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God wants to live in peace RAW novel - Chapter 73
마신은 평화롭게 살고 싶다 73화
* * *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온 강민희는 멍하니 소파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그때.
삐삐삐-!
현관 도어락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남편이 돌아왔다. 그녀의 남편 이창현은 현장 일을 했다.
땀에 전 채로 돌아온 그가 물을 꺼내 마시며 말했다.
“센터 다녀왔다며? 장모님은 좀 어떠시대?”
“어떻긴…… 똑같지.”
“그래서 말인데.”
“응?”
“아무래도 장모님 요양원에 모시는 게 좋을 것 같아.”
“갑자기 요양원이라니?”
“센터에 다달이 들어가는 돈이 얼만 줄 알아? 수백만 원이 넘어. 요양원은 그나마 보험 혜택이라도 받잖아.”
격변 이후.
의료보험 체계는 완전히 무너졌다. 물론 시간이 지나며 차차 복구되긴 했지만 격변 전과 비교하면 한참 부족했다.
특히 노인 건강에 관한 부분은 더더욱.
당연히 치매 센터는 보험 적용이 안 됐다. 그러다 보니 한 달에 들어가는 돈만 수백만 원이 넘었고.
다만 요양원은 달랐다. 제한적이긴 해도 일부 적용이 됐던 것이다.
물론 치매 센터처럼 극진한 케어는 받지 못한다. 요양원은 말 그대로 요양원에 불과하니까.
“그치만…….”
“낫기라도 하면 또 몰라. 집 평수까지 줄여 가면서 수발들었잖아. 그뿐이야? 대출까지 받았어. 이 정도면 솔직히 할 만큼 하지 않았냐?”
당신 어머니였어도 그렇게 말할 수 있어?
소리치고 싶었지만 강민희는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이창현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치매는 불치병이다.
세상은 천지개벽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치매를 완치시킬 만한 약은 나오지 않았다.
치매 센터에 모시게 되면서 다달이 들어가는 돈이 부담스러워지자 집 평수까지 줄였다.
그 차액으로 센터 비용을 댔고.
그럼에도 생활비는 모자라서 대출까지 받고 살고 있는 게 현 가계 현실이었다.
“민희야…… 우리도 할 만큼 했다. 장모님도 분명히 이해해 주실 거야.”
* * *
“여기 동의서에 사인을 해 주시면 됩니다.”
실장이란 사람이 설명을 마치며 동의서를 내밀었다.
강민희는 멍하니 동의서를 내려다봤다.
글씨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것 같은데 정작 어떤 내용인지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묵묵부답인 강민희를 대신해 그녀의 남편 이창현이 동의서를 읽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취침 시간에 장모님을 묶어 놓아도 괜찮다는 보호자 동의서였다.
이창현은 강민희의 눈치를 살폈다.
“여보.”
“…….”
“여보.”
“응?”
“여기 동의서.”
“하지만 묶여 있다가 화재 사고라도 나면……?”
이런 질문을 제법 많이 받아 본 건지 실장은 깊은 한숨을 토해 냈다.
“보호자분. 치매 환자분들의 경우 사망 통계가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사망 통계요?”
“초기에는 자살을 해요. 치매 진단을 받고 좌절감에 자살하는 거죠. 말기에는 어떨 것 같습니까?”
“…….”
“대부분은 사고로 돌아가십니다. 상황 판단력, 운동력, 기억력 약화로 사고 대처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게 되거든요. 무슨 말씀이신지 아시겠어요?”
“아뇨, 잘…….”
실장은 답답한 듯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이진순 환자가 취침 시간에 강박되지 않은 채로 있다가 요양원을 나갔다고 생각을 해 보세요.”
많은 경우의 수가 떠올랐다.
멋모르고 던전에라도 들어가면?
길을 건너다 사고라도 나면?
누군가에게 총이라도 맞으면?
“보호자분이 원치 않는다면 물론 저희도 강요할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만에 하나 그런 사고가 나게 된다면 저희는 아무 책임도 질 수가 없습니다.”
“…….”
“여보.”
“…….”
“장모님을 위한 거라잖아.”
입술을 꽉 깨문 강민희는 펜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서명란에 사인을 했다.
실장은 동의서를 받아 캐비닛에 넣고는 문을 가리켰다.
“입소 절차는 로비에서 안내받으시면 됩니다.”
* * *
며칠 후.
강민희는 요양원을 방문했다.
며칠 만에 보는 이진순은 며칠 전보다 살이 빠진 모습이었다.
“엄마.”
“왔어?”
“네. 잘 계셨어요?”
“나야 잘 있었지.”
“여기서 불편 한 건 따로 없으시고요?”
이진순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응. 밥도 잘 나오고 다른 분들도 다 친절하시고 이전에 있던 곳보다 더 좋은 것 같네.”
“…….”
엄마는 거짓말을 할 때 눈을 깜빡거리는 버릇이 있었다. 방금도 눈을 깜빡거렸다.
그런데도 강민희는 못 본 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건우는 안 왔니? 건우 얼굴 못 본 지도 꽤 된 것 같은데…… 아, 꼴이 이래서 보기 힘드려나?”
“엄마 꼴이 어때서요. 주말에 한번 데려올게요. 안 그래도 건우도 할머니 찾아요.”
“그러니? 언제 커서 벌써 중학교에 다 들어갔는지 참…… 갓난둥이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안 그러니?”
“…….”
“민희야?”
“…….”
“강민희. 애가 정신을 어디에 팔아먹었어?”
“아? 네. 그러게요. 갓난둥이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중학교에 다 들어갔어요. 요새는 애 아빠한테 면도도 배운다니까요?”
“면도까지?”
“네. 애 아빠가 생일 선물로 쉐이빙 폼 해 줘야겠다고 할 정도예요.”
이진순이 방긋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더니 깜빡한 게 있다는 듯 주머니를 뒤져 포장된 찹쌀떡을 건넸다.
“이게 뭐예요?”
“아까 점심에 나오더라. 너 찹쌀떡 좋아하잖니.”
“엄마 드시지 않고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떡 같은 건 영 넘기기가 힘들어.”
“하긴 엄마가 많이 늙긴 했어. 옛날에는 맨날 잔소리였는데 요새는 잔소리도 안 하고.”
“잔소리가 아니라 다 너 잘되라고 하던 소리였지.”
강민희는 피식 웃었다.
“맞아요. 지금은 제가 건우한테 그러고 있거든요.”
“그래?”
강민희는 오랜만에 멀쩡한 정신인 엄마와 대화를 나눴다.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햇살이 오랜만에 따사로웠다.
* * *
강민희는 문득 정신이 들었다.
“어느새 여기까지…….”
밤 늦은 시간이라 위험하긴 하지만 복잡해진 머릿속을 진정 좀 시킬 겸 산책을 나왔던 그녀였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술 한잔해요’ 앞이었다.
“어디 가세요?”
강민희는 흠칫했다. 12구역이란 곳은 둘이 다녀도 안전한 곳이 못 된다.
그런 곳에 산책을 나온답시고 혼자 나왔는데 거기에 누군가 말까지 걸어온다면 누구라도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뒤를 돌아본 강민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놀랐네. 서준 총각이었구나.”
“본의 아니게 놀래 드린 모양이네요. 죄송합니다.”
“아냐. 나 혼자 놀란 건데 뭘. 근데 쓰레기 버리러 나온 거야?”
서준의 양손에는 쓰레기봉투가 들려 있었다.
“네. 이모님은요?”
“산책 좀 나왔는데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네.”
“혼자 다니시면 위험할 텐데…….”
“그래도 뭐 늙은 아줌마를 누가 어떻게 하려고 하겠어?”
웃으며 말한 강민희의 눈에 문득 네온사인으로 반짝거리고 있는 술 한잔^해요의 간판이 들어왔다.
“근데 몇 시까지 영업해?”
“보통은 손님이 있을 때까진 합니다.”
“그럼 들어가서 술 한잔해도 될까?”
“물론이죠.”
가게 안은 조용했다. 이거 아무래도 마감 시간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마감하려고 했었나 보네. 괜히 미안해서 어떡해.”
“괜찮습니다. 술은 뭘로 드릴까요?”
“소주면 될 것 같고 안주는…….”
“마침 김치찌개가 있는데 그거 드릴까요?”
“김치찌개? 김치찌개도 메뉴에 있었어?”
“아뇨. 내일 아침에 먹으려고 끓여 둔 겁니다.”
“나야 고맙긴 한데…… 괜히 미안해서.”
“잠시만 기다리세요. 금방 가져다 드릴게요.”
술을 먼저 내어 온 서준이 곧 김치찌개도 끓여서 가져왔다.
“냄새 좋네.”
후룹-!
“우와, 맛은 더 좋네?”
“다행이네요.”
“이건 소맥이 딱이겠다. 맥주도 부탁해도 될까?”
서준은 글라스와 맥주도 한 병 가져왔다.
그러자 그녀는 자연스럽게 숟가락으로 맥주 뚜껑을 땄다.
‘퐁-!’ 소리와 함께 뚜껑이 열리자 이번에는 소주 뚜껑을 따서 소주잔에 소주를 부었다.
콸콸콸!
그다음은 맥주였다. 글라스에 맥주를 따른 그녀가 아까 따라 둔 소주잔을 퐁당 빠뜨렸다.
기포와 거품이 동시에 올라오자 그녀는 냅킨을 뽑아 글라스 입구를 막고 세차게 흔들었다.
젖은 냅킨은 바로 벽으로 빡! 던진 그녀가 흠칫했다.
“자, 잘 마시네요.”
“습관이 이래서 무섭다니까.”
“평소에 술 자주 드시나 봐요.”
그녀가 술을 벌컥 들이켰다. 소맥 특유의 들큼하게 톡 쏘는 맛이 일품이었다.
“크으! 좋다! 술은 오랜만이지.”
“그래요?”
“가끔 맥주 정도는 먹긴 하는데 이렇게 소맥 먹어 본 건…… 그래, 15년은 됐겠다.”
“15년씩이나요?”
“건우 낳고…… 아, 건우는 우리 아들. 아들 낳고는 안 마셨거든. 아니, 못 마셨지. 애 키우느라 마실 시간이 있어야지.”
“그럴 수도 있긴 하네요.”
고개를 끄덕거린 서준은 잠깐 생각했다.
그 역시 귀환 후 소맥을 마셨다.
물론 그는 15년이 아니라 수천 년 만에 마시게 된 소맥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수천 년 만에 마시게 된 소맥은 기분을 굉장히 묘하게 만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과거와 현재의 간극을 좁혀 버리는 기분?
마계에서의 지난 시간들이 증발한 기분?
흐음, 남한테 설명할 건 못 되는군.
서준은 쓰게 웃었다.
“15년만에 마셔 보는 소맥은 어떤 맛인가요?”
“어떻게 참았나 싶을 만큼 맛있네. 술술 들어가.”
남은 술을 원샷한 그녀가 다시 소맥을 제조했다. 그러다 문득 어떤 기억이 떠올랐는지 피식 웃었다.
“내가 옛날에 술을 참 좋아했어.”
“의외네요.”
“대학 때는 맨날 술독에 빠져 살았지. 학점은 2점대를 못 넘겼어.”
그 정도면 얼마나 공부를 안 한 거지……?
서준은 조심스레 생각했다.
“그래도 졸업하고 나서 운 좋게 중견 기업에 입사를 하긴 했는데, 이게 또 퇴근 후에 먹는 술맛이 그렇게 좋더라?”
“술이요?”
“응. 서준 총각도 그 맛을 알지 모르겠네.”
“얼마나 맛있었길래요?”
당시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는지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퇴근길에 편의점에 들러서 도시락이랑 소주를 한 병 사. 그리고 집에 와서 반주하는 셈치고 먹는 거지. 직장 상사한테 받은 스트레스, 업무 스트레스. 다 술 한잔에 날려 버리는 맛은 진짜…… 설명이 안 되지.”
“그렇군요.”
“근데 신기하게 그럴 때마다 꼭 엄마가 귀신같이 알아채고 방문을 열더라? 이 기집애! 또 술 처먹네! 하고.”
“어머니께서 감이 좋으셨나 봅니다.”
“그런가 봐. 가방에 어떻게 숨겨 가도 결국은 들키더라고. 그때는 나도 다 컸는데 술도 못 마시게 하는 엄마가 어찌나 밉던지…….”
“성인이 되면 오히려 부모랑 떨어져 살아야 부모 자식 간에도 더 돈독하게 지낼 수 있다더라고요. 같이 살면 오히려 더 멀어지고.”
“그래? 신기하네. 몸이 멀리 있으면 정신이 가까워지고 몸이 가까이 있으면 정신이 멀어지는 게…….”
쪼로록!
그녀는 소맥 대신 소주잔에 소주만 따라 벌컥 들이켰다. 쓸 텐데도 아무런 표정 변화 없던 그녀가 툭 말했다.
“근데 왜 지금은 안 가까워지는지 모르겠네. 떨어져 사는데…….”
“아, 어머니께서 지방에 계시다고 했었죠?”
“지방은 아닌데 떨어져 살아. 치매시거든.”
흠칫!
“이제는 내 얼굴도 못 알아보실 때가 많아.”
“아…….”
“그래서 그런 건가. 떨어져 살아도 정신이 멀어지는 게.”
서준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치매 환자의 가족들이 겪는 아픔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었다.
그의 외할머니도 치매셨으니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댁에 갈 때마다 외할머니는 늘 환하게 웃으며 두 팔 벌려 반기시고는 했었다.
“우리 똥강아지들 왔어?”
살갑게 말이다.
그러던 외할머니가 차츰 자신을 기억 못 하기 시작했다. 뚱한 표정으로,
“뉘 집 자식이래?”
“옆집 한 씨네 손자들인가?”
어린 마음이었는데도 외할머니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게 서글펐었다. 하물며 강민희는…….
‘……가슴이 찢어지는 심정이겠지.’
어느새 강민희의 눈에는 눈물방울이 맺혔다.
남에게 보이기 싫었던 건지 그녀는 황급히 눈물을 훔쳐 냈다.
“눈에 먼지가 들어갔나 봐.”
서준은 대답 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입을 열었다.
“저도 가끔 눈에 먼지가 들어갈 때가 있습니다.”
“그래? 서준 총각은 먼지 들어갈 일이 없을 것 같은데?”
“저도 그런 줄 알았는데 자주 들어가더군요. 실은 최근에도 먼지가 들어갔었습니다.”
“최근에도?”
“네.”
-근데 그 종이가 뭔데 그러는 거요?
-등기요. 이 건물이 제 거라는…… 등기.
이 한마디에 동생 연준이 살아온 지난 날들이 떠올랐다. 연준이 겪었을 역경이 떠올랐다.
그래서 눈에 먼지가 들어갔었다.
아주 많이, 너무 많이.
“다들 한 번씩은 눈에 먼지가 들어가나 보네.”
“그런가 봐요. 안 들어가면 좋을 텐데.”
강민희가 밝게 웃던 그때였다.
부르르르-!
휴대전화 진동음이었다. 액정을 확인한 그녀가 중얼거렸다.
“모르는 번호네.”
스팸 전화리라.
통화 거절을 했다.
부르르르르!
또다시 전화가 오자 강민희는 한숨을 토해 내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여기 서신병원 응급실인데요. 이진순 환자 보호자 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