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God wants to live in peace RAW novel - Chapter 43
마신은 평화롭게 살고 싶다 43화
* * *
탁!
서준은 어깨에 둘러멘 자루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육중한 소리와 함께 테이블 다리가 휘청거리자 스포츠 머리 사내가 눈을 부라렸다.
“이 새끼가 미쳤나? 감히 노크도 없이 사장님 사무실에 들어와?”
갑작스러운 서준의 등장에 넋이 나가 있던 황태수는 수하의 빈정거림에 정신이 확 들었다.
황급히 서준을 쳐다보자 다행히 그는 화가 난 것 같진 않았다. 그래도 부하를 용서할 순 없었다.
가늘고 길게 살려는 바람과 다르게 자꾸 명줄을 단축시키려 하지 않는가.
퍽!
“이 새끼가 미쳤나! 이분이 누군 줄 알고 새끼, 새끼 거려!”
“……사장님?”
“사장님이고 나발이고 어서 사과드려!”
“죄송합니다.”
“이 자식이! 더 크게!”
“죄송합니다!”
“고개도 더 깊게 숙이고!”
“죄송함다!”
황태수가 은근슬쩍 서준의 눈치를 살폈다.
서준은 뭐 하냐는 눈빛을 보내오고 있었다.
이만하면 됐다.
황태수는 부하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가서 박카스나 가져와!”
“네!”
“사장님, 죄송합니다. 이 녀석이 47파에 있다가 들어온 녀석이라 사장님을 못 알아뵀습니다. 다음에는 교육시켜 놓겠습니다.”
“괜찮다.”
“역시 마음이 태평양처럼 넓으시군요.”
“조용히 대화를 나눴으면 하는데.”
황태수가 눈짓하자 박카스를 가져오던 부하가 멈칫하며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다시 한번 죄송하단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제 막 조직이 개편돼서 허점투성이입니다.”
“그런 것 같군.”
황태수는 왠지 그 말이, 언제 손 한번 봐야겠군, 이란 말로 들려 흠칫거렸다.
“그런데 이번엔 어쩐 일로……?”
“이거 때문에.”
“마정석 아닙니까?”
“맞다.”
“이 많은 마정석을 어떻게…….”
“그건 알 필요 없고, 당장 현금화를 했으면 하는데 가능하겠나?”
“물론입니다. 다만 알고 계시겠지만 몬스터 부산물처럼 마정석도 암시장 시세가 따로 있습니다.”
“그렇겠지. 얼마나 할 것 같나?”
서준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와서 ‘이 마정석 얼마에 사갈 거예요?’하고 묻는다면 아마 황태수는 고심하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에라, 선심 쓴다, 같은 말과 함께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요새는 단속이 심해서 많이 못 쳐 줘요. 우리도 이거 떼고 저거 떼면 남는 게 없거든. 그래도 첫 거래니…… 에라이, 통 크게 3천!”
하지만 눈앞의 사내는 호구가 아니었다. 아니, 호구는 맞지만 보통 호구는 아니랄까?
꿀꺽.
괜히 3천을 불렀다가 일어날 사태를 상상해 버린 황태수는 마른침을 꼴깍거리며 입을 열었다.
“정가로는 3억에서 4억 정도 할 것 같습니다.”
“3억에서 4억? 정확하지가 않군.”
“아…… 부디 오해는 마십시오. 포상금이 정해진 몬스터 부산물과 다르게, 마정석은 마력의 함량 정도에 따라 가격이 결정됩니다. 감정가도 정확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군.”
“하지만 이 정도 크기의 마정석에 이 정도 개수라면 못 받아도 그쯤은 할 겁니다.”
“정가가 그쯤이면 암시장 시세는?”
“암시장 시세는 보통 정가에서 10퍼센트 정도 낮은 편입니다. 1억짜리라면 9천만 원에 매입을 하는 편이죠.”
“생각보다 잘 쳐 주는군.”
“아무래도 마정석은 암시장에서도 수요가 많은 편이거든요. 잘 쳐 주는 곳은 정가의 5퍼센트만 제하고 주는 곳도 있긴 할 겁니다.”
서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황태수가 은근한 표정으로 물었다.
“파시는 거 맞으시지요?”
사실 이만한 양의 마정석을 거래하는 건 황태수로서도 이득이었다.
이문 자체는 크게 남진 않지만 이를 토대로 다른 곳과도 거래를 틀 수 있는 것이다.
“아니.”
기대한 대답과 다른 말이 나오자 황태수는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왜…… 혹시 제가 무슨 실수라도 한 게 있습니까?”
“없다.”
“다른 곳에 가서 파셔도 되긴 하십니다. 하지만 기왕이면 거래해 온 곳에서 하시는 게 좋으실 텐데 왜…….”
“가져라.”
“예?”
“대신 장학 사업 하나만 해 보는 게 어떤가?”
“장학…… 사업이요?”
“그래, 장학 사업.”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 * *
“어, 서우 아빠!”
집을 나서던 연준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우체부 아저씨가 가방을 뒤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제 가게 나가나 봐?”
“네. 곧 가게 문 열 시간이니까요.”
“내가 맨날 가 본다, 가 본다 하면서 깜빡하네. 미안해서 어째?”
“미안은요 무슨. 그래도 나중에라도 꼭 오세요. 서비스 왕창 챙겨 드릴게요.”
“그 서비스 먹으려면 꼭 가야겠다. 그리고 이거. 등기 왔더라.”
“등기요?”
“응. 여기 서명 좀 해 줄래?”
우체부가 PDA를 건넸다. 연준은 서명을 하고 등기를 받아 들었다.
“어디 좋은 데서 온 것 같던데?”
“좋은 데서요?”
“좋은 소식은 직접 읽어 봐야지. 그럼 나는 바빠서 이만 가 볼게.”
“예, 조심히 가세요!”
연준은 등기로 온 봉투를 살폈다.
겉면에는 금실로 장식된 ‘황태수 장학 재단’이라는 문구가 박혀 있었다.
“황태수 장학 재단?”
처음 듣는 재단이었다.
게다가 황태수라니…… 설마 황태수파의 그 황태수는 아니겠지?
연준은 긴가민가하며 봉투를 뜯었다.
“……진짜 황태수네?”
봉투를 뜯자마자 잘 프린팅된 황태수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그 밑으로 깨알 같은 글씨들이 나열돼 있었는데 이게 더 충격적이었다.
[……하므로 이서우 어린이가 장학 재단의 1기 장학생으로 선발되었음을 알려 드립니다.]“장학생?”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갑자기 휴대전화가 진동을 했다.
[나래 어린이집입니다. 이서우 어린이 등원에 관해 아버님과 나눌 말씀이 있사오니…….]연준은 당혹을 금치 못했다.
나래 어린이집이라면 12구역과 13구역을 통틀어 가장 고액으로 거래되는 입학권이 있는 어린이집이었다.
연준조차 서우가 한 살 때부터 등록 신청을 했고 대기표를 작성했지만 5년 동안 연락 한번 받지 못한 곳이기도 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엊그제 서준과 한 대화가 떠올랐다.
-형, 서우한테 그런 약속하면 어떡해? 우리 형편에 입학권은 어림도 없고 어린이집 못 가게 되면 서우 실망만 할 게 뻔한데…….
-걱정 마.
서준은 호언장담을 했었다. 아마 이 장학 재단인지 뭔지와 관계가 있으리라.
연준은 가게로 뛰어가 서준부터 찾았다.
서준은 박연과 냉장고에 술을 정리하고 있었다.
“형,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선발됐나 보네.”
“알고 있었어?”
“말했잖아. 걱정 말라고.”
“어떻게…….”
“황태수파가 이번에 12구역을 다 차지했잖아?”
“근데?”
“민심을 좀 얻으려는 것 같더라고.”
갱들이 지역 주민들의 민심을 얻기 위해 복지사업을 진행하는 건 꽤 빈번한 일이었다.
특히 황태수파처럼 한 지역을 독차지한 경우는 더더욱.
지역 주민들의 신뢰를 얻음으로써 경찰 수사를 피할 수도 있었고 여론을 형성해 법망을 벗어날 수도 있었다.
다만…….
“황태수파가 이런 장학 사업을 할 거란 건 어떻게 알았어? 플래카드는커녕 벽보 하나 안 붙었던데?”
“갱들이 어떤 녀석들인지 알잖아. 장학생 100명 선발했다 하고 10명이나 후원할까? 아마 선발 다 끝나면 지역 주민들한테도 언플 시작하겠지.”
“아…….”
“이런 게 있다는 건 이 기자님한테 들었고.”
“이문익 기자님?”
“어. 연락을 주셨더라고.”
“그래도 100퍼센트 선발될 거란 보장도 없었을 텐데…….”
“지원자가 별로 없을 거란 귀띔도 해 주시더라.”
“그랬구나. 몰랐네.”
“미처 말 안 했던 건 혹시나 해서 그랬던 거야.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잖아.”
“하긴…… 아무튼 고마워.”
“고맙긴. 이 기자님한테 고마워해야지.”
“이 기자님 나중에 오시면 서비스 왕창 챙겨 드려야겠다. 아, 근데 서우 어린이집 가려면 가방부터 사야 되려나? 아니, 한글부터 좀 제대로 가르쳐야 되나? 요새 애들은 빠르다던데…… 그러고 보니 필통도…….”
기뻐하는 연준에 서준은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다만…….
“어린이집이라니…… 서우가 어린이집이라니! 그럼 나는 어떡한단 말인가!”
화장실에서 박연의 절규가 들려왔다.
* * *
나비효과란 말이 있다.
알다시피 작은 사건이 추후 예상치 못한 엄청난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황태수 장학 사업이 그랬다.
서준이 일으킨 작은 날갯짓은 고경수에게 닿았다.
그는 12구역 지구대 소속 경찰관인 동시에 홀로 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싱글 대디이기도 했다.
아이가 건강하게 커 주는 모습에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됐다.
지금까지는 어머니께서 아이를 봐주셨었다.
하지만 어머니도 숙병 때문에 입원을 하신 데다 노령의 나이로 더 이상 아이를 봐주기도 무리였다.
그렇다고 아이를 맡아 줄 다른 친척도 없었다.
직장으로 데려오는 건 더더욱 무리였다.
12구역 지구대는 경찰관들이 전출을 꺼리는 곳들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가기 싫어하는 곳이었다.
그만큼 범죄가 많이 일어났고 경찰 살해와 폭행 빈도도 많은 편이었다.
물론 최근에는 황태수파가 12구역을 통일하게 되며 잠잠해진 건 사실이지만, 조폭들만 경찰관에게 해를 끼치는 건 아니다.
게다가 취객들이 묻지 마 총격을 가하는 일은 여전히 벌어지고 있었다.
이런 위험한 곳에 아이를 데려올 순 없었다.
낙담 외에 고경수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우체부가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게…… 이게, 정말 저희한테 온 겁니까?”
금실로 황태수 장학 재단이란 문구가 장식된 봉투를 받아 든 고경수가 물었다.
그러자 몇 시간 전에 연준과 마주쳤던 우체부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거기 쓰여 있잖습니까.”
“아…….”
“요새 황태수가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렇습니까?”
“혜진이 아버님 맞죠?”
“네.”
“서우도 수혜를 입는 것 같더군요.”
“서우…… 요?”
“혜진이 친구 말입니다.”
고경수는 씁쓸하게 웃었다.
“바쁘게 살다 보니 딸아이 친구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네요.”
“아…… 그래도 뭐 아버님만 그러겠습니까. 사실 저도 집에 들어가면 녹초가 돼서 곯아떨어지는지라 애들이 어떻게 크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보니 훌쩍 자라 있더군요.”
작게 웃은 고경수가 말했다.
“그런데 선발 조건은 어떻게 되는 거라고 합니까? 저희는 이런 거 신청한 적이 없어서요.”
“글쎄요. 저도 거기까진 모르겠네요. 무작위로 선발하는 건지, 아니면 교육청하고 따로 연계가 되어 있는 건지…….”
“흐음.”
“그래도 교육청하고 연계가 됐으니 이런 등기도 날아왔겠죠? 서명 좀 해 주시겠어요?”
“아, 예!”
“아무튼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쇼!”
우체부를 배웅한 고경수는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들어갔다.
마침 마당에서 혜진이가 그림을 끄적거리고 있다가 후다닥 뛰어왔다.
“아빠, 우체부 아저씨 만났어요?”
“응.”
“우체부 아저씨가 뭐라고 했어요?”
“뭐라고 했을까?”
그의 질문에 혜진이는 검지를 인중에 갖다 대면서까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음…… 으음, 아! 엄마한테 편지 왔다! 그쳐?”
“엄마한테 편지 오는 건 15일이잖아. 오늘은 2일이고.”
손가락을 세어 보던 혜진이가 해맑게 웃었다.
“아, 맞다! 그랬지! 헤헤.”
“근데 혜진아. 혜진이는 서우랑 잘 지내?”
“서우? 네! 잘 지내요! 근데 서우랑은 이제 못 만날 것 같아서 슬프긴 한데…….”
“왜 못 만나?”
“서우는 어린이집을 다닐 거래요.”
“혜진이는 안 가고 싶어? 어린이집?”
머뭇거리던 혜진이가 고개를 슬그머니 저었다.
“아니요. 혜진이는 안 가도 돼요.”
“…….”
“진짜예요! 서우 없어두 혜진이는 혼자서도 잘 놀아요! 봐요, 잘 놀죠?”
고경수는 나뭇가지로 모래 위에 쓱쓱 그림을 그리는 딸아이의 모습에 마음 한구석이 시큰해졌다.
‘고경수…… 너 못났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