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변화를 일으키다
2030년 현재 이란의 경제 상황은 대단히 좋지 않았다.
실업률은 추정치 50%를 돌파했고 국가 경제의 70& 정도를 차지하는 원유 수출도 전력난으로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
IMF 등지에선 미국의 경제 제재로 베네수엘라와 같은 처지를 밟고 있다고 전망했다.
20년대 초반부터 경제성장률이 굉장히 낮았으며 리알화 가치가 계속 떨어지고 있는 게 증거였다.
이란 정부는 날로 악화되어 가는 민심을 돌리기 위해 유지하와 한국을 악마화했다.
드론이 중동에 가지는 영향력을 과대평가했고 성과를 크게 부풀렸다.
성능과 크기도 과장하는 바람에 이란 국민들은 한국제 드론이 자동차만 하며 무슬림을 죽이려 혈안이 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러니 유조선을 납치해서 시민들의 관심도를 집중시키는 것은 꽤 좋은 선택이었다.
한국은 평소와 같이 쩔쩔매며 어떻게든 이란과 협상하기 위해 돈다발을 바칠 것이다… 이것이 이란 종교지도자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전황은 그들의 망상과는 전혀 다르게 돌아갔다.
이란 해군은 무력화되었고 영토에 드론과 안드로이드가 들어와 사이커들을 죽였다.
극심한 혼란이 일어나는 가운데 혁명수비대가 아끼던 극초음속 대함미사일을 발사했으나 인류연합의 함대는 간단히 막아 냈다.
그리고 그들은 딱 한 번의 공격만 하고 곧장 잠수해 버렸다.
그 공격이 100발이 넘는 안트론 탑재 미사일과 하프늄 탄두 미사일이란 건 이란의 그 누구도 몰랐다.
4월 초의 어느 날 아침.
100여 발의 미사일이 이란 영토를 가로질렀다.
방공군에서 이들을 포착했으나 노후화된 전력으로 격추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란은 과거 미국의 무인기를 추락시킬 정도로 재밍에는 일가견이 있었지만 이 미사일은 너무 빨라서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리하여 이란의 부셰르 원자력 발전소 상공에서 안트론 탄두가 기폭되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파편이 떨어져 내렸고 그 순간 원자로 노심이 정지되었다.
핵연료가 갑자기 사라진 거나 다름이 없어서 출력이 0을 향해 곤두박질쳤고 비상사태가 발령되었다.
그러나 연구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상황은 부셰르뿐만이 아니라 이란 곳곳에 위치한 원자력 발전소와 심지어 연구소에서도 일어났다.
안트론 미사일은 이란의 주요 핵시설을 정확하게 타격했으며 전력망을 무력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원자로가 아닌 화력발전소엔 안트론 탄두 대신 하프늄2 탄두를 탑재한 미사일이 날아들었다.
이 미사일은 화력발전소의 중추인 터빈과 발전기를 타격해 잿더미로 만들어 놓았다.
순식간에 이란의 전력 발전량이 10%까지 떨어져 전국적인 블랙아웃이 펼쳐졌다.
전력의 공급 대부분이 중단되자 이란 정부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현대사회는 생각보다 많은 부분을 전기에 의존하고 있으며, 전기가 없으면 아예 산업이 돌아가지도 않는다.
당장 엘리베이터가 멈췄으며 수도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다.
심지어 라디오 방송도 중단되었고 무슬림들이 모스크에 모이지도 못했다.
공항과 항만조차 마비되어 모든 물류의 흐름이 중단되었다.
이란은 말 그대로 중세시대로 돌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파키스탄도 비슷한 처지에 처했고 전기가 없어서 이런 상황을 국제사회에 알릴 수가 없었다.
이 사태는 유지하가 한국에서 기자회견을 가짐으로써 비로소 드러났다.
“함대에 가한 공격의 보복조치로서, 안트론과 하프늄 탄두를 탑재한 미사일 200여 발을 이란과 파키스탄에 발사했습니다. 그 결과 두 국가의 전력 발전량은 5% 미만으로 떨어졌으며 모든 산업이 마비되었습니다. 실질적으로 중세시대로 돌아가게 된 셈이죠.”
너무 담담한 말투라 순간 기자들은 의미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CNN 파견기자가 손을 들고 물었다.
“실례지만, 이란과 파키스탄의 전력망을 완전히 부쉈다는 말인가요?”
“정확합니다. 원자력 발전소도 포함되었고 현재 두 국가는 전기를 거의 쓰지 못합니다. 비상발전기가 있는 곳은 잠시 연장될 순 있겠죠.”
푸른 눈에 분노가 피어올랐다.
“어떻게… 어떻게 그런 끔찍한 짓을 할 수가 있죠?”
“이란이 저지른 짓은 확실히 끔찍했죠. 유조선을 납치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을 죽였고 테러를 저질렀을뿐더러 내 함대에 공격을 가했으니까요. 더 듣고 싶습니까?”
“당신은 지금 수십, 아니, 수백만의 생명을 위기로 몰아넣었어요! 당장 수술은 어떻게 하죠? 농수는 어떻게 공급하고요?”
“그게 두려웠으면.”
유지하는 그렇게 말하며 연단에 상체를 기대고 기자를 빤히 바라봤다.
“나를 건드리지 말았어야죠.”
“…….”
기자는 그의 시선을 외면했다.
아무리 세간에서 히틀러 소리를 들었다고는 하나 이렇게 극단적인 대응을 할 것까진 없잖은가.
하지만 유지하는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이번 공격은 극단적인 무슬림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나를 증오하는 건 상관없습니다. 개인의 감정이야 알아서 할 일이죠. 하지만 실제로 행동하진 마십시오. 그 대가는 당신들의 생각보다 훨씬 클 겁니다.”
이제 기자는 손을 들지도 않고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게 당신이 바라는 바인가요? 15억의 무슬림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게?”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은 그들 자신입니다. 나에 대한 증오를 버리지 않는 한, 같은 신세가 될 겁니다.”
“축하해요. 역대 최악의 학살자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되겠군요.”
“더 직설적인 표현은 없습니까? 하도 듣다 보니까 이젠 식상해서.”
기자회견은 냉랭한 분위기에서 끝났고 이란과 파키스탄에 대한 소식이 전 세계에 알려졌다.
* * *
각국은 이번 사태를 접하고 말을 잃었다.
석기시대니 중세시대니 말은 많아도 그걸 실제로 행할 줄이야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미국조차 과거 파키스탄의 영공을 열기 위해 그런 발언을 했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기진 않았다.
그런데 한국의 이 독재자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3억에 가까운 인구를 중세시대로 몰아넣었다.
직접적인 인명 피해는 크지 않을지 모르나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사람은 억 단위가 될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이를 격렬히 비난하며 즉각 유지하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인 함대에 공격 좀 했다고 3억을 중세시대로 몰아넣는 게 인간이 할 짓인가? 이 희대의 학살자를 더 이상 내버려 둘 수 없다. 전 세계가 나서서 응징해야 한다.
―UN도 믿을 수 없다. 결의안 통과시켜 봐야 의미도 없고 실질적인 제재를 하지도 못한다. 미국이 나서라. 우리가 전면적으로 협력하겠다.
다만 여기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국가는 그리 많지 않았다.
EU야 협상도 지지부진하고 유지하에 적대적이었으니 상당수의 국가가 찬성했지만 실질적으로 세계 경제를 주름잡는 국가들이 침묵한 것이다.
그나마 중맹과 일본에서 강도 높은 비난성명을 발표한 게 전부였다.
독일은 전력망이 완전히 파괴된 게 아니므로 몇 년 안에 복구할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가 이 상황에서도 계산이냐는 프랑스 언론의 폭격을 두들겨 맞고 침묵했다.
그리고 미국에선 민주당과 각종 인권단체가 들고 일어나는 가운데 저명한 정치인과 싱크탱크에서는 이번 사태를 분석하기에 바빴다.
―이란과 파키스탄은 확실히 전기를 잃었다. 그러나 이 상황은 영구적이지 않으며, 몇 년의 시간과 충분한 자금을 들이면 복구할 수 있다.
―당장 전기가 시급한 병원 등은 각국에서 공급해 줄 수 있다. 단 양국이 국경선을 완전히 열고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
―3억 운운하지만 실질적으로 의미 있는 전력을 공급받는 인구는 1억 남짓하다. 양국의 경제 상황을 봤을 때 세계에 끼치는 영향력도 그리 크진 않을 것.
―무엇보다 양국의 핵전력이 완전히 제거된 게 의미가 크다. 양국과 마찰을 빚던 국가도 군사적인 행동은 못할 것이고, 의외로 향후 경제가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실제로 파키스탄과 앙숙이던 인도조차 이번 공격에 유감을 표하며 충분한 지원을 할 것이라 표명했다.
각국의 지원 발표가 이어졌고 유지하와 인류연합에 대한 응징은 흐지부지되어 UN에서 비난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데에 그쳤다.
언제나 그렇듯, 유지하와 척을 지고 싶은 국가는 별로 없었던 것이다.
힘을 잃은 인도나 파키스탄, 그리고 3억의 무슬림보다는 유지하에게서 나오는 각종 기술과 개념이 훨씬 더 중요했다.
그리고 15억에 달하는 무슬림 사회는 당연히 증오로 불타올랐지만 실질적으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사우디를 포함한 OPEC의 산유국들은 이란 사태를 감안해 증산을 결정했으며 UAE, 이집트 등도 내부 단속에 나섰다.
그들은 드론을 잘 써먹고 있었고 핵융합 플랜트 등으로 협력할 일이 많았기에 유지하와 척을 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국제사회가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자 영국과 프랑스는 비판하기에 바빴다.
―오늘, 정의와 인권이 땅에 떨어졌다. 모두가 독재자의 입에서 떨어지는 꿀을 바라보고 있으며 3억의 인구가 중세시대로 돌아갔다. 앞으로 그가 무슨 범죄를 저질러도 세계는 개입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에게 국제 여론과 UN은 단지 거치적거리는 장애물에 불과한 것 같다. 놀라운 기술 좀 선보였다고 모든 것을 무시해도 되는 건가?
―여전히 미적대는 미국에게 물어보고 싶다. 앓던 이 두 개가 빠져서 후련한가? 앞으로 유지하라는 썩은 이는 두고두고 당신들에게 고통을 안겨줄 것이다.
그러나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유지하가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이 상황을 만든 것은 테러를 지원한 두 국가다. 유지하의 행동을 따지기 전에, 두 국가가 한 짓을 되새겨 봐라.
―항공기 테러에 핵공격까지. 두 국가는 선을 넘었고 그 대가를 치른 것뿐이다. 당신들이라면 가만히 있을 수 있나?
―그리고 무슬림들의 증오도 잘못되었다. 왜 무기를 만들어 낸 회사까지 비난을 받아야 하는가? 당신들이 증오해야 할 대상은 드론과 그걸 만든 사람이 아니라 운용하는 세력이다.
당연하지만 이런 인식은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고 특히 무슬림 사회에서는 금기시되었다.
그들은 복수를 원했다.
―절대 이번 일을 잊지 않을 것이다.
―두고 봐라. 언제고 복수할 것이다. 신의 이름을 걸고!
각국은 테러가 잇따를 것으로 짐작하고 검문검색을 강화했다.
그러나 유의미하게 테러가 늘어나지는 않았는데, 원인은 유지하에게 있었다.
이란과 파키스탄은 전력망을 붕괴시키는 선에서 끝냈지만 아프가니스탄은 직접 들어가 테러단체를 박살 내 버렸던 것이다.
얼마나 철저하게 박살 냈는지 주요 도시에서 총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산간의 동굴에 숨은 게릴라는 건재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하프늄2 탄두를 선물 받고 하나씩 증발하고 있었다.
미국도 어찌하지 못한 탈레반을 소멸 직전까지 몰아붙인 것이다.
탈레반에겐 일말의 가능성도 없었는데, 그들이 물러난 칸다하르나 카불 등의 도시에 유지하가 식량과 생필품을 공급하면서 민심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인에게 당장 중요한 건 생존이지 탈레반이 아니었다.
두 도시에 들어간 국경 없는 의사회의 활동가들은 이런 광경을 처음 본다며 놀라워했다.
“하루 종일 있었는데도 총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기적이 일어났어요.”
“시장은 번잡하고 시끄러우나 활기가 넘칩니다. 여자들이 밖으로 나와서 일을 하고 있다고요. 그걸 아니꼽게 보는 남자도 있지만, 드론 앞에선 별말을 못하는 것 같네요.”
“유지하가 아프가니스탄을 변화시키고 있어요. 지켜볼 가치가 충분해요.”
이 NGO 단체는 프랑스의 영향력이 큰데도 이런 평가를 내린 것이다.
프랑스 본토에선 본체만체했지만, 아프가니스탄이 긍정적인 변화를 맞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그 시각 유지하는 누군가를 만나고 있었다.
* * *
아흐마드 마수드는 유지하의 비지니스젯에 타고 칸다하르와 레기스탄 사막을 둘러봤다.
이 넓은 사막을 도시로 바꾼다는데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칸다하르 전체가 조용해졌다는 데에 있었다.
시장과 거리는 여전히 북적거렸고 모스크에도 사람이 붐비지만, 그 어디에서도 싸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탈레반이 점령했을 때와는 천지차이였다.
“…….”
대체 어느 쪽일까.
유지하는 이란과 파키스탄에 가혹한 공격을 퍼부어 희대의 학살자란 평을 들었다.
하지만 오늘 칸다하르를 둘러보니 그런 평가에 의문이 갔다.
이 사람이 원하는 것은 정말 파괴와 혼란인가?
별 인연도 없는 민중에게 식량을 공급하며 도시의 치안을 안정화시킨 사람이?
‘이 상반된 얼굴은 대체 무엇인가…….’
확실한 것은 그가 아프가니스탄에 목적이 있다는 점이다.
그게 아니었으면 아예 발을 들이지도 않았겠지.
작은 창문을 통해 칸다하르의 전경을 내려다보는데 파티마가 왔다.
그녀는 떠날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좋은 생활을 하고 있는지 생글생글 웃는 얼굴에 옷차림도 서구식이었다.
“오랜만이구나.”
“네. 저 많이 바뀌지 않았어요?”
“잘은 모르겠지만 왠지 성격도 많이 바뀐 것 같구나. 이전에는 조금 더…….”
“내성적이었죠. 소극적이기도 했구요.”
“무엇이 너를 변화시킨 거냐?”
“그 아저씨가 만들어 낸 모든 것이요. 여기 사진 좀 보세요.”
파티마는 옆자리에 앉아서 태블릿으로 자신이 찍은 메가시티의 영상을 보여 주었다.
도시는 미국 등 여러 선진국의 도시와도 상당히 달랐다.
사람이 넘치는 것은 비슷했지만 차가 없었고 길거리가 아주 깨끗했다.
하늘을 찌를 듯 솟은 회색의 빌딩은 마수드의 취향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대단했다.
“이런 도시를 여기에 만든다고?”
“네. 그게 아저씨의 계획이에요. 메가시티 센트럴이라고 해요.”
“…….”
마수드는 한동안 영상을 들여다보며 상념에 잠겼다.
고향을 사랑하고 아프가니스탄이 발전하기를 바랐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탈레반이 사실상 소멸되고 유지하가 아프가니스탄에 들어온 시점에서, 그에게 다른 선택지란 있을 수 없었다.
‘언제까지 판지시르에 처박혀 있을 순 없다…….’
판지시르는 방어에 최적화된 지형이고 저항군은 미군이 떠난 뒤에도 탈레반의 공세를 막아 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면 거의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물자는 태반이 부족했고 적은 넘쳐났다.
카불을 탈환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저항군의 열악한 사정으로는 지키기가 힘들었다.
탈레반이 선동과 폭력으로 무자헤딘을 끌어모은 데에 비해 저항군은 자발적인 의용군만 받아들였기에 인력난에 시달렸다.
나날이 부상자는 늘어만 갔고 도주자도 많이 발생했다.
도저히 가망이 없다고 느껴 밤새 도망치는 것이다.
마수드는 그런 사람들을 잡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고 보니 회의적인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 수 있을까?
미군이 떠난 지 어언 10년이 지났고 탈레반은 여전히 건재했다.
북부저항전선은 그들을 밀어내기는커녕 현상유지에도 급급했다.
어디를 둘러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유지하가 등장했고, 큰 제안을 해 왔다.
“여기에 거대한 도시를 만들 겁니다. 타지크족과 파슈툰족, 그리고 그 외의 부족들도 어울려 살게 되겠죠. 이슬람의 전통은 존중할 것이고 자치권도 드리겠습니다. 단, 몇 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그 규칙 중 몇 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CP로 대표되는 점수 제도가 그러한데, 한국에는 벌써 정착이 되었다고 한다.
이 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드론과 안드로이드다.
그러니까 거대한 방목장을 만들 계획이니 거기에 들어오라는 것이다.
안전과 생활은 보장되겠지만 무슬림으로서의 정체성은 희미해질 가능성이 높았다.
마수드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존인가… 자유인가…….’
저항군의 간부들은 이따위 규칙은 무슬림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반발했지만 마수드의 생각은 달랐다.
현실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이 발전하기 위해선 그의 도움이 필요했다.
프랑스 등은 그를 비난하기에 바빴지만 한국이나 파티마의 자유스러운 모습을 보면 과연 폭압을 저지르는 압제자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어쩌면 그에겐 다른 목적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건 아마 파티마와 같은 사이커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요즘 타지크족 사이에서 블랙메탈을 자유롭게 변형시켜서 가지고 노는 아이가 늘어났다고 하니까…….
어쨌든 마수드는 이대로는 안 된다는 판단을 내렸다.
지금의 저항군과 타지크족에겐 생존이 절실했다.
그리고 방목장에 들어간다 한들 자유가 엄청나게 훼손될 것 같지도 않았다.
파티마의 얘기를 들어 보면 그랬다.
“메가시티는요, 범죄나 민폐를 저지르지 않으면 되게 살기 좋아요. 근무 시간이 빨리 끝나니까 여유가 많거든요? 공부를 해도 되고 그림을 그려도 돼요.”
이쯤 되면 판지시르에서 부질없는 저항을 계속하는 것보다 메가시티에 들어가는 것이 더 자유스러운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실제로 주민들도 한국의 상황에 대해 전해 듣고는 설레고 있었다.
더 이상 이런 산골짜기에 처박혀서 아궁이에 불을 때기 위해 하루를 보내지 않아도 된다면서 말이다.
마수드는 다시 칸다하르의 전경을 내려다봤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지만 외국에 비하면 깡촌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젊은 시절 영국에서 수학했기에 그들의 발전됨을 잘 알았다.
‘이제는 아프가니스탄에도 변화가 필요해.’
그것이 자력이면 좋겠지만 외부의 힘이라도 큰 상관은 없었다.
그는 유지하가 가르쳐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제안은 잘 검토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고 싶습니다. 여기에 건설될 메가시티의 이름… 내가 원하는 대로 지을 수 있겠습니까?”
“얼마든지요.”
“그렇다면 좋습니다. 주민들 이야기도 들어 봐야 하니 판지시르에서 만나지요.”
“곧 가겠습니다.”
유지하는 전화를 끊고 중얼거렸다.
“센트럴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지?”
“아프가니스탄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그 이름을 꼭 붙이고 싶었을 겁니다.”
“어쨌든 잘 됐어. 나중에 선물을 좀 많이 가지고 가야 할 거야.”
“신경 써서 준비하겠습니다.”
파티마의 사례도 있어서 사이커들을 데려오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어차피 메가시티가 건설되기 시작하면 그쪽에 다시 갈 테니까.
유지하는 세틀러호의 함교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며 상념에 잠겼다.
‘만주까지 흡수하면 메가시티 후보지는 얼추 완성이니까 이제 올리기만 하면 되는군.’
당연하지만 만주를 흡수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당장 중맹은 대규모의 병력을 랴오닝성에 주둔시켰다.
여력이 없을 텐데도 만주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여 준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상황도 심상치 않았다.
사리고만 있던 마츠다 간사장이 무슨 결심을 했는지 총선에 나가겠다고 발표했다.
우익들의 지지를 생각하면 총리 당선은 거의 확정적이었다.
그가 집권하면 헌법 9조에 대한 개정과 보통국가로의 전환, 재무장은 당연히 따라갈 것이다.
한반도를 사이에 두고 중맹과 일본이 힘을 합쳐 견제하는 모양새가 된다.
뒤에서 조종하는 것은 미국, 민주당이다.
나름대로 판을 잘 짜놨다고 생각하겠지만 유지하의 입장에선 어린아이가 재롱을 떠는 거나 다름없었다.
“우리는 우리 일만 하기로 하지. 화성에 플랜트 준비해.”
화성에서 자원을 캘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