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10
“헉!”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렇게 주저앉은 채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단형우를 찾았다. 단형우는 그 바로 옆에 가만히 서 있었다.
“자, 자네……”
형표는 말을 제대로 잇지도 못했다. 정신을 잃기 전의 놀람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설마 이렇게나 높은 무공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는 정말로 그저 눈앞이 번쩍였다는 것만 느꼈을 뿐이었다.
“그, 그것이 진정 삼재검법인가?”
형표의 질문에 단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뢰(天雷)라는 초식이다.”
형표는 너무도 무공에 어울리는 초식명이라 생각했다. 마지막에 은은한 뇌성(雷聲)까지 들었으니 더더욱 그랬다. 물론 형표가 알고 있는 삼재검법에는 없는 초식이었다.
“삼재검법이면서 삼재검법이 아니로군.”
형표가 천천히 일어났다. 자신이 보기에는 전혀 무공을 익힌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더구나 검을 익힌 흔적은 더더욱 발견하지 못했다. 벗은 몸을 보고도 그랬으니 아마 누구도 단형우가 이토록 고강한 무공을 익히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형표는 가만히 단형우의 무공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해봤다. 하지만 그의 실력으로 그것을 가늠할 수는 없었다. 그저 막연히 국주인 사마철과도 충분히 자웅을 겨룰 수 있을 거라 생각될 뿐이었다.
“자네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잘 알았네. 내가 가르칠 수준이 아니로군.”
형표는 단형우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과신해선 안 되네. 그리고 항상 조심해야 하네. 세상에는 정말로 대단한 고수들이 많으니까. 게다가 무림은 꼭 무공으로만 싸우는 것이 아닐세. 독 같은 위험한 것들을 다루는 사람들도 있네. 그러니 항상 조심하게나.”
단형우는 그런 형표의 말을 그저 묵묵히 듣기만 했다. 아직 세상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았다.
형표의 말대로 자신을 능가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어쩌면 많을 수도 있었다.
일단 예전의 기억은 거의 없는데다가 그 지옥의 마물들과 이곳의 인간들을 비교할 수도 없었다. 물론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 중에는 절대 자신보다 강한 자가 없었다.
“일단 자네가 무공을 익히고 있다는 얘기는 아무에게도 하지 않겠네. 자네도 당분간은 숨기도록 하게나. 그리고 앞으로 검을 쓸 일이 있더라도 나에게 먼저 물어봐 주게. 자칫 화를 당할까 두렵네.”
형표가 마지막에 한 말은 전적으로 단형우를 위해서였다. 단형우는 아직 세상일에 대해 어둡다. 그러니 자칫 시비가 붙어 검을 휘두를 수도 있었다.
그때 절대 그래서는 안 될 사람에게 그렇게 하다가는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형표는 절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 일을 국주에게 보고해야 하나?’
아마 국주는 그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단형우가 자신과 비등할 정도로 고수라는 사실을 어떻게 믿겠는가. 게다가 사마철은 단형우가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쩌면 국주보다 더 고수일 수도 있단 말인가?’
형표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는 없었다. 아무리 기재에 좋은 무공을 익혔다 하더라도 단형우는 고작 스물이 될까하는 나이였다.
반면 사마철은 벌써 오십이 넘어가는 나이였다. 그만큼 오랜 신간 동안 무공에 정진해 왔는데 그 나이를 넘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단형우가 무공을 숨기는 특별한 기술을 익혔거나 본능적으로 무공을 감출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하긴 산속에서 오래 살았다니 그럴 수도 있겠지.’
산속에서 맹수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기척을 숨길 수 있어야 했다. 그것은 사냥꾼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단형우는 그런 식으로 묵오을 감추는 법을 익혔으리라.
형표는 결국 국주에게는 보고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보고하면 왠지 일이 커질 것 같았고, 단형우가 하남표국에 머무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 것 같아서 그냥 유야무야 넘기기로 결정했다.
“자네, 내 말을 명심해야 하네. 나중에 여기에서 나가더라도 내가 가르치는 것들을 잘 기억하고 있어야 하네. 알겠는가?”
형표의 진지한 말에 단형우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형표에게서는 진지함과 함께 걱정이 묻어났다.
두 사람은 다시 대장간으로 향했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긴 했지만 검집 하나 주문할 시간으로는 차고 넘쳤다.
형표는 대장장이의 눈에서 탐욕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탐욕은 검을 갖고 싶은 욕망이 아니었다.
“이, 이 검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대장장이의 말에 형표가 단형우를 슬쩍 쳐다봤다. 하지만 단형우는 그저 서 있을 뿐이었다. 형표는 내심 한숨을 쉬며 대장장이에게 말했다.
“자네는 어쨌든 그 검에 맞는 검집을 만들면 되네. 할 수 있겠는가?”
“무, 물론입니다. 맡겨만 주십이오.”
대장장이는 마치 보물이라도 다루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검을 들고 이러지리 치수를 쟀다. 그리고 검날을 유심히 살폈다. 검날에서 느껴지는 시퍼런 예기는 그야말로 섬뜩했다.
치수를 모두 잰 대장장이가 검을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단형우는 그것을 덥석 집어 허리춤에 매달았다.
“시간은 얼마나 걸리겠나?”
“모, 못해도 사흘은 걸릴 것입니다.”
“사흘?”
형표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고작 검집 하나 만드는 데 무슨 사흘씩이나 걸린단 말인가. 더구나 검집은 거의 가죽이나 나무로 만드는 법이니 대장장이가 할 일도 별로 없지 않은가.
“검이 너무 대단해서 검집을 만들려면 사흘도 빠듯합니다.”
형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시간은 많았다. 며칠 더 검집 없이 다닌다고 달라질 것도 없었다.
“그럼 그렇게 하게.”
형표와 단형우가 돌아가자 대장장이는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애썼다.
“그런 검은 정말 난생 처음이로군. 대체 뭐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으니……”
대장장이는 서둘러 움직였다. 보통 검집처럼 나무나 가죽으로만 만들었다가는 낭패를 당할 게 틀림없었다. 그런 검은 죽었다 깨나도 못 만들겠지만 검집 만큼은 자신이 만들고 싶었다.
대장간의 망치질 소리가 점점 더 요란해져 갔다.
조인은 굳은 표정으로 하남표국에 들어섰다. 정문을 지키고 있던 표사들은 물론이고 근처에서 잡일을 하던 하인이나 쟁자수들도 조인의 그런 표정을 보고는 모두 묵묵히 자신의 할 일만 했다.
평소 조이이 오면 누구나 밝은 얼굴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조인은 표국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이렇게 굳은 표정일 때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 심지어는 인사도 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조인은 성큼성큼 걸어 사마철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국주의 집무실에 도착한 조인은 굳은 목소리로 사마철을 불렀다.
“숙부님, 저 인입니다.”
“들어오너라.”
사마철은 집무실에 굳은 표정으로 들어서는 조인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느냐? 얼굴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구나.”
“숙부님, 아무래도 설연이가 걱정입니다.”
“설연이?”
사마철이 조인의 말에 눈을 빛냈다. 그 역시 대충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어쨌든 거기 서 있지 말고 와서 좀 앉거라.”
조인이 자리에 안자 사마철이 조인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설연이가 그 친구를 대하는 게 심상치 않더냐?”
“예, 아무래도 특이한 사람이니 조금 더 관심이 가는 모양입니다. 지금이야 그렇다 치지만 분위기르 보아하니 심각해질 수도 있을 듯합니다.”
조인의 말에 사마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일리가 있다. 그렇지 않아도 쟁자수들 사이에서 이상한 얘기가 돌고 있다고 해서 내가 조만간 조치를 취할 생각이었으니 넌 더 이상 걱정말고 수련에 매진하여라.”
“이상한 얘기라니요?”
“허 참. 그 친구가 설연이의 약혼자라는 얘기가 돌고 있다더구나.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원……”
사마철의 마에 조인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감히! 이건 그 친구가 고의적으로 퍼트린 소문이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쟁자수들 사이에서 이런 소문이 돌 이유가 없습니다.”
“확실치도 않은 일을 그렇게 단정하면 안 된다.”
사마철 역시 그것을 의심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단형우는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성품이 문제가 아니라 그 정도로 주변을 이용할 능력이 아직 없었다.
‘만일 그런 능력을 감추고 있었다면 정말로 무서운 일이지만.’
“절대 경거망동 하지 마라. 조만간 조가장에 손님들도 온다고 하니 수련에나 힘써라. 적어도 그들에게 우습게 보여서는 안 되지 않겠느냐.”
사마철의 말에 조인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음이 복잡해서 이대로는 수련이 제대로 될지도 의문이었다.
“며칠 후에 표행이 있다. 꽤 먼 곳까지 가는 표행이니 시간도 만만치 않게 걸릴 게다. 그러니 염려하지 말거라.”
사마철의 말에 그제야 조인의 표정이 약간 풀어졌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은 것이다.
“역시 숙부님이십니다. 그럼 전 그렇게 알고 물러가겠습니다.”
조인이 인사를 하고 나가자 사마철이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래도 두어 달은 차분하게 가르치려 했더니 일이 이렇게 되어 버렸군. 어쩔 수 없지.”
사마철은 잠시 안타까운 표정을 짓다가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로 돌아가 하던 일을 다시 시작했다. 이내 종이 넘어가는 소리만 은은하게 퍼져 나갔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갑자기 표행이라니.”
형표는 다음 표행을 지위한다는 표두 마육의 말에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표행이야 문제 될 게 없었다.
하남표국의 규모를 생각하면 언제 표행이 잡혀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그 표행에 단형우가 따라가야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직 두 달은 더 표국에서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그런데 벌써 표행이라니요.”
형표가 이의를 제기했지만 마육은 그저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그건 내가 정할 문제가 아닐세. 닷새 후에 출발하니 어쨌든 준비를 해 두게나. 어차피 자네도 함께 가니 문제 될것은 없지 않은가.”
형표는 마육의 말에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어쨌든 자신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대충 인사를 한 후 물러난 형표는 즉시 사마철을 찾아갔다.
국주와 직접 얘기해야만 했다. 국주에게 가는 형표는 단형우의 실력을 얘기할까 하다가 포기했다.
그 얘기는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는 역효과만 날 뿐이었다. 그리고 국주가 그 말을 믿어줄지도 의문이었다.
형표는 허탈한 표정으로 국주의 집무실에서 나왔다. 아무리 얘기해도 국주의 결정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만큼 사마철의 태도는 단호했다. 심지어는 이번 표행 자체가 단형우를 하남표국에서 떨어뜨려 놓기 이해 벌인 듯한 느낌마저 받았다.
결국 형표는 단형우를 찾아갔다.
단형우는 쟁자수 숙소 앞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발견한 순간 형표는 그 자리에서 걸음을 멈췄다. 마치 그곳에 서 있으면서도 서 있지 않은 듯한 기묘한 느낌을 받은 탓이다.
형표는 숨을 들이키며 조심스럽게 단형우에게 다가갔다. 단형우는 눈을 감고 있었다.
형표가 바로 앞으로 다가갈 때까지도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마치 서서 자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번쩍!
단형우가 눈을 뜨자 마치 눈에서 번갯불이 튀어나오는 듯했다. 형표는 깜짝 놀라 다시 걸음을 멈췄다.
“자, 자네…… 대체 언제부터 무공을 익힌 건가?”
“열 살.”
단형우는 형표의 질문에 대답했다. 사람들이 묻는 것에는 되도록 대답을 하려 노력 중이었다. 그것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길 중 하나였으니까.
물론 형표가 가르쳐 준 것이었다.
형표는 단형우의 말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어릴 때부터 무공을 익혔다지만 지금 겉으로 보이는 단형우의 나이는 고작해야 스무 살 정도였다.
십 년이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긴 시간도 아니었다. 형표가 무공을 익힌 시간도 거의 이십 년이 넘었다. 물론 재능이 일천해 아직 겨지에 이르지 못했지만.
“대체…… 대체 자네 몇 살인가?”
형표의 질문에 단형우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잊었다.”
나이를 잊었다는 단형우의 말에 형표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세상과 단절된 곳에서 살아왔다면 나이는 사소한 것에 불과할 테니까.
형표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단형우에 대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자네의 첫 표행이 결정됐네.”
“표행?”
“그렇네. 여러 모로 불안하지만 어쨌든 가야 하네, 닷새 후에 떠날 예정이고 목적지는 사천(四川)이네.”
“사천?”
“어쨌든 닷새 동안 나와 함께 지내는 게 낫겠네. 많은 걸 알려 줘야 할 테니까. 따라오게.”
형표는 단형우를 자신의 거처로 데리고 갔다.
하남표국에는 표사들을 위한 거처가 따로 있지만 굳이 표국 내에서 생활할 필요는 없었다. 보통 일가를 이루거나 사정이 생겼을 때는 거처를 표국 밖으로 옮기기도 하는데 형표 역시 표국 밖에 거처가 있었다.
단출한 살림이었다. 남자 혼자 살고 있는 곳이니 당연했다. 형표는 단형우에게 방을 따로 내줬다.
그리고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남은 모든 시간을 단형우의 교육에 쏟아 부었다.
형표에게는 놀람의 연속이었다.
단형우의 머리는 상당히 뛰어났다. 단형우는 형표가 가르치는 것을 마치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 흡수해 갔다. 하지만 사흘이라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렇게 사흘이 순식간에 지났다.
화려한 장식으로 뒤덮인 방 안. 한 사내가 부복한 채 고개를 깊이 숙이고 있었다. 그 사내 앞에는 얇은 장막이 드리워져 있었고, 그 장막에는 사람 그림자가 비쳤다.
“호오, 그래. 전멸을 했다고?”
장막 안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부복한 사내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목소리만으로는 성별도, 나이도 짐작할 수 없었다.
“그, 그렇습니다.”
“고작 무림매의 현무단 따위가 그들을 막을 수 있을 리는 없고…… 누가 그랬나?”
사내는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허, 알아내지 못했다? 그메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소, 속하의 능력으로는……”
“능력이 없다고 자인하는 것이냐?”
그 말을 들은 사내의 몸이 눈에 띄게 흔들렸다. 사내의 눈이 공포로 젖어 들어갔다. 사내는 이미 대답도 하지 못할 정도로 두려움에 떨었다.
장막 안의 목소리가 그 사내를 부드럽게 감쌌다.
“됐다. 죽은 경천단(驚天團) 애들 시체는 회수했느냐?”
사내는 다시 힘을 내며 고개를 바닥에 쿵 소리가 날 정도로 처박았다.
“예!”
“가져오너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내의 신형이 땅으로 꺼져 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자리에 시체 서른 구가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