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9
“자, 자네 괜찮은가?”
단형우가 형표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뜨, 뜨겁지 않느냐 말일세.”
단형우가 가볍게 고개를 저었ㅅ다. 형표가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다면 알아차리기도 힘들 정도로 미미한 움직임이었다.
형표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주 잠깐 얘기를 나눈 것에 불과하지만 단형우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형표가 판단하는 단형우는 아주 단순했다. 그리고 모든 것에 서툴렀다. 하긴 오랫동안 산속에서만 살아왔다니 너무도 당연했다.
그렇게 뭔가를 한 꺼풀 벗겨버리고 나니 왠지 단형우가 다르게 보였다. 세파에 찌들지 않은 순수함이 보인 것이다. 형표의 입가에 미미한 미소가 감돌았다.
“짜, 일단 일어나세. 가서 그 카레 맞는 검집부터 찾고 시작하기로 하지.”
형표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단형우가 따라 일어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먹을 건 안 먹나?”
단형우의 질문에 형표가 크게 웃었다.
“하하하핫! 여기는 음식을 먹는 곳이 아닐세. 그저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곳일 뿐이지. 하하하핫.”
형표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하자 단형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식도 먹지 않으면서 굳이 이렇게 힘들게 앉아 있을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둘은 함께 대장간으로 향했다.
대장간으로 가는 길에 형표는 단형우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해 주었다. 단형우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가정하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아주 쉬운 부분부터 차근차근 전해 주었다.
물론 모두 알아들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계속 반복하다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 하남표국에는 그 찾는 사람들을 찾을 때까지만 있을 생각인가?”
형표의 질문에 단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것도 모른다니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겠군”
“그렇지 않다. 몇 가지 생각났어.”
“오호, 그거 반가운 소리로군. 그래, 그게 뭔가?”
“악 씨 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형표의 머리가 민활하게 돌아갔다. 악 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흔하진 않지만 그래도 상당하다. 하지만 그래도 범위를 엄청난게 좁힐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건 없나?”
“아주 큰 집에 살고 있다고 했던 같다.”
“아주 큰 집?”
형표는 생각에 잠겼다. 뭔가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다른 건 기억나는 게 없나?”
단형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나마도 정말 기적적으로 기억해낸 것이었다. 세세한 것을 기억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오래 지났다.
“근처에 큰 산이 하나 있다고 했다.”
형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치는 않지만 가능성이 있는 곳 몇 군데가 있었다.
“그 사람들이 무공을 익히고 있지는 않나?”
형표의 말에 단형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그랬던 것 같다. 어렴풋한 기억에 그의 친구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무공에 대한 이해가 높았던 것 같았다. 단형우도 그에게 몇 번 도움을 받기도 했으니 아마 그럴 것이다.
“그랬던 것 같구. 아……!”
단형우가 갑자가 걸음을 멈추고 탄식을 하자, 형표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왜 그러나? 혹시 또 떠오른 게 있나?”
단형우가 무겁게 중얼거렸다.
“친구의 이름이 떠올랐다. 악세기였다.”
단형우의 말을 들은 형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단형우가 하는 말투와 분위기로 내막을 알아서 짐작해 갔다.
단형우가 찾는 것은 악세기라는 친구의 가족들일 것이다. 그리고 악세기는 죽었음이 분명했다.
“잘 알았네, 아마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그 정도라면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네. 기대해도 좋아.”
형표의 말에 단형우의 눈이 살짝 커졌다. 놀란 것이다. 자신은 도저히 찾을 엄두도 나지 않았는데 형표는 고작 말 몇 마디로 찾을 수 있다고 믿기 어렵기도 했다.
“정말인가?”
“그래, 정말일세. 그나저나 자네 정말 그 말투 좀 바꿔야겠군. 아무래도 거슬려서 안 되겠네. 내가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문제니까.”
“다른 사람?”
형표의 말에 단형우가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며 조용히 되뇌었다.
다른 사람. 그동안은 생각할 겨를도 없던 단어였다. 글허다. 지금 이곳에는 자신 말고도 다른 사람이 함께 있었다. 자신 혼자 살아가는 곳이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곳이었다.
“따뜻하군.”
단형우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평화로워.”
형표는 단형우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보게, 어찌 되었건 이것도 인연이고, 나도 자네가 꽤 마음이 든다네. 그러니 앞으로 나를 형님처럼 생각하게. 나도 자네를 동생처럼 생각하고 돌봐줄 테니까. 적어도 이 하남표국 안에서는 내 이름만 대면 자네를 건드릴 사람은 없을 걸세.”
형표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저 단형우가 하남표국 안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그냥 편하게 있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어차피 앞으로 자신이 그를 도와줘야 하니 이왕 도와주는 것 조금 더 힘을 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단형우는 형표의 진지한 얼굴을 쳐다봤다. 그리고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거 참, 단순한 사람이군.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내 자네에게 몇 가지 초식을 알려 줌세. 아마 나중에라도 도움이 될 걸세. 자네도 검을 차고 있으니 검술에 관심이 있을 것 아닌가.”
형표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검법 중에서 비교적 쓸만한고 실전에 유용한 것들을 추려서 알려 줄 생각이었다. 자신이 붙어서 조금만 가르치면 그래도 최소한 별 볼일 없는 불한당들에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단형우는 고개를 저었다. 형표는 그런 단형우를 보며 빙득 미소를 지었다.
“자네도 익히고 있는 검술이 있나보군. 그래, 그게 뭔지 물어도 되겠나?”
“삼재검법.”
단형우의 대답에 형표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단형우가 삼재검법 중 세 초식을 익히고 있다는 것은 이미 사마철국주로부터 전해들은 후였다.
“그래, 삼재검법. 아주 좋은 검법이지. 기본을 다지는 데는 그만한 것이 없어. 하지만 실전에 쓸 만하냐 하면 그건 또 아니지, 내가 실전에 유용한 검법을 좀 알려 주지. 어떤가?”
형표가 열심히 설명했지만 단형우는 그저 고개를 저을뿐이었다. 형표는 여전히 미소를 버리지 않고 끈질기게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지. 나랑 대련이나 한 번 해 보지 않겠나? 일단 대련을 한 번 해 보면 자네도 아마 생각이 달라질걸세.”
형표가 걸음을 멈추며 말하자 잔형우가 그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대련이라는 건 싸우자는 뜻인가?”
단형우의 질문에 형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게 볼 수도 있지. 어때? 해 보겠나?”
형표의 말에 단형우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형표는 그런 단형우를 보며 머릿속에 단형우를 제압할 그림을 그려갔다. 삼재검법에 있는 초식으로 공격해 오겠다고 하면 그 수가 뻔했다.
비록 세 초식을 익혔다고 하지만 그중 어떤 초식을 익혔는지는 듣지 못했으니 몇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했다. 하지만 그래도 너무나 간단한 일이었다.
“그럼 죽인다는 뜻인가?”
형표는 갑자기 들려온 단형우의 말에 머릿속이 헝클어지고 말았다. 난데없이 죽인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그게 무슨 말인가? 죽인다니. 그저 서로의 실력을 가늠해 보잔 말일세.”
형표의 말에 단형우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위다.”
단형우의 간단한 대답에 형표의 표정이 멍하게 변했다. 하지만 이내 형표는 크게 웃고 말았다.
“푸하하하핫! 자네 정말 재미있는 친구로군. 그래도 한 번 해 보는게 어떤가? 난 아직 잘 모르겠으니 말일세.”
형표의 말에 단형우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단형우는 형표라는 사내가 마음에 들었다. 절대 죽이고 싶지 않았다. 단형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만 기다려.”
단형우의 말에 형표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었다. 지금 두 사람이 있는 곳은 대장간으로 가는 길 중간이었지만 인적이 없는 곳이었다.
사실 형표는 일부러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길로 돌아서왔다. 단형우에게 검법을 가르쳐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단형우는 허리춤에 달린 검을 들도 몇 번 하늘을 향해 휘둘렀다. 그리고 고개를 몇 번 갸웃거리더니 다시 휘두르는 것을 반복했다.
형표는 처음에는 저게 뭘 하는 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단형우의 검이 흔들리는 순간 그 움직임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찌나 빠른지 형표의 눈으로는 도저히 쫓아 갈 수가 없었다.
“됐군.”
형표가 놀라는 사이 단형우가 어느새 형표를 향해 돌아섰다.
“이제 죽이지 않을 수 있어.”
단형우의 말에 형표가 침을 꿀꺽 삼켰다.
“시작한다.”
단형우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형표가 달려들었다. 방금 전에 떠올리고 계획했던 모든 생각들이 백지처럼 깨끗했졌다.
그저 검을 들고 자신이 알고 있는 최선의 초식을 시작할 뿐이었다. 형표의 검이 막대한 힘을 머금고 단형우게게 쏘아져 나갔다.
단형우는 그런 형표를 향해 그저 단순히 검을 내리그었다.
번쩍!
우르르르.
형표는 눈앞에 번갯불이 번쩍이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정신을 잃으며 귓가에 은은하게 울리는 뇌성을 들었다.
‘삼재검법이라더니!’
그것이 형표가 정신을 잃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생각이었다.
표행
조설연은 멍한 표정으로 턱을 괴고 먼 하늘을 쳐다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주변에 조인과 조일현까지 나타났는데도 전혀 눈치재지 못했다.
“크흠.”
조일현은 결국 헛기침까지 했지만 조설연은 요지부동이었다. 보다 못한 조인이 나서서 조설연의 어틘?살짝 두드렸다.
“아, 오라버니.”
조설연이 퍼뜩 상념에서 깨어나 살짝 웃었다. 조인은 그런 조설연을 보며 살짝 눈짓으로 조일현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조설연은 그제야 조이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버님도 오셨네요.”
조설연이 배시시 웃자 조일현은 그저 허허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의 웃음은 그의 마음을 사정없이 녹여 버렸다.
“끄래,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게냐?”
“아니에요, 제게 고민 같은 것이 있을 리 없잖아요. 이렇게 아버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데. 후훗.”
조설연의 말과 웃음에 조일현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허허, 그것 참…… 그나저나 얘야, 혹시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은 없느냐?”
조일현의 말에 조설연은 순간 철렁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고작 몇 번 말을 섞어 봤을 뿐이다. 그 살마에 대해 알고 있는 것 하나 없는데 어찌 마음에 두고 말고 할 것이 있단 말인가.
“없어요.”
조설연의 말에 조일현과 조인이 서로 쳐다봤다. 둘은 분명 조설연의 얼굴에 떠오른 복잡한 빛을 읽었다. 틀림없이 뭔가가 있었다.
“정말로 없느냐?”
조일현이 부드럽게 물었지만 조설연은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그 외에는 딱히 생각나는 사람이 없었다.
“이번에 무림맹에서 유능한 젊은이들이 우리 조가장을 방문하기로 했단다. 꽤 오랫동안 있으면서 일도 좀 도와주고 수련에도 서로 도움이 되도록 할 예정이니 너도 그들과 함께 하도록 하여라.”
“예.”
조일현의 말에 조설연은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은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직접 얘기하는 데야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조설연도 조일현이 무슨 생각으로 자신을 그들과 함께 하게 하려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무림맹 사람들은 내키지 않았다. 승룡단을 잠시나마 겪어본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럼 그렇게 알고 난 이만 가보도록 하마.”
조일현은 조설연을 따뜻한 눈으로 한 번 쳐다본 후, 몸을 돌려 휘적휘적 걸어갔다. 어쨌든 요즘 처리할 일이 늘어나 상당히 바빴기 때문에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조일현이 사라지고 나자 조인이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요즘은 수련도 잘 안한다고 하더구나.”
조인의 말에 조설연이 씁쓸하게 웃었다.
“이제 곧 다시 시작할 거예요. 걱정 마세요, 오라버니.”
조설연의 말에 조인은 입을 다물었다. 조인의 나이는 벌써 스물 둘이었다. 조설연과는 무려 다섯 살이나 차이가 났다. 그래서 조인은 항상 동생이 어리게만 보였다.
‘하긴, 열일곱이면 그리 적은 나이가 아니지.’
“그래, 알아서 하겠지. 그나저나 그렇게 수심에 잠겨 있는 이유가 그 친구 때문이냐?”
조인의 갑작스런 말에 조설연이 화들짝 놀랐다. 조인은 그 모습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역시 그랬군.”
“아니에요!”
조인은 세게 고개를 저으며 부인하는 조설연을 쳐다보다가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몸을 돌렸다.
“너도 벌써 열일곱이다. 이제 슬슬 어떤 것이 가문을 위한 일인지 생각할 수 있어야 할 나이야.”
조설연은 그 말을 남기고 멀어져 가는 조인의 등을 하염없이 쳐다봤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조설연이 다시 의자에 걸터앉아 두 손으로 턱을 괴고 먼 하늘을 쳐다봤다.
“하아, 복잡해.”
서운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기쁜 마음이 그 자리를 채웠다. 단형우가 그녀에게 그 말을 했을 때,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다가 돌아온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하아……”
조설연의 입에서 다시 한숨이 새나왔다.
단형우는 가만히 서서 바닥에 누워 있는 형표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렸다.
상당히 외진 곳이었기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단형우는 그저 가만히 서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끄응……”
형표가 힘겹게 눈을 떴다. 처음 눈을 뜨면서 들어온 광경은 새파란 하늘이었다. 잠시 정신이 멍했다.
자신이 왜 누워 있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다가 갑자기 주마등처럼 기절하기 전 상황이 머리를 훑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