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God wants to live in peace RAW novel - Chapter 274
마신은 평화롭게 살고 싶다 274화
* * *
박연은 감수성이 풍부한 편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드라마를 재밌게 보는지도 몰랐다.
감정 이입을 잘 하니 말이다.
바로 지금처럼.
“테무진(鐵木眞)…… 그대는 진정한 기사였소. 부디 편히 눈 감았길 바라오.”
박연이 아련한 표정으로 뇌까렸다.
TV에는 한 드라마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었다.
제목은 .
최근 박연이 즐겨 보던 드라마였는데 오늘이 마지막 회였다.
그리고 마지막 회답게 이번 화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었다.
역경을 딛고 대칸의 자리에 오른 주인공 테무진이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기 때문이었다.
“후…….”
테무진의 죽음을 마지막으로 드라마는 끝이 났지만 박연은 쉬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만큼 드라마에 몰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박연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눈이 있었다.
두식이었다.
“하다 하다 이제 TV랑 대화를 하네.”
쓱- 뒤를 돌아본 박연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왔나.”
“그래, 왔다. 아니. 오셨다.”
“계란 배달 왔나 보군.”
“알면 마법으로 좀 도와주던가.”
“미안하군.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라.”
두식은 두 귀를 의심했다.
지금 저 용사 놈이 뭐라고 한 거지?
미안하군?
잘못 들었나?
두식이 박연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이상하다. 열은 없는데. 근데 왜 그러지?”
“뭐가 말이냐.”
“평소랑 다르게 죽을 때라도 된 사람 같잖아.”
“죽을 때라…… 그래. 어쩌면 죽을 때가 된 건지도 모르지. 그만큼 인생이란 덧없으니…….”
“이게 갑자기 뭘 잘못 먹었나.”
어안이 벙벙한 두식의 눈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는 TV가 들어왔다.
“설마 저 드라마 때문에?”
그 말에 박연은 쓰게 웃었다.
“……맞다. 위대한 기사의 여정이 드디어 끝이 났다.”
“난 또 뭐라고. 위대한 기사의 여정치고는 별 재미도 없더만.”
“뭐? 뭐가…… 없어?”
“뭘 못 들은 척 되물어? 위대한 전사의 여정치고는 별로 재미없었다고. 차라리 보다는 이 더 재밌지.”
“이런 무식한 오크 놈 같으니! 어떻게 을 재미없다 말 할 수 있단 말이냐! 천벌을 받을 거다!”
“내가 홍길동도 아니고 재미없는 걸 재미없다고 말도 못해?”
박연은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다시 말해 봐라. 진짜…… 진짜 이 재미없었단 말이냐?”
“만날 귀만 파더니 귀가 막혔어? 재미없었다니까.”
“어떻게 그게 재미없을 수가…… 테무진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데…….”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 두식이었지만 그 속은 엄연한 오크였다.
그리고 오크가 그리는 기사의 상(狀)과 사람이 그리는 기사의 상(狀)은 다를 수밖에 없다.
오크인 두식의 입장에서 테무진은 별 볼일 없는 기사였다.
모름지기 기사란 단기필마로 뛰어나가는 용맹을 보여 주어야 한다. 특히 계급이 높을수록 말이다.
하지만 테무진은 족장임에도 부하들에게 단기필마의 용맹을 보여 주지 않았다.
오히려 두식의 시점에서 테무진은 전형적인 인간 장수였다.
뒤에서 손가락질로 명령만 내리는 인간 장수 말이다.
반면 사람인 박연의 입장에서는 테무진은 위대한 기사일 수밖에 없었다.
역경이란 역경은 모두 다 겪고 훗날 대칸이라는 자리에까지 오르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니까.
테무진의 삶은 그 어떤 인간도 흉내 낼 수 있는 삶이 아니었다.
불가능한 일을 가능으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말도 안 돼!”
“말 되거든.”
“안 된다!”
두식은 입아프게 입씨름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고 치는 게 아니라 말이 안 된다고!”
“알았다니까? 예일아. 아루트스 알은 다 정리했지?”
“네, 주인님. 다 했습니다.”
“그럼 가자.”
“주인님의 형님은 안 보고 가시게요?”
“오늘 서준이 형 늦는댔어.”
“알겠습니다.”
가게를 나서는 두식.
그런 두식의 등을 대고 박연이 소리쳤다.
“이 무식한 오크 박두식아! 누가 뭐래도 테무진의 삶은 위대한 기사의 삶이었다! 알아들었더냐!”
두식은 박연의 말은 귓등으로도 들어오지 않는지 귓구멍을 후볐다.
“예일아, 오늘은 저녁 밖에서 먹고 들어가자.”
“오늘은 드디어 라면 안 드시는 겁니까?”
“아니. 오늘은 일본 라면 먹게. 너 일본 라면 좋아하지? 너네 나라 라면이잖아.”
“……예.”
“가자. 특별히 너가 사게 해 줄게.”
* * *
사랑은 또 다른 사랑으로 잊는다고 했던가?
박연은 을 인스타로 잊을 수 있었다.
그 덕에 한동안 잠잠하던 박연의 인스타 계정에서는 폭풍 업로드가 시작되었다.
04PakrYeon – 오늘은 콜라를 한 캔도 안 마신 기념비적인 날
#콜라는 코카콜라 #이 끊을 수 없는 탄산의 중독
(2분 전 업로드)
↳KI_UD74 헐헐 오빠가 콜라를 한 잔도 안 마실 수가 있다니 ٩(๑˃́ꇴ˂̀๑)و
↳leejw7497 멋짐이 폭발해 보렸다…….
↳binpong00 콜라 제가 얼마든지 사 드릴게요ㅜㅜ
↳sun@ju_kang 한국에서 태어나 주셔서 고마워요. 당신은 그저 빛…….
글을 업로드하자마자 댓글이 폭발적으로 달렸지만 박연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박연이 올리는 게시글의 평균치는 9개다.
그리고 그가 업로드 하는 게시글 하나에 달리는 평균 댓글 수는 741개.
그러다 보니 일일이 답댓글을 달아 줄 수가 없었다.
04PakrYeon – 콜라 결국 마셔 버림.
#콜라를 치료해 줄 사람 어디 없나 #콜라 중독에서 벗어나고 싶은 날 #일일이 답댓글 못해서 미안해요
(9분 전 업로드)
이런 식으로 다음 게시글에서 해시태그로 퉁치는 수밖에.
박연은 최다희의 인스타로 들어갔다.
dahe_e1004 – 오빠한테 받은 목걸이 ( ˃̵⌓˂̵) 생일 아직 한참 남았는데 미리 선물받은 기분!
#감동 #너무 마음에 듦 #사랑해 오빠ㅎㅎ #힘내요 몽골
(4일 전 업로드)
↳happy_yeon 세상에 너무 예쁘다 ✪‿✪
↳smileㅡhehe 부럽다 (。ŏ﹏ŏ)
↳mayamiya 헐…… 언니 너무 예뻐요ㅜㅜ
박연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4일 전 최다희가 업로드한 게시글은 좋아요 수와 댓글 수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었다.
이건 모두들 최다희에게 선물한 목걸이를 부러워하고 있다는 뜻이다.
얼마나 부러웠으면 달린 댓글이 3,500개에 좋아요는 2만일까.
“후후.”
칭찬일색인 댓글들에 박연은 스스로 뿌듯해했다.
연애 고자로 덤벙거리기만 했던 지난 나날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때는 참…… 멋모를 때였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단 말씀!
저 게시글에 댓글을 달고 좋아요를 누른 이들 90퍼센트가 여자들이었다.
이 말이 뭘 뜻하는 거겠는가?
이제는 여심을 사로잡는 안목이 생긴 연애 고수란 뜻이 아니겠는가?
“다희가 긴장 좀 하겠군.”
긴장할 최다희의 모습이 떠올라 박연은 피식피식 웃었다.
하지만 진실을 알게 된다면 지금처럼 웃지 못할 터였다.
박연은 모르고 있지만 최다희는 패션 인플루언서였다.
게다가 최다희는 옷발이 잘 받는 축에 속했다.
구제도 그녀가 입으면 브랜드가 되고, 이미테이션 백도 그녀가 들면 명품 백이 된다.
박연이 선물한 목걸이도 그런 맥락이었다.
별 볼일 없는 목걸이가 최다희가 착용하며 명품이 된 셈이다.
이런 내막은 꿈에도 모르는 박연은 스스로 연애 고수가 됐다는 착각에 흐뭇해했다.
그러던 그가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몽골이 뭐지? 몽골한테 힘을 내라는 건 분명한데…….”
가만 있어 보자, 몽골?
그러고 보니 어딘가 낯이 익은 단어다.
어디서 본 걸까.
사람 이름은 아닌 게 분명하다.
‘영화에서 봤으려나?’
인상까지 쓰며 고민하는 그를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눈이 있었다.
“낫 놓고 기역 자 모른다는 게 이럴 때 하는 말이었구나.”
두식이었다.
“언제 왔나.”
“한 시간 전에. 그보다 서준이 형이 얼른 화장실 청소하래.”
“그놈의 지긋지긋한 화장실 청소…… 때 되면 알아서 한다고 전해라!”
어깨를 으쓱이며 돌아서는 두식을 박연이 불러 세웠다.
“잠깐.”
“왜?”
“아까 그 말은 뭐지? 네놈은 꼭 몽골을 안다는 말처럼 들렸는데.”
“당연히 알지.”
“안다고? 무식한 오크인 네가?”
“모르는 너가 무식하단 생각은 안 해 봤어?”
“크흠. 그래서 몽골이 뭔데.”
“너가 좋아하는 징기스 칸이 만든 원나라가 몽골이잖아.”
“……!”
박연은 눈을 부릅떴다.
원나라가 몽골이라니…….
이건 왜나라=일본만큼이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충격적인 일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원나라가 몽골인 건 모를 수 있다 쳐도 요새 TV에 몽골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데 어떻게 몽골을 모를 수가 있지? 솔직히 말해 봐. 너 용사 아니고 바보였지?”
“어허! 선 넘지 마라!”
“아니면 TV 좀 보고 살던가. 요즘 몽골 난리 난 거 아마 너만 모를걸?”
“난리?”
두식은 드라마만 봐서 세상 돌아가는 꼴은 하나도 모르는 박연에게 최근 몽골에서 발생한 일들을 친절히 설명해 줬다.
설명만으로는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자 아예 TV를 틀어 줬다.
그렇게 몽골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상세히 알게 된 박연은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이었다.
“원나라가…… 어떻게 테무진의 원나라가……!”
말을 쉽게 잇지 못 하는 박연.
그럴 만도 했다.
박연은 테무진에게 감정 이입을 하며 을 봤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테무진이 겪은 역경은 꼭 나의 역경 같았고, 테무진이 겪은 수치는 꼭 나의 수치 같았으며, 테무진이 겪은 기쁨은 꼭 나의 기쁨 같았다.
그리고 원나라는 테무진이 이런 역경과 치욕을 견디고 견뎌 건국한 나라였다.
어찌 남의 나라 같겠는가?
그런데…… 그런 테무진의 나라가 몬스터에 의해 쑥대밭이 되고 있단다.
위대한 기사의 후손들이 몬스터에게 고통받고 있단다.
그리고…….
-세계 각국의 정상 여러분들께 간절히 호소하겠습니다. 제발 우리 몽골의 국민들을 살려 주십시오. 러시아 대통령님, 중국의 주석님, 한국의 대통령님, 일본의 총리 각하, 미국의 대통령님. 제발 도와주십시오.
몽골의 대통령이 무릎 꿇고 빌고 있다.
의 한 장면이 오버랩된다.
그래, 테무진도 그랬다.
자존심을 내려놓고 부족을 지키기 위해…… 부족민을 지키기 위해 강자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지금.
대칸의 피를 이어받았을지도 모를 몽골의 대통령도 무릎을 꿇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국민을 지키기 위해.
테무진처럼…….
그런데 용사로서, 테무진의 친구로서 어찌 가만 있을 수 있겠는가!
박연은 옷장을 뒤적거렸다.
잠시 후.
그의 손에 앞치마 하나가 달려 나왔다.
한동안 뜸했던 에이프런 맨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