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God wants to live in peace RAW novel - Chapter 236
마신은 평화롭게 살고 싶다 236화
* * *
꿈보다 해몽가 시현이 덕분에 얼떨결에 구청장에 출마하게 됐다.
자신의 일에 별 관심도 없어 하는 괴물1이긴 하지만, 괴물이 괜히 괴물이겠는가?
허락도 안 받고 출마했다가 노발대발이라도 한다면?
그땐 목숨이 두 개라도 모자랄 거다.
옛날 속담에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데 하물며 괴물이야.
“그럼 다녀오마.”
“예, 다녀오십쇼.”
“아, 그리고 고 이사.”
“예.”
“만에 하나 내가 20분 안에 안 나오면…….”
“에?”
“예희한테 내 서재 컴퓨터 책상 4번째 서랍 찾아보라고 해라.”
“아, 알겠슴다.”
“그럼 진짜 다녀오마.”
차에서 내린 황태수가 비장하게 첫 걸음을 뗐다.
* * *
서우는 이미 숨을 곳을 물색해 둔 상태였다.
마당에 있는 간이 창고.
거기에 숨을 참이었다.
숨소리를 죽이고 까치발을 든 채 조심조심 현관을 나섰다.
“어?”
현관문을 열자마자 인영(人影) 넷이 보였다.
서우는 고개를 들었다. 역광이라 인영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어린이집에서 모르는 사람과는 말도 섞지 말고 따라가지도 말라고 배웠지만 네 사람에게서는 박연 삼촌과 같은 따스한 느낌이 났다.
“누구세여?”
서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인영이 자세를 낮춰 서우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 얼굴을 본 서우는 깜짝 놀랐다.
세상에서 큰아빠랑 박연 삼촌이 제일 잘생긴 줄 알았는데, 잘생긴 사람이 또 있다니?
남자가 분명한데, 왠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입에서 나온 말은 외모만큼 아름답지 않았다.
“이 아이를 죽이면 마신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대노할 겁니다.”
“잡아 두면?”
“옴짝달싹 못할 테지요.”
카베니안이 비릿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서우에게 손을 뻗었다. 아니, 뻗으려 할 때였다.
“너희 뭐야!”
별안간 들려온 외침에 카베니안이 고개를 돌렸다.
험상궂게 생긴 인간, 황태수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황태수는 어이가 없었다. 기껏 용기 내서 괴물의 거처로 들어왔더니 생판 모르는 얼굴들이 서우랑 같이 있는 게 아닌가?
‘유괴범?’
불현 듯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생각이지만, 왠지 그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유괴범 치고는 인상들이 선하긴 하지만…….’
어디 범죄자가 얼굴에 나 범죄자요. 써 놓고 다니겠는가.
사실 자신만 해도 얼굴만 보면 전혀 어둠의 세계에 몸담고 있다는 인상은 받지 못할 것이다.
강력계 형사 쪽이라면 모를까?
생각이 거기에 미친 황태수는 성큼성큼 천신들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서우를 뒤로 감춘 채 인상을 와락 구겼다.
“너네 뭐냐니까, 이 새끼들아? 누군데 남의 집에 와서 지랄들이야?”
“인간이란 이래서 흥미로운 존재란 말이지.”
“뭐라는 거야, 이 새끼가.”
“쿠라무스.”
“예.”
“죽여라.”
고개를 끄덕인 쿠라무스의 손에 검이 나타났다. 천성검이었다. 쿠라무스는 망설임 없이 천성검을 휘둘렀다.
* * *
쿠라무스는 천신이었다. 주제 파악을 못 하는 인간 한 명쯤은 기압만으로도 압살시킬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검(一劍)의 자비를 베풀었다.
희생을 관장하는 신인 그에게는 황태수가 아이를 위해 희생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고통 없이 보내 줄 참으로 천성검을 휘둘렀다.
챙-!
쿠라무스가 눈을 부릅떴다.
손끝이 저릿했다. 휘두른 천성검이 갑자기 생겨난 보호막에 의해 튕겨 나온 것이다.
“당신들은 여기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감히 천신들을 대상으로 오만하기 짝이 없는 말투.
발끈하려는 쿠라무스를 제지한 건 카베니안이었다.
“오랜만이군. 용사 벨테브레이.”
“날 알고 있군.”
“알다마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카베니안이 히죽 웃어 보였다.
“그보다 용사의 신심이 많이 옅어졌군. 이래선 안 되는데 말이지.”
“그건 내 의지에 달렸다. 난 나를 기만한 당신들을 더 이상 섬기지 않는다.”
“상관없다. 우리가 필요한 건 신심 잃은 나약한 용사 따위가 아니니까.”
비릿하게 웃은 카베니안의 접힌 날개가 쫙 펼쳐졌다. 무지막지한 풍압에 박연이 멀리 나가떨어졌다.
쿵-!
박연의 신형이 벽에 볼품없이 처박혔다. 벽돌이 으스러지고, 그 주위로 벽돌 가루가 흩날렸다.
“삼촌!”
“박 선생님!”
벽에 처박힌 박연이 몸을 일으켰다.
“난 괜찮소.”
“하지만 박 선생님 머리에 피가…….”
“살갗이 조금 벗겨진 것뿐이오.”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데 살갗이 조금 벗겨진 정도라니…….
공포보다 놀람이 더 큰 황태수가 입을 쩍 벌리고 있을 때, 소란에 잠에서 깬 연준이 허둥지둥 내려왔다.
정체불명의 삼남일녀에 연준이 멈칫하자 카베니안이 말했다.
“과연 닮았군.”
“그가 저자와 비슷하게 생겼습니까?”
네 천신들 중에서 서준을 직접 본 이는 카베니안밖에 없었다.
쿠라무스의 질문에 카베니안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많이.”
“아…….”
“그나저나 용사와 저 무례한 인간은 어떡할까요?”
여유롭게 처리를 논하고 있는 천신들.
박연은 입이 바싹 타들어 가는 기분이 들었다.
‘어째서 아직이란 말이냐. 어디서 뭘 하고 있길래!’
박연은 일부러 시간을 끌었다. 서준이 올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서준은 이미 천신들의 막대한 신성력을 느꼈을 터.
그런데도 아직 감감무소식이었다.
“죽여라.”
“예.”
천성검을 꼬나쥔 쿠라무스에게서 짙은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농밀한 마기가 느껴졌다.
박연은 반색했다. 이런 농밀한 마기라면 서준의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
기대한 서준은 나타나지 않았다. 의아해하던 박연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마기가 느껴진 곳이 다름 아닌 쿠라무스의 몸속이었던 탓이다.
‘이게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천기…… 즉 신성력과 마기는 서로 상극이다. 공생할 수 없는 것이다.
한데 그 상식을 비웃기라도 하듯 쿠라무스의 몸에서는 천기와 함께 마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가불가(可不可)를 따지고 있을 여유 따위는 없었다.
콰쾅!
박연이 발을 딛고 서 있던 곳에 거대한 크기의 얼음 송곳들이 내리꽂혔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주룩 흘러내렸다.
본능적인 위험을 감지하고 피하지 않았더라면 저 얼음 송곳들에 몸이 꿰뚫렸을 터였다.
“데이카란투를 해치웠다더니 제법이군. 그 실력 좀 제대로 확인해 볼까.”
쿠라무스의 신형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뒤!’
채앵!
황급히 몸을 돌려 세운 박연이 장검을 들어 막았다. 검과 검이 부딪히며 쇳소리와 함께 불똥이 튀었다.
그러는 사이.
카베니안과 다른 천신들이 연준과 서우에게 다가갔다.
힐끔, 곁눈질로 그걸 확인한 박연이 연준과 황태수에게 심념을 보냈다.
-내가 신호하면 정신이 없어질 거요. 하지만 절대 의식을 잃어서는 안 되오.
그 말을 끝으로 쿠라무스를 뿌리친 박연이 용언을 외웠다.
“카라드의 언(言)이 나 벨테브레이에게 있나니, 그것이 곧 카라드의 령(靈)이 되어 02.61에 모습을 드러내게 하리라!”
한 줄기 빛이 박연에게 내리꽂혔다.
빛은 가장 가까운 곳에 서 있던 연준과 서우, 그리고 황태수에게로 번져나갔다.
빛은 금방 네 사람을 집어삼켰다.
눈앞에서 네 사람이 사라지자 쿠라무스는 당혹스러워했지만 카베니안은 아니었다.
그는 이미 박연이 이럴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듯, 두 손을 들어 올렸다.
박연과 달리 별다른 주문도 없었는데 한 줄기 빛이 내리꽂히더니 네 천신들을 집어 삼켰다.
천신들이 모습을 드러낸 곳은 박연이 세 사람을 데리고 피신한 경복궁이었다.
02.61은 다름 아닌 경복궁의 좌표였던 것이다.
천신들이 바로 쫓아오자 박연은 다시금 용언을 외웠다.
“카라드의 영이 나 벨테브레이에게 있나니, 그것이 곧 카라드의 령이 되어 13.671에 모습을 드러내게 하리라!”
역시나 한 줄기 빛이 박연에게 내리꽂혔고, 그 빛은 세 사람까지 집어삼켰다.
이번에 그들이 모습을 드러낸 곳은 황태수의 사무실이었다.
그런 상황이 몇 차례 반복됐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 따로 없었다.
카베니안은 그때마다 그를 뒤쫓아 왔다.
“헉헉!”
“힘이 다했나 보군.”
박연이 표독스러운 눈으로 카베니안을 바라봤다.
“혼자라면 모를까. 짐들을 데리고 언제까지 피할 수 있을 것 같은가? 그게 그들의 운명이니 그만 운명에 순응해라.”
카베니안의 말이 맞았다. 용언 마법은 기력을 소모시킨다. 더 이상 용언 마법을 외울 여력은 남아 있지 않았다.
대신…….
‘맞설 수는 있겠지.’
박연은 장검을 꺼내 곧추세웠다.
그에 조소한 아르한스가 나섰다. 아르한스는 접힌 날개를 쫙 펼쳤다.
쉬이이익!
쉬익!
펼쳐진 날개에서 깃털들이 비수처럼 박연에게 날아들었다.
박연은 범인의 눈으로는 좇지도 못할 속도로 깃털들을 쳐냈다.
그 무게가 고작 1mg에 불과할 만큼 가벼운 깃털들인데, 마치 거대한 바위를 쳐내는 것처럼 손이 저릿했다.
그래도 박연은 필사의 각오로 세 사람을 보호했다. 보호만 하진 않았다. 틈틈이 반격도 가했다.
쿠르르! 콰쾅!
하늘을 가득 뒤덮은 번개가 아르한스에게 내리꽂혔다.
하지만 그에게 조금의 생채기도 입힐 수는 없었다.
화르르륵!
박연의 손에서 거대한 불의 구(球)가 생겨났다. 염화였다.
쉽게 꺼뜨릴 수 없다고 알려진 염화는 아르한스의 깃털을 그을리지도 못한 채 사그라들었다.
쿠르르!
쿠와아아아아!
굉음과 함께 땅이 갈라지며 마그마가 넘실거렸다. 넘실거리던 마그마는 일시에 아르한스에게로 쏟아졌다.
모든 걸 녹여 버릴 것 같은 마그마였지만, 아르한스의 몸을 감싼 날개에 닿는 순간 연기와 함께 녹아내렸다.
“재롱은 잘 봤다.”
상대는 명실상부한 천신.
반신인 드래곤도 상대하기 벅찬 박연에게 완전한 신격을 가진 천신을 상대하기란 애초부터 무리였다.
“나는 자비의 신 아르한스. 용사로서 헌신했던 공을 높이 사서 자비로운 죽음을 맞게 해 주지.”
연신 숨을 몰아쉬는 박연에게 아르한스가 다가와 천성검을 목에 겨눴다.
“삼촌!”
“박연 씨!”
서우와 연준의 부름에 숨을 가쁘게 몰아쉬던 박연이 괜찮다는 듯 웃어 보이고는 아르한스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저들을…….”
“음?”
“저들을 죽일 심산인가?”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군.”
“그럼 하나만 더 묻자.”
“물어보도록.”
“당신들은 타락한 건가?”
“타락?”
“타락한 게 아니라면 왜 마기도 함께 느껴지는 거지?”
“그걸 안다고 달라질 게 있을까?”
어깨를 으쓱거린 아르한스가 천성검을 휘둘렀다.
그때였다.
아르한스위 귓가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는 상관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