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398)
398화 모든 것이 끝나는 곳 (11)
진마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겨우 인간 따위가! 겨우 인간 따위가 본좌의 몸에 상처를 내다니!”
현검이 남긴 상처에서는 끊임없이 검은 마기가 흘러나왔다. 그 마기에 닿은 것은 풀이든 나무든 모두 생기를 잃고 시들어 버렸다.
“죽여 버리겠다!”
분노한 진마.
그 모습은 흡사 지옥에서 찾아온 마귀 같았다.
명운은 진마의 분노와 별개로 그의 힘이 많이 줄어든 것을 느끼고 있었다.
‘처음의 절반 정도? 아니, 어쩌면 그 이하일지도 모른다.’
검강 이상의 공격이라면…….
진마의 목숨을 거둘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명운의 힘과 기력도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앞서와 같은 일격은 그도 몇 번 펼칠 수 없었다.
‘길게 끌면 이쪽도 곤란하다.’
단 일격으로 끝내자.
이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스윽.
현검을 앞으로 내밀자 주변의 기운이 그를 향해 모여들기 시작했다.
휘이이이이익!
주변의 공기가 일렁이면서 현검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바로 백광(白光)이었다.
“저 빛은!”
백광을 보고 목소리를 높인 것은 빙왕이었다. 그녀는 백광의 의미하는 바를 알고 있었다.
‘이번 일격으로 승부가 나겠구나.’
진마 또한 명운의 의도를 간파했다.
“해 보자는 것이냐!”
그는 잘려 나간 오른손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개의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주변의 생기가 모두 그에게 빨려 들어갔다.
‘네놈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명운이 진기를 모은다면 진마는 살아 있는 것들의 생명력을 빼앗았다. 사방 삼백 보 안에 있는 나무와 꽃, 그리고 풀들이 순식간에 시들었다.
조광은 그것을 보고는 목소리를 높였다.
“죽음의 기운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있습니다!”
빙왕은 고개를 흔들었다.
“죽음의 기운이 뻗어 나오는 것이 아니야. 진마가 살아 있는 것들의 생명력을 빼앗아 가고 있는 거야.”
그녀는 조광보다 뛰어났기에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반대로 교주님은 주변의 진기를 끌어모으고 계신다.’
진기를 모으는 자와 생명력을 빼앗는 자의 싸움.
‘선공하는 자가 이길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지켜보는 것뿐.
조광은 그녀와 달리 검을 틀어쥐었다.
“교주님을 도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는 진마의 주의력을 빼앗는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빙왕은 손을 뻗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만두게.”
“왜 말리시는 것입니까?”
“그대가 주의를 끌고자 하다가 위험에 처하면 누가 그대를 구하겠는가?”
조광이 나선다면 진마만이 아니라 명운의 주의도 분산되리란 이야기였다. 그는 빙왕의 설득에 검을 아래로 내렸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하후문은 두 사람과 달리 심각한 얼굴이었다.
“시체들이 다시 움직이고 있어.”
빙왕은 그의 말에 시선을 주변으로 돌렸다. 하후문의 말대로 시체들이 느리지만 움직이고 있었다.
‘어째서지? 진마의 마기는 이미 사라졌을 텐데?’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하나.
진마의 마기가 강시를 깨웠고, 깨어난 강시는 마기의 영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우리가 막아야 할 것 같군.”
조광이 다시 검을 들었다.
“서두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타탁. 타탁. 타탁.
빗줄기는 아직도 가늘어지지 않은 채 사람들의 몸을 때리고 있었다.
“흩어져서 막도록 하지.”
빙왕의 말에 조광과 하후문,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빙왕은 정면을, 조광과 하후문은 각각 왼쪽과 오른쪽을 맡았다.
파악!
빙왕이 검을 휘두르자 천천히 움직이던 강시의 목이 떨어졌다.
‘하나!’
그녀는 전광석화처럼 검을 휘두르며 강시의 목을 베어 냈다. 조광과 하후문의 검과 창도 빨랐다. 조광은 순식간에 다섯 구의 강시를 베어 냈으며, 조광도 날이 무뎌진 창에 내력을 불어넣어 세 구의 강시를 쓰러뜨렸다.
파팍. 파파팍!
머리를 잃은 강시들은 그대로 대지에 쓰러졌다.
철퍼덕.
빙왕은 강시를 베어 내며 곁눈으로 명운과 진마를 살폈다.
‘아직도 기운을 모으고 있다.’
생명력을 빼앗는 진마라면 모를까?
명운 쪽은 이미 진기를 다 모았을 터였다.
‘교주님은 진마의 선공을 기다리고 계시는 것인가?’
상대의 공격을 역으로 받아친다.
때에 따라서는 이쪽이 유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빙왕은 지금은 그런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파악!
그녀의 검이 다시 한 구의 강시를 쓰러뜨렸다.
‘강시들의 움직임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
아직 강시들은 그녀를 공격하지 않았다. 하지만 느릿하게 움직이던 강시 중 빠르게 움직이는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서둘러야겠어.’
주변을 서성이는 강시는 이백 구가 훌쩍 넘었다.
파악! 파파파파팍!
그녀가 순식간에 여섯 구의 강시를 쓰러뜨렸을 때였다.
진마의 머리에 위에 모인 검은 마기가 응축되기 시작했다.
츠츠츠츠츠츠.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수백 보 밖의 새들이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툭. 투두둑.
명운은 진마의 머리 위에 모인 기운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놈도 싸움을 길게 끌 생각이 없는 것 같군.’
진마는 승리를 확신했다.
‘네 녀석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이것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머리 위에 모인 힘을 응축하기 위해 자신의 몸에 쌓인 마기를 모두 사용했다.
‘놈을 쓰러뜨리면 당분간은 밖으로 나갈 수 없겠군.’
적어도 수년, 길게는 십 년 이상 동굴에서 마기를 다시 모아야 할 것 같았다. 물론 그가 다시 마기를 모으기 위해서는 명운을 쓰러뜨리고 승리를 쟁취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다.
“끝내 주마!”
진마의 머리 위에 떠 있는 검은 구체는 의외로 작았다. 그것은 작은 수박만 했다.
명운은 그것을 보고 생각했다.
‘크게는 작지만 무시무시한 힘이 실려 있다.’
그의 기감으로 느낀 바에 따르면 저 작은 구체의 위력은 검강을 훌쩍 뛰어넘어 검환과 같았다.
‘같은 검환이면 동수.’
동수는 서로의 검환이 소멸하는 것을 뜻했다.
‘놈을 쓰러뜨리려면 검환 이상의 힘이 필요하다.’
검환 이상의 힘.
명운은 아직 그 이상의 힘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
‘검환 이상의 힘이 불가능하다면…….’
싸움은 이 일격으로 끝나지 않을 터였다.
그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할 무렵.
진마가 검은 구체를 앞으로 쏘았다.
“받아라!”
이제 명운은 선택해야 했다.
공격을 막을지.
아니면 역으로 공격을 가할지.
‘잘될지 모르겠지만, 해 보는 수밖에.’
명운은 구체를 막지도 공격을 펼치지도 않았다. 그는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타악!
진마는 그것을 보고는 비웃었다.
“크크크크, 하늘로 도망치면 피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그가 다섯 개의 팔을 움직이자 묵환은 명운을 향해 궤적을 바꾸었다.
쉬익!
진마는 그가 사지로 뛰어올랐다고 생각했다.
‘크크크, 경험이 부족한 모양이구나.’
허공에 뜬 상태에서는 방향을 바꾸는 것이 힘들었다. 그는 명운이 이점을 생각하지 못한 채 하늘로 뛰어올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명운은 명왕보다도 월등히 많은 싸움 경험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하늘로 뛰어오른 것은 진마를 쓰러뜨리기 위함이었다.
그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르고 있는 묵환을 보고는 미간을 좁혔다.
‘속도가 빠르지 않은 만큼 조종이 가능하다는 말이구나.’
단지 뛰어오르는 것만으로 묵환을 파훼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내 승부수는 바로 하늘에 있다.’
그는 현검을 위로 들었다. 그러자 그의 검에 모인 백광이 위로 솟구쳐 올랐다.
슉!
빙왕은 걸음을 멈추고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교주님?”
명운의 현검에서 솟아오른 백광은 점점 커져서 거대한 검강이 되었다.
‘검환이 아니라 검강인가?’
진마는 마기를 응축시켰지만, 명운은 모은 진기를 오히려 키웠다.
‘어느 쪽이 이길지 알 수가 없구나.’
명운의 거대한 검강은 점점 커졌다.
진마는 역시라고 생각했다.
‘기의 강함은 그 크기가 아니라 정심함에 있다. 사람들이 검강이나 검기가 아닌 검환을 최고로 치는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다. 하나 녀석은 경험이 부족해 그것을 모르는 것 같구나.’
어려운 싸움이었지만, 결국은 이겼다.
그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끝이군.’
진마의 묵환이 명운과 거리를 바짝 좁혔을 때였다. 명운이 마치 능공허도의 경지에 올라선 무인처럼 더 높은 곳으로 뛰어올랐다.
그러나 더 높이 오르는 것만으로는 묵환의 추적을 뿌리칠 수 없었다.
진마는 물론, 빙왕과 조광, 그리고 하후문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하시려고 저러는 것일까?’
하늘 높이 올라선 명운.
모두가 명운을 주시하고 있을 때, 오백 보 밖에서 그를 바라보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바로 천마신교 귀주지부장 마융이었다.
‘교주님의 검이 하늘을 꿰뚫었다.’
그가 주시하고 있던 것은 검강의 끝이었다.
화아아아악!
하늘 높이 솟구친 검강이 구름을 가르자 햇살이 대지로 쏟아졌다.
진마는 구름을 뚫고 쏟아진 햇살이 자신을 향하자 눈을 감고 말았다.
“크으윽.”
치이이익.
진마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명운이 거대한 검강을 내리그었다.
‘끝이다!’
휘익!
검강은 명운을 향해 날아오던 묵환을 삼키며 대지에 쏟아졌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폭포수가 쏟아지듯 거대한 검광이 내리꽂혔다.
진마의 몸은 찬란한 빛에 녹아내렸고, 대지는 굉음을 내며 진동했다.
“피해!”
빙왕이 목소리를 높인 순간 충격파가 그녀와 조광, 그리고 하후문을 덮쳤다.
‘틀렸어!’
솨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 충격파는 모든 것을 휩쓸어 버렸다.
오백 보 밖에 서 있던 마융도 사방에 흩어져 있던 강시도 나뭇잎처럼 허공으로 떠올랐다.
“으윽.”
빙왕은 간신히 버텼으나 조광과 하후문은 수십 보 밖으로 쓸려 나갔다.
‘무지막지한 힘이다.’
파악.
조광은 진마에게 생기를 빼앗겨 고목이 된 나무와 충돌하고 나서야 몸을 멈출 수 있었다.
“커헉.”
그는 한 움큼의 피를 토하고 난 뒤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하후문은 그보다는 조금 나았다. 그는 들고 있던 창을 대지에 박은 뒤 천근추의 수법으로 대지에 내려섰다.
기파가 재차 밀려와 그의 몸을 휩쓸었지만,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다.
‘공자님께서는 무사하신 것일까?’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명운은 깃털처럼 천천히 대지를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모든 힘을 쏟아 냈기 때문일까?
그는 마치 꿈속을 떠다니는 듯했다.
– 잘 해냈구나.
귓가에 들려온 목소리.
그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준 이의 목소리였다.
‘당신은 성존입니까?’
명운은 자신에게 두 번째 삶을 준 이가 모든 마도의 지배자 천마라고 생각했다.
– 천마를 말하는가? 그렇다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천마가 아니다.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누구이기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그에게 두 번째 삶을 주었단 말인가?
‘성존이 아니셨군요.’
– 실망했는가?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의문이 풀리지 않았을 뿐입니다.’
– 의문인가?
‘성존께서 신교의 부흥을 위해 제게 다시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목소리는 성존이 아니라 했다. 그렇다면 천마신교의 부흥 또한 바라고 있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무엇 때문에 자신을 과거로 돌려보내 주었단 말인가?
– 나는 천마 이전의 사람이다. 내가 바란 것은 나의 과오를 지우는 것뿐이었다.
‘당신의 과오입니까?’
– 오래전에 남긴 한 권의 책이 화근이 되고 말았다. 진마란 마물이 그것을 손에 넣어 세상을 어지럽히고자 했기에 그대의 손을 빌려 처단한 것이다.
진마가 손에 넣은 마공서.
그것이 아니었다면 그가 명운을 되살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진마를 처단하는 것은 제가 아니라도 해낼 수 있었지 않겠습니까?’
그가 아닌 명왕을 택했다면 오히려 더 쉽게 그 일을 해냈을 터였다.
– 그대는 나의 후손이다. 그래서 나는 그대와 연결할 수 있었다.
명운은 눈을 크게 떴다.
‘당신이 제 조상이란 말씀입니까?’
그는 명가의 후예였다. 그리고 명가는 명존의 피를 잇고 있었다.
‘설마 명존?’
천마의 대제자 명존이라면 과거와 현재를 잇는 신력을 지니고 있을지도 몰랐다.
– 명가의 피가 아니다. 그대 어머니의 피다.
‘아!’
명운은 탄성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의 피, 그것이 그를 이곳에 이르게 한 것이었다.
그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 그대의 남은 삶은 나의 과오를 바로 잡은 대가이니, 소중하게 사용하기를 바란다.
목소리는 명운을 떠나고자 했다.
‘처음부터 진마를 쓰러뜨리라고 말씀하셨다면…….’
– 세상의 이치는 아래로 흐르는 물과 같이 자연스러워야 하나, 나는 그 이치를 거스르고 말았다. 그대의 뜻을, 그대의 길을 나는 바꿀 수 없었다.
그는 명운이 자연스럽게 진마와 싸우도록 인도한 것이었다.
‘고맙습니다.’
그가 아니었다면 명운은 명각에게 목숨을 잃은 채로 끝났을 것이다.
‘정말 고맙습니다.’
말로는 고마움을 다 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는 계속해서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몇 번이고 고맙다고 말했을 때였다.
더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목소리가 그를 떠난 것이었다.
타탁.
명운은 사뿐히 대지에 내려섰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하듯 말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자신의 목소리가, 자신의 마음이 진심으로 전해지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