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vil Returns to School Days RAW - chapter (142)
27. 무법지대 (4)
최명훈.
나이 19세.
자신의 눈빛 한 번에 시선을 피하는 친구들을 보며, 그는 가끔 이 생활의 시작점을 떠올리곤 했다.
10살 때였나.
초등학교 저학년에 불과했던 그는, 놀이터에서 놀다가 갑작스럽게 고학년 선배의 날아 차기를 맞았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 폭력의 이유였고, 아직 싸움이라는 걸 몰랐던 최명훈은 멋모르고 달려들었다. 상대는 자신보다 10cm나 큰 선배였는데, 다른 선배들이 같이 달려드는데도 일방적으로 쓰러트리면서 자신의 재능을 깨달았다.
아.
나는 싸움에 재능이 있구나.
자신감이 붙었다.
싸움을 좀 한다는 애들이랑 싸우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 친구들은 그를 짱이라고 불렀다.
머리가 커졌다.
거들먹거리며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니 다른 학교와도 시비가 붙었고, 어김없이 승리하는 상황에 그때부터는 지역 전체를 먹었다는 평판을 들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골든 서클은 자연스럽게 최명훈에게 관심을 보였고, 겨우 중학교 1학년의 나이에 처음으로 의뢰 제안을 받았다.
첫 의뢰.
간단했다.
학교에서 나대지 않게 한번 때려 달라는 내용이었는데, 목표물을 흠씬 두들겨 팬 대가로 백만 원을 받았을 때 머릿속에서 잭팟이 터졌다. 겨우 중학교 1학년이다. 노동이 허락되지 않는 나이에, 용돈을 많이 받는다고 해도 몇만 원인 수준의 나이에. 무려 백만 원의 대가는 엄청난 엔도르핀을 생성해 냈다.
닥치는 대로 의뢰를 수행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위기는 없었다.
의뢰가 어려워지고 상대가 강해져도, 최명훈은 늘 어렵지 않게 의뢰를 완수해 냈다.
골든 서클 내부에서 등급 평가가 이루어졌을 때는, 분명히 다른 지역에서 날고 기는 애들이 모두 나섰는데도 최명훈의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 그 순간에 최명훈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상대는 어디 짱, 아마추어 선수, 가끔은 고등학생인데도 프로를 경험해 본 선수까지. 강하다는 칭호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지만, 상대의 움직임이 뻔히 보였고 주먹을 몇 번 섞으면 상대가 쓰러져 있었다.
재능이었다.
자신은 진짜였다.
타고난 재능은 단 한 번의 어려움도 없이, 그를 S+등급으로 올려놓았다.
어른의 세계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나이대에서, 미성년자의 세계에서는 자신의 적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었다.
자만이 아니다.
자신감이었다.
그동안 수행한 의뢰.
그동안 쓰러트린 상대.
명백한 근거가 되었다.
그래서 이번 의뢰를 맡으면서도 단언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런 의뢰 하루 이틀도 아니고, 겨우 대산 같은 지방을 먹은 애에게 제가 당하겠어요? 금방 끝납니다. 선생들만 잘 통제해 주시면, 늘 그렇듯 문제없이 의뢰 마무리할게요.”
의뢰를 받아들일 때도.
후배들을 불러들일 때도.
김현성의 머리 위에 우유를 떨어트릴 때도, 김현성이 인파를 뚫고 자신의 앞에 도달했을 때도.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예상과는 너무나도 다른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다.
* * *
방금 일격.
충격이 있어야 했다.
맷집이 좋다는 애들도 나가떨어질 만한 공격이었건만, 김현성은 피를 푸 뿜어내더니 그대로 달려들었다.
빠악-!
주먹이 작렬했다.
최명훈은 김현성의 득달같은 공격을 막아 내며 카운터를 시도했다.
체력적으로 부담이 있는지 김현성의 핸드 스피드는 확실히 느렸고, 적절하게 파고드는 주먹에 김현성의 얼굴이 홱홱 돌아갔다. 손에 짜르르 밀려드는 느낌이 있었다. 분명히 충분히 먹혔다는 확신을 주는 감각이었지만, 김현성은 밀고 들어오는 속도를 조금도 늦추지 않았다.
훅.
피했다.
그러고는 상대의 얼굴을 날렸다.
휙, 휙.
이번에도 상대의 공격을 하나하나 피해 내며, 최명훈은 본능적으로 터득한 예리한 카운터를 날렸다.
그러나 어김없이.
빠악-!
“큭.”
최명훈의 얼굴이 홱 돌아갔다.
김현성은 난전을 받아들였다.
두세 대를 맞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한 대를 갚아 주었다.
본인이 맞을 때는 최대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공격을 허용하면서, 김현성의 주먹이 작렬할 때면 최명훈은 영혼이 날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묵직한 주먹이었다. 김현성은 정두철과 훈련하며 ‘확실한 대미지’가 있는 타격을 훈련했고, 그 효과가 지금 빛을 발현했다.
김현성의 눈빛이 살의로 번들거렸다.
상대가 호흡을 고를 틈도 없이, 대미지를 수습할 틈도 없이, 거리를 계속해서 좁히며 주먹을 퍼부었다.
‘이런 개같은.’
최명훈이 표정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생소한 상황이었다.
자신의 공격에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고, 오히려 더한 파괴력으로 몰아붙이는 상대를 처음 만나 보았다. 이걸 고등학생 레벨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골든 서클에 소속되면서 전국 레벨의 고등학생을 수도 없이 상대해 본 최명훈이었지만, 단언컨대 김현성은 그 이상의 존재였다.
특히 두 눈빛.
절대 그냥은 끝내지 않겠다는 강렬한 열의가 보였다.
그것에 압도되었다.
그 사실이, 엄청난 치욕감으로 밀려들었다.
‘내가 진다고? 말도 안 돼.’
더는 물러나지 않았다.
피로 물든 김현성의 얼굴을 바라보며, 똑같이 주먹을 주고받았다.
퍽.
빠악-!
얼굴이 동시에 돌아갔다.
그때부터는 난전이었다.
김현성의 얼굴이 돌아가면 최명훈의 얼굴도 뒤로 튕겨 나갔고, 다시 이를 악물고 위에서 내려치면 김현성 또한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복부를 강타했다. 그 와중에도 눈빛은 날카롭게 번들거렸다. 김현성은 단순한 난전을 벌이는 것이 아니었다. 정두철과 훈련한 수많은 상황에는 이와 같은 난전도 있었고, 어떻게 해야 똑같은 공격도 덜 아프게 맞는지를 알았다.
적당히 맞으며.
적당히 흘려보내며.
확실한 타격을 쑤셔 넣었다.
김현성의 주먹이 육체를 파고들 때면, 최명훈은 두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눈을 부릅떴다.
“큽.”
이를 악물었다.
지금, 이 순간.
최명훈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밀리고 있었다.
상대는 이미 수십 명을 상대한 상태인데도.
자신은 골든 서클에서 인정한 S+ 등급의 실력자인데도, 그냥 순수한 대결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십수 년의 독기.
지옥 같은 훈련.
천부적인 재능.
최명훈이 재능을 타고났듯, 김현성도 다르지 않았다.
만약 전생의 김현성이 싸움에 관심이 있었다면.
옥상에서 떨어지는 결과가 아닌, 다른 미래가 펼쳐졌을지도 모른다.
‘이대로면…….’
패배가 엄습했다.
최명훈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흔들렸다.
패배는 곧.
추락을 뜻했다.
골든 서클이 이번 의뢰를 강조한 만큼, 패배의 대가는 참담할 것이다.
탓.
타탁.
뒤로 물러났다.
스텝이 엉켰다.
김현성이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뒷손을 날리려는 순간.
“……!”
우뚝.
김현성의 움직임이 갑작스럽게 굳어 버렸다.
* * *
“미친!”
“헐.”
“저, 저거 말려야 하는 거 아냐?”
복도가 소란스러워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김현성의 바로 뒤.
누군가가 있었다.
머리를 지저분하게 기른 후배 한 명이, 무언가로 김현성을 공격한 상태였다.
“야. 씨발, 빨리 안 도와주고 뭐 했어?”
최명훈의 얼굴이 밝아졌다.
상대의 정체는 또 다른 S등급.
대성 미래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조민석이었다.
이번 의뢰의 주체는 최명훈이나, 골든 서클은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서 조민석에게도 임무를 부여했다.
나서야 할 때가 온다면.
너도 나서라고.
사실 최명훈은 이런 상황이 찾아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김현성 한 명을 처리하는 데 조민석까지 나설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고, 이번 계획을 준비하면서 딱히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다. 막말로 수십 명을 뚫는 것도 불가능해 보였다. 그걸 뚫고 자신에게 도달한다고 해도, 그동안 증명했던 자신의 무력이라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막상 예상과는 다르게 상황이 흘러가자.
조민석이 이리도 반가울 수 없었다.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까 봐 인파에 섞여 있던 조민석은,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자 곧바로 개입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기습 공격에도, 조민석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최명훈, 이 병신 새끼야. 정신 차리고 빨리 공격하라고!”
방금의 일격.
조민석은 작은 과도로 김현성을 찔렀다.
죽일 의도가 없는 상처를 입히기 위한 용도였는데, 갑작스러운 공격에도 김현성은 순간적으로 반응했다.
과도의 날을.
김현성은 맨손으로 잡았다.
살갗이 베이며 피가 주르륵 흐르는데도, 김현성은 바들바들 떠는 조민석과 시선을 똑바로 마주쳤다.
“이게 끝이야?”
알고 있었다.
이 학교에는 최명훈 외에.
조민석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만일의 상황에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를.
김현성은 언제나 그렇듯, 최악의 시나리오를 계산에 넣어 두었다.
* * *
서울행을 준비할 때.
그때는 아직 정찬수가 골든 서클의 소속이었다.
내부자와 내통한다는 건 상당한 이점이었고, 덕분에 김현성은 대성 미래 고등학교의 정보를 미리 알 수 있었다.
정찬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네가 뒤가 없는 놈인 건 알겠는데, 그래도 꼭 대성 미래 고등학교로 가야겠어? 여기는 다른 학교들에 비해 더 위험한 곳이야. 선생들이 전부 한통속인 것도 있지만, S등급의 실력자가 무려 두 명이나 있다고. 일단 최명훈. 얘는 싸움을 제대로 배우지도 않은 녀석이 골든 서클의 실력자들을 전부 쓸어버릴 만큼 재능을 타고난 놈이고, 사실상 얘를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수 있어. 문제는 최명훈을 쓰러트린다고 한들. 조민석이라는 변수가 존재해.”
조민석.
그도 S등급이었다.
하지만 그는 싸움 실력으로 S등급이 된 것이 아니다.
“골든 서클 내에서 조민석의 별명은 ‘쓰레기’야. 의뢰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놈이고, 본인보다 강하면 머리에 벽돌을 내리꽂는 한이 있더라도 상대를 반드시 쓰러트려. 너, 칼을 사용하는 애를 실제로 본 적 있어? 대성 미래 고등학교에서 트러블을 일으키면 얘한테 칼 맞을지도 몰라. 칼로 협박한 사례가 한두 번이 아닌 데다, 얘는 항상 징역을 살 각오가 되어 있거든. 골든 서클의 등급은 반드시 싸움 실력만을 의미하지는 않아. 조민석과 같은 비리비리한 놈이 S등급이 되었다는 건, 싸움 실력과는 다른 위험성을 의미한다는 걸 명심해.”
대성 미래 고등학교.
그야말로 최악의 조건이었다.
쓰레기 같은 선생들과 비리에 타협한 경찰들.
일대일로는 적수가 없다는 최명훈과 의뢰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조민석.
답이 없었다.
혼자서는 뭘 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의미가 있었다.
악조건인데도 골든 서클을 무너트린다면, 골든 서클로서도 발등이 불이 떨어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
가장 이상적인 그림을 위해.
가장 악조건을 택했다.
계단을 올라오면서도.
최명훈과 치고받으면서도.
김현성은 귀를 열었다.
주변의 상황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로 인해 최명훈과 조금 더 단순한 난전을 벌여야 했지만, 김현성은 언제든 조민석이 개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제하지 않았다. 예상대로였다. 누군가가 다가오는 기척을 포착하자마자, 김현성은 뒤를 확인하고 그대로 찔러 들어오는 과도를 맨손으로 잡아 버렸다.
“이런 씹…….”
조민석이 바들바들 떨었다.
힘껏 칼을 밀어 넣는데도, 미동도 하지 않는 상황에 얼굴이 당황스러움으로 얼룩졌다.
참.
X 같은 현실이었다.
학교에서 칼부림이 일어나는데도, 선생들이나 경찰들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적절한 알리바이를 만들고 있었다.
그들의 방관을.
오히려 득으로 만들어야 했다.
확.
상대를 끌어왔다.
힘을 주던 조민석이 그대로 딸려 왔고, 김현성은 손이 쓸려 나가는 고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상대의 얼굴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빠악!
“컥.”
숨이 넘어가는 비명이 들렸다.
조민석이 휘청거리자 이번에는 머리칼을 잡았다.
아직 최명훈이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이때.
콰직!
그대로 얼굴에 니킥을 작렬했다.
조민석이 뒤로 튕겨 나갔다.
얼굴이 완전히 함몰되었다.
피를 뿜어내며, 조민석의 눈이 초점을 잃어버렸다.
그렇게.
털썩.
조민석이 바닥에 쓰러졌다.
이제 남은 건.
“……묻잖아. 이게 끝이야?”
김현성이 피로 물든 얼굴로, 목석처럼 굳어 있는 최명훈을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