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God wants to live in peace RAW novel - Chapter 210
마신은 평화롭게 살고 싶다 210화
* * *
“그 녀석들, 일은 잘하든?”
“잘하긴요. 두 녀석들 다 뺀질거려요.”
“뺀질거리다니?”
“자꾸 일 안 하려고 서로한테 떠미는 거 있죠?”
“떠밀어?”
“네. 제가 한 녀석한테 아루트스 오물 치우라고 하잖아요? 그럼 저 녀석이 더 잘 치운다면서 막 떠밀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한 놈은 아루트스 오물 치우게 하고 한 놈은 데칸토 오물 치우게 했어요.”
“두 몬스터 오물 치우는 게 가장 큰일이었는데 너도 이제 한숨 좀 돌리겠다.”
“맞아요. 사실 형한테는 말씀 못 드렸지만 예전에는 하루에 한 시간씩이나 일해서 좀 힘들었거든요.”
“미리 말을 하지.”
“괜찮아요. 어차피 이제 손 하나 까닥 안 해도 될 거 같거든요. 지금도 두 녀석한테 일 시키고 오는 참이에요.”
“잘했다.”
“흐헤헤헤헤.”
한쪽 구석에 짜그라져 있던 메루트스는 기함을 금치 못했다.
천신들에게 있어 오크는 미물이었다.
그만큼 보잘 것 없는 존재였다.
한데 지금 이건 뭐란 말인가?
오크와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는 마신이라니…….
‘마족들한테 말해도 믿지 않겠군.’
아니…… 천신들에게 말해도 아마 믿지 않을 거다.
천신들에게 오크란 그런 생명체였다.
그때.
“너.”
메루트스는 두 귀를 의심했다.
고개를 들자 오크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겠거니 딴청을 부리자 두식이 콧방귀를 뀌었다.
“봤으면서 어디서 못 본 척하고 있어?”
메루트스가 발끈했다.
“어디 미물 주제에 감히!”
“허! 미물? 서준이 형. 들었어요? 저 천신이 저한테 미물이라고 하는 거?”
“들었다. 이래서 함부로 호의를 베풀면 안 된다는 거군.”
“맞아요. 저 같으면 저런 천신은 진작 소멸시켰을 거예요. 하여간 서준이 형은 너무 착해서 탈이라니까요.”
“그런 것 같구나.”
죽이 척척 맞는 두 사람에 메루트스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마신더러 착해서 탈이라니?
그게 지금 할 소리란 말인가?
“아무튼 너.”
“……왜 부르는 것이냐.”
“서준이 형이 하신 말씀 못 들었어?”
“무아로써 고찰한다고 못 들었다.”
“허! 딴생각하고 있었다는 말을 길게도 하네.”
빠직!
메루트스의 고운 아미에 핏줄이 돋아났다.
삼천 년을 넘게 살아온 그녀였다. 삼천 년 신생(神生)에 설마 오크에게 조롱당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차라리 아공간에…….’
오크에게 조롱당할 바에 차라리 아공간에 다시 들어갈까라는 생각이 설핏 스쳐 지나갔지만, 말 그대로 설핏이었다.
아공간은…… 말로 형용하기 힘든 곳이었다.
그곳은 흡사 여러 차원을 한 겹 두 겹 포개어 놓은 곳 같았다.
그것들이 일종의 소우주라면 그 전부를 포용하는 중심에 이서준이라는 대우주가 있는 느낌이었다.
그 대우주는 보통은 칠흑 같은 어둠 속이었다.
그곳에서는 아무런 소리와 시간과 공간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마신이 의도한 건지는 몰라도 배경이 가끔 바뀐다.
사막이 되었다가, 설원이 되었다가 고산이 되었다가…….
‘그건 약과지.’
사실 이런 기후적인 변화만 있는 거라면 그나마 괜찮았을 거다.
문제는 가끔 마계를 연상케 하는 곳으로 바뀐다는 점이었다.
사실 마계에 가본 적은 없어서 그곳이 마계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런 끔찍한 곳은 마계에만 있을 것이다.
지면이 쉴 새 없는 용암에 달궈진다.
슬금슬금 용암이 솟아오르면서 몸에 닿게 된다.
그럼 몸이 녹아내릴 것 같지만…… 미칠 노릇인 게, 멀쩡하다.
열화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다 또 갑자기 아공간이 얼어붙을 때가 있다.
쩌걱 쩌걱 소리를 내며 시작하는 그 현상은 모든 걸 얼려 버린다.
얼어붙으면 움직일 수도 없다. 오직 신체 부위가 잘려 나갈 것 같은 통각만 느껴진다.
‘으으…….’
메루트스는 상상만으로도 진저리를 쳤다.
그곳에 들어가느니 1분 1초라도 밖에 있는 게 더 나았다.
오크에게 조롱당하지 않았냐고?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아공간에 있게 되면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갖게 될 거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메루트스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이마에 세운 핏줄을 가라앉혔다.
“아무튼 마신께서 뭐라고 한 것이냐?”
“진짜 못 들었나 보네.”
“못 들었으니 물어보는 것 아니겠느냐.”
“다시 들어갈 때 들어가더라도, 라면이라도 먹고 들어 갈래라고 물어 보셨잖아.”
“커흠! 고맙게 먹지.”
천신들은 허기를 느끼지 않는다.
그들이 음식을 먹는다면 그건 허기가 아닌 맛 때문이다.
메루트스도 천신은 천신.
허기를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왠지 거부할 수가 없었다.
아까부터 솔솔 풍겨 오던 음식 냄새에 절로 군침이 돌았던 탓이다.
잠시 후.
눈앞에 놓인 라면에 메루트스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흥. 독이라도 탔을까봐?”
두식의 말에 메루트스가 고개를 저었다.
“이게 정말 음식이란 말이냐?”
“그럼 음식이지 뭐겠어?”
“꼭…….”
“꼭 뭐?”
메루트스는 말을 아꼈다.
오크들이나 먹을 법한 음식 같다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어서다.
킁킁.
‘냄새는 좋군.’
그녀가 두식의 눈치를 살피며 라면을 집어 먹었다.
후루룩-!
면치기 한 번에 그녀의 눈이 부릅떠졌다.
“……!”
“크크. 라면 앞에는 천신도 별수 없군.”
미물의 말은 들려오지도 않았다.
이런 맛이라니!
천계에서 살았지만 단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천상의 맛이었다.
‘미물 따위가 매일 이런 걸 먹고 있었다니…….’
바드득 절로 이가 갈렸다.
누군 아공간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로 전락했는데 오크는 이런 식도를 즐기고 있었단 말인가?
억울하고 화가 났지만 그럼에도 메루트스의 젓가락질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 메루트스를 흥미롭게 바라보던 두식이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형 근데 박연은 어디 갔어요? 이 용사 놈은 구경거리 있다고 오랄 데는 언제고 정작 오니까 안 보이네.”
“모르는 게 나을 거다.”
“또 어디 가서 바보 같은 짓 하고 있는 거죠?”
서준은 무언으로 긍정을 표했다.
* * *
본체를 투명화시킨 박연의 몸이 허공에 두둥실 떠올랐다.
밤하늘 달빛에 은은하게 비친 그의 모습은 한 점의 그림 같았다.
박연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오감을 개방해 모든 감각을 곤두세웠다.
부스럭!
사각! 사각!
사라락! 사라락!
철썩!
반경 3km 안에 있는 만물들이 내는 소리에 집중했다.
취객이 낙엽 바스러뜨리는 소리…… 미대생이 연필심 깎는 소리…… 재수생의 책장 넘기는 소리, 한강물 부서지는 소리.
그리고.
-오빠 거긴 안 돼…….
-가만 좀 있어 봐.
-안 되는데…… 으흥!
“헉!”
듣지 말아야 할 소리를 들은 박연이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후우, 후우.”
심호흡으로 마음을 달랜 뒤 다시금 정신을 집중했다.
사각! 사각!
부스럭!
수천 개의 소리가 일시에 귓가로 들어왔지만 박연은 모든 걸 구분하고 분별했다.
그러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박연이 문득 귀를 쫑긋 세웠다.
* * *
심연 길드의 수원 지부장인 명형준은 기분이 좋았다.
한직 취급 받던 수원 지부장에서 조만간 서울 본부 제2감사실장으로 발령 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제2감사실장의 경쟁자는 모두 셋.
자신을 포함하면 후보가 넷인 셈이다.
하지만 명형준은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인사부에 있는 친구가 자신이 내정될 확률이 높다는 귀띔을 해 준 탓이다.
어느 기업이든 감사실의 입김은 셀 수밖에 없다.
그건 심연 길드도 예외가 아니었다.
오히려 길드들은 일반 기업들에 비해 감사실의 입김이 더 강한 편이다.
아무래도 길드라는 조직 자체가 인명과 밀접한 연관이 있어서다.
그래서일까?
아직 확정이 나지도 않았건만 그의 부하 직원들은 벌써부터 알랑방귀를 뀌어 댔다.
“미리 축하드립니다, 지부장님!”
“이 사람아, 지부장님이 뭔가? 이제 실장님 직함 다실 분한테.”
“아하하! 죄송합니다, 실장님! 아무튼 미리 영전을 축하드립니다!”
“에헤헤. 이리 떠나게 되시면 저희로서는 섭섭하지만 감사실에 들어가게 되셨으니……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실장님.”
명형준은 손을 휘휘 내저었다.
“하하. 실장님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아직 확정이 난 사안도 아닌걸요. 누가 들으면 오해합니다.”
“오해는요. 우리 지부장님…… 아! 이 입 좀 보게. 실장님처럼 공명정대하신 분이 감사실로 안 가시면 누가 감사를 한단 말입니까?”
“하하. 저 말고도 심 선배도 있잖습니까.”
“아이고, 말도 마십쇼. 그 꽉 막힌 인간은 상종도 하기 싫습니다, 상종도. 안 그래, 이 과장?”
“맞습니다. 으으…… 어찌나 융통성 없이 꽉 막혀 있던지. 쯧쯧.”
“들으셨죠? 이 과장 말대로 감사실장 감으로는 실장님만한 분이 없습니다.”
노골적인 아부였지만 불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만인이 굽실거리는 이 맛에 수컷들이 어떻게 해서도 높은 자리에 오르려는 게 아니겠는가?
“아! 맞다! 이 과장 그거 가져와야지.”
“아아. 예, 얼른 다녀오겠습니다.”
잠시 후.
이 과장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빈손으로 갔던 그는 명절 선물 세트를 들고 나타났다.
“이게 뭡니까?”
“이제 곧 민족 대명절 설 아닙니까? 그런데 이대로 우리 실장님께서 수원 지부를 떠나신다니 너무 아쉽고 섭섭해서…… 작지만 저와 이 과장 성의입니다.”
“아니, 우리 사이에 뭘 또 이런 걸.”
“설 선물이라고 생각해 주십쇼. 하하.”
“거창 사과네요. 제가 또 거창 사과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아시고.”
차에 실은 그가 두 사람에게 말했다.
“밤도 늦었고 이만 시마이 치죠.”
“아, 예!”
“먼저 들어갑니다.”
“예, 살펴 가십쇼!”
“살펴 가십쇼, 실장님!”
명형준의 차가 떠날 동안 두 사람은 폴더처럼 접은 허리를 피지 않았다.
콧노래가 흥얼흥얼 나왔다.
‘감사실장이라…… 크크.’
아마 심연 길드 최초의 최연소 감사실장일 것이었다.
그때.
전화가 왔다. 확인해 보니 인사부에 있는 그 친구였다.
“이 시간에 갑자기 웬 전화냐?”
-형준아…… 하아.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뭔데?”
-미끄러진 것 같다.
“…….”
-하, 시발…… 재작년에 던전에서 있었던 일 있잖아. 그거 심 선배가 어떻게 알고 인사부에 찔렀나 보더라고.
“…….”
-여보세요? 형준아? 듣고 있어? 명형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날만을 얼마나 학수고대했던가?
그런데 겨우 포터 새끼들 셋 뒈진 일로 발목이 잡혔단다.
다른 것도 아니고 겨우 포터 새끼들 셋 뒈진 일로 말이다.
“언제 뒤져도 모르는 게 포터 새끼들이잖아, 시발!”
탕탕!
애꿎은 핸들을 내리치지만 분은 풀리지 않았다.
‘그 개새끼를 죽여?’
심 선배.
말이 선배지 S등급 각성자에 불과하다.
솔직한 말로 2분 안에 끝낼 수 있다.
당장이라도 차를 돌릴까 말까 고민하는데 문득 뒤에서 가벼운 클랙슨 소리가 들렸다.
신호가 어느 새 바뀐 것이다.
‘시발 아주 쌍으로 지랄을 하는구나.’
가뜩이나 심사가 뒤틀려 있던 명형준은 신경질적으로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뒷차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툭툭.
창문이 스르르 내려갔다.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아줌마였다.
“왜, 왜 그러세요?”
“왜 그러세요? 이 시발년아, 왜 그러세요?”
상대의 반응에 더욱 화가 치밀었다.
이런 낡아 빠진 경차나 타고 다니는 년 주제에 감히 클락션을 울리고도 모자라 왜 그러세요?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내려, 시발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