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vil Returns to School Days RAW - chapter (164)
31. 균열 (1)
겨우 3일.
주말을 보내고 학교에 나왔을 뿐인데, 금요일 종례 시간과는 분위기가 매우 달랐다.
전체적으로 어수선했다.
김현성 사건이 워낙 충격적이기도 했고, 대성 미래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주말 간 주변 사람들에게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김현성을 아느냐, 대체 사건의 전말이 어떻게 되느냐. 그리고 무엇보다도, 징계위원회도 거치지 않고 학생 수십 명을 퇴학 처리하면서 반이 휑하게 변했다.
사실 상식적으로는 시험을 미뤄야 했다.
반드시 일정대로 강행할 필요는 없는데, 임시 담임은 예상과는 다른 전달 사항을 말했다.
“다들 이번 사건으로 정신이 없겠지만, 이럴 때일수록 정신 똑바로 차리고 시험에 집중해야 한다. 이 세상은 너희를 배려해 주지 않아. 인생을 살아가며 이와 같은 위기가 수도 없이 발생할 텐데, 그때마다 배려를 바란다면 너희가 바라는 성공은 이루지 못할 거야. 모두가 똑같은 상황에 놓여 있으니, 그 어느 때보다도 집중해서 원하는 성적을 이루기 바란다.”
학교는 강행을 택했다.
이 결정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
골든 서클의 개입이 아니었다.
주말에 사건이 발발하자마자, 학부모란 사람들의 연락이 빗발쳤다.
“설마 시험 미루는 거 아니죠?”
“시험은 그대로 강행해야 합니다. 우리 애들은 이번 시험에 맞춰서 컨디션 조절을 전부 끝냈는데, 갑자기 일정을 틀어 버리면 밸런스가 깨질 수도 있어요. 학교에 큰 사건이 벌어진 것과는 별개로 시험 일정을 변동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어차피 다 똑같은 상황이잖아요? 한 명을 배려한다고 모두가 희생할 필요는 없죠.”
김현성.
그렇지 않아도 눈엣가시다.
그가 전교 1등을 차지하면 모두의 등수가 한 단계씩 밀릴 텐데, 지금과 같이 컨디션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배려할 이유가 없었다. 성적에 미친 학부모들의 악의가, 결국에 시험 강행이라는 말도 안 되는 결정을 만들어 냈다.
강남의 명문.
이곳은 약육강식(弱肉強食)의 세계였다.
학생을 학생으로 보지 않는, 모두가 경쟁자인 이 세상에서 경쟁자의 불행은 모두의 이득이었다.
담임이 말했다.
“그럼 모두 시험을 준비하도록.”
그렇게.
1학기 중간고사가 시작되었다.
* * *
종이 울렸다.
시험이 완전히 끝났다는 신호에, 학생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아, 망했어.”
“얼른 정답 맞혀 보자.”
“이번에는 잘 본 것 같은데.”
수험생들.
그들에게 시험은 인생의 전부였다.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정답을 확인하기 시작했고, 여기저기서 환호성과 절망 어린 탄식이 울려 퍼졌다. 시험이 끝날 때면 늘 반복되는 풍경이었다. 시험에 목숨을 거는 학생들은 정답 하나를 확인할 때마다, 그 한 문제에 인생이 끝날 것처럼 기뻐하고 절망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채점이 끝나고.
학생들이 같은 곳을 힐끗거렸다.
일단 본인들의 성적이 나왔으니, 상대 평가인 시험에서 지금부터는 ‘경쟁자’들의 성적이 매우 중요했다.
특히 김현성.
모두가 말없이 그를 확인했다.
얼굴에 밴드를 덕지덕지 붙인 김현성은, 한눈에 보아도 시험을 정상적으로 치를 컨디션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속으로 간절하게 빌었다. 외관이 시험 성적에 영향이 있기를. 지금껏 전부 만점을 받아 왔던 김현성이, 한두 개라도 오답이 발생해 추월의 가능성을 열어 주기를.
하지만.
그들의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담담함 얼굴로 시험지를 내려다보는 김현성은, 하나의 결론을 내놓았다.
‘만점이네.’
단 한 문제도 틀리지 않았다.
미래의 영역이 아니었다.
천일에 다녔을 때는 시험 문제를 모두 기억했기에 변수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고등학교 3학년에 오른 지금은 순수하게 실력으로 승부를 봐야 했다. 그런데도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전생에도 이맘쯤에는 전국에서 놀던 성적에, 새로운 삶을 살면서 악착같이 공부에 매달렸다.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았다.
기억을 되새기며, 새로 지식을 받아들이며, 김현성은 이 순간을 위해 공부에 목숨을 걸었다.
‘내 성적이 공개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난리가 날 것이다.
모두의 불안이 현실이 되었다.
김현성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불안감과 현실로 진짜 들이닥치는 상황은 분명히 달랐다.
이 학교에서 최명훈과 같은 끄나풀들을 도려냈지만, 그들을 제외하고도 골든 서클의 관리를 받는 동급생들은 존재했다. 그들로서는 지금의 상황이 매우 불편할 것이다. 김현성은 아직도 건재하고, 골든 서클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인 시험 성적에서도 문제가 발생해 버린 것이니까. 게다가 주말 사건의 실패까지 더해진다면, 골든 서클의 존재 의미는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참.
재밌는 상황이었다.
골든 서클은 미성년자의 불안전한 미래로 강력한 세력을 구축했지만, 그들에게는 매우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결국에 의뢰를 주고받는.
한쪽이 대가를 치르는 입장이라는 것.
대가를 온전히 돌려받지 못한 지금, 김현성이 원하는 균열은 반드시 발생할 것이다.
* * *
예상대로였다.
대성 미래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홍승범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엄마에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팍!
“이게 진짜 뭐야!”
“왜, 왜. 시험 망했어?”
집에 오자마자 책가방을 내던졌다.
엄마가 한달음에 달려오자, 홍승범이 짜증 섞인 음성을 내뱉었다.
“시험은 그럭저럭 잘 봤는데, 김현성. 걔가 전부 만점을 받았대. 그렇지 않아도 김현성 때문에 등수가 하나씩 밀리는 상황인데, 이번에 우리 학교 애들 수십 명이나 퇴학 처리를 당했잖아. 걔들 공백이 등수에 반영되면, 지난 시험보다 잘 봤더라도 나는 그냥 완전히 망한 거라고.”
대거 퇴학.
예상하지 못한 변수였다.
내신은 시험 등수에 따라 반영될 수밖에 없는데, 하필이면 최명훈을 비롯해 퇴학당한 학생들의 성적은 상위권이 아니었다. 그 말인즉 바닥에서 깔아 주던 학생들이 한 번에 사라져 버렸다는 의미다. 똑같은 성적이라고 한들, 다른 때보다 상위의 성적이 매우 중요해진 것이다.
홍승범이 소리쳤다.
“진짜 이거 어떻게 하냐고! 가뜩이나 제일 중요한 시기인데, 이렇게 망쳐 버리면 수시로 한국대에 들어가는 건 불가능하잖아. 엄마. 골든 서클이 전부 관리해 준다며. 그 사람들만 믿으면 내 성적을 안정적으로 만들어 준다고 했는데 이게 대체 뭐야!”
그의 아버지.
홍순호는 골든 라인의 멤버였다.
홍승범은 일찍이 중학교 때부터 골든 서클의 관리를 받았지만, 김현성이 골든 서클의 정체를 폭로했을 때 조용히 있었다. 굳이 정체를 드러낼 필요가 없었다. 강남 한복판에 있는 명문 학교이니만큼 대성 미래에는 홍승범과 학생들이 몇몇 있었고, 그들로서는 위험을 자초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사실.
명수찬 사건 때 난리가 났었다.
혹시라도 홍승범과 같은 다른 의뢰인의 정체가 발각될지도 모른다고 불안한 반응을 보였는데, 골든 서클은 김현성을 반드시 처리하겠다면서 진정시켰다. 그런데 모두가 알다시피 주말 사건으로 골든 서클 관련자들만 처벌받았고, 김현성은 무사히 돌아와 만점이라는 성적도 받아 냈다.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김현성이 뭘 하든.
얼마나 깽판을 치든.
지금껏 중요한 건 오로지 성적이었다.
골든 서클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유일한 조건이, 이번 기회로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다 망했어! 망했다고!”
소리치는 홍승범.
그를 바라보며 엄마의 눈빛이 적의로 번들거렸다.
아들의 상황.
그녀로서는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걱정하지 마, 아들. 엄마 믿지? 금방 다 해결해 줄게.”
* * *
며칠 뒤.
고급 레스토랑.
비밀이 보장되는 그곳에, 다 큰 어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금의 이 상황. 다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먼저 입을 연 사람은 홍순호였다.
홍승범의 아버지이자 대학 병원 교수인 그는, 분노가 끓어오르는 표정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처음 골든 서클에 가입했을 때. 그들이 우리에게 약속했던 건 완벽한 비밀 보장과 자식들이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고도 좋은 학교에 들어갈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느 것 하나 말처럼 된 게 있습니까? 김현성은 이번 시험에서 만점을 맞았을 뿐만 아니라, 지난번에는 의뢰인의 정체를 밝혀 공개적으로 처단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위험합니다.”
“맞습니다.”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이제는 왜 골든 서클과 미래를 같이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모두가 분노했다.
반복되는 실패.
망해 버린 성적.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홍순호는 분위기가 넘어왔다고 생각했는지, 골든 라인이라 일컫는 멤버들을 주도했다.
“솔직히 지금 매우 불안합니다. 주말에 그런 사건이 벌어지고도 김현성은 건재하고, 그 녀석이 골든 서클을 들쑤시면 언제든 우리의 정체가 밝혀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학교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을 때는 골든 서클을 믿어 달라는 말에 한번 넘어가 주었지만, 계속해서 맹목적으로 믿기에는 우리도 살길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직면한 문제를 확실히 해결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 내든, 아니면 골든 서클과 갈라서서 위험을 배제하든. 뭐든 해야 합니다.”
이 자리.
단순히 불만을 토로하고자 만든 것이 아니다.
의도가 있었다.
자신과 같은 골든 라인의 멤버들을 불러 모았을 뿐만 아니라, 정말 중요한 한 인물에게도 나와 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그’를 통해 입성했다. 그가 골든 서클에 대해 말해 주지 않았다면, 골든 서클에 가입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홍순호가 말했다.
“임철형 대표님. 저희를 위해 목소리를 높여 주십시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저희 다 죽습니다.”
“크흐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임철형.
미래투자증권의 대표.
천상의 멤버로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그가,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가입시킨 장본인이었다.
임철형으로서는 참 곤란한 상황이었다.
천상과 일개 멤버.
골든 서클에서는 신분의 격차가 있으나, 이들 모두 미래투자증권에 큰돈을 맡긴 아주 소중한 고객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의 불만을 흘려들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또한 최근 벌어진 상황들에 불만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결국.
“알겠습니다. 제가 한번 나서 보죠.”
“역시 대표님.”
“대표님만 믿겠습니다.”
등이 떠밀리듯, 임철형은 메신저의 역할을 받아들였다.
* * *
주말에 벌어진 사건.
사실 천상에서도 말이 많았다.
골든 서클이 이렇게 공개적으로 움직였는데도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꼬리가 잡힐 뻔한 상황에 브로커를 먹이로 던져 주는 결단을 내렸다. 윤현민은 그것을 위기가 찾아오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설명했지만, 사실 다른 관점에서는 매우 불안정한 미래를 의미했다.
그래서였을까.
임철형은 평소와 다르게 행동했다.
단순히 전화 한 통으로는 본인과 골든 라인 멤버들의 불안과 불만을 확실히 어필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다음 날 오전.
태양 그룹 본사를 찾아갔다.
윤현민을 찾았다.
미래투자증권 대표가 태양 그룹의 후계자를 찾는 건,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오랜만입니다.”
사무실에 들어섰다.
소파에 앉으며 곧바로 본론을 말했다.
굳이 질질 끌 이유가 없었다.
“제가 찾아온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최근 사건들에 대한 확실한 해명을 듣고 싶어서입니다. 골든 서클이 의뢰에 실패했습니다. 성공을 전시해 오던 집단의 연이은 실패와 김현성이 받아 낸 만점이라는 성적은, 더는 골든 서클이 존재 의미를 상실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아시다시피 믿음으로 이루어진 이 관계에 불신이 생긴다면…….”
“대표님.”
말을 툭 끊었다.
임철형이 들어오고.
앉으라는 듯이 손짓을 한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빤히 바라보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다 임철형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파악하자, 창 앞에 있던 그가 상석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탁.
자리에 앉았다.
때마침 비서가 들어왔다.
“차를 내어 드릴…….”
“나가.”
“알겠습니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임철형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자, 윤현민이 다리를 꼬며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골든 서클의 규율. 혹시 잊으셨습니까?”
“그건 알고 있지만…….”
“알고 있다면 오늘 실수하셨습니다. 골든 서클. 특히 천상의 멤버들은 대외적인 명분이 있지 않고서는 절대 공개적인 만남을 가지지 않는다. 이것이 십수 년간 지켜 온 골든 서클의 규율입니다.”
이번 만남.
예외로 치부할 수 없었다.
윤현민이 사나운 눈빛을 보였다.
“대표님은 지금 그 규율을 어기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