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God wants to live in peace RAW novel - Chapter 221
마신은 평화롭게 살고 싶다 221화
* * *
서우는 칠 년이란 인생을 살아오면서 행복했던 기억이 별로 없었다.
아빠는 맨날 일을 했다. 아침 일찍 나가 저녁 늦게 돌아왔다.
빈집에는 심심찮게 험악하게 생긴 아저씨들이 찾아왔다.
“너희 아빠 어디 갔냐?”
“꼬마야. 너희 아빠한테 아저씨들이 돈 받으러 왔다고 전해라.”
“이번에도 밀리면 국물도 없다고 전해.”
다른 아이들이 은행 놀이나 시장 놀이로 화폐 개념을 익힐 때, 서우는 그 아저씨들 덕에 돈이 뭔지 알게 됐다.
그래서 아저씨들을 맞닥뜨리면 제일 먼저 하던 말이 ‘아빠 집에 없어요’와 ‘우리 돈 없어요’였다.
아빠와 노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피곤이란 게 뭔지 모르는 서우였지만 아빠의 초췌한 모습에 차마 놀아 달라고 떼를 부릴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서우도 행복한 기억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나.
세 가족이 함께 살 때는 행복했었다.
그 행복은 엄마가 일하러 가게 되며 깨졌다.
서준이 오기까지 몇 년간 서우는 행복을 모르고 살았던 셈이다.
서우가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한 일은 늘 엄마가 돌아왔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아빠한테 엄마가 언제 돌아오냐고 물었었다. 아빠는 그럴 때면 늘 백 밤이라고 했다.
하지만 서우는 언제부턴가 어렴풋하게 짐작하고 있었다.
백 밤은 이렇게 길지 않으니까.
그래서 아빠한테도, 큰아빠한테도 엄마가 언제 오냐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안다. 엄마는 나비와 얼룩이처럼 심장이 멈췄다. 심장이 멈춰서 하늘나라에 갔다.
어린 서우로서는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었지만, 슬프면서 슬프지가 않았다.
하늘나라에서 엄마가 서우를 지켜보고 있다는 아빠의 말과.
아마도 오늘 엄마가 서우를 보러 올 거라는 큰아빠의 말 때문이었다.
그리고 과연 큰아빠의 말은 맞았다.
“엄마!”
엄마가 오기를 기다리며 꾸벅꾸벅 졸다가 눈을 떴는데 그 앞에 엄마가 앉아 있었던 것이다!
서우는 벌떡 일어나 엄마에게 안겼다.
“아이쿠. 우리 서우 벌써 이렇게 컸네.”
“엄마 나 보러 왔어?”
“그럼. 잘 있었지?”
“응! 아빠랑 큰아빠 말 잘 듣고 있었어. 엄마는 하늘나라에서 서우 지켜보고 있었던 거지? 그런 거지?”
“응.”
경민진이 환한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달뜬 표정의 서우가 말했다.
“그럼 서우가 어린이집에서 울고 있는 재한이 토닥토닥해 준 것도 봤어?”
“봤지. 재한이가 금방 뚝 하던데?”
“헉! 진짜 봤네? 엄마, 그럼…… 그럼 경민이가 준비물로 색종이 안 가져왔을 때 내가 빌려준 건?”
“그것도 봤지. 빨간색이랑 노란색 색종이 빌려줬지?”
서우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엉덩이를 들썩였다.
“엄마. 나도 엄마 따라서 하늘나라 가면 안 돼?”
“서우는 안 돼.”
“왜?”
“그럼 아빠 혼자 남잖아. 아빠가 슬퍼할 거야. 큰아빠랑 박연 삼촌도…… 그리고 역삼이도.”
서준과 박연 그리고 역삼이까지 떠올린 서우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경민진을 올려다 보았다.
“난 엄마랑도 살고 싶은데…….”
“대신 엄마가 서우 보러 자주 올게.”
“진짜?”
“응.”
헤헤 웃던 서우가 문득 생각난 게 있는지 말했다.
“맞다! 엄마 나 엄마 오면 쎄쎄쎄 하자고 말하려고 했는데.”
“쎄쎄쎄 하고 싶어?”
“응. 아빠는 쎄쎄쎄 잘 못 해. 엄마가 잘해.”
“그래? 그럼 해야지. 시작할까?”
“응!”
“쎄쎄쎄- 아침바람 찬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
서우의 입가에 미소가 한가득 맺혔다.
그렇게 서우는 죽음이란 완전한 부재가 아님을 깨달으며 엄마의 죽음을 인지해 나갔다.
* * *
캉캉!
역삼이가 냉장고 위를 직시하며 짖어댔다.
“역삼이 조용.”
캉캉! 캉캉캉!
하지만 저기 좀 봐요!
서준은 쓱 고개를 돌렸다. 냉장고 위에 고양이 한 마리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역삼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비였다.
“이제 나비도 여기서 계속 살 거야. 그러니까 싸우지 말고 친하게 잘 지내. 알겠지?”
캉캉캉!
그건 좀 싫어요!
“왜 싫어?”
캉!
그냥요!
피식 웃은 서준은 호주머니에서 소시지 세 개를 꺼내 포장을 뜯었다. 역삼이가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기다렸다.
“잘 지낼 수 있지?”
나비와 소시지를 번갈아 쳐다보던 역삼이가 서준의 시선을 외면했다. 그에 서준은 소시지 두 개를 더 꺼냈다.
“잘 지낼 수 있지?”
캉캉!
잘 지낼게요!
“그래.”
서준은 소시지를 도로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캉?
주인님?
“오늘 너무 많이 먹었어. 역삼이 너 거울 앞에 가서 서봐. 살이 아주 포동포동 올랐더라. 이건 내일 줄게.”
끼잉-.
피식 웃은 서준은 고양이 사료를 그릇에 덜어 냉장고 위에 올렸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꼬리를 치켜올리며 경계했던 나비였지만, 밥 주는 사람 얼굴 정도는 기억하는지 이제는 그다지 경계하지 않았다.
사료를 먹는 나비를 살짝 어루만져 봤다. 움찔거리긴 하지만 손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장족의 발전이다.
흐뭇하게 미소 지은 서준이 부엌으로 들어갔다. 저번에 못해 먹은 김치부침개를 만들어 먹을 참이었다.
그것도 바삭한 김치부침개.
생각해 보면 김치부침개 만큼 만들기 간편하면서 맛있는 음식이 또 없는 것 같다.
밥반찬으로도 제격이지만 안주로도 제격이다. 어떤 술과도 잘 어울리고.
서준은 냉장고에서 잘 익은 배추김치를 꺼냈다. 김치국물은 꾹꾹 짜 주고 잘게 썰어 줬다. 써는 김에 양파도 썰어 준다.
그 다음은 반죽을 만든다. 반죽이라고 해서 거창하진 않다.
볼에 1:1 비율로 부침 가루와 튀김 가루를, 달걀을 넣고 물과 함께 잘 섞어 주면 된다.
물은 찬물이 좋다. 튀김가루로 부족한 바삭한 식감을 찬물이 살려 줄 거다.
반죽에 썰어 놓은 김치와 양파를를 넣어 골고루 섞어 줬다. 자, 그럼 김치부침개 반죽 완성이다.
남은 건 부쳐 주는 일뿐!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넉넉하게 두르고 튀기듯 부쳐 주자.
여기서 포인트는, 과하다 싶을 만큼 식용유를 넣어주고 반죽은 얇게 펴 주는 거다.
지글지글, 톡톡 튀는 기름이 꼭 빗소리 같다.
적당히 익은 것 같다 싶으면 뒤집어 주자.
다 익으면 그대로 꺼내 먹어도 되지만, 서준은 그러지 않았다.
중불에 맞춘 불을 센불로 바꿔 줬다. 적당히 탄 부침개를 선호하는 탓이다.
거기서 딱 20초만 더 부치자.
그리고 20초가 되는 순간!
뒤집개로 쓱쓱 중심을 잡아 소쿠리로 직행!
순식간에 김치부침개 세 장을 만들어 낸 서준이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물론 황태수한테 선물받은 한산소곡주도 빼먹지 않았다. 술을 개봉하기 전에 안주 맛부터 봐 본다.
자고로 부침개는 김이 모락모락 날 때 손으로 쫙쫙 찢어먹어야 제맛인 법.
“뜨뜨뜨!”
한기와 열기에서 초탈한 육신이었지만 서준은 일부러 오두방정을 떨면서 부침개를 찢었다. 쫙 찢은 부침개를 한 입에 쏙 넣었다.
그야말로 겉바속촉의 정석이다.
바삭!
소리와 함께 고소한 기름 향이 미뢰를 건드렸다. 그 기름이 느끼하다 싶을 즈음, 김치의 짠맛이 톡 치고 올라와 기름기를 잡아 줬다.
아삭한 식감에 달큰한 양파는 덤이다.
“이만하면 되겠다.”
흐뭇하게 미소 지은 서준이 한산소곡주를 개봉했다.
똑!
코르크 마개를 열자마자 저번에 먹은 이강주와는 다른 시큼 달달한 향이 툭 치고 올라온다.
“비싼 술이라 그런지 향부터 다르네.”
가게에서 늘 희석식 소주만 마시다가 이런 비싼 술을 접하니 향부터가 남다르다.
“앉은뱅이 술이라고 했던가?”
황태수는 한산소곡주를 그렇게 소개했다. 하도 맛있어서 한 잔 두 잔 홀짝이다 보면 저도 모르게 취해 버린다나?
피식 웃은 서준은 잔에 술을 따랐다.
쪼로록-!
누리끼리한 게 색은 김 빠진 맥주 같다.
하지만 그 맛은 다를 터.
희석식 소주를 마실 때와는 다르게 천천히 술을 밀어 넣었다.
술이 미뢰에 닿자마자 왜, 이 술의 이칭이 앉은뱅이 술인지 알 것 같았다.
원래 혀와 한 일부분이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착 감기면서도 달착지근한 맛이 일품이었다.
거기에 깔끔하게 떨어지는 뒷맛이, 저도 모르게 술병에 손이 가게 만들었다.
하지만 술을 한 잔 했으면 안주 한 점은 진리다.
찢어둔 부침개를 간장에 콕 찍어 입에 넣었다.
고소하고 기름진 김치부침개가, 시큼달달하게 남아 있던 한산소곡주의 여운을 밀어냈다.
먹고 보니 부침개와 한산소곡주의 조합이 치맥 저리가라다. 오히려 그 이상 같다.
물론 거기에는 치맥보다 치콜을 선호하는 기호 문제도 있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쪼록-!
다시 술을 따라 천천히 입에 밀어넣었다.
“어?”
아까는 입에 착 감기면서 달착지근한 맛이 느껴졌다면 이번에는 고소하면서 달곰새금했다.
같은 술인데 이럴 수가 있나?
신기한 마음에 술 한 잔, 안주 한 점의 원칙을 어기고 술을 한 잔 또 따라 마셨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처음처럼 입에 착 감기면서 달착지근한 맛이 느껴진다.
“뭐지?”
고개를 갸웃거린 서준은 몇 잔 더 마신 뒤에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술의 뒤끝이 워낙 깔끔해서 안주의 영향을 받는 것 같았다. 그러니 김치부침개 특유의 달곰새금한 맛이 뒤따라올 수밖에.
재밌기도 하고 희석식 소주와는 다른 별미라, 계속 손이 갔다.
그렇게 한산소곡주 한 병을 비워 내자 서준의 얼굴에 취기가 감돌았다. 취기를 날려 보낼 수도 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알딸딸한 게 딱 좋았다.
비칠거리며 일어난 서준이 냉장고에서 한 병을 더 꺼내 왔다.
* * *
천계를 창조한 주신은 천신들에게 각각 소임을 주었다.
트빌론에게는 풍요를 관장하게끔…… 헤르페테론은 전쟁을 관장하게끔…… 베로쿠노스에게는 생명을 관장하게끔.
소임을 맡기며, 주신은 그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천신들은 본인들의 정체성을 선(善)에 두었다.
하지만 주신이 홀연히 자취를 감춘 뒤, 천신들은 본인들의 정체성에 회의를 품었다.
우리는 과연 주신의 절대선에 대한 의지가 빚어 낸 이들인가?
우리가 절대선을 위해 창조된 존재들이라면 왜 주신은 선악을 설명해 주시지 않았는가?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천신들은 답을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주신은 우리를 절대선의 의지로 빚어내지 않았다는 것.
그러자 천신들은 본인들의 존재 의미를 선(善)이 아닌 격(格)에 두게 되었다.
주신이 사라진 세계에서 오로지 천신들만이 가진 무한 존재자로서의 신격(神格)말이다.
신격으로서의 우월감은 무절제를 낳았다. 무절제는 쾌락을 낳았다.
쾌락은 다시 무질서를 낳았으며, 무질서의 혼돈이 시작된 이후.
천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카베니안은 이 모든 게 우연은 아니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천기가 사라지는 속도는 점점 가속화되고 있었다.
천기가 사라진다면 천신들은 신격을 잃게 된다. 천기의 소멸은 곧 천신들의 소멸을 의미하니까.
카베니안은 소멸이 두려운 게 아니었다. 신격의 상실을 두려워했다. 카베니안은 그 일만큼은 막고 싶었다.
설사 본인이 소멸되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