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vil Returns to School Days RAW - chapter (141)
27. 무법지대 (3)
올해 1월.
아직 대산에서 지내던 그때, 김현성은 김시우와 따로 훈련을 진행했다.
팍!
팡팡팡-!
샌드백이 거세게 흔들렸다.
정두철 체육관은 그만두었지만, 고창범이 김현성을 위해 당분간 사용할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기껏해야 한두 달 사용할 곳인데도 웬만한 체육관 뺨칠 만큼의 시설을 갖추었다. 덕분에 김현성은 서울로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도, 이 공간에서 피땀을 흘려 가며 훈련에 임할 수 있었다.
뚝, 뚝.
땀이 흘러내렸다.
바닥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었고, 주먹을 내뻗을 때마다 턱밑까지 차오른 숨에 현기증이 일었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근육이 꿈틀거리며, 살아 있는 생명체라도 때리듯 샌드백을 강하게 강타했다.
빠악-!
촤르르르르.
샌드백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계속해서 타격을 이어 나가던 김현성은, 원하는 할당량을 채우고서야 그 자리에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털썩.
“하악, 하악.”
숨이 찼다.
하늘이 빙글빙글 돌았고, 체력을 과도하게 쥐어짜는 바람에 내장이 뒤틀리는 기분이 들었다. 매일같이 반복하는 고통이었다. 김현성은 1년 전에 비하면 분명히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항상 스스로를 극한까지 몰아넣었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편안한 얼굴로 잠자리에 드는 것이 아닌, 근육통을 호소하며 수시로 화장실로 뛰어간다 한들 절대 적당한 훈련으로 끝내지 않았다.
김시우가 다가와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매번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 서울에서 증명했잖아. 격투기 프로 선수들도 널 감당할 수 없다는 걸. 지금처럼 계속 스스로를 몰아붙이다간, 언제 병원에 실려 가도 이상하지 않아.”
“그런가.”
피식, 웃었다.
김현성은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헐떡이는 숨이 조금은 진정되는 기분이었다.
“프로 선수를 상대했을 때처럼 룰이 존재하고, 일대일로 결판을 낼 수 있다면. 나도 이렇게까지 훈련하지는 않았을 거야. 하지만 골든 서클과 관련한 모든 상황은 비상식적이야.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정정당당한 대결 따위는 허락되지 않겠지. 그러니까 항상 극한의 상황을 대비해야 해. 체력이 완전히 끝나서 내 모든 것을 쥐어짜 내야 하는 상황에도, 상대를 쓰러트릴 수 있는 주먹 한 번을 내뻗기 위해. 나는 그 순간을 위해서 고통을 감내하는 거야.”
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만약, 혹시라도, 변수를 대비해.
김현성은 식물인간으로 지내며 계획을 완성해 냈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수많은 변수가 발생했다.
그래서 대비해야 했다.
승리에 취하지 않았다.
강함을 증명받았다고는 하나, 아직 이룬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끄으-.”
다시 일어났다.
차갑게 식어 버린 몸에, 김현성은 다시 한번 샌드백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 * *
빠악-!
근육이 폭발적으로 꿈틀거렸다.
벌써 수십 명을 상대로 주먹을 휘둘렀지만, 여전히 죽지 않은 파괴력이 상대의 얼굴을 뭉개 버렸다.
“크악!”
콰당!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상대는 많았다.
최명훈은 1, 2, 3학년 가릴 것 없이, 주먹을 쓴다는 애들을 모조리 불러들였다.
그들 대부분은 이번 일이 정확히 어떤 사건인지도 몰랐지만, 최명훈이라는 이름값이 주는 공포심에 계단 밑으로 떠밀렸다. 그로 인해 수십 명을 상대해야 했다. 아직 최명훈에게는 도달하지도 못했건만, 전신에서 피로감을 호소할 만큼 김현성은 끊임없이 주먹을 휘둘러야 했다.
퍽!
얼굴이 돌아갔다.
상대의 주먹이 작렬했지만, 김현성은 고통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 얼굴로 그대로 밀고 들어갔다.
빡, 빠악-!
일격에 한 명씩.
온몸에 희열이 일어났다.
숨이 차오르고 몸이 피로감을 호소하는데도, 줄지 않은 파괴력은 엄청난 희열을 부여했다.
‘난 옳았어.’
그간의 시간.
헛되지 않았다.
매일같이 화장실에 달려가서 모든 것을 게워 내면서도, 아득바득 훈련을 진행했던 시간이 온몸에 녹아들었다. 힘들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상대하는 숫자가 열 명을 넘어가면서부터 입에서 단내를 풍겨 댔지만, 이 정도의 고통은 아무렇지도 않을 뿐이었다. 여전히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의 상황을 파악하고, 상대보다 먼저 주먹을 뻗는 것이 가능했다.
훅.
빠악-!
상대의 얼굴이 뒤로 젖혀졌다.
피를 흩뿌리며 넘어가는 상대의 뒤로, 공포에 물든 적들의 모습이 보였다.
쿵.
“……미친 새끼.”
“진짜 우리를 전부 상대하겠다고?”
공포가 전염되었다.
한둘을 쓰러트리는 정도라면 어떻게든 해볼 텐데, 계단을 가득 메우는 전사자들의 모습에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김현성은 괴물이었다. 혼자서 대산을 차지했다는 소문은 헛소문이 아니었고, 최명훈을 상대로 감히 이빨을 드러낸 건 그만한 힘을 갖추었기 때문이었다.
또다시 계단을 올랐다.
얼마나 많은 상대가 기다리고 있든 말든, 김현성은 올라서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씨발, 진짜.”
“야, 야. 네가 어떻게 좀 해 봐.”
적들이 점점 밀려났다.
김현성 한 명이, 인파를 밀어내는 모양새였다.
김현성이 말했다.
“최명훈이 너희에게 말했겠지. 아무리 시끄럽게 일을 벌여도 선생님도, 경찰도. 아무도 나서지 않을 거라고. 참 X같은 현실이야. 요새 같은 시대에 그런 일이 가능하다니. 그런데 그거 알아?”
“이런 개새……컥.”
빠악!
달려들던 상대의 얼굴을 날렸다.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무너지는 모습에, 김현성이 잠시 몸을 숙이더니 그의 한쪽 팔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자신을 바라보는 두려움 어린 눈빛들을 마주 보았다.
“그게 반드시 너희에게 좋은 의미는 아니라는 거.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아무도 개입하지 않는다는 의미니까.”
콰득.
빠드드득.
팔을 비틀었다.
상대가 비명을 지르든 말든 그렇게.
“끄아아아-!”
빠각.
팔을 부러트려 버렸다.
* * *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피로감이 역력해 보이는 그 걸음이, 마침내 4층에 도달했다.
“……비켜, 비켜!”
“길 막지 마!”
길이 열렸다.
다들 최명훈의 명령을 받았건만, 그들은 더는 김현성을 막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내려갔던 사람들이 전부 당했다.
한두 명도 아니고 수십 명이 전부 당해 버렸다는 사실에, 계단 밑에서 끔찍하게 울려 퍼지는 비명에 완전히 압도되었다. 김현성은 제대로 미친놈이었다. 이 많은 인원을 혼자서 상대하겠다는 생각도 그렇고,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는 무지막지한 무력은 상식을 아득히 벗어났다.
다들 주춤주춤 물러났다.
김현성은 땀으로 흐트러진 머리를 늘어트린 채로, 3학년들이 도열하듯 형성한 길 사이를 걸었다.
이윽고.
우뚝.
드르르륵.
한 반의 문을 열었다.
예상대로 그곳에는 최명훈이 있었다.
최명훈은 창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황당하다는 얼굴로 김현성을 바라보았다.
“너 진짜 뭐 하는 새끼냐? 그걸 정말 혼자서 뚫고 왔다고?”
비상식적이었다.
함정인 걸 알았다면, 수십 명이 자신을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상황을 피하거나 다른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이건만, 김현성은 기어코 그 인파를 뚫고 이곳에 도달했다. 박형준이 전해 준 보고서는 잘못되었다. 보고서에는 김현성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인물인지에 대해 설명되었지만, 무엇을 생각했든 그 이상으로 위험한 놈이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피로감이 역력해 보이는 상대의 얼굴에, 최명훈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죽거렸다.
“대단해. 대단한 건 알겠는데, 그래도 이건 아니지. 선생들이 대놓고 방관하고 있는데 이렇게 날 찾아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 줄 알고?”
복도 창문 밖으로.
다른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차마 이곳으로 들어오지는 못하고, 둘의 상황을 지켜보았다.
“지금부터 내가 시나리오를 설명해 줄게. 넌 일방적으로 애들에게 시비를 걸었어. 지금 밖에 널브러진 애들이 전부 가해자로 널 지목할 거고, 넌 걔들과 싸우다가 실수로 발을 잘못 디딘 거야. 이 밖으로 떨어져서 쿵! 경찰들은 뒤늦게 달려와서 이 상황을 조사하겠지만, 모두가 입을 맞춘 상황에 뻔한 결말을 내리겠지. 학생들의 학교 폭력이 만들어 낸 안타까운 사고. 넌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대서특필될 거고, 널 죽인 명확한 ‘범인’은 특정되지 않고 흐지부지 마무리될 거야.”
뚜득, 뚜득.
목을 이리저리 틀었다.
몸을 풀며 걸음을 옮겼다.
“어때, 괜찮지?”
선명한 악의였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최명훈의 모습에.
“그거 괜찮네. 누구 하나 죽는 거.”
김현성도 걸음을 옮겼다.
* * *
둘 다 서두르지 않았다.
서로를 향해 걸어가다, 맞닥트리는 순간 김현성이 먼저 주먹을 뻗었다.
훅!
간결한 잽이었다.
최명훈이 고개를 빼며 피하는 모습을 보이자, 김현성은 곧바로 다가가는 걸음을 살려 뒷손을 휘둘렀다.
빠악-!
처음에 잽.
거리를 파악하려는 의도였다.
상대와 자신의 거리를 가늠한 뒤에, 김현성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뒷손으로 상대의 얼굴을 노렸다. 상대의 입장에서는 순간적으로 눈앞에 나타나는 기분일 것이다. 계단을 올라오는 동안 지금과 같은 콤비네이션에 반응하는 상대는 단 한 명도 없었지만, 최명훈은 달랐다.
팍!
팔을 들어서 막았다.
김현성이 연속해서 주먹을 휘두르자, 최명훈은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고 그대로 받아쳤다.
획, 획.
주먹을 피했다.
김현성의 주먹을 흘려보내더니.
빠악!
역으로 상대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
김현성으로서는 들어가는 상황이라 맞을 수밖에 없는 공격이었고, 최명훈은 그 기세를 살려 김현성의 얼굴을 다시 한번 가격했다. 막아 내는데도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최명훈의 묵직한 주먹이 작렬할 때마다, 김현성의 몸이 들썩였다. 확실히 김현성의 몸 상태는 둔했다. 아무리 피나는 노력을 감당했다고는 하나, 수십 명을 상대하고도 멀쩡한 몸 상태일 수가 없었다.
미약하게 느린 반응.
그 때문에 주먹에 얻어맞았다.
최명훈은 생각보다 쉽다고 생각했는지, 이죽거리는 입꼬리로 주먹을 계속해서 뻗었다.
그러자.
빡!
김현성의 얼굴이 돌아갔다.
동시에.
빠악!
상대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
최명훈의 주먹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옥타곤 위에서 살벌하게 퍼붓던 정두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기세를 밀고 들어갔다. 땀에 젖은 머리칼이 흐트러졌고, 입에서는 단내를 풍겼지만, 최명훈을 마주하고 있는 이 상황에 힘들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애초에 이 싸움은 불합리했고, 고통을 견뎌 내지 못하면 패배할 뿐이었다.
빡!
주먹을 머리로 받았다.
김현성이 최명훈의 턱을 날리자, 최명훈은 고개를 틀며 김현성을 내리찍었다.
확실히 강했다.
주먹의 파괴력과 예민한 반응.
곧바로 시도되는 상대의 반격은, S+의 등급을 그냥 확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휙.
간발의 차이.
김현성도 최명훈의 공격을 흘려보냈다.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만큼 근거리인데도, 김현성의 눈동자는 최명훈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움찔.
어깨로 신호를 보냈다.
다시 얼굴을 노릴 것이라는 그 신호에 최명훈은 어김없이 반응했다.
함정이었다.
김현성의 주먹은 얼굴이 아닌, 그대로 옆구리를 강타했다.
빠악-!
“……!”
최명훈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가 김현성의 신호에 반응할 만큼의 능력자가 아니었다면, 방금의 공격을 허용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극심한 고통이 옆구리를 타고 올라왔다. 숨이 턱 막히는 강력한 일격에 최명훈이 멈칫거리는 반응을 보이자, 김현성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주먹을 퍼부었다.
빡, 빠악-!
얼굴을 날렸다.
몇 대 얻어맞고 가드를 올리자, 이번에는 복부를 강타했다.
빠악!
“흡.”
기세를 잡았다.
그리고 다시 공격하려는 순간.
훅.
빠악-!
김현성의 얼굴이 홱 젖혀졌다.
의도적이었다.
복부를 강타한 충격은 진짜였으나, 최명훈은 의도적으로 더 약한 반응을 보여 상대를 끌어냈다.
그러고는.
콰직!
그대로 얼굴을 날려 버렸다.
김현성의 얼굴에서 피가 터지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씨발, 진짜 살벌하네.”
뚜득, 뚜득.
최명훈이 턱관절을 풀었다.
김현성.
확실히 강했다.
수십 명을 상대하고도 이렇게 자신을 몰아붙이는 모습에, 진심으로 감탄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방금의 일격.
제대로 먹혔다.
김현성을 이대로 끝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뚝, 뚝.
핏물이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김현성의 얼굴이 피로 물들었고, 고개를 들자 새빨갛게 변한 얼굴이 보였다.
김현성이 피를 벅벅 닦아 냈다.
“……확실히 빡세네.”
현기증이 일었다.
방금의 충격은 만만치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지금의 이 상황에 김현성은 심장이 쿵쾅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골든 서클은 학생들의 등급을 규정했다. S등급은 골든 서클에서 가장 강력한, 특히 S+ 등급의 최명훈은 사실상 적수가 없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앞으로 상대해야 할 적 중에서, 적어도 일대일에서는 최명훈보다 강한 상대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실실 웃음이 나왔다.
자신이 고전하고 있었다.
상대가 강해서가 아니다.
전에 상대했던 프로 선수인 신창훈에 비하면 최명훈은 그보다 분명히 약했지만, 체력적인 부담으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뿐이다. 그 말인즉. 할 만하다는 의미였다. 수십 명을 상대하고도 상대가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고개를 들었다.
피로 물든 손으로 머리를 넘기며, 다시 상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끝은 내야지.”
그 모습에.
피를 대충 닦아 내고는 다가오는 김현성의 모습에.
최명훈의 눈빛이 당혹스러움으로 얼룩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