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ruction of the Fortress RAW novel - Chapter 140
140
第二十八章 구중옥(九重獄) (5)
천하최강자.
녹천주와 증평주조차도 상대할 수 없는 최고수.
그 사람이 검을 어깨 높이로 들어 올리고, 검 끝으로 검왕을 가리킨 채…… 고요해졌다.
한쪽은 폭발 직전까지 타오르고, 다른 한쪽은 죽음처럼 고요하다.
사실, 검왕도 고요하다.
모든 고수가 고요하다. 이 산정의 이름이 어떻게 되는지 몰라도, 이곳에 올 정도의 고수라면 싸움을 앞두고 들뜨는 우행 따위는 저지르지 않는다.
검왕의 내면은 얼음처럼 차다.
그런데도 증평주와 마군의 눈에는 검왕이 끝없이 타오르는 불길처럼 보인다. 반면에 촌장은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사막의 적막함이 읽힌다.
그들 내공의 본성이 이런 것이다.
그들이 피워내려고 해서 피워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드러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검왕은 불이다. 촌장은 ‘없음’이다.
검왕이 미숙해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촌장은 절정에 이르러서 고요한 것이 아니다.
텅!
어느 한순간, 검왕이 사라졌다. 그리고 활활 타오르는 불길만 남았다.
검왕이 사라졌다는 것은 검왕이 자신을 모두 버렸다는 뜻이다.
검왕이 무공에게 모든 것을 온전히 맡기고 사라졌다. 검왕이라는 인간이 펼칠 수 있는 무공은 없다. 오직 무공이 지닌 바 역량을 다할 뿐이다.
스스스스스!
촌장도 사라졌다.
촌장의 육신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촌장이 들고 있는 검은 나뭇가지에 불과하다.
육신 너머에 있는 기(氣)만 움직인다.
“반초 차이가 아니었네.”
증평주가 중얼거렸다.
‘난 상대도 안 돼.’
마군은 얼굴색이 해쓱하게 변한 채 싸움을 주시했다.
검왕은 몇 년 전만 해도 십마와 비등했다. 십마 중 어느 누구도 검왕에게 진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다. 검왕 역시 마찬가지다. 십마 중 누구에게도 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검왕과 십마는 승리를 자신하지도 못했다.
겨뤄봐야 안다!
그러던 검왕이 느닷없이 절정고수가 되어서 나타났다. 마공관 싸움에서부터.
십마 중에 제일 먼저 패한 사람이 마군 자신이다.
그의 혈무기는 검왕에게 티끌만 한 흔적조차 남기지 못했다. 반면에 검왕은…….
그러나 그 싸움은 일회성이다.
검왕이 강해지기는 했지만 자신 역시 강해질 수 있고, 다음 싸움에서는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다짐했다.
마군은 또 한 번 좌절을 맛봤다.
지금 검왕이 보여주는 신위는 그가 범접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마군은 자신을 버리지 못한다. 그는 혈무기가 온전히 움직이도록 자신을 놓지 못한다. 자신이 혈무기를 운영하는 쪽에서는 최강이지만, 그 너머를 알지 못한다.
검왕은 그의 경지를 초월했다.
증평주도 검왕이 이 정도로 강할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다.
증평주는 검왕과 검을 섞었다. 직접 삶과 죽음을 갈랐고, 반초 차이로 패했다.
그녀의 말대로 반초 차이란 다음 싸움에서는 승패가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반초는 어느 쪽이 우월하다는 것이 아니다. 지금 당장은 네가 이겼다는 패배 인정일 뿐이다.
그 싸움에서 검왕은 자신을 놓지 않았다.
검왕이 펼쳐낼 수 있는 최강의 무공으로 증평주와 싸움을 했다. 그리고 반초 차이로 이겼다.
검왕이 지금처럼 자신을 놓아버렸다면, 온전히 무공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사라져 버렸다면……. 증평주는 어떻게 싸움을 해야 할지 막막했을 게다.
스으으! 스으으!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다가선다.
검왕과 촌장이 움직인다. 발걸음 소리도 내지 않고 기름 위를 미끄러지듯이 부드럽게 움직인다.
물론 두 사람은 자신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자각하지 못한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어떤 무공을 펼치려는지…… 모든 것을 망각한 상태에서 움직인다.
두 사람은 티끌만 한 자각도 없다.
나중에 두 사람에게 어떻게 싸웠냐고, 무슨 무공을 펼쳤냐고 물어보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한 것이다. 내가 싸우기나 했냐고, 정말 싸웠냐고.
검왕과 촌장은 속임수를 쓰지 않는다.
인간이 무공을 펼친다면 속임수를 쓰기도 하고, 상대가 피하지 못할 방법을 강구하기도 한다. 그래서 초식이라는 것이 탄생하는 것인데.
지금 두 사람은 본신 진기로만 싸운다.
본신 진기는 인간의 감정을 담고 있지 않다. 그래서 두려움이라거나 망설임 같은 것이 없다. 상대가 강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약해도 무시하지 않는다.
그저 부딪친다.
스읏!
붉은 기운과 고요한 기운이 살짝 표면을 맞댔다.
검왕의 검과 촌장의 검이 부드럽게, 뱀 두 마리가 엉키듯이 유연하게 얽혔다. 순간!
꽈앙!
살짝 맞댄 표면에서 폭발이라도 하듯이 굉렬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모든 것이 부서진다.
두 사람이 들고 있던 검은 진작 부서졌다. 산산조각 나서 모래가 되어 흩어졌다.
두 사람의 육신도 흩어진다.
두 기운이 이리 왔다, 저리 갔다 마구 출렁거린다.
검왕의 육신이 보였다가 사라진다. 촌장의 육신도 보였다가 사라진다.
퍼억!
한순간, 거친 타격음이 울리면서 붉은 기운이 일시에 사라졌다.
검왕이 끈 떨어진 연처럼 훌훌 날아간다. 두 손과 두 다리를 축 늘어트리고, 입으로는 붉은 피를 쏟아내면서 거칠게 날아가 내동댕이쳐진다.
“으음!”
촌장이 신음을 흘리면서 뒤로 비칠비칠 물러섰다.
촌장도 입가로 피를 흘린다. 얼굴은 백지장처럼 새하얘졌고, 검을 들고 있던 오른손을 연신 부들부들 떤다.
촌장도 극심한 타격을 받은 것 같다.
싸움은 끝났다. 그러나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다.
촌장은 서 있는 모습 그대로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고요히 눈을 감고 내기를 다스린다.
검왕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증평주와 마군도 움직이지 못했다.
촌장은 만질 수 없다. 만져서는 안 된다. 촌장의 몸에 손을 대기만 하면 검왕을 저렇게 만든 내기가 반탄진기로 변해서 튀어나올 것이다.
검왕도 만지지 못한다.
검왕은 죽었을지도 모른다. 또 살아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살아있다면 내기가 가닥가닥 끊어진 상태일 것이다. 손만 대면 모래처럼 흩어지는.
죽었다면 손댈 필요도 없고, 살았다면 손대는 행위가 또 한 번 죽이는 경우가 된다.
증평주와 마군이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결정적인 순간이 언제였습니까?”
마군이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고 물었다.
그가 보기에는 검왕과 촌장은 팽팽했다. 두 진기가 얽혔고, 서로 균등한 기세를 뽐냈다.
헌데 어느 한순간에 균형이 무너졌다.
그 순간, 그때 벌어진 일…… 마군은 그 광경을 보지 못했다. 두 눈 빤히 뜨고 지켜봤으면서도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보지 못했다.
증평주가 말했다.
“휴우! 일선이 무엇인지…… 알 것 같기는 하고.”
“일선을 보셨습니까?”
“후후!”
증평주는 힘없이 웃기만 했다.
촌장은 자신의 무공을 알지 못한다. 보지 못한다. 그래서 막연하게 일선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촌장이 그럴진대 증평주가 감히 그 무공을 말하겠는가.
다만 증평주는 기류의 움직임을 봤다. 무엇인가…… 말로 할 수는 없는데, 어떤 기류가 번뜩 휘몰아치는 것 같았다. 촌장의 말처럼 회돌이친다고 할까?
그 순간에 검왕의 혈선이 터져나갔다.
혈선은 직검(直劍)이다. 일선은 곡검(曲劍)이다.
두 사람의 무공을 직검이니 곡검이니 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만, 굳이 말하자면 그렇다.
두 사람의 무공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난 곳에서 터져 나왔다.
결정적인 순간? 그게 무슨 상관인가. 저런 무공을 펼칠 수도 없는 사람이.
일선을 봤냐고? 아직도 인간의 무공을 생각하는가? 일선이 초식인 줄 아는가? 그것을 보면 어떻고, 보지 못했으면 어떤가? 저런 무공이 튀어나온다면 감당할 수 있는가.
촌장이 대단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고강할 줄은 정말 몰랐다.
촌장의 눈에는 증평주와 녹천주가 어린아이로 보였을 게다.
혈루마옥에는 강자가 수두룩하게 있는데, 저마다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다니는데, 그들 모두가 허수아비와 같았으니 얼마나 가소로웠을까. 촌장이 설마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모두들 촌장을 너무 몰랐다.
순간, 증평주의 머릿속에 한 생각이 후딱 스쳐 지나갔다.
‘지금이 유일한 기회일 수도!’
촌장이 어쩔 수 없이 운기조식을 취하고 있는 지금이 촌장을 죽일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그녀는 촌장을 죽이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촌장의 자리를 탐내지도 않는다. 언젠가 촌장이 이승을 떠나면 그 자리를 놓고 녹천주와 다퉈야 할 것이라는 생각은 해봤지만 중간에 촌장을 어쩔 생각은 없었다.
헌데 지금 그런 생각이 든다.
촌장이 너무 강하기에…… 지금이 아니면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영원히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자리에 녹천주가 있었다면? 그는 틀림없이 손을 썼을 것이다.
스륵!
손아귀에 진기가 운집된다.
촌장을 해할 수 있는 기회가 지금뿐이라는 생각만 일으켰는데, 진기가 운집된다.
‘아냐!’
그녀는 즉시 진기를 풀어버렸다.
그녀가 도대체 왜 촌장을 해한단 말인가.
그녀는 촌장을 보기가 민망해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속마음을 들켰을 때처럼.
“후우웁!”
촌장이 긴 숨을 들이마셨다.
촌장은 매우 긴 시간 동안 운공조식을 취했다. 중천에 떴던 해가 붉은빛을 발하면서 스러지고 있으니 거의 반나절 동안이나 운공을 취한 셈이다.
촌장이 눈을 떴다.
촌장은 제일 먼저 눈길을 돌려 뚝 떨어지는 태양을 쳐다봤다.
서녘놀이 부드럽게 번진다.
그들이 있는 곳은 산정이라고는 하지만 사방이 꽉 막힌 곳이기 때문에 노을도 짧게 밖에 볼 수 없다.
촌장은 잠시 하늘을 보면서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검왕은?”
불쑥 말했다.
“아직 상세 파악을…….”
촌장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움직임은 있던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렇겠지.”
촌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검왕에게로 걸어가서 다짜고짜 맥문부터 움켜잡았다.
“죽었나요?”
증평주가 물었다.
“무기(無氣)로는 무기를 죽일 수 없지. 허허! 그 사실을 오늘에서야 알게 됐네.”
증평주는 촌장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다.
“검왕을 죽이려면 지금이 최적인데…… 사실 이런 식으로 죽일 수밖에 없고. 어떻게 할까?”
촌장이 증평주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증평주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검왕은 골칫거리다. 그러니 적대적 입장에서는 당장 죽이는 것이 타당하다.
검왕이 흑천초부라는 생각이 달라진다.
검왕은 뭔가 거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지금 이곳, 한적한 산봉에서 촌장과 증평주, 마군을 죽이는 것은 거대한 계획에 일부라는 생각이 든다.
적벽검문이 멸문하지 않았다면?
일단은 검왕을 살려둬도 무방할 듯싶다. 그는 이미 촌장에게 잡힌 몸이지 않나.
“살려두는 것이…….”
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그러나 그녀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녀가 막 말을 꺼내기 시작했을 때, 촌장은 이미 손을 쓰고 있었다.
퍽! 퍽퍽퍽퍽! 퍽퍽!
촌장이 손을 내리칠 때마다 손바닥에서 하얀 안개가 수증기처럼 피어났다.
손이 아니라 손바닥에서 흘러나온 수증기가 전신을 강타한다.
진기타혈(眞氣打穴)!
촌장의 손은 원정이 깃들어 있는 단전도 무자비하게 가격한다.
퍼억!
손이 내리쳐지고, 검왕의 복부가 쇠꼬챙이에 찔린 듯 움푹 들어갔다가 퉁겨졌다.
촌장은 진기타혈을 하면서 동시에 진기 봉쇄도 하고 있다.
휘이잉!
어둠이 깃들기 시작한 산정에 찬 바람이 몰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