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God wants to live in peace RAW novel - Chapter 72
마신은 평화롭게 살고 싶다 72화
* * *
딸랑!
풍경이 울리고 문이 열린다. 가게로 들어오는 손님들에 서준은 미소 지었다.
“이렇게 생겼었네.”
“그러게. 인테리어도 깔끔하고 예쁘게 잘 해놨다. 술이 아주 술술 들어가겠어.”
“어, 서준 총각.”
재료를 손질 중이던 서준은 주방에서 나왔다. 반가운 손님들이었다. 강민희와 마트 직원들이었으니까.
“가게에서 뵙는 건 처음이네요. 다들 마트에서만 뵀었는데.”
“그러게. 한 번을 못 오다가 이제 와 보네. 근데 가게가 참 예뻐. 아기자기한 맛도 있고…….”
“감사합니다. 오늘은 회식인가요?”
“회식이라기보다는 아줌마들 계 모임이지, 계 모임.”
“계 모임이요?”
“요새는 자식들 대학 보내기가 더 빠듯하잖아. 이런 식으로 십시일반 곗돈 모아서라도 차례차례 보내는 거지.”
“아.”
이해가 됐다. 옛날에는 몇 만 원이었으면 사 먹을 수 있었을 자반고등어 3KG짜리가 28만 원을 호가한다.
대학 등록금 역시 안 올랐을 리가 없었다.
‘근데 직장 동료들끼리도 계 모임을 하나?’
계 모임은 결속을 다지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돈이 묶여 있으니 함부로 이탈하거나 얼굴 붉힐 일이 적은 것이다.
하지만 직장 동료들끼리라면 그러기가 어렵다.
“왜, 이상해?”
“아뇨, 이상하다기보다는…….”
“다들 한 동네 살아. 얼굴 알고 지낸 지가 최소 십수 년씩이니 믿고 하는 거지.”
그렇다면 이야기가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편한 곳에 앉으세요.”
“저기 창가 쪽 앉아도 될까?”
“그럼요.”
창가 쪽에 자리를 잡은 강민희와 직원들이 서로 의논을 하더니 주문을 했다.
주문 내역은 계란 프라이와 맥주.
‘가볍게 한잔만 하고 들어가실 모양들이시네.’
하긴 다들 가정이 있으신 분들이니까.
주방으로 들어간 서준은 아루트스 프라이를 준비했다. 물론 아루트스 프라이만 내줄 생각은 없었다.
이제는 가게의 시그니처 메뉴가 된 고추장 삼겹살도 서비스로 내 갈 생각이었다.
치이이익!
촤아아악-!
이제는 두 화구에서 두 개의 요리를 한꺼번에 할 만큼 익숙해졌다.
한쪽에서는 아루트스 프라이가 자글자글 익어 가고, 또 한쪽에서는 끄렉세그 고추장 삼겹살이 노릇노릇 익어 간다.
먼저 준비가 된 아루트스 프라이를 맥주와 함께 내줬다. 마트 직원들의 테이블에서 감탄이 들려온다.
“정말 계란 프라이 맞아?”
“그러게.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 맛있지?”
“괜히 사람들이 여기에만 몰리는 게 아니었네.”
칭찬은 마왕도 춤추게 하는 법.
서준은 고추장 삼겹살에 이어 자신이 먹으려고 손질해 뒀던 데칸토도 꺼내 왔다. 이미 염지까지 해 뒀기에 조리만 하면 됐다.
튀겨도 되고 구워도 되고 삶아 먹어도 되는 데칸토지만 서준은 좀 더 간편하게 조리할 생각이었다.
힐끗.
다행히 수다 삼매경이군.
마트 직원들을 흘긋 본 서준이 손질된 데칸토에 손을 뻗었다.
찌이이이이-!
그 순간 스파크가 튀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데칸토가 익어 갔다.
아마 마법사들이…… 아니, 멀리 갈 것도 없다.
마법의 원리를 누구보다 잘 깨우친 박연이 이 광경을 지켜봤다면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방금 서준이 시전한 체인 라이트닝은 광역계 마법이었다.
서클에 따라 그 범위는 달라지지만 최소 반경 20m 이내에 시전되는 게 바로 체인 라이트닝이란 마법이었다.
그런데 그 체인 라이트닝이 한곳에 집중됐다. 손질된 데칸토에 말이다.
심지어 그 강도 또한 미세하게 조절이 된 채로.
박연이 봤다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과연 어쩔 수 없는 마왕이었던 게로군…… 마법의 원리까지 비틀다니! 그건 신을 모독한 것이다! 그대를 처치하겠다!
귓가에 맴도는 듯한 박연의 대사를 뒤로하고 서준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데칸토에 입맛을 다셨다.
그러고 보면 마계에서는 조미료가 없어서 데칸토를 염지하진 못하고 손질만 한 채로 구워 먹었다.
‘물리도록 먹었지.’
그런데도 맛있어 보인다.
한눈에 봐도 겉바속촉의 끝판왕일 것 같은 비주얼이었다.
그사이 고추장 삼겹살도 다 노릇노릇하게 익었다.
서준은 통데칸토구이와 함께 고추장 삼겹살을 내갔다.
“어? 이건 뭐야? 안 시켰는데?”
“서비습니다.”
“서비스? 삼겹살이랑 닭…… 아니, 근데 무슨 닭이 이렇게 커?”
“토종닭이라 그렇습니다.”
“원래 토종닭이 이렇게 컸던가? 토종닭보다 더 큰 것 같은데.”
“아무렴 어때, 서준 총각이 특별히 우리 생각해서 서비스로 준다는 건데.”
“그렇긴 하지.”
“서준 총각, 잘 먹을게. 고마워.”
“그럼 맛있게들 드시고 부족한 거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마트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기구이 통닭인가?”
“그런 것 같은데?”
“전기구이 통닭은 진짜 오랜만이네.”
“그러게. 요새는 통 못 본 것 같은데.”
“그만 떠들고 일단 맛부터 보자.”
“나는 삼겹살부터.”
“닭 날개는 내가 먹어도 되지?”
각각 선호하는 음식부터 먹은 그녀들이 역시나 감탄을 내뱉었다.
“맛있는데?”
“이 고추장 삼겹살부터 먹어 봐. 아니 무슨 삼겹살이…….”
그녀들이 감탄과 함께 술을 마시던 그때.
가게 한쪽에 있는 쪽방에서 박연이 기지개를 켜며 나왔다.
가장 먼저 강민희가 그를 알아봤다.
“재밌는 총각도 있었네?”
마트 직원들은 박연을 재밌는 총각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오랜만이구려.”
그의 독특한 콘셉트 때문이었다.
“재밌는 총각도 와서 한 점 들래?”
“됐소. 대신…….”
박연의 시선이 데칸토로 향한다. 이를 알아본 강민희가 웃으며 말했다.
“와서 같이 먹어.”
“그래도 되겠소?”
“서준 총각이 서비스라고 내준 건데 뭘. 근데 재밌는 총각은 이제 일어났나 봐?”
“어제 밤 늦게까지 숨바꼭질을 하다 보니 늦잠을 자게 됐소.”
“호호호, 농담도 참.”
“하여간 재밌는 총각이라니까.”
그녀들이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다 큰 어른이 숨바꼭질을 하다가 밤을 지샐 리가 없잖은가.
……는 물론 그녀들의 착각이었다. 박연은 정말로 두식과 숨바꼭질을 하다가 늦잠을 잤다.
그녀들이 믿건 말건 박연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데칸토 다리.
그가 하나 남은 데칸토 다리를 집어 들어 와그작와그작 씹었다.
‘마왕 주제에 요리는 잘한단 말이지.’
역시 이상한 마왕이야.
중얼거린 박연이 마트 직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어제 보셨소?”
“재밌는 총각, 그것도 챙겨 봐?”
“물론이오. 그 드라마를 가장 좋아하오.”
주제는 자연스럽게 드라마로 넘어갔다.
박연이 데칸토 다리를 발골하며 말했다.
추릅!
“한수연이 아주 못되지 않았소?”
“그치? 여우 같은 기집애가 아주 못돼 처먹었어. 어떻게 지 신랑한테 그럴 수가 있어?”
“그러게 말이오. 누명을 씌우다니…… 쯧쯧.”
“아차, 재밌는 총각. 혹시 도 봐?”
“아, 사극 말이로군.”
“응응.”
“그건 안 보고 있소.”
“잉? 세상 드라마란 드라마는 다 챙겨 볼 것 같은 박연 총각이 어쩐 일로 그건 안 본대?”
“재미없소. 그래서 앞으로는 그 드라마 작가가 쓴 드라마는 안 보려고 하오. 보나 마나일 테니…….”
“하긴. 시청률도 0.8퍼센트라던가?”
“0.6퍼센트일걸?”
마침 맛 좀 보라며 경종 배추 김치를 내어 오던 서준이 조심스럽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전 재밌던데 말입니다.”
“응? 그게?”
“예. 재밌더군요. 주인공도 제법 유쾌하고.”
“아, 뭐. 사람마다 취향 차이는 있으니까. 호호.”
“하여간 드라마 보는 눈이 이리 낮아서야. 쯧쯧.”
혀를 찬 박연이 말을 이었다.
“그보다 이시경이 불쌍하지 않더이까?”
이시경은 에 나오는 조연 중 한 사람이었다.
“사람은 기억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법이거늘 부모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그 얼마나 큰 아픔이겠소? 눈물이 다 나더군.”
“…….”
맞장구를 치며 깔깔거리던 그녀들이 웬일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더니 괜히 강민희의 눈치를 살폈다.
침묵이 이어질 즈음.
직원 하나가 화제를 돌렸다.
“그, 그나저나 박연 총각은 여자 친구 없어?”
“여자 친구…… 후훗. 곧 생길 것 같소이다.”
“그래?”
“뭐,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거의 80퍼센트 정도는 생긴다고 봐도 무방하오.”
“어떤 처잔데? 예뻐?”
“어린이집 교사요. 천사가 따로 없지.”
“콩깍지가 제대로 씌였네, 씌였어. 호호호.”
“벌써부터 이러면 나중에는 어쩌려고? 호호.”
모두가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단 한 사람만 빼고…….
* * *
“민희 씨, 자꾸 이러면 곤란해요. 저도 입장이란 게 있잖아요. 이번 달만 벌써 네 번째예요.”
강민희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점장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어머니께서 찾는다는데…… 얼른 가 보세요. 늦으면 안 되잖아요.”
“감사합니다, 점장님.”
강민희는 허둥지둥 옷을 갈아입고 마트를 나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직원이 점장에게 말했다.
“민희 언니는 오늘도 조기 퇴근이에요?”
“그러네요.”
“난처하시겠어요.”
점장은 점주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점장에 불과했다.
자꾸 이런 식으로 직원을 조기 퇴근시킨다면 점주에게 질책당하는 건 그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사연을 들어 보니 안 된다고 할 수도 없고…….”
그사이 강민희는 초조하게 버스에 올라탔다.
‘늦으면 안 되는데…….’
시계를 흘겼다. 연락을 받은 지 벌써 10분이 지났다.
잠시 후, 목적지에 도착하자 그녀는 허둥지둥 버스에서 내렸다.
“아줌마, 넘어질 뻔했잖아요!”
“아, 죄송합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강민희는 헐레벌떡 어디론가 뛰어갔다. 그녀가 도착한 곳은 한 치매 센터였다.
“오셨어요?”
“네, 전화받고 왔는데요. 엄마 정신이 잠깐 돌아왔다고…….”
“네네. 지금 정원에 계실 거예요. 얼른 가 보세요.”
“감사합니다.”
“아! 민희 씨!”
“네?”
“이따 선생님 보고 가세요. 할머님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다시네요.”
“그럴게요.”
강민희는 걸음을 바삐 옮겼다.
정원에 도착한 그녀는 최대한 숨을 가다듬었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도 소매로 훔쳤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다가갔다.
“엄마.”
그녀가 부르자 벤치에 있던 노파가 몸을 돌렸다. 노파의 입가에 미소가 번져 나간다.
“왔어?”
“네. 몸은 좀 어때요?”
“똑같지. 그나저나 일은 어쩌고 왔어?”
“아시잖아, 우리 점장님 성격 좋은 분이신 거. 엄마 뵈러 간다니까 바로 보내 주셨어요.”
“그 점장님한테도 나중에 꼭 감사 인사드려야 되는데…….”
“나중에 같이 가서 인사드리면 되지.”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네.”
“그럴 수 있어. 그거 내가 확신해요.”
강민희의 말에 노파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화장실 좀 가야겠다. 아까 물을 너무 마셨나 봐.”
“같이 가 드려요?”
“아냐. 화장실 정도는 혼자서도 갈 수 있어. 하루 종일 서 있었을 텐데 좀 앉아 있어.”
엄마의 모습이 점점 멀어져 간다. 마치 물가에 내놓은 아이를 바라보는 심정이지만 엄마의 말을 믿어 본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엄마는 나타나지 않았다. 불안해져서 화장실로 향했다.
뭔가 시끌벅적하다. 불안함이 더 커졌다. 불길한 예감도 들었다. 그리고…….
“할머니, 얼른 일어나셔야죠.”
“안 돼. 과자 줘. 과자 안 주면 안 일어나.”
“일어나세요. 지금 바지에 오줌 묻었어요. 과자는 다 씻고 드릴…….”
“엄마.”
강민희가 울먹이며 엄마를 불렀다. 하지만 오줌으로 흥건한 바닥에 주저앉은 그녀의 엄마는 대답이 없었다.
“언니, 이 아줌마 누구야?”
“…….”
“언니, 이 아줌마 누구냐니까?”
강민희는 결국 참고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사랑하던 엄마가.
날 사랑해 주던 엄마가.
날 알아보지 못한다는 건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아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