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vil Returns to School Days RAW - chapter (198)
35. 지나온 삶의 대가 (8)
윤현민이 눈을 부릅떴다.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이 지옥 같은 곳에서 시간을 보내며, 김현성을 만나면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몸에다 무슨 장난질을 했는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이렇게 얼굴을 직접 보니까 반갑네.”
슥.
위에서 아래로.
윤현민을 전체적으로 훑었다.
삐쩍 마른 몰골을 보니, 웃음을 참을 수가 없는지 자꾸만 입술이 씰룩거렸다.
“내가 재밌는 얘기를 하나 해 줄까?”
대답하지 못했다.
입술만 달싹였다.
처음에는 힘이 없어서라고 생각했는데, 김현성이라는 존재가 풍겨 내는 위압감이 윤현민을 짓눌렀다.
“그때 너를 만나서 했던 얘기. 식물인간으로서 10년을 살았다는 그 이야기는, 너로서는 비현실적이겠지만 분명히 내가 경험한 사실이야.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 너, 여기에 겨우 한 달 있었어. 10년이라치면 그중 채 1년도 채우지 못했는데, 벌써 그런 얼굴을 하고 있으면 어떻게 해.”
지난 한 달.
윤현민을 정말 찾아가고 싶었다.
새해가 밝고 많은 것이 변화하는 상황에, 김현성은 울컥울컥 치솟는 욕망을 가까스로 참아 냈다.
그래야 했다.
그래야만 조금은 무르익은.
공포와 절망감에 물든 얼굴을 볼 수 있을 테니까.
“일반적인 사람들은 지금 네가 경험하는 일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이해하지 못해. 정신은 멀쩡히 살아 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 무력감.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생각하는 것에 투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부정적인 생각은 바이러스처럼 네 전부를 집어삼켜 버리지. 언제까지 이렇게 있어야 할까, 밖으로 나갈 수는 있는 걸까, 혹시라도 일이 잘못되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그런 고민이 무의미하다는 거야. 내가 그랬듯, 넌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거든.”
목소리가 떨렸다.
숨길 수 없는 기쁨을 드러냈다.
“왜? 아니라고 생각해? 아버지가 언젠가는 널 구해 준다고 약속했으니까?”
같잖았다.
김현성은 처음부터 윤병호를 믿지 않았다.
궁지로 몰아넣고 그에게 선택지를 강요했다지만, 그토록 아끼던 아들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일부러 생로를 열어 주었다. 한번 빠지면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도록, 윤병호의 등을 떠밀었다.
김현성이 비웃듯 말했다.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아.”
* * *
윤병호 회장에게 말한 제안.
내용은 이랬다.
“윤현민을 정신 병원에 보내세요. 그가 더는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피해자들이 경험했던 고통을 일부라도 체감할 수 있도록. 단순히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정신 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절망스러운 환경을 부여하고 그것이 만족스러운 결과임을 제게 증명한다면. 그런 ‘성의’라도 보인다면, 태양 그룹이 혐의를 부인하는 것까지는 막지 않겠습니다.”
이번 거래.
모두가 만족해야 했다.
태양 그룹은 아들을 버리는 선에서 그룹의 안위를 보존.
천상의 멤버들은 윤현민을 배신함으로써, 자신들을 토사구팽(兔死狗烹)할 가능성을 먼저 차단함과 동시에 사람들의 시선을 윤현민에게 집중. 여론의 불길이 본인들에게 튀는 것을 방지했다.
윤병호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눈앞의 결과가 그를 증명했다.
하지만.
겨우 이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윤현민은 지금보다도 더 고통받아야 하며, 태양 그룹과 천상의 멤버들에게 면죄부를 부여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김현성이 말했다.
“지금 세상이 난리야. 골든 서클을 박멸한 김판호 의원은 영웅적인 스토리를 얻었고, 사람들의 열광적인 지지로 내년에 대선 당선 확률이 확정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어. 언젠가는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는 김판호 의원은 나와 한 가지를 약속했어. 그가 이루어 낸 업적이 사실은 나와의 거래로 이루어졌음을, 오로지 본인의 공으로 독식할 수 있도록 발설하지 않기로. 내가 죽는 날까지 비밀을 지키는 대가로,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순간 대대적으로 골든 서클을 조사하겠다고 말이야. 그때는 천상이고 태양 그룹이고, 과거의 잘못들이 전부 파헤쳐서 전시되겠지. 그리고 힘을 잃은 골든 서클은 더는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하고, 음모론에 불과하던 네 존재가 사람들에게 사실로 밝혀질 거고.”
“너……!”
입을 열었다.
메마른 입이 쩍 벌어지며, 충격받은 눈동자가 크게 요동쳤다.
이 모습.
이 얼굴이 보고 싶었다.
제발 계속해서 그 표정을 보여 주라는 듯이, 김현성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태양 그룹은 거대한 소송에 휘말릴 거야. 골든 서클의 피해자들이 고소장을 제출할 거고, 정부와 여론을 등에 업은 검사들의 칼끝은 태양 그룹을 비롯해 골든 서클 관련자 전부를 난도질하겠지. 그리고 네 아버지는. 아들을 잘못 둔 죄로 말년을 감옥에서 보내게 될 거야. 그런데 아직도 네가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룹을 지키겠다고 너를 버린 아버지가, 뒤늦게나마 너라도 살려 보겠다고 본인을 희생할까? 아니야. 그렇지 않아. 그럴 리가 없잖아. 한 번이 어려울 뿐이지, 한 번이라도 버리는 순간 이미 넌 버림을 받은 건데.”
“……개, 개소리하지 마.”
“마음대로 생각해도 좋아. 네 아버지, 그리고 네가 떠난 그 회사에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룹을 살려 보겠다고 너에 관한 권한을 포기할 거야. 정확히는 내가 그 권한을 가져오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거거든. 그럼 어떤 일이 벌어지겠어? 넌, 내 동의하에만 이곳에서 나올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물론. 나는 네가 늙어서 죽을 때까지 너를 내보낼 생각이 전혀 없고.”
슥.
가까이 다가갔다.
얼굴을 쓰다듬었다.
손에서 느껴지는 굴곡이, 야윈 굴곡이 마음에 쏙 들었다.
“넌 이제 마음대로 죽지도 못해. 그리고 현민아.”
김현성이 환하게 웃었다.
“네가 아직 젊어서, 앞으로 수십 년은 살 수 있어서. 그게 난 진심으로 기뻐.”
* * *
끼익.
쿵.
문이 닫혔다.
밖으로 나오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특이 사항은?”
“없어. 처음에 태양 그룹 수행비서가 찾아온 것을 빼면, 관련자들은 코빼기도 비추지 않고 있어.”
배성호였다.
김현성은 배성호를 정신 병원에 배치했다.
배성호는 자신을 따르는 애들을 불러 모아 교대로 윤현민의 병실을 감시했고, 그 대가로 받는 돈은 충분히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그들에게 이곳은 이제 평생직장이었다. 김현성은 윤현민에게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면, 이곳에서 시간을 녹이는 대가를 평생 지급하겠다고 말했다.
“의사에게 말해서 약을 투약하라고 해. 오늘의 대화를 기억하지 못했으면 하거든.”
“알겠어.”
윤현민과 나눈 대화.
비밀로 남을 것이다.
자신이 태양 그룹과 천상의 멤버들을 아직도 노린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김판호가 대선에 당선되기 전에 평화로운 분위기가 무산된 확률이 높았다. 아직은 서로가 윈윈하는 분위기를 유지해야 했다. 그래야 본인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모른 채, 순식간에 코앞에 들이닥친 쓰나미에 그대로 쓸려버릴 테니까.
그래서 만나기 전.
이미 약을 투약했다.
몽롱한 정신은 경험한 일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 것이고, 곧 의사가 찾아와 그나마 남아 있는 기억들조차 전부 날려 버릴 것이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전부 기억하게 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상황을 완벽하게 마무리하지 못한 지금은, 윤현민의 절망스러운 얼굴을 본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희망이 남아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언젠가는 구해 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은 채, 시간의 흐름을 온전히 감당하게 될 테니.
기약 없는 희망은 더 고통스러운 법이다.
김현성은 걸음을 옮겼다.
더는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 * *
병원 밖.
도심이었다.
밖에서는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보내고 있건만, 윤현민은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감옥 안에 갇혔다.
자신도 똑같았다.
김현성이 식물인간으로 있었던 병실 또한, 도심 안에 존재하는 감옥이었다.
“……성공한 건가.”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배성호와 대화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멀쩡했는데, 현실을 자각하자 자리에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털썩.
멍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옥상에서 떨어지던 그 날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기억이 머릿속에서 뒤얽혔다.
처음에 식물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리고 식물인간인데도 불구하고 정신은 멀쩡히 살아 있다는 사실에. 김현성은 생지옥에서 살아야 했다. 세상 그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했을 고통이었다. 1분 1초, 흘러가는 시간을 고스란히 느껴야 하는 시간의 감옥이었고, 정신이 수차례 붕괴되는 상황에도 김현성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조차 없었다. 곁에서 가족들이 우는 소리가 들려올 때면, 기도하는 내용이라고는 복수가 아니라 제발 죽여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상상했다.
새로운 기회.
과거를 만회할 수 있는 기적 같은 순간을.
말도 안 되는 일인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도저히 흘러가지 않았다.
그렇게 10년을 살았기에.
체감상으로서는 억겁의 굴레 속에서 고통을 받았기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악마의 제안에, 김현성은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다.
기꺼이 죽겠다고.
한 번의 기회를 위해 죽을 준비가 되었다고.
복수.
상상만 했던 일이다.
머릿속의 계획은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았고, 반복하면서 계획의 완성도를 높였는데도 복수에 성공하리라는 확신은 없었다. 스스로도 스스로를 믿지 못했다. 과거로 돌아온 날 김현성이 주저 없이 박민철의 뺨을 날렸던 것은, 복수에 성공하리라는 확신이 아니라 그동안 참아 왔던 감정의 표출이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가 언젠가는 죽음으로 끝나리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김현성은 성공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폭주 기관차처럼 밀고 나갔다.
그리고 지금.
꿈을 이루었다.
저항하지 못하는 윤현민을 내려다보며, 김현성은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정말 미칠 듯이 기뻤다.
“크흑.”
얼굴을 감싸 쥐었다.
눈물이 흘렀다.
어깨가 들썩이며, 자꾸만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정말 펑펑 울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가와서 괜찮냐고 물을 정도로, 김현성은 목놓아서 하염없이 울었다.
복수를 이룬 것에 대한 기쁨의 눈물인지.
그동안의 고통이 떠오른 슬픔의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어쩌면 복수에 소비된 모든 것들에 관한 아쉬움일지도 몰랐다.
17살.
어렸고, 머리가 똑똑했고, 미래가 기대되었던 한 소년은.
20살이 되어 이 순간에 존재했다.
복수를 이루었든, 이루지 못했든.
고등학생 생활은 이제 정말 끝이었다.
* * *
그로부터 1년 뒤.
대한민국이 환호성으로 물들었다.
[골든 게이트로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새로운 정당을 창설한 김판호 의원이, 오늘 압도적인 격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김판호 당선인은 공략에서 말했듯이 부정부패 척결에 앞장서는 깨끗한 정치로 보답할 것이며, 특히 대한민국의 새싹들이 더는 고통받지 않도록 올바른 교육 체계를 형성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예정된 결과였다.
골든 게이트는 그 어떤 정치인도 보유하지 못한 엄청난 업적이었고, 김판호와 경쟁하는 사람들도 사실상 당선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소극적으로 임했다.
판도가 변했다.
그 어느 때보다 압도적인 지지율에, 사람들은 김판호의 시대가 열렸다고 표현했다.
그로부터 다시 2년 뒤.
시간은 정말 빠르게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