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vil Returns to School Days RAW - chapter (199)
에필로그, 인과응보(因果應報) (1)
김판호 당선 직후.
새로운 정권을 안정화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골든 게이트의 재점화였다.
[국민 여러분.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 대한민국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골든 게이트’라는 극악무도한 집단 범죄가 벌어졌습니다. 그때 모두가 분노했고, 모두가 목소리를 높여 강력한 처벌을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땠습니까? 태양 그룹의 윤현민이 배후다, 혹은 다른 누군가가 존재한다. 진실이 증명되지 않은 거짓 뉴스들만 떠들썩했을 뿐, 정확한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골든 게이트는 대한민국의 치욕스러운 역사이자, 현재도 대한민국을 암세포처럼 좀먹는 문제입니다. 고로 이 자리에서 국민 여러분들에게 선포하겠습니다. 저 김판호는, 임기가 끝나기 전에 골든 게이트의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겠습니다!]골든 게이트.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은 문제였다.
분명히 대한민국을 뒤엎을 것처럼 떠들썩했지만, 이경철 의원의 자살과 윤현민의 사임으로 흐지부지 마무리되었다. 여전히 음모론을 입에 올리는 사람들은 많았다. 윤현민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존재하며, 의뢰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은 아직도 처벌받지 않고 떵떵거리며 잘살고 있다고 말이다.
그런 여론을.
김판호는 모르지 않았다.
본인을 대통령에 오르게 한, 그리고 대한민국 역사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남길 전무후무한 업적.
그래서 칼을 빼 들었다.
골든 서클의 완전한 척결은, 임기가 끝날 때까지 본인에게 엄청난 권력을 부여하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골든 게이트를 전담할 특수팀을 꾸릴 것이며, 그 수장으로는 중앙지검의 강동철 차장 검사를 임명하도록 하겠습니다.]대한민국이 환호했다.
아직은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을 때.
권력자들의 압박을 무릅쓰고 정당을 탈퇴했던 김판호와 검찰의 뜻을 정면으로 반박했던 강동철. 둘의 조합은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표면적인 조합만으로도 환호하기에 충분했다.
1년 전과는 달랐다.
정부를 등에 업은 강동철은, 본인이 왜 ‘소 잡는 칼’이라 불리는지 빠르게 증명했다.
* * *
박정학이 초조한 얼굴로 전화를 걸었다.
지루하게 흘러가는 통화 연결음에, 손톱만 자꾸 물어뜯었다.
“제발 받아라, 제발 받으라고!”
문제는 일주일 전.
강동철 검사의 연락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골든 게이트를 재점화하겠다는 공식 입장이 발표되고 바로 다음 날, 강동철은 박정학에게 연락했다.
[박정학 대표님. 천상의 멤버이자 의뢰인으로서, 골든 서클을 사주해 아드님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을 가해한 사실이 있으시죠?]“그게 무슨 소립니까! 큰일 날 소리 하지 마십시오!”
[처음부터 인정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1년 동안 검찰은 넋 놓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언제고 이런 순간이 찾아오리라는 생각에, 골든 서클을 특정할 수 있는 증거를 모으고 있었습니다. 송재룡이라고 아십니까? 의뢰를 수행한 사람의 이름은 모를 수도 있겠지만, 지금부터는 그 이름에 관한 사실 관계를 충분히 확인하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송재룡은 박정학 대표님이 골든 서클에 의뢰했다는 살아 있는 증거이자, 천상의 멤버로서 권력자들과 이익을 주고받았다는 사실도 확인한 상태입니다. 딱 일주일 드리겠습니다. 일주일 뒤에 소환장이 날아갈 예정이니, 전력을 다해서 제가 제시하는 의혹들을 소명할 준비를 하십시오.]“……조사할 거면 당장 하지, 왜 일주일 뒤입니까?”
[그게 궁금합니까?]전화기 너머.
강동철이 이죽거리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냥. 지금 당장 너를 소환해도 상관없지만, 앞으로 벌어질 일을 알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거든. 나는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말을 믿어. 내가 하늘 아래 떳떳하게 살아가는 믿음의 근간은 그동안 정직하게 살아왔던 내 자신이니, 너는 지금 이 전화 한 통으로 일주일간의 지옥을 맛보게 되겠지. 발악해 봐. 네가 얼마나 잘못했는지를 파악하지도 못할 만큼 무의식적으로 벌인 일들이, 지금부터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테니까.]뚝.
통화가 끊겼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김현성과의 거래 이후, 박정학은 안위를 보장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김판호가 골든 게이트를 재점화하고, 특수팀을 꾸리자마자 결려 온 전화는 한 가지 사실을 증명했다.
이건 하루 이틀 준비한 일이 아니었다.
이경철 의원의 자살로 사건을 종결했던 강동철은, 절치부심(切齒腐心)하며 지난 1년간 골든 서클에 매달렸다. 다시는 도망갈 수 없도록. 골든 서클에 관련한 사람들이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완전한 파멸을 맞이할 수 있도록. 강동철은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
이건 도망칠 수 없었다.
벼랑 끝에 몰렸다.
그때부터 박정학은 여기저기 연락을 돌렸지만, 뚜렷한 방법은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김현성에게 연락했다.
그라면 해결해 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감은, 부재중이 두 자릿수를 넘어가면서부터 절망으로 물들었다.
그제야 알았다.
“……우리가 멍청했구나.”
1년 전.
윤현민을 버려서는 안 되었다.
그때는 그를 버리고 안위를 챙기는 것이 차악이라 생각했지만, 골든 게이트가 끝까지 파헤쳐질 문제라면 어떻게든 그를 지키고 힘을 한데로 모아야 했다. 윤현민의 사임으로 골든 서클은 이미 와해되어 버린 상태. 서로를 믿지 못하는 관계로는, 이 위기를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전화를 받지 않아 음성사서함으로……]눈을 질끈 감았다.
힘없이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지금, 이 순간.
강동철의 말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그의 몸을 휘감았다.
* * *
특수팀이 창설되고 겨우 한 달.
강동철은 충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박정학을 구속시키더니, 그를 비롯해 천상의 멤버들을 연달아 잡아넣었다.
박정학, 홍동영, 전상철 등등.
대한민국이 들썩였다.
표면 위에 드러난 이름들은, 골든 게이트가 어떤 사건이었는지를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앞서 잡힌 사람들은 궁지에 몰려 한 이름을 거론할 수밖에 없었다.
‘태양 그룹’
바로 그들이 배후였다는 진실.
태양 그룹이 발칵 뒤집혔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윤병호는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처음부터 이걸 노렸던 거냐.”
탄식을 내뱉었다.
사실 알고는 있었다.
김현성의 눈빛에서 보이는 독기는, 윤현민을 먹어 치운 것으로는 절대 끝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그런데도 그때는 선택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었고, 윤현민을 정신 병원에 가둔 뒤에 최대한 태양 그룹이 골든 서클과 관련되었다는 사실을 지우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골든 게이트는 다시 발발되었다. 김판호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준비했다는 듯이 칼을 뽑아 들었다.
“사람의 인생이란 참 재밌어. 네가 있는 집 자식으로 태어났다면, 권력자들 사이에서 그 재능을 뽐냈을 텐데.”
윤현민이나.
자신이나.
패착은 똑같았다.
흙수저라는 배경에, 김현성이 정확히 어떤 능력을 갖추었는지를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
우스웠다.
겨우 일개 고등학생으로 인해, 수십 년간 일군 태양 그룹이 흔들린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때였다.
쾅-!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비켜.”
문이 벌컥, 열렸다.
강동철이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문서를 내밀며 윤병호에게 말했다.
“소환에는 순순히 응하시지 그랬습니까. 왜 굳이 일을 번거롭게 만드십니까.”
슥.
윤병호가 고개를 돌렸다.
강동철이 자신을 물어뜯으려는 사냥개처럼 보였다.
“죄를 짓지 않았는데 내가 왜 그딴 요구에 응해야 하지?”
“윤병호 회장님이 직접 골든 서클에 관여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들인 윤현민이 골든 서클을 만들었고, 태양 그룹의 배경을 이용하여 그만한 세력을 형성한 과정에는 회장님의 분명한 ‘방관’이 있었습니다. 이 또한 부정하십니까?”
“부정하네만.”
“알겠습니다.”
피식, 웃었다.
애초에 대화할 생각은 없었다.
뒤따라 들어온 검사들에게 말했다.
“연행해.”
“예.”
검사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이미 육탄전으로는 막을 수 없는 상황에, 수행비서는 아득한 표정을 보였다.
윤병호가 끌려가며 말했다.
“태양 그룹은 이대로 끝나지 않아. 내가 일군 것들은, 아주 깊숙이 이 나라에 뿌리를 내렸거든.”
“예, 그러시겠죠. 그런데 말입니다.”
검찰에는 이런 말이 돌았다.
골든 게이트가 완벽하게 마무리되면, 강동철은 더 위.
검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거대한 권력을 움켜쥘 수도 있다고.
소문과는 달리 본인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
자신이 1년간 악착같이 매달린 것에 대한 보상은, 본인의 소임을 다했다는 만족감으로 충분했다.
그런 인물에게.
“감당하지 못할 일이라면 이곳에 찾아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러니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보시죠.”
윤병호의 협박은 전혀 먹히지 않았다.
* * *
윤병호의 구속.
엄청난 이슈였다.
대한민국은 처벌 가능성에 떠들썩했지만, 정확한 결과는 생각처럼 빠르게 나오지 않았다.
윤병호는 최고의 법무팀을 고용했다.
유명 판사가 사직서를 제출한 뒤에 법무팀에 합류했으며, 처음에는 골든 서클과 아예 관련되지 않았다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강동철은 만만치 않았다. 그는 김현성으로부터 받은 정보, 그리고 1년간의 준비. 결정적으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정황’을 입증하는 것에 성공했다.
실마리는 천상의 멤버들이었다.
그들의 범죄가 확정되어 버린 상황에, 죗값을 덜어 내기 위해서는 뭐라도 뱉어 내야만 했다.
그때부터 분위기가 바뀌었다.
태양 그룹은 ‘관련이 없다’에서 ‘윤현민 개인의 일탈’로 몰아갔지만, 한번 상처를 입고 등을 보인 상대를 놓칠 강동철이 아니었다. 득달같이 달려들어 물어뜯었다. 들끓는 여론도 태양 그룹을 향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고, 구속 수사가 시작되고 정확히 1년 만에 성과를 거두었다.
[속보입니다. 법원에서 마침내 태양 그룹에 유죄를 선언했습니다. 태양 그룹의 후계자인 윤현민은 그룹의 배경을 이용해 ‘골든 서클’이라는 단체를 만들었고, 모두가 아는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태양 그룹은 직접적으로 골든 서클을 지원한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골든 서클로 부정 이득을 취한 점. 그리고 윤현민의 범죄를 인지하고도 방관했다는 정황을 확인하고 윤병호 회장에게 공범죄를 적용해 징역 20년을 선고했습니다. 또한 태양 그룹은 피해자들에게 막대한 보상을 진행할 예정이며………… 윤현민의 경우, 1년 전부터 정신 병원에 입원하며 현재는 징역을 살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여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되, 언젠가 정신 병원에서 퇴원한다면 가석방 없는 무기 징역을 살 것이라고 강동철 검사는 밝혔습니다.]완전한 파멸이었다.
그룹의 회장과 후계자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피해자들의 보상 수준은 푼돈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피해자들의 죽음, 아직 살아 있는 피해자들의 정식적인 피해 보상. 그 숫자가 무려 수백에 달하기에, 태양 그룹은 천문학적인 액수를 보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태양 그룹이라는 거대한 성.
대한민국에서는 감히 올려다보기도 힘든 대기업이, 그렇게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였다.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몰락을 지켜보는 사람들.
그들은, 그렇게 역사에 길이 남을 한순간에 존재하고 있었다.
* * *
대산의 한 편의점.
점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혀를 찼다.
“짐승만도 못한 새끼들. 어떻게 어린 새싹들을 죽이면서까지 자기 배를 불릴 생각을 했을까. 이래서 있는 놈들이 더하다니까.”
세상이 난리였다.
지지부진한 법정 공방에 지난 1년은 고구마를 먹는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사이다를 마신 것처럼 속이 개운해지는 느낌이었다. 멍한 얼굴로 연행되는 윤병호 회장의 얼굴. 아무리 최고의 법무팀을 구성했다고 한들, 완벽한 증거와 사회적인 분위기는 그를 무너트리기에 충분했다.
슥.
누군가 물건을 위에 올려놓았다.
뒤늦게 손님의 존재를 깨달은 점장이 멋쩍게 웃으며 바코드를 찍었다.
“요새 뉴스가 워낙 재밌다 보니까 시선을 뗄 수가 없네요. 봉투 필요하세요?”
“……예.”
“알겠습, 응?”
물건을 담던 점장의 눈빛이 변했다.
그가 고개를 숙였다.
손님이 살짝 고개를 틀자, 집요하게 마스크 안에 감춘 얼굴을 확인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정확히는 파악되지 않았다.
하지만 익숙한 얼굴임을 확신하는 순간.
“당신, 오혜지 아냐?”
점장이 표정을 와락 일그러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