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God wants to live in peace RAW novel - Chapter 65
마신은 평화롭게 살고 싶다 65화
* * *
서준은 쓰러진 데이카란투의 뼈를 수습했다.
드래곤의 뼈로 사골을 우려 본 적은 없지만 한번 도전해 볼 참이었다.
그의 곁으로 박연이 다가왔다. 그는 이전과 다른 표정으로 서준을 보고 있었다.
“보고만 있을 건가?”
“어?”
“같이 줍든가.”
“아…… 어어.”
박연이 서준을 힐끔거리며 뼈를 줍다가 말했다.
“그……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뭔데?”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용사다. 당연히 리치화된 녀석쯤은 해치울 수 있었어. 그대가 나서지 않더라도 말이지.”
“그런 거치곤 잽싸게 피하던데?”
“그건……! 어? 그건! 일종의, 뭐랄까…… 그, 음. 그래! 작전상 후퇴라고나 할까.”
“작전상 후퇴?”
“그래! 작전상 후퇴! 일단 적의 수준을 가늠해 보는 게 병법의 기본이지. 그대는 마계에서 숱한 전쟁을 경험했으면서 그것도 모르나?”
“나와 내 부하들은 후퇴를 해 본 적이 없거든.”
“…….”
“…….”
“뭐, 사실 나도 작전상 후퇴를 해 본 건 이번이 처음이긴 하다. 내 사전에도 후퇴란 없었지. 옛날이 생각나는군. 동부 지역에 출몰한 데스나이트를 처치할 때였다. 녀석은 무척 강했지. 아마…….”
뼈를 줍던 서준은 박연이 말을 흐리자 그를 쳐다봤다.
박연은 입가에 건방진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이 데이카란투보다 더 강했을 거다. 하지만 난 물러서지 않았어. 녀석이 검을 휘둘러도, 어떤 악의 기운을 뿜어내도 말이야. 그리고 해치웠지. 언제나처럼.”
서준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계속해서 드래곤의 뼈를 수집했다.
데이카란투는 무척이나 큰 드래곤이었다. 따라서 수습할 뼈들도 무척 많았다.
일일이 손으로 줍고 있기에 시간은 더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박연이 문득 말했다.
“아까부터 묻고 싶은 게 있다.”
“뭘?”
박연은 잠시 뜸을 들였다. 그의 캐릭터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었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그가 입을 열었다.
“그대는 뭔가 알고 있지?”
“알다니?”
“그대는 분명히 뭔가 알고 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데이카란투. 내가 해치운 이 악룡이 왜 버젓이 본 드래곤이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지구에 나타났는지. 그대는 분명 알고 있다.”
“용사가 모르는 걸 마왕이 어떻게 아나?”
“나도 용사다. 거짓말하는 것 정도는 간파할 수 있어. 그대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 뭐지? 얼마나 대단한 비밀이길래 입을 다물고 있는 거지?”
서준은 침음했다. 그리고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박연이 재차 물으려던 찰나.
“그대의 믿음.”
“믿음? 그게 어쨌다는 건데?”
“내가 말해 줄 수 있는 건 거기까지다.”
“아니, 그게 무슨 생뚱맞은…… 끝까지 말을 해 봐라! 그게 무슨 뜻이지?”
뼈를 다 수습한 서준은 박연을 돌아봤다. 그는 이전과 달리 진지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때로 모르는 게 약일 때가 있다.
지금 박연이 그렇다.
나중에 돌이켜 보면 틀린 판단일지 몰라도 지금은 이 판단이 맞았다. 적어도 서준은 그렇게 생각했다.
“어울리지 않게 진지한 척하지 말고 돌아가자. 사람들 오고 있다.”
* * *
“정체불명의 힘이라…….”
일렁이는 촛불을 들여다보던 카달란이 말을 흐리자 에이스케가 말했다.
“그 정체불명의 힘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성공했을 겁니다. 아니…… 소환 자체는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채널 밖으로 나오진 않았다?”
“예.”
“그럼 소환 대상을 직접 보진 못했겠군요.”
“보진 못했지만 확실히 소환 대상이 맞았습니다. 카달란 님께서 말씀하신 기운과 동일했으니 말입니다.”
“흐음, 파일런은 어떻게 됐죠?”
“죄송합니다. 당국의 경계가 삼엄했던 터라 접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 되찾아야 하는 거라면 당장이라도…….”
“아뇨. 괜찮아요. 어차피 그들은 파일런을 발견하더라도 어떤 용도인지는 가늠하지 못할 테니까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만 어찌 됐건 카달란 님께서 이번 일에 심혈을 기울이셨는데 결과가 좋지 못해 면목 없습니다.”
“한 가지 사실은 확인했으니 됐습니다.”
“한 가지 사실이라면……?”
“이곳에도 소환이 가능하다는 것. 그렇다면 이제 현신할 때의 제약도 사라질 거예요.”
“그럼 계속 머무르실 수 있는 겁니까?”
“계획이 차질 없이 모두 진행된다면요.”
“다음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차질 없이 진행하겠습니다.”
카달란은 방긋 웃었다.
‘정체불명의 힘이라. 내가 간과한 각성자인가, 아니면…….’
머릿속에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 * *
끈질기게 물어볼 줄 알았던 박연은 의외로 잠잠했다.
그에 서준은 자신이 준 힌트로 박연이 뭔가를 눈치챈 거라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자기방어 기제든가.
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자기방어 기제.
어찌 됐건 새로운 한 주는 시작되었다. 예전과 다를 바 없는 한 주였다.
쏴아아아아!
또 비가 온다.
재료 손질을 하다 말고 밖으로 나온 서준은 가게 처마 밑에서 비가 내리는 걸 묵묵히 지켜봤다.
투툭!
투두둑!
바닥을 때리는 빗소리가 리듬감 있게 들려오자,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이다.
빗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런 안정감 때문에 비가 오는 걸 좋아했던 걸까?
첨벙첨벙!
캉캉!
서준은 고개를 돌렸다.
우비에 장화를 신은 서우가 역삼이와 함께 까르르 웃으며 물웅덩이를 뛰어다니고 있다.
캉캉캉!
서우와 함께 뛰어다니다 보니 역삼이도 어느새 비에 젖은 생쥐 꼴이다.
캉캉!
짧은 다리를 잘도 놀리며 서우의 뒤를 졸졸 쫓는 역삼이에 서준이 중얼거렸다.
참 이상하단 말이지, 헬 하운드는 본능적으로 사람 손을 거부하는데…….
사실 귀환한 초기부터 가진 의문이긴 했다.
헬 하운드는 개와 흡사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개가 아니다.
늑대를 개라 하진 않잖은가?
오히려 헬 하운드는 사람을 먹이로 삼는 종이다.
사람을 본능적으로 적대하며, 보는 즉시 갈기갈기 찢어 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종이다.
그런데 서우를 따르는 역삼이는 다르다.
개 같다.
‘뭔가 욕 같네.’
하지만 사실인 걸 어쩐단 말인가?
개 같지도 않은데 개 같은 걸.
‘버림받은 적이 있어서 그런 건가.’
서준은 한 가지 가설을 떠올렸다.
역삼이는 사실 약체로 태어났다. 때문에 어미에게서 버림받았다.
그런 역삼이를 주운 게 자신이었고 말이다.
한 번 버림받은 적이 있으니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정을 주고 있는 게 아닐까?
어쨌든 헬 하운드는 마물을 넘어선 영물에 가까우니 말이다.
그때.
“저러다 감기 걸리겠는걸.”
“왔냐?”
“어. 근데 서우는 우비랑 장화라도 신고 있어서 괜찮다지만 역삼이는 저러다 감기 걸릴 것 같은데 괜찮으려나?”
비록 약체로 태어나 버림받았다지만 역삼이도 헬 하운드다. 그리고 헬 하운드는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
게다가 뜨거운 성질과 체질을 타고 났기 때문에 저렇게 몸을 적셔 주는 게 오히려 더 좋았다.
“원래 똥개는 비 맞아도 팔팔하다더라.”
“그래?”
캉캉캉캉캉!
갑자기 짖어 대는 역삼이.
연준이 피식 하고 웃었다.
“똥개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역삼이 밥 안 준다.”
끼이잉-.
귀를 축 늘어뜨린 역삼이에 연준이 또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참 신기하다니까. 어떻게 사람 말을 바로 알아듣나 모르겠어. 아, 그래서 말인데 언제 한번 동물병원에 데려가야 되는 거 아냐?”
“동물병원?”
“왜, 심장사상충이라든가 강아지들 맞는 예방 접종 있잖아. 역삼이는 하나도 안 맞았을 거 아냐. 게다가 여기 온 지 꽤 됐고 밥도 잘 먹는데 당최 크지도 않는 것 같고…….”
헬 하운드는 원래 성체가 되기까지 기간이 꽤 걸린다.
그렇기에 어미가 약체로 태어난 새끼들은 미리 버리는 것이다. 어차피 성체가 되기도 전에 도태될 걸 아니까.
이 사실을 말해 줄 수 없었던 서준은 화제를 전환했다.
“그보다 기분은 어때?”
“기분?”
“재산세 낸 기분.”
“어떻긴. 아직도 얼떨떨하지. 신기하기도 하고…… 살면서 내가 재산세 낼 날이 올 줄 누가 알았겠어?”
7월과 9월에 걷는 재산세는 안분 계산되지 않는다.
따라서 7월에 건물을 취득한 연준은 재산세를 내고 오는 길이었다.
“그러고 보면 형이랑 박연 씨 온 뒤로 좋은 일만 생기네. 아, 혹시 형이 막 굉장한 각성자라서 뒤에서 이것저것 도와주고 있는 거 아냐?”
뜨끔!
“그랬으면 내가 너한테 얹혀 살겠냐?”
“그건 인정. 근데 박연 씨는? 안 보이네?”
“저기.”
서준이 가리킨 곳은 옆 가게의 벤치였다. 박연은 벤치에 앉아 비를 맞고 있었다.
“박연 씨도 비 맞는 거 좋아하나 보네.”
“원래 애들은 비 맞는 거 좋아하잖아.”
“박연 씨가 들으면 화내겠다.”
“사실인데 뭐 어때. 하는 짓이 애 같은데.”
“사람이 순수한 거지.”
“뭐, 그것도 맞는 말이고. 그나저나 비도 오는데 오늘은 전 어때?”
“전 좋지. 형은 쉬어. 맨날 형이 했으니까 오늘은 내가 할게.”
“못 먹는 거 아니냐?”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전은 잘 부쳐. 나중에 다시 해 달라고 할 만큼 맛있을걸?”
“확실해?”
“와, 도발하네. 나중에 또 해 달라고 하지 마라.”
소매를 걷어붙이며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연준에 피식거리던 서준은 여전히 비를 맞고 있는 박연에 침음했다.
연준이가 오해를 하고 있다. 박연은 비를 좋아하는 게 아니다. 다만 내리는 비를 통해 복잡한 마음속 잡념을 씻겨 보내는 중일 뿐.
“형, 안 들어와?”
“어, 들어가.”
* * *
쏴아아아-!
쏟아지는 빗속.
박연은 몰아(沒我)의 상태에 빠졌다.
육신은 분명 현계(顯界)에 있지만 정신만큼은 현계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그 속에서 박연은 자꾸 치밀어 오르는 잡념을 씻겨 보내려 했다. 하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그대의 믿음.
-그대의 믿음.
-그대의 믿음.
다른 건 다 씻겨 보냈는데 이것만큼은 씻겨 내려가지 않았다.
결국 박연은 잡념을 인위적으로 씻어 내기보다 고뇌로 바꾸는 걸 택했다.
씻기지 않는 잡념은 계속해서 그를 괴롭힐 테지만 고뇌는 벗어나기만 하면 되니까.
‘무슨 의미인가, 그대의 믿음은…….’
나 벨테브레이의 믿음.
기사로서 봉사하는 믿음.
용사로서 헌신하는 믿음.
신도로서 맹신하는 믿음.
‘혹시 신도로서 맹신하는 믿음?’
이게 맞다면 마왕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거지?
혹시 이번 일이 천신들과 연관이 있다는…….
‘무슨 그런 불경한!’
박연은 스스로를 다그쳤다.
여태 단 한 번의 의심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런 불경한 의심을 하다니!
신도로서 맹신하는 믿음은 무조건 아니다.
그 순간 박연은 보르피안 사제가 떠올랐다.
‘허상을 인지하는 믿음…….’
사제님은 늘 자신에게 허상을 인지하는 믿음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허상을 인지하는 믿음!
그래.
어쩌면 그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분명 동료들과 데이카란투를 해치웠다.
심지어 데이카란투의 드래곤 하트에 검을 찔러 박은 건 박연 본인이었다.
드래곤 하트가 새하얀 입자로 변하며 대기 중으로 흩어지는 것도 분명히 보았고 말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게 허상을 인지하는 믿음에서 나타난 환영이었다면?
그래서 데이카란투를 해치웠다고 착각을 했었던 거라면?
가능성은 충분했다.
데이카란투는 여러 드래곤들의 정기와 그들의 능력까지도 함께 흡수했다.
그 능력들을 한데 조합해서 죽음을 가장했거나, 혹은 용사들을 속인 거라면 충분히 말이 된다.
문제는 왜 그렇게 했냐는 건데…….
‘흐음.’
박연은 본 드래곤이 된 데이카란투를 떠올렸다. 스스로를 리치화한 걸까?
물론 본 드래곤은 살아 있을 때보다 약체가 된다는 게 통설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확인하지 못한 통설이기도 하지.’
그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 상정할 수 있다.
이 추측에 무게를 실어 주는 것은 데이카란투의 행적이었다.
그가 다른 드래곤들의 정기를 흡수하고 악룡의 낙인이 찍힌 건, 반신에서 진정한 신이 되기 위해서였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데이카란투가 스스로를 리치화하여 지구에 현신했다.
그래, 그는 본인의 한계를 깨닫고 천신들이 없는 이곳에서 신이 되려고 했던 게 아닐까?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마음에 평온이 찾아왔다. 여태 그를 괴롭힌 잡념이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몰아의 상태에서 벗어난 박연은 현계에서 눈을 떴다.
그의 앞에는 서준이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다 끝났으면 부침개 먹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