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God wants to live in peace RAW novel - Chapter 257
마신은 평화롭게 살고 싶다 257화
* * *
새장에 갇혀 지낸 새는 높이 날지 못한다.
비단 새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도 문명사회에서 동떨어져 짐승처럼 숲에서 생활한다면 구조된 뒤에도 자립할 수가 없다.
그건 헬 하운드도 마찬가지다. 웬만한 마족들도 두려워 피하는 게 헬 하운드지만, 사람 손길을 오래 타다 보면 야수로서의 본성이 사라질 수가 있었다.
그래서 서준은 종종 끄렉세그 삼겹살을 구하러 올 때마다 역삼이가 정체성을 잊지 않게끔 훈련을 시키고는 했다.
녀석의 성장이 더딘 게 왠지 사람 손을 오래 타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모처럼 끄렉세그 삼겹살을 구하러 온 오늘도 그랬다.
필요한 만큼의 삼겹살만 얻은 뒤, 나머지 끄렉세그는 역삼이에게 맡겼다.
한참 훈련을 하던 중에 인기척이 들렸다.
훈련을 방해 받고 싶지 않았기에 큼직한 바위로 입구가 틀어막아진 동굴로 끄렉세그를 몰고 들어왔다.
여기서 훈련을 이어 나갈 생각으로 말이다.
그런데 중간에 익숙한 기감이 느껴졌다. 고동진의 것이었다.
‘일 열심히 하고 있나 보네.’
흐뭇해했던 서준이었다.
신경을 거스르는 말이 들려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리고 각 안 나온다 싶으면 저 새끼들 미끼로 던지고 튀면 되지. 안 그러냐?
무리에 동진이 섞여 있지 않았다면 흘려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리에는 동진이 섞여 있었다.
‘하긴. 끄렉세그만으로는 한계가 있긴 하지.’
지금까지 매번 반복되는 방식의 훈련이었다.
역삼이를 끄렉세그 무리에 던진다. 역삼이가 끄렉세그 무리를 종횡무진하며 녀석들을 해치운다.
이런 방법이 반복되다 보니 역삼이도 슬슬 염증이 난 것 같았는데, 마침 잘됐다 싶었다.
사람과 하는 훈련만큼 도움이 어디 있겠는가.
“역삼아.”
캉캉!
네, 주인님!
“마기가 안 느껴지는 사람들은 놔두고 마기가 느껴지는 사람들…… 그중에서도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사람들 한번 상대해 봐. 죽이지는 말고. 할 수 있지?”
캉캉!
그럼요!
잠시 후.
동굴 문이 열리며 일단의 무리가 들어왔다.
캉캉! 캉캉캉?
지금 가면 돼요?
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귀엽고 앙증맞던 녀석의 몸이 화염으로 둘러 싸였다.
축 늘어진 귀는 쫑긋하다 못해 송곳처럼 날카로워졌고 배내털처럼 보드랍던 갈기는 한없이 뻣뻣하고 가칠해졌다.
끄렉세그를 대상으로 한 훈련에 역삼이가 염증을 느끼고 있다고 지레짐작한 서준이었지만, 사실은 전혀 달랐다.
역삼이는 이를 서준과의 놀이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저 인간들의 등장은 역삼이에게 있어 주인님과 오랜만에 하는 놀이를 감히 방해한 미물(?)들이었다.
캉캉! 캉캉캉! 캉!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역삼이가 이를 드러내며 사람들에게 달려들었다.
“으아악!”
“살려 줘!”
미물들이 발악하는 게 보였다. 역삼이는 은근한 승리감과 우월감에 도취되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미물은 붉은빛의 갑옷을 입고 있는 인간이었다.
캉캉캉! 캉캉! 캉?
감히 인간 주제에 빨간색을 써?
이건 역삼이에게 있어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빨간색은 그의 주인님이나 자신만 쓸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주인님도 쓰지 않는 빨간색을 감히 미물 따위가 쓴다?
캉캉!
용서 못해!
역삼이가 붉은 갑옷에게 달려들자, 당사자는 기겁하며 뒷걸음질 쳤다.
“으아아아!”
고작 C등급에 불과한 붉은 갑옷이었다. 단신으로는 끄렉세그도 간신히 상대할까 말까인데, 헬 하운드라니!
“누가 좀 살려 줘!”
손을 허우적거리며 주변에 도움을 구했지만 소용없었다.
모두들 눈을 뒤룩뒤룩 굴리는 게, 붉은 갑옷이 잡아먹히는 사이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역삼이는 도망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캉!
역삼이가 울부짖자 뻣뻣하고 가칠가칠해진 털들이 일제히 사람들에게 날아갔다.
타타타!
타탓!
길이가 2~3cm에 불과한 털이었지만 바닥에 박힌 순간 불길이 치솟았다.
퇴로를 차단한 것이다.
당황해하는 사람들을 일별한 역삼이는 붉은 갑옷에게 몸을 날렸다.
쿠콰쾅!
작은 체구에서 나온 힘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부딪힌 붉은 갑옷이 저 멀리까지 날아간 탓이다.
“커윽!”
제법 충격이 컸는지 한 차례 신음과 함께 각혈을 토해 낸 붉은 갑옷이었지만 역삼이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르렁거리며 붉은 갑옷에게 다가가더니 붉은 갑옷을 갈가리 찢어 버린 것이다.
순식간에 반나체가 된 붉은 갑옷이었지만 수치심을 느낄 여유 따위는 없었다.
금방이라도 저 헬 하운드가 주둥이를 자신의 배에 처박고 내장을 파헤쳐 먹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흥!
하지만 역삼이에게 서준의 말은 거역할 수 없는 언령과도 같았다.
두려워 벌벌 떨고 있는 붉은 갑옷을 내려다보며 콧방귀 뀐 역삼이는 다른 먹잇감(?)을 찾아 움직였다.
금방 녀석의 눈에 먹잇감이 포착됐다.
“제발 열어 줘! 열어 달라고! 시발!”
거대한 바위 앞에서 끙끙거리고 있는 인간에게서 마기가 아주 강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역삼이가 지면을 박차고 튀어 올랐다.
“으아아아!”
“온다!”
“얼른 피해!”
도처에 깔린 불기둥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헌터와 포터들이 그 모습에 자지러졌다.
담이 약한 일부 사람들은 졸도를 했다.
캉?
졸도한 이들을 지나친 역삼이는 예의 목표로 삼은 인간, 최정국에게 아장아장 짧은 다리를 놀려 느긋하게 다가갔다.
캉캉캉캉?
네가 대장이지?
“…….”
캉캉캉캉캉! 캉캉캉캉!
왜 대답이 없어! 내가 묻잖아!
“살려…… 줘.”
캉캉캉캉!
안 죽일 거거든!
“제발…… 흑흑!”
캉캉캉캉캉?
이게 무슨 냄새야?
킁킁!
코를 벌름거리던 역삼이의 코끝이 찡그려졌다.
주저앉은 인간의 바지 사이로 흥건한 노란 물이 흘러나온 탓이다.
노란 물이 어찌나 흥건한지 하나의 도랑을 이룬 물들이 줄줄이 흘러내리더니 발에 닿았다.
키아아아악!
오줌이 발에 닿자 역삼이는 기겁하며 펄쩍펄쩍 뛰었다. 바닥의 흙에 발을 문대기도 했고 바위 문에 발을 긁기도 했다.
하지만 발에 묻은 역한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카캉!
감히!
캉캉캉! 캉캉캉캉! 캉캉!
미물 주제에 이 몸에게 오줌을 뿌리다니!
캉캉캉캉!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역삼이는 투견처럼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흡사 호랑이가 먹잇감에게 다가가는 것처럼 천천히 몸을 낮춰 최정국에게 움직였다.
헬 하운드를 정면에서 마주한다는 건, 오금이 저린다는 말로는 형용하기 어려운 공포였다.
각성자 판정을 받고 나서 세상 무서울 것 없이 살았던 최정국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머리를 지배하는 건 공포였다. 공포에 잠식당한 몸은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이질 않았다.
캉!
그 순간.
헬 하운드가 달려들었다.
최정국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죽었다. 자신의 목덜미는 금방 저 사나운 헬 하운드에게 물릴 테고 절명하는 순간 복부는 날카로운 발톱에 파헤쳐질 것이다.
그렇게 삶을 포기한 그 순간.
쉬이이익!
생각지도 못한 소리가 들렸다.
쉬이익!
쉬이이익!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아니…… 소리만 들린 게 아니었다.
“으읍! 웁웁!”
입안으로 정체불명의 액체가 쉼 없이 들어왔다. 몸부림치며 액체를 피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포기한 최정국은 대신 얼굴에 마구 흘러내리는 액체를 손으로 털어 냈다.
그러다 액체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실눈을 뜬 그는 경악했다.
솨아아아!
방금 전까지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던 헬 하운드가 한 다리를 치켜든 채 더없이 편안한 표정으로 오줌을 누고 있었던 것이다!
‘잠깐, 그럼 이게…….’
오줌?
“읍! 퉤퉤! 퉤퉤퉤!”
오줌을 털어 내던 최정국은 그림자가 지자 고개를 들었다.
“……!”
놀랍게도 헬 하운드가 허공에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누군가 헬 하운드의 목덜미를 낚아 들어 올린 것이다!
헬 하운드를 강아지 다루듯 하는 정체불명의 남자였지만 그 얼굴은 어둠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남자에 대한 호기심 보다 두려움이 더 커질 무렵.
“너의 목숨값은 얼마지?”
“예?”
“누가 그러더군. 사람에게는 각기 다른 목숨값이란 게 존재한다고…… 너의 목숨값은 얼마지?”
뚱딴지도 이런 뚱딴지가 없었다. 하지만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기운에 최정국은 절로 압도되었다.
‘몬스터인가?’
간혹 보스 몬스터로 지성을 가진 인간형 몬스터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 남자도 그런 케이스가 아닌가 싶었지만…….
“답해라. 너의 목숨값은 얼마지?”
답을 재촉하는 남자.
‘인간은 아닐 거다.’
무려 헬 하운드를 강아지 다루듯 하는 이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자신과 똑같은 인간이겠는가?
인간의 모습을 한 몬스터일 터.
그리고 몬스터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해도 결국 몬스터다.
충동성이 강하고 본능을 억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저 이름 모를 보스 몬스터가 가진 본능은 금전에 있는 것 같았다.
목숨값 운운하는 걸 보면 말이다.
‘값만 잘 치르면 살아 돌아 갈 수도 있다.’
몬스터라고 모두 공격적이기만 한 건 아니라는 게 현재 학계의 정론이었다.
저 몬스터도 아마 그럴 거다.
재물에 욕심이 있는 거겠지.
그 말은 원하는 것만 내주면 살아 나갈 수도 있다는 뜻.
‘차라리 잘됐다.’
남자와 건곤일척의 혈투를 벌인다고 해서 이길 거라는 생각 자체가 안 들었다.
당장 남자의 품에 안겨 있는 헬 하운드만 해도 어쩌지 못하겠는데 무슨 건곤일척이겠는가?
하지만 재물을 주고 살 수만 있다면…… 나쁘지 않다.
생각이 거기에 미친 최정국이 말했다.
“제 목숨값을 어찌 저 같은 놈이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귀하께서는 얼마라 생각하십니까?”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제 목숨을 우선시하는 건 사람으로서 당연한 본능이다.
그러니 남들을 미끼로 던지고 자신은 빠져나갈 궁리를 한 최정국을 지탄할 순 없어도 그것만으로 그에게 죄를 물을 순 없었다.
‘더군다나 내가 무슨 판사도 아니고.’
다만.
괘씸한 건 사실이었다.
만일 자신이 아닌 진짜 보스 몬스터가 여기 있었다면?
지금 졸도해서 세상 모르고 자고 있는 동진이는 꼼짝없이 놈의 미끼가 되어 죽었을 거다.
사람의 죽음에 귀천이 없는 건 맞다.
하지만 생면부지인 사람의 목숨과 친인척의 목숨 중 누구의 목숨이 더 소중할까?
서준도 같았다.
최정국 보다는 고동진의 목숨이 더 소중했다.
그 목숨을 미끼로 삼으려 했다니 괘씸한 거고.
그런 고로.
“가진 것 전부.”
“예?”
“설마 아까운 건가?”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하얗게 질린 최정국이 장착한 아이템을 전부 바닥에 내려놓기 시작했다.
“이게 전부입니다.”
“그럴 리가. 아직 남은 게 더 보이는데.”
“…….”
“목숨보다는 아이템인가 보군.”
“아! 까, 깜빡했습니다! 드, 드리겠습니다!”
최정국은 아이템 창에 있는 것들도 모두 토해 냈다.
갑옷이며 무기며 장신구까지 바닥에 널브러졌다.
아이템에 대해 잘 모르는 서준이 봐도 저렴한 것들은 아닌 것 같았다.
‘팔아서 동진이랑 아린이 선물이나 해 줘야겠군.’
그렇게 생각한 서준은 최정국마저 기절시킨 뒤, 던전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얼마 후.
12-Q 던전에는 12-Q 던전만의 미스터리 현상 외에도 인간형 보스 몬스터가 출몰했다가 사라졌다는 소문까지 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