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vil Returns to School Days RAW - chapter (143)
27. 무법지대 (5)
최명훈이 신음을 삼켰다.
눈앞의 광경.
믿기지 않았다.
고등학교 싸움에서 ‘칼’은 어떤 의미일까.
애초에 일반적인 싸움에는 무기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다.
비겁하다는 인식을 떠나서, 칼과 같은 무기를 사용한다면 단순한 학교 폭력이 아닌 그 이상의 리스크를 감당해야 했다. 그런데도 사용할 수만 있다면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 아무리 싸움을 잘하는 학생일지라도, 날카로운 날붙이를 마주하면 온몸이 얼어붙기 마련이다.
최명훈도 다르지 않았다.
자신을 이겨 보겠다고 칼을 들고 온 상대를 마주했을 때, 살면서 처음으로 공포라는 감정을 느꼈다.
결국에는 이겼다.
상대는 칼을 제대로 찌르지도 못하는 애송이였고, 그때 이후로 무기를 사용하는 상대들에게는 오히려 대담하게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덕분에 S+등급으로 자리매김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의뢰를 완수한다는 이미지는 지금의 최명훈을 만들었지만, 그렇다 한들 김현성처럼 칼을 ‘맨손’으로 잡는 상황은 절대 상상할 수 없었다.
덜컥, 현실이 밀려들었다.
상대는 제대로 미친놈이었다.
수십 명의 인파를 뚫고, 칼로 찔러도 맨손으로 잡아 버리는.
김현성이 자신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는 모습을 발견하자, 최명훈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이건 이길 수 없…….’
전의가 꺾였다.
생각을 끝맺기도 전에, 코앞까지 치고 들어온 김현성의 모습이 보였다.
훅-!
주먹을 휘둘렀다.
공포에 전염되었는지 이전보다 동작이 컸고, 김현성은 머리를 숙여 최명훈의 주먹을 스쳐 지나가듯 피했다. 곧이어 김현성의 주먹이 최명훈의 복부를 강타했다. 엄청난 충격에 눈을 부릅떴다. 아직은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예리한 원 투를 꽂아 넣었지만, 이번에도 그곳에는 김현성이 없었다.
휙, 휙.
피했다.
서로가 뒤얽히는 찰나의 순간.
김현성이 예민하게 반응해 냈다.
연속해서 치고 들어오는 최명훈의 공격을 모두 피해 내더니, 서로가 뒤얽힐 때마다 주먹이 작렬했다.
팍, 빠악-!
“크읍.”
최명훈이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패배할 수는 없었다.
물러나지 않고 김현성을 정면에서 들이받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최명훈의 주먹은 어김없이 허공을 갈라 버렸다. 상대는 수십 명을 상대한 상태고, 손바닥이 베여 피가 줄줄 흐르고 있는데도. 최명훈을 압도하는 분위기였다. 싸우는 내내 ‘조민석’의 존재를 신경 써야 했던 이전과는 다르게, 발목에 묶인 족쇄를 풀어 버리자 김현성의 노림수가 최명훈을 집어삼켰다.
반격은 통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주먹을 흘려보내며, 김현성이 그대로 최명훈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콰직.
콰당-!
피가 튀었다.
최명훈이 바닥에 처박혔다.
순간적으로 교실에 정적이 내려앉았고, 조민석이 기절하는 바람에 최명훈의 신음만 들려왔다. 끝나 버렸다. 김현성은 결국에, 자신을 가로막는 상대들을 모조리 쓰러트리고 스스로를 증명해 냈다.
김현성이 슥 창밖을 보았다.
학생들이 바글바글 몰려들었지만, 그 어디에도 선생님은 보이지 않았다.
“이게 다 선생들 때문이야. 학교에서 이 난리가 났는데도, 뭐가 그리 바쁜지 나타나질 않잖아.”
콱.
“으, 으으.”
최명훈의 팔을 잡았다.
공포에 흔들리는 눈동자에, 우악스럽게 그의 몸을 찍어 눌렀다.
그리고.
“그러니까, 이건 다 선생들 잘못이라고.”
빠득.
빠드드드득.
“크아아아아악!”
팔을 그대로 꺾어 버렸다.
* * *
그 시각.
회의실에 다른 선생들을 내버려 둔 채, 따로 교감실로 자리를 옮긴 장원기가 진경희에게 말했다.
“저희 정말 이래도 괜찮겠죠?”
“안 괜찮으면. 뭐 다른 방법이라도 있어요?”
“그건 아니지만…….”
“그럼 그냥 입 다물고 지켜보세요. 지금 우리는 ‘골든 서클’과 한배를 탔어요. 골든 서클로서는 어떻게든 이번 문제를 해결하고 싶을 테니, 이 학교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알아서 문제를 수습하겠죠. 경찰에도, 검찰에도, 정치권에도. 모두 골든 서클의 사람들이 암세포처럼 퍼져 있는데, 설마 우리에게 문제가 생기겠어요? 우리는 그냥 방관하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장원기는 겁이 났다.
블랙아웃.
무슨 일이 벌어지든 방관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강재욱에게는 차가운 반응을 보였지만, 그도 사람인지라 혹시 누가 죽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장원기가 물었다.
“혹시 의뢰가 실패하지는 않겠죠?”
“실패요?”
진경희가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요. 골든 서클에서 이번 일에 S등급을 무려 두 명이나 동원했어요. 김현성이 신이 아니고서야, 그 애들을 모두 쓰러트리는 건 불가능하겠죠. 아마 곧 상황이 끝날 겁니다. 김현성이 무사할 리는 없을 테니, 지금부터 그 상황을 어떻게 수습할지 그럴듯한 변명이나 생각하세요.”
슥.
자리에서 일어났다.
걸음을 옮겨, 장원기가 보든 말든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렇게 불을 붙이고 빨아들이려는데.
벌컥!
“교감 선생님, 큰일 났습니다!”
갑작스럽게 한 선생이 들이닥쳤다.
다급한 얼굴로 교감실로 들어선 그의 얼굴에, 진경희는 왠지 모를 불길한 기분을 느꼈다.
* * *
장원기는 숨이 막혔다.
진경희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들이 우르르 몰려든 3학년 교실에는, 아니 계단부터 시작해서 피로 얼룩진 학생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참혹한 광경이었다.
교실에 도착했을 때, 최명훈을 발아래에 두고 의자에 앉아 있는 김현성의 모습이 보였다.
“이, 이게 무슨!”
장원기는 말문이 막혔다.
얼른 나서라고 진경희가 옆구리를 찌르지 않았다면, 그는 계속해서 얼빠진 표정을 보였을 것이다.
장원기가 소리쳤다.
“김현성! 이 상황 대체 뭐야? 네 입으로 직접 설명해 봐!”
“보면 모르세요?”
“뭐?”
“잘 아시잖아요. 최명훈이 애들을 시켜서 절 공격했어요. 그리고 지금 보는 광경이 바로 그 결과고요. 애들 상태 보니까 보건실에서 어떻게 할 수준이 아닌 것 같은데, 얼른 119부터 부르시죠. 그리고.”
웃었다.
상식적으로 절대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을, 김현성이 먼저 언급했다.
“112도 부르시죠. 아무래도 이건 학교에서 해결할 일이 아닌 것 같은데.”
* * *
비상 회의가 소집되었다.
다시 회의실에 모인 선생들에게, 진경희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지금부터 명심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이번 사건. 학생들의 일탈로 마무리해야 합니다. 의도적으로 수십 명의 학생이 ‘김현성’을 공격하고, 그 과정에 칼을 사용했다는 정황은 반드시 묻어 버려야 합니다.”
“……그래도 되는 겁니까?”
장원기였다.
처음 얘기와는 달랐다.
일을 벌이면 골든 서클이 수습해 줄 것이라고 말했는데, 진경희는 조금 전과는 다른 얘기를 말했다.
“머리가 있다면 생각이라는 걸 좀 하세요. 이번 일.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은 겨우 방관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김현성이 저렇게 멀쩡한 상태인데 가해자로 지목하겠다고 일을 벌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으세요? 선생들의 방관, 경찰들의 늦장 대응, 거기다 칼을 쓴 흔적까지. 무법지대로 만드는 대신에 김현성을 처리하겠다는 계획은, 우리의 더러운 민낯을 들쑤시지 못할 ‘김현성’이 존재하지 않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112를 대놓고 부르라는 김현성이 가만히 있겠어요? 지난번처럼 변호사를 부를 거고, 시민 단체를 동원하겠죠. 상황이 지저분하게 흘러가면, 그 대가는 우리가 모두 감당해야 합니다.”
상황이 복잡하게 흘러갔다.
애초에 이 상황.
김현성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은 불가능했다.
수십 명이 한 명을 공격한 정황은 너무나 노골적이어서, 골든 서클과 진경희가 의도한 바는 무법지대로 만드는 동안 김현성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상식적인 방식으로는 불가능했다. 집행 정지로 학교 규율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렸기에, 무력으로라도 김현성을 학교에서 도려내려 했다.
그때.
진경희가, 대성 미래가 감당해야 할 역할은 명확했다.
무책임한 방관.
때마침 회의가 있어서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변명 정도로 상황을 뭉그러트린다면, 엄청난 사건에 비난의 화살을 맞을지언정 적당히 얼버무릴 수는 있다. 그런데 ‘처벌’의 영역으로 김현성을 어떻게 하려고 한다면, 대성 미래는 지금의 이 복잡한 상황을 전부 해명해야 했다.
선생들은 무엇을 했는지.
경찰들은 왜 늦게 도착했는지.
수십 명의 학생이 김현성을 공격한 정황과 칼을 사용한 조민석.
아무리 여론을 조작한다고 한들, 상황을 목격한 눈들이 많아서 어떻게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제 꾀에.
그대로 당해 버렸다.
무법지대로 만들어 김현성을 편리한 방법으로 처리하려고 했건만, 김현성은 오히려 법과 규율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역으로 활용했다. 그의 폭력이, 그가 벌인 모든 일이. 선생들의 방관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김현성은 진경희 교감을 비롯해 선생들이 현장에 도착했는데도 전혀 당황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반격할 자신이 있었다.
사건을 묻든.
묻지 않든.
김현성은 불리하지 않았다.
진경희도 김현성의 자신감에서 그 사실을 읽었기에, 선생들에게 다시 한번 신신당부했다.
“명심하세요. 이번 사건은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벌어진 사건인 겁니다. 우리는, 그저 늦게 대응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일단 지금은.
대성 미래가 굳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는 것이 아닌, 상부의 적절한 조치를 기다려야 할 때였다.
* * *
학교가 난리가 났다.
비밀리에 구급차가 도착해 학생들을 싣고 갔고, 대성 미래 고등학교는 대놓고 이번 일을 묻으려는 의도를 보였다. 선생들은 반마다 찾아가서 입단속을 시켰다. 학교에서 벌어진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서, 그들은 입을 잘못 놀릴 경우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협박성 발언을 내뱉기도 했다.
같잖았다.
그들의 의도가 뻔히 보였다.
김현성은 치료를 위해 따라가지 않고,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어딘가로 이동했다.
“……선배님. 괜찮으세요?”
강재욱이었다.
그는 조금 전.
현장에 도착했다.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하고는 심장이 뛰었다.
김현성이 자신을 사건에서 배제할 때만 하더라도, 최명훈과 싸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엄청난 일을 벌일 줄은 몰랐다. 김현성이라는 존재에 대한 경외심이 피어올랐다. 자신은 단 한 번도 최명훈 세력에게 대항하지 못했는데, 김현성은 홀로 상대를 전부 무너트려 버렸다.
졸졸 따라갔다.
김현성은 대답하지 않는데도,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여기는?’
뭔가 이상했다.
김현성이 도착한 곳.
2학년 교실이었다.
그것도 자신의 반.
김현성은 피로 흥건한 손으로 문을 열더니, 순간 얼어붙은 학생들은 쭉 둘러보았다.
모두가 겁을 먹었다.
김현성이 어떤 일을 벌였는지 순식간에 소문이 퍼졌기에, 2학년 학생들은 김현성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눈동자를 내리깔았다. 어째서 2학년 교실에 찾아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김현성이라는 이름이 주는 공포감에, 최대한 연관되지 않으려고 했다.
김현성의 시선이 멈추었다.
누군가를 발견하더니, 저벅저벅 걸어가 그 앞에 걸음을 멈추었다.
우뚝.
“끄윽, 끄윽.”
눈앞의 상대.
2학년 학생이 딸꾹질을 내뱉었다.
피를 흘리는 김현성의 모습이 너무 살벌해, 자신도 모르게 겁을 먹었다.
“너는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해?”
“……예?”
“학교에서 수십 명이 한 명을 공격하고, 칼까지 사용하는 사건이 벌어졌어. 선생들은 다급하게 움직이면서 상황을 수습하고는 있지만, 명백하게 피해자인 나는 이렇게 방치되어 있잖아. 넌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선생들이, 왜 이렇게까지 비상식적으로 행동하는 것 같아?”
“……제, 제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잘 알잖아. 골든 서클이라는 집단이 존재한다는 걸.”
슥.
김현성은 강재욱을 돌아보았다.
놀란 눈으로 이곳을 바라보는 강재욱과 시선을 한번 마주치고는, 다시 한번 상대를 바라보았다.
“네가 강재욱을 의뢰한 의뢰인인데. 그걸 모를 리가 없잖아.”
콱!
멱살을 잡아끌었다.
이번 사건.
절대 그냥 묻히지 않을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아무런 일이 아니라고 한들, 골든 서클 내부에서는 엄청난 파란이 일어날 것이다.
“안 그래?”
짜악!
뺨을 내리쳤다.
그렇게 계속해서.
짜악, 짜악, 짜악!
선생들이 황급히 달려올 때까지, 김현성은 뺨을 내리치는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