준은 발걸음을 옮겼다.
* * *
후룩!
후루룹-!
쩝쩝!
“헉헉! 허걱! 헐! 서준이 형!”
“응?”
“이거 이름이 뭐라고 하셨죠?”
“떡국.”
“떡국…….”
두식은 떡국을 잊지 않으려는 듯 몇 번이고 되뇌었다.
“TV에도 나오지 않나?”
“가끔 나온 것 같긴 해요. 별로 맛없어 보여서 주의 깊게 안 봤었는데…… 이게 떡 맞죠?”
“응. 쌀떡.”
“입에서 사르르 녹는 게 바르할란의 음식이 따로 없어요.”
“라면하고 비교하면 어떤데?”
“으음…… 라면이 100이라면 떡국은 80이랄까요. 맛있지만 라면 보다는 아니에요. 그래도 뭐 바르할란의 음식 같은 건 변함이 없지만요. 헤헤헤.”
“바르할란은 둘째 치고 두식이 넌 딱 한국인 체질인가 보다.”
“제가요?”
“라면 좋아하고 김치에 환장하고 김치찌개 먹으면서 시원하다 하고, 거기에 이제는 떡국까지…… 완전 한국인이잖아.”
“헤헤헤헤.”
두식이 얼빠진 사람처럼 실실거렸다.
근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주로 섭렵한 부작용(?)으로 인해 한국인의 정체성이 생겨 버린 두식이었다.
그런 그에게 한국인 다 됐다는 말은 칭찬 그 이상의 의미였다.
그걸 모르지 않는 서준이기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처음에는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오크는 종(種) 자체가 호전적인 종족이다. 특히 마계의 오크들은 더욱더 그렇다.
그런 두식이기에 지구에서의 적응이 쉽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그 생각이 틀린 것 같다.
‘돌아갈 기회가 생긴다고 하면 두식이는 돌아가려나.
문득 든 생각이었다.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두식이는 뭐라고 답할까?
물어보면 알 수 있겠지만 왠지 물어보기가 꺼려졌다. 아니…… 꺼려진다기보다는 겁이 났다. 돌아가겠다고 할까 봐.
그때.
딸랑!
풍경 소리와 함께 가게 문이 열렸다.
“저어…… 실례합니다.”
“철준 씨 아니세요.”
“하하. 네. 문이 열렸길래 들어와 봤는데…… 괜히 민망하네요.”
철준이 계면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벅벅 긁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죄송하지만 영업하는 거라면 혹시 식사하고 갈 수 있을까요?”
“그럼요. 되고말고요.”
우울해 있던 철준의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다.
“1월1일이라 떡국 좀 해 봤는데 떡국 괜찮으세요?”
아…… 맞다. 1월1일에는 떡국 해 먹는 거였지 참.
잠깐 동안 얼빠진 얼굴을 하던 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죠.”
떡국은 넉넉하게 했기에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서준은 떡국을 한가득 담아 내어 왔다. 그사이 철준과 두식이 인사를 나눴다.
“두식 씨는 여전히 밝네요.”
“헤헤. 그런가요. 하긴 저는 한국인이거든요.”
한국인?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지?
뭐, 박연 씨 보다는 아니어도 평소에도 엉뚱한 두식 씨인 만큼 또 엉뚱한 소리를 한 거겠지.
“네. 보기 좋아요. 근데 같은 테이블에서 같이 먹어도 되겠어요?”
“한국인은 원래 밥 한 상에서 같이 먹는 거잖아요.”
역시 엉뚱하시군.
피식 웃은 철준에 두식이 깜빡했다는 듯 말했다.
“아! 원래부터 한국인이 한 상에서 밥 같이 먹은 건 아니에요. 이건 일본 놈들 때문에 생긴 거래요. 그전에는 따로 먹었구요.”
“아…… 하하하. 그렇군요. 그건 몰랐네요.”
“떡국 나왔습니다.”
철준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국을 바라봤다.
가족을 여읜 후 신정이나 구정에도 떡국을 먹긴 했었다. 하지만 식당에서 사먹는 떡국이었다.
‘이건 달라 보이네.’
뭐가 다르냐고 묻는다면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정식 떡국.
그래서 정성이 들어간 떡국.
“식으면 맛없어요.”
“아, 네. 잘 먹겠습니다. 근데…… 색이 좀 진하네요?”
“사골 육수를 베이스로 했거든요.”
“아.”
철준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머니도 생전에 사골 육수로 떡국을 끓여 주셨던 기억이 난다.
떡국을 한 술 떠서 입에 넣었다.
“음?”
다시 한번.
후룩!
“어?”
또 한 번.
후룹!
보기에는 별반 다를 게 없는 사골 육수로 끓인 떡국이다. 그런데…….
‘왜 자꾸 손이 가지?’
멈출 수가 없다. 의지에 따라 숟가락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마치 귀신에 홀린 듯 숟가락을 놀려 댔다.
그 비결은 국물 같았다. 국물이 구수하면서 진한 맛이 난다. 거기에 깔끔 담백하기까지 하다.
‘이럴 수가 있나?’
혼자 살게 된 지 퍽 오래된 철준은 요리에 아주 문외한은 아니었다.
그래서 각 육수마다 어떤 맛을 내는지 대략적으로나마 알고 있었다.
깔끔하고 담백한 국물을 원한다면 멸치 육수를.
구수하고 진한 맛을 원한다면 소뼈로 우린 사골 육수를.
감칠맛을 원한다면 돼지 등뼈로 우린 육수를.
그런데 이건 세 육수의 장점을 모두 담은 맛이었다.
허겁지겁 먹다 보니 어느 새 떡국이 동이 났다.
“잘 드시네요. 한 그릇 더 드릴까요?”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서준이 다시 한가득 떡국을 퍼다 줬다. 마른 침을 꿀꺽 삼킨 철준은 허겁지겁 떡국을 먹었다.
* * *
“잘 먹었습니다.”
“입에 맞게 잘 드셨다니 다행이에요.”
“입에 맞은 정도가 아니에요. 이건…… 제가 먹은 떡국 중에 제일 맛있었습니다.”
“그 정도까진 아닌데…….”
“아뇨. 정말입니다. 국물 때문에 더 맛있게 느껴진 것 같은데 사골 육수인가요? 아니면 돼지 등뼈? 그것도 아니면 닭?”
드래곤 뼈요.
말할 수 없었던 서준은 멋쩍게 웃기만 했다. 철준은 영업 비밀이라 짐작한 건지 더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
“헉!”
순간 두식이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깜빡하고 밥 안 주고 왔다!”
“밥?”
“네! 아루…… 아니. 닭 모이요. 주고 온다는 걸 깜빡했어요. 저 얼른 갔다가 다시 올게요, 형.”
“몇 시간 늦는다고 굶어 죽지도 않을 텐데 이따 가지 그래?”
“아루…… 아니. 닭들도 배고플 텐데 얼른 줘야죠. 제때 밥 안 주면 이것들 토라져서 그런지 알을 잘 안 낳더라구요.”
서준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갔다 오라고 말했다. 그에 자리에서 일어난 두식은 철준에게도 인사를 한 뒤, 그를 지나쳐 갔다.
그 순간 철준은 멈칫거렸다.
그러다 이내 피식 웃고 말았다.
설마 그러려고.
“사장님 계산할게요. 얼마 드리면 될까요?”
“계산은 무슨요. 때마다 길드 직원들 이쪽으로 보내 주셔서 매상도 올려 주시는 걸요.”
“그건 어차피 12구역에 갈 데가 이곳 말고는 많지 않으니까 그런 거구요. 계산은 별개죠.”
“괜찮습니다.”
“매번 괜찮다고 하시면서 돈 잘 안 받으셨잖아요. 이번엔 꼭 드리고 가야 제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그럼…… 삼만 원만 주세요.”
“편의점에서 파는 떡국이 한 개에 만 팔천 원인데요. 게다가 세 그릇씩이나 먹었는데 삼만 원이면…….”
한 그릇에 만 원인 셈이다.
서준은 생긋 웃었다.
“가격은 파는 사람이 결정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틀린 말씀은 아니지만 늘 죄송스러워서…….”
민망한 표정으로 목 언저리를 긁적거리던 철준이 오만 원권을 내밀었다.
서준이 돈을 거슬러 주기 위해 그를 가로질러 카운터로 향한 그 순간.
철준은 익숙한…… 아니. 단서 축에도 못 낀다고 생각한 냄새를 맡았다.
“철준 씨?”
“아? 아, 네네.”
“여기 이만 원이요.”
“감사합니다. 근데 사장님.”
“네?”
“따로 향수는 안 쓰시는 것 같던데 섬유 유연제는 어떤 거 쓰세요?”
“갑자기 섬유 유연제요?”
“혼자 사는 사람한테 가장 곤욕인 게 빨래 냄새잖아요. 근데 방금 사장님 지나치실 때 좋은 냄새가 나더라구요. 사장님 쓰시는 걸로 바꿀까 해서요.”
“피존 씁니다.”
“아아…… 피존. 하긴 빨래는 피존이죠. 근데 향은 어떤 향인가요?”
“아마 라벤더 향일 겁니다. 서우가 라벤더 향을 좋아하거든요.”
“…….”
“저기, 철준 씨? 괜찮으세요?”
“네? 아아! 네 괜찮습니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가는 김에 섬유 유연제나 사서 들어가야겠네요. 하하하.”
* * *
“하…… 김철준! 김철준!”
“어?”
차서현이 눈을 가늘게 치켜떴다.
“자꾸 귀찮게 나오랄 땐 언제고 막상 나오니까 말이 없어?”
“아, 미안.”
차서현은 멈칫했다.
미안?
지금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미안이라니?
천하의 김철준이 미안이라니?
“왜 그렇게 봐?”
“……오늘 좀 많이 낯설어서.”
“그래?”
“어.”
“저기…… 그래서 말인데 서현아.”
평소와는 다르게 버터라도 바른 듯 부드러운 말투.
이건…….
하아, 차서현은 가볍게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만.”
“어?”
천진한 표정으로 되묻는 철준에 차서현은 망설였다.
이런 일은 사실 차서현이 살면서 수십 번 겪었던 일이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그녀는 잔인하리만치 매몰차게 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대가 철준이다. 그녀에게 몇 없는 친구 김철준.
서현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이런 상황은 안 오길 바랐는데…….’
사실 수상쩍긴 했다. 가족들하고 있는 거 뻔히 알면서 갑자기 급한 일이라며 불러내질 않나…… 거기에 평소와 다르게 잔뜩 긴장한 모습이질 않나.
‘그래도 확실히 말해 두는 게 좋겠지.’
“철준아. 네가 무슨 말 할지 알아. 알겠는데…… 그 말 하지 마.”
“뭘 하지 마?”
“꼭 말로 해야 알아듣겠어?”
“아니, 그니까 뭘 하지 말란 건데?”
차서현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럴 때마다 자신은 늘 나쁜 년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나쁜 년이어야만 했다.
“김철준. 똑똑히 들어. 난 너 친구 이상으로 생각해 본 적 단 한 번도 없어. 그니까 일찌감치 마음 접어. 그게 너한테도 좋아.”
끔뻑끔뻑.
철준은 금붕어처럼 두 눈을 끔뻑거렸다.
이게 말로만 듣던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