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God wants to live in peace RAW novel - Chapter 237
마신은 평화롭게 살고 싶다 237화
* * *
분노를 꾹꾹 눌러 담은 목소리.
그 목소리가 들려오자마자 아르한스는 오한이 들었다.
아니…… 이건 오한이 아니었다.
상위 포식자를 마주한 먹잇감이 느끼는 공포에 가까웠다.
우우우우웅-
박연의 울대 앞에서 멈춰 선 천성검의 검신이 부르르 떨렸다. 그러더니 아르한스의 의지와는 다르게 움직이려 했다.
소멸의 공포에 잠식당한 아르한스가 최대한 천성검을 움켜잡았다.
하지만 역시나 그 의지와 무관하게 천성검의 칼끝은 아르한스를 향해 거꾸로 세워졌다.
“으으…… 카, 카베니안 님!”
아르한스가 저절로 움직이는 천성검에 기겁하며 카베니안을 불렀다.
카베니안도 천성검이 스스로 움직이는 순간, 가만있었던 건 아니었다. 염동력을 이용해 이를 제지하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압도적인 힘에 의해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르한스의 부름에 대답을 안 한 게 아니었다.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균형이 틀어진다면 천성검은 그대로 아르한스의 목을 꿰뚫어 버릴 테니까.
저벅저벅.
발소리가 들려왔다.
정체불명의 힘에 의해 움직이는 천성검을 제지하려 젖 먹던 힘까지 쓰고 있던 카베니안은 차마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발소리의 주인을 확인 할 수 있었던 건 쿠라무스와 페사무드였다.
두 천신은 자신들을 압박하는 막대한 기운에 발소리의 주인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마신……!”
경악에 찬 페사무드와 다르게 서준은 평온한 표정이었다.
“박연.”
“왜 이제 오는 거냐!”
“확인할 게 있어서.”
“그 확인 한 번만 더 했다가는 사람 목숨 여럿 잡겠다!”
퉁명스러운 대답이었지만, 퉁명스러운 대답과 다르게 박연의 얼굴에는 미소가 맺혀 있었다.
“아, 싸움 잘 봤다. 개싸움이 따로 없던데?”
“모르는 소리! 나 혼자였으면 저딴 천신쯤은 한 방에 때려눕힐 수 있었어!”
“한 방에 때려눕힐 수 있는 거 치고는 많이 고전하더군.”
“뭘 모르네. 일부러 고전하는 척한 거다.”
“일부러?”
“그래. 너도 안과 못의 차이는 알겠지? 한마디로 나는 못 싸운 게 아니라 안 싸운 거다. 왜냐. 너의 극적인 등장을 연출해 주기 위해서랄까?”
입에 침이나 바르고 말하면…… 서준은 피식 웃었다.
“그래. 안못 싸운 거라고 해두지.”
“안못이 아니라 안 싸운 거라니까?”
“그래, 그래.”
박연을 일별한 서준이 쿠라무스와 페사무드 사이를 가로질렀다.
서준이 바로 그 사이를 가로질러 가는데도 두 천신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올가미에 갇힌 기분이었다.
그들을 지나친 서준은 카베니안의 옆에 멈춰 섰다.
“형?”
“큰아빠!”
“괴…… 아니, 사장님!”
세 사람의 부름.
서준은 미소 지어 준 뒤, 세 사람을 잠재웠다.
“그대가 카베니안인가?”
“……!”
“놀라긴. 그나저나 버거워 보이는데 좀 도와줄까?”
카베니안은 가타부타 말을 할 수 없었다.
집중이 흐트러졌다가는 힘의 축이 한쪽으로 쏠릴 테고, 그 순간 아르한스의 목숨은 장담 할 수 없을…….
서걱!
별안간 들려온 소름 돋는 소리.
고개를 든 카베니안의 동공이 경악으로 물들어 갔다.
쩌어억!
쩌걱!
경악에 물든 동공에는 정수리에서 사타구니까지 신체가 양단된 아르한스가 비쳤다.
분리된 신체는 이내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 * *
카베니안은 죽음을 관장하는 삼신(三神) 중 하나였다.
그는 죽음의 신이었기에 인간들이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고작 수십 년 남짓한 세월을 살아간다. 그들에게 시간이란 무한하지 않은 것이다. 무한하지 않기에 두려울 수밖에 없는 거고.
하지만 천신들은 다르다. 천신들은 인간에 비하면 무한에 가까운 시간이 있었다.
원탁회의의 아르코누스들은 대부분 30만 년 이상의 삶을 살았다.
그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카베니안은 6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살아왔다. 아니…… 존재했다.
아르코누스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만 인간들에게는 불로장생이라 할 만한 시간인 셈이다.
그런데도 천신들은 소멸을 두려워했다. 무한한 시간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래서일까?
카베니안은 소멸을 두려워하는 천신들을 극도로 혐오했다.
그런데 지금.
카베니안은 자기혐오에 빠졌다.
신생(神生)처음으로 소멸의 공포에 사로잡힌 것이다.
저벅저벅-
정작 그를 공포에 질리게 한 당사자는 태연한 표정으로, 태연하게 걸어왔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마물(魔物)을 삼켰군.”
“……!”
“놀라긴.”
“그걸 어떻게……!”
서준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어느 한 천신이 스스로를 타락시켜 마계에 들어왔다.
그는 타락할 때, 다른 천신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카베니안처럼 마물을 삼켜 스스로의 기척을 없앴었다.
쓰게 웃으며 카베니안을 일별한 서준은 다른 두 천신들에게 말했다.
“너희의 신명은 무엇이냐.”
서준이 말하자마자 쿠라무스와 페사무드는 감히 거역하기 힘든 주박(呪縛)에 걸린 기분이었다.
의지와 다르게 입이 저절로 열렸다.
“……나는 복수의 신 쿠라무스라 하오.”
“……난 희생의 신 페사무드요.”
들어 본 적 없는 신명들이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송사리 축에도 못 끼는 천신들이 주제 파악 못하고 노리지 말아야 할 것들을 노렸다는 뜻이니까.
서준이 페사무드에게 손을 휘둘렀다.
가벼운 손짓에 불과했지만, 페사무드는 무지막지한 마기를 느꼈다. 온몸의 털이란 털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떤 수를 쓴 게 분명했다.
사람들의 생김새가 각기 다른 것처럼 천신들도 가진 바 능력들이 각기 다르다. 페사무드는 주로 얼음과 방어와 관련된 속성에 특화되어 있었다.
마기를 느낀 페사무드는 서둘러 성법(聖法)을 시전했다.
허공에 수십 개의 방패들이 생겨나더니 이내 자기들끼리 뭉치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새에 뭉친 방패의 모습은 로마군의 테스투도를 연상케 했다.
쿵-!
쿵쿵!
둔기들이 방패를 내려찍고 있는 기분에 페사무드는 연신 신음을 토해 냈다.
공포에 질린 카베니안이 정신을 차린 게 그 무렵이었다. 카베니안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성법을 사용했다.
쿠르르르-!
굉음이 들려오며 대지가 진동했다. 그러더니 멀쩡한 땅이 쩍쩍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크윽! 카베니안 님!”
“페사무드! 조금만 더 버텨라! 쿠라무스, 정신 차려라!”
“아!”
“지금이 기회다! 얼른 겁화를 소환해라!”
“예!”
쿠라무스도 성법을 시전했다. 마그마처럼 일렁이는 겁화가 흡사 쓰나미처럼 일어나더니 서준에게 몰려갔다.
쩍쩍 갈라지는 땅.
지옥불을 연상케 하는 겁화.
모르는 사람들이 봤다면 세계 멸망을 떠올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실제로 이를 지켜보고 있던 박연은 한 예언을 떠올리고 있었다.
‘너희에게 말하노니 타락하면 천지가 흔들리고 만물이 불타 없어지리라. 그날이 오면 거룩한 이들만 하늘의 하늘에 남게 되리라.’
성경에 나오는 말이 아니라 성전(聖典)의 한 구절이었다.
신전에서 나고 자란 박연은 이 구절을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었었다.
과연 예언대로 천지가 흔들리고 만물이 불타 없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 순간.
박연은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었던 저 예언의 모순을 파악했다.
‘너희에게 말하노니 타락하면 천지가 흔들리고…….’
태고의 시절부터 전해졌다던 예언.
이 예언을 사제들은 (인간이) 타락하면 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사제들의 해석일 뿐이었다.
‘인간이 아니라 천신들이라면…….’
온몸에 털이란 털이 곤두서는 기분이 들었다.
천신들이 타락하면 천지가 흔들리고 만물이 불타 없어지리라.
그날이 오면 거룩한 이들만 하늘의 하늘에 남게 되리라.
‘거룩한 이들만 하늘의 하늘에 남게 된다…….’
사제들이 인간들의 타락이라 해석한 건 이 구절 때문이기도 했다.
거룩한 이들.
누가 봐도 천신들을 일컫는 게 아니겠는가.
하지만 천신들이 타락한다는 말을 대입한다면 저 말은 모순이 된다. 타락한 천신이 거룩할 순 없으니까.
‘그럼 뭐지?’
이미 신들에 대한 신심은 버린 지 오래였다. 하지만 한 번 배웠던 건 어디가지 않는다.
‘거룩한 이들이라…….’
고심에 잠긴 박연과 달리 천신들은 상심에 잠겼다.
카베니안에 의해 쩍쩍 갈라진 땅이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쿠라무스의 겁화?
인간계에서 쿠라무스의 겁화는 복수의 불이라 불렸다.
복수가 또 다른 복수를 낳는 것처럼 한 번 타오르면 좀체 꺼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 쿠라무스의 겁화를 서준은 너무도 손쉽게 꺼 버렸다.
전투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삼 대 일의 대치 상황.
서준의 눈치를 살피던 카베니안이 어느 순간 날개를 펼쳤다. 날카로운 깃털들이 서준에게 비산했다.
파파팟!
서준의 신경이 깃털에 쏠린 틈을 타 카베니안은 하늘로 솟구쳤다.
미리 심념을 통해 입을 맞췄던 건지 카베니안이 하늘로 솟구치자마자 쿠라무스와 페사무드도 하늘로 날아올랐다.
저 아득한 상공 위에서 쿠라무스와 페사무드를 기다리던 카베니안이 서준에게 소리쳤다.
“내 오늘 너의 약점을 확실히 알았으니 너를 소멸시키는 건 이제 일도 아니리라! 모든 천신들과 강림해 너의 약점을 모두 파멸시켜 주마!”
이미 자신의 손아귀에서 도망친 거라 생각해서일까?
이제 와서 허세를 부리는 카베니안에 서준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웃겨 준 보답으로 넌 소멸시키지 않겠다.”
“너의 마법으로는 우리를 쫓아올 수 없…….”
그때.
찍!
찌지직!
서준의 등이 부풀었다.
아니…… 등이라기보다는 옷이 부풀었다.
부풀어 오른 옷이 한 올, 한 올 터져 나간 것이다.
어느새 서준의 옷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넝마가 되었다. 하지만 천신들이 놀란 건 그 때문이 아니었다.
“……!”
“어떻게!”
세 천신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부릅떴다.
서준의 등에 있는 건 분명 천신의 날개였다.
그가 어떻게 천신의 날개를 가졌단 말인가?
그가 마신이라 불릴 만큼 강한 건 알겠다. 하지만 그것과 천신의 날개를 갖는다는 건 별개의 의미다.
서준이 착 가라앉은 눈으로 말했다.
“너희가 버렸던 날개다.”
“그게 무슨…….”
카베니안이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서준이 빠르게 하늘로 솟구쳤다.
마법은 꽤 복잡한 과정을 거쳐 작동된다.
먼저, 머릿속으로 술식을 그려 낸다. 이 술식은 절대 간단하지 않다.
마법은 형이하학이지만, 술식은 형이상학이다.
즉 술식을 그린다는 건 형이상학을 형이하학으로 변이 시키는 일이니 절대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술식을 그린 뒤에는 주문…… 즉 영창을 외우며 마기를 소모시킨다. 이게 바로 마법이 발현하는 원리였다.
그리고 마법과 성법은 일맥상통했다.
소모되는 기력이 각각 천기와 마기라는 것이 다를 뿐.
다만 일맥상통한다 해서 천기로 마법을 발현시키거나, 마기로 성법을 발현시킬 수 있다는 건 아니다.
그러니 비슷한 성법과 마법은 존재할 수 있어도 복제는 불가했다.
……라는 게 쿠라무스가 알고 있는 마법과 성법의 영원불변의 진리였다.
놀랍게도 그 불변의 진리가 눈앞에서 깨지고 있었다.
화르륵!
화르르륵!
거대한 겁화가 쿠라무스를 덮쳐 왔다.
저건 마법으로 빚어낸 겁화가 아니라 성법으로 빚어 낸 겁화였다.
‘어떻게…….’
겁화에 쿠라무스의 깃털들이 하나둘 타들어 갔다. 그럼에도 쿠라무스는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내 겁화를 복제했다고?’
그건 불가능하다.
땅이 하늘이 될 수 있던가?
반대로 하늘이 땅이 될 수 있던가?
자신의 겁화를 복제했다는 건, 땅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땅이 될 수 있단 말과도 같았다.
그러니 절대 불가…….
불가하다는 생각을 하던 쿠라무스.
그가 경악에 물든 얼굴로 눈을 부릅떴다.
‘설마!’
하지만 그는 생각을 결론에까지 도출시키진 못했다.
화르륵!
거대한 겁화가 그를 집어삼킨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