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181
181화 유지하는 실망했다
유지하는 오랜만에 세틀러호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아르마를 앞에 두고 환자식을 먹고 있으려니 처음 동해에 도착해서 황당해하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와 달라진 건 날 생선도 제법 잘 먹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틀러호도 수리되었고, 메가시티도 완공까진 아니지만 적당한 궤도에 올랐다.
한 20년 정도만 고생하면 플레이그를 막는 데에는 문제가 없지 싶었다.
대부분의 문제는 아르마에게 맡겨두면 되지만 파일럿 육성은 그의 힘이 필요했다.
“이번에 뽑은 데이터를 분석해서 파일럿 시드를 조정해 봐.”
유지하는 이번 플레이그 스웜 요격에서 상당한 무리를 했다.
플레이그는 그의 적이므로 무리를 하는 건 당연하지만 제대로 된 전투 데이터를 뽑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최악의 상황에서 몸에 과부하를 걸어가며 플레이그 스웜에 어떻게 대처하면 되는지 데이터를 축적하고 싶었던 것이다.
플레이그 정규 병종에 대한 데이터는 세틀러호에 보관되어 있지만 스웜의 데이터는 빈약한 편에 속했다.
아무래도 전면전에서는 큰 쓸모가 없으니 뒷전으로 밀려났을 가능성이 높았다.
앉아 있던 아르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스터의 전투 데이터를 파일럿들의 훈련 목표로 설정하면 되겠군요.”
글쎄, 그건 무리가 아닐까?
유지하는 플레이그에 대해 이를 간 인류연합의 수뇌부가 비밀리에 만들어 낸 일종의 최종병기였다.
배아의 착상 단계부터 유전자를 코디하고 사이커와 파일럿 시드를 삽입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도록 디자인했다.
심장이나 폐, 세반고리관과 안구 등 대부분의 장기에 신소재가 도입되어 개조인간이라고 불러도 무리가 없었다.
그 몸으로 갈고닦은 전투 경험은 다른 사람은 흉내 내기조차 쉽지 않다.
“한계를 너무 높게 설정하면 시작하기도 전에 나가떨어질 위험이 있으니까 시드 능력치를 적당히 조절하는 게 좋을 거야.”
파일럿 시드로 훌륭한 육체를 제공했다 하더라도 그걸 실전에서 활용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유지하의 원본 시드를 함부로 제공했다간 자칫 평범 이상의 활약을 기대할 수 있는 파일럿이 망가질 위험이 있었다.
그의 생물학적인 아이들도 다소 그런 경향이 있었다.
한계는 높은데 자신의 실력이 따라가질 못하니 좌절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드 스펙은 낮추되 내 전투를 데이터화해서 파일럿들을 훈련시켜. 내 데이터라는 건 알려 주지 말고 최상의 상황에선 이 정도도 가능하다는 식으로.”
아르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패널에 몇 가지 자료를 입력했다.
“파일럿들이 절반만 따라갔으면 좋겠네요.”
“그게 가능하면 플레이그를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유지하 정도의 사이커가 10명만 있었어도 인류가 그렇게 멸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게 불가능하니 스펙을 낮춘 사이커를 양산하자는 게 아르마가 짠 계획이었다.
이 계획은 현재까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부족한 게 있다면 시간인데 플레이그의 공습이 날이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어서 어떻게 될지 몰랐다.
“다음에는 상위종이 다수 튀어나올지도 모르겠어.”
“지금 상태에서도 전투는 가능합니다만 메가시티 밖은 확실히 멸망하겠군요.”
“그쪽은 신경 쓸 필요 없어.”
유지하는 메가시티 밖의 인류에 대해서 동질감을 느끼고 가급적 도와줄 용의도 있지만 일정 시점을 넘어가면 그것도 불가능해진다.
메가시티는 강력한 폐쇄성을 띠고 있으며 그 자체로 완성된 세계이기 때문이다.
플레이그의 공습이 진행될수록 안의 상황과 밖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고 이는 격렬한 갈등을 불러올 것이다.
“아포칼립스 상황에선 누구나 아늑한 쉘터를 원하지. 하지만 쉘터는 충분히 협조성을 가지는 준비된 자만 들여보낼 거야.”
메가시티 밖의 사람들이 전부 비협조적이고 준비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껏 유지하를 반대하고 증오하는 사람들을 들여보낼 필요는 없었다.
유지하는 이번 사태에서 여전히 그를 지탄하는 목소리가 높다는 보고를 들었다.
“대단한 책임을 지라는 건 아니고 보다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애도를 표하는 정도면 만족하겠다고 합니다. 아마 국내의 비판적인 여론을 돌리겠다는 의도겠지요.”
“UN 총회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가 두 대통령에게 박살났다고?”
“그 과정에서 마스터의 이름을 조금 팔았다고 미안하다고 전해 왔습니다.”
“뭐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유지하도 인간이라 자신에게 호의적인 사람을 굳이 추궁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앞으로 최고평의회에서 한 자리를 맡을 인물들이고 하니 잘 데리고 가야지.
“아무튼 불만은 있어도 당장 큰 움직임은 없나 보군.”
“워낙 많은 피해를 입었으니까요. 나라가 망할 지경인 곳도 많습니다.”
“비서실장이 골치 아파 하겠는데. 빨리 가봐야겠어.”
적당히 눈치가 있는 사람이라 무리한 요청은 알아서 거부하겠지만 결단은 대통령이 내려야 한다.
유지하는 아르마가 건네는 피해 데이터를 살펴봤다.
백만 단위의 사상자가 나왔고 도시 수십 개가 완전히 기능을 상실했다.
그 외에도 교량이나 발전소 등 기반시설이 망가진 곳이 많아 복구까지는 10년 단위의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예상과 다르지 않군.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마스터께서 부담을 짊어지신 결과입니다.”
만약 유지하가 나서지 않았다면 사망자의 단위에 0이 더 붙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과거로 돌아왔기에 플레이그이 공습 시기가 빨라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었다.
“사과하라는 헛소리는 철저히 무시해. 단 사정을 설명하고 도와달라는 곳이 있으면 가능한 선에서 도와줘.”
“알겠습니다.”
메가시티와 그 밖의 세계는 이미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완전히 갈라설 시기는 아니었다.
아직까지 인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서로 바라는 게 있으므로 적당히 타협하는 게 좋다.
시간이 지날수록 문이 좁아져서 나중에는 완전히 닫히겠지만.
유지하는 최고평의회의 인선을 살펴봤다.
현재 메가시티는 관리국이 전적으로 통치하고 있지만 그 기능을 하나둘씩 최고평의회에 넘겨야 했다.
단숨에 모든 권리를 넘기면 혼란만 더해지므로 간단한 것부터 시작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예를 들면, 스마트팜의 생산 품목 조정.
현재 메가시티는 상당수의 식량을 자체적으로 조달하고 있지만 품목이 적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치즈의 경우 놀랄 만큼 저렴하게 생산할 수는 있지만 종류가 적어 유럽이나 미국에서 온 이주민들의 수요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걸 평의회에서 협의해 적당히 조절하는 것이다.
다만 인공지능의 관리 하에 이뤄지는 것이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권한을 양도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아무튼 이 인선에는 배성민 비서실장이 포함되었다.
스스로는 유지하를 모시는 것으로 공무직은 끝이라고 말했지만 거기에서 끝내긴 아까운 사람이었다.
“지금 완전시민이니 자격은 되는군. 이번 기회에 진지하게 얘기를 해봐야겠어.”
“각국 정치인들에게 너무 시달려서 거절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그것도 그렇군.
술 한잔 하면서 사람이 없다는 고충을 토로하면 넘어올 것 같았다.
유지하는 식사를 하며 향후의 로드맵을 살폈다.
“의료 분야는 유전공학부터 진행하면 되겠군. 단 영혼교환기는 공개하면 안 돼.”
“네. 그건 세틀러호에 보관할 예정입니다.”
플레이그를 물리친 후 최고평의회가 권력을 장악하게 되면 유지하의 책임은 끝난다.
역사의 뒤편으로 퇴장해야 하는데 아르마를 데리고 가는 게 아쉬웠다.
강인공지능은 개척선단보다는 인류연합에서 더 잘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넌지시 의향을 물어보니 아르마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화성에서 마스터를 주웠을 때부터 저는 마스터의 것이었습니다. 아이도 낳아야 하니 선지자의 고향까지 따라갈 겁니다.”
“아무것도 없어서 우주미아가 되면?”
“그럼 마스터와 여행이나 하면 되겠네요.”
생각이 너무 확고해서 바꾸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뭐 어쩔 수 없지.
둘이서 우주여행을 하는 수밖에.
* * *
유지하는 4일 뒤 청와대로 돌아왔다.
기다리고 있던 것은 배성민 비서실장을 비롯한 비서진 일동과 왕쉬안 주석이었다.
이이기를 들어 보니 이틀 전에 서울에 왔다고 한다.
“한창 바쁠 사람이… 왜죠?”
유지하는 시치미를 떼고 물었고 배성민은 최대한 순화해서 말했다.
“중국 외교관이 UN 총회에서 대통령님께 다소 실례되는 발언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요? 못 들었는데… 회의록 좀 봅시다.”
유지하는 비서가 가져다준 회의록을 읽은 뒤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나에 대한 악감정이 심한 모양이군요.”
“일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번스타인 대통령과 미하일로프 대통령이 열심히 싸워 주신 덕분에 지금은 다들 진상을 알아차린 상태입니다.”
“이러려고 목숨 건 게 아닌데…….”
어깨가 축 쳐져서는 회의록을 던지는 걸 보면 어지간히도 실망한 모양이다.
배성민은 집무실까지 따라 들어가 상관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며칠간 회복에 전력해야 할 정도의 부상을 입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누가 그런 대통령님의 노고를 무시하겠습니까?”
“비서실장이 알아주니 그나마 좀 낫군요.”
그러던 중 유지하가 최고평의회 이야기를 꺼냈다.
“메가시티 관리국 기구 중에 최고평의회란 것이 있습니다. 비서실장도 들어 봤죠?”
“이름은 들어 봤습니다.”
호칭에서 알 수 있듯이 앞으로 인류연합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가 될 거라는 관측이 파다했다.
다만 현 상황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하지는 않고 있었다.
“거기 의원을 뽑고 있는데… 비서실장도 들어갔으면 합니다.
“예? 제가요?”
눈을 크게 뜨는 걸로 봐서 생각지도 못한 모양이다.
유지하는 그의 옆을 스윽 지나치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인류연합 전체를 통치할 기구입니다. 완전시민만 가능하고, 투표권도 그들에게 있습니다. 다만 나는 그 전에 자격이 있는 사람들을 후보로 천거하고 싶습니다. 그래요. 비서실장 같은…….”
배성민은 기대하는 듯한 상관의 목소리에 당황했다.
그는 비서실장을 끝으로 정치 활동을 마감하려 했었기 때문이다.
정치인치고는 나이가 젊지만 인류연합의 대통령을 모신 마당에 무슨 활동을 더 하겠는가?
자식들도 다 키웠으니 와이프와 함께 메가시티 사우스에 들어가 여생을 편하게 지내고픈 생각뿐이었다.
“저는…….”
“잘 알겠지만 뭐든지 시작이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고평의회에는 중요한 사람들을 두고 싶군요. 번스타인 대통령이나 미하일로프 대통령 같은… 후자는 나이가 좀 있어서 오래 활동하지는 못하겠죠. 하지만 기틀을 잡는 정도라면 충분할 겁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과 같은 자리에서 인류연합을 운영하라는 뜻이다.
배성민은 그건 못하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상관이 자기만 바라보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인류에게 실망한 그를 다시 실망시켜도 되는 걸까?
유지하가 천천히 끊어 말했다.
“비서실장이라면 최고평의회에서 충분히 활동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당장 거기에 전념하라는 건 아닙니다.”
“그…….”
“인선은 언제나 어렵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비서실장이 최고평의회에 들어가 준다면 안심할 수 있겠죠. 내 측근이잖습니까.”
파리하고 초췌한 얼굴을 어필하는 상관의 앞에서 차마 못하겠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배성민은 고개를 떨어트리며 알겠다고 답했고 유지하가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좋은 선택입니다. 의원이 되면 혜택도 있으니까 메가시티 관리국에 연락해 보세요. 그리고 왕쉬안 주석을 좀 만나봅시다.”
잠시 후 집무실에 들어온 그는 유지하에게 살려달라고 말했다.
“뭘 살려달라는 말입니까?”
“이번에 피해가 너무 큽니다. 도와주시지 않으면 진짜 망하게 생겼습니다.”
유지하가 상하이 근처에서 포드를 요격하긴 했지만 그게 전부인 건 아니었다.
시간상 요격하지 못한 포드가 중국 동부를 덮쳤고 무너진 도시가 2개나 되었다.
거의 4천만 명에 달하는 이재민이 생겼고 간신히 복구하기 시작한 발전소 설비도 잿더미가 되었다.
이래서야 진지하게 망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드는 게 정상이다.
“그래요? 하지만 중국 국무의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더군요.”
“UN에서 대통령님께 불손한 발언을 한 놈은 이미 숙청했습니다. 조만간 사형입니다.”
“아니, 뭐 사형까지야… 어쨌든 요청사항이나 들어 봅시다.”
“메가시티가 필요합니다.”
역시 그건가.
이번 플레이그 스웜 사태로 메가시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독재자의 잔인한 수용시설에서 인류의 보존을 위한 방주로.
심지어 드론과 CP 제도에 대해 독설을 아끼지 않았던 유럽의 인권주의자들도 말을 아끼기 시작했다.
유럽을 덮친 플레이그 스웜은 수십 개의 도시를 완전히 마비시켰다.
오로지 메가시티만이 그 재난에서 멀쩡하다 보니 생각이 바뀌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유지하가 물었다.
“혹시 메가시티에 들어가는 재원이 얼마인지 압니까? 메가시티는 결코 공짜가 아닙니다.”
“잘 모릅니다. 하지만 중국은 어떤 대가라도 치를 의향이 있습니다.”
“내 입장에서 말해 볼까요. 나는 중국에 납치를 당할 뻔했고, 목숨을 위협당하기까지 했습니다. 전쟁까지 치렀죠. 그런 마당에 미국이나 독일과 같은 대우를 해달라는 건 넌센스 아닙니까?”
백번 옳은 말이다.
유지하와 중국 간의 관계는 결코 편하지 않았고 그건 현재진행형이었다.
중국 내부에선 지금도 유지하에 대한 성토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단지 왕쉬안 주석이 그걸 찍어 누르고 있을 뿐이다.
그는 그것에 대해 변명하려 했지만 유지하의 말이 먼저였다.
“그리고 다들 메가시티에 관해 환상을 갖고 있더군요. 기본적으로 인공지능이 관리하되 자신들이 감독하겠다고 많이들 요청하던데, 그건 내가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메가시티의 달콤한 과실만 따먹겠다는 거 아닙니까?”
또한 메가시티에 대한 인식이 많이들 나아졌지만 소유권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었다.
많은 유럽인들은 독일에 지어지고 있는 메가시티를 비판하기 바빴다.
―메가시티는 인류연합의 소유물이다. 자국에 그걸 위한 땅을 내어준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전체적인 관리는 인공지능에게 맡기더라도 이탈리아의 소유이며 이탈리아 정치인이 통제한다는 확답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메가시티를 도입할 수 없다.
그러니까 인류연합이 만들어 주면 자신들이 감독하겠다는 것이다.
유지하 입장에선 받아들일 이유가 없었다.
“재주는 곰이 넘고 이득을 취하는 것은 자신들… 나는 그런 식의 메가시티는 만들 수 없습니다. 모든 메가시티는 인류연합의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러시아나 미국, 독일도 같은 조건입니까?”
“러시아는 아예 인류연합에 통합될 준비를 하고 있잖습니까? 다른 두 국가에 있는 메가시티도 인류연합이 통제합니다.”
왕쉬안 주석은 머뭇거리다 마했다.
“메가시티 하나에 1조 위안을 드리겠습니다. 대통령님께 드리는 작은 성의입니다.”
“아직도 돈 얘기를 하시는군요. 그게 무슨 가치가 있다고.”
돈이야 찍어내면 그만 아닌가?
부작용이 심하겠지만 중국이 그걸 감당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왕쉬안 주석은 그런 말을 들었음에도 소유권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어떻게든 1개만 지어주시면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중국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면 거절하겠습니다. 어떤 조건을 들이밀어도 그건 바뀌지 않을 겁니다.”
단호한 입장에 왕쉬안 주석은 본전도 못 찾고 돌아갔다.
각국에서 제출한 회담 내용을 봐도 거의 비슷했다.
“메가시티를 자신들이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어처구니가 없군.”
많은 돈을 제시하고는 있었지만 메가시티엔 가치를 매길 수 없었다.
인구 1억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이 그리 값싸겠는가?
인류연합의 힘으로도 10년 이상 공을 들여야 했고 강인공지능인 아르마가 아니면 관리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거기에 들어가는 자재로 평범한 도시를 만든다면 뉴욕이 100개는 튀어나올 것이다.
그런 비싼 도시를 저렴하게 사들여서 자신들이 관리하겠다는 심보는 대체 뭐라고 해야 할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유지하는 각국의 사태 인식에 실망했다.
플레이그 스웜에 당하면 보다 진지하게 통합 논의가 이어질 거라고 여겼고 유지하도 그건 허용할 수 있었다.
당초 아르마의 계산이 15억이었으므로 조금 늘어나도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각국 정치인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권력 유지에 몰두하는 모양새였다.
유지하는 아르마를 통해 각국의 제안 내용을 확인하고 비서실에 연락했다.
“메가시티 도입을 제시한 국가의 정상회담은 전부 취소하세요.”
아쉬움의 목소리가 빗발쳤지만 사전 조율이 안 된 상태로 만나는 건 시간낭비였다.
수십 건의 회담이 취소되었고 배성민을 비롯한 비서진은 스케줄을 재조정하기 위해 야근을 해야 했다.
* * *
유지하는 회담 대신 번스타인, 미하일로프와의 회의에 돌입했다.
낯 뜨거운 칭찬 시간이 넘어갔고 번스타인 대통령이 핵심적인 내용을 언급했다.
“이제 확실해졌습니다. 인류는 메가시티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은 둘로 쪼개질 겁니다.”
“남은 사람들이 동의하겠습니까?”
“동의할 수밖에 없죠. 서부 해안만 가지겠다는데. 하와이나 괌은 자체 투표를 해서 어느 쪽에 소속될 건지 물을 겁니다.”
건국 258년 만에 미합중국이 쪼개질 위기에 처했다.
“캘리포니아와 오리건 주에 이어 워싱턴까지 긍정적인 답변을 해왔습니다. 곧 분리위원회가 설치될 거고 투표를 시작할 겁니다.”
서부 해안만 뚝 떼어내서 인류연합에 소속시키겠다는 과감한 구상이었다.
반발이 없을 리 없지만 남은 땅을 자신들이 운영할 수 있다는 데에 많은 미국인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았다.
―우리는 결코 인류연합과 함께할 수 없으니 이참에 갈라서는 게 맞다.
―플레이그 스웜에 당한 도시가 한 둘이 아닌데 괜찮을지 모르겠다. 메가시티만 멀쩡했는데 그쪽의 도움을 받는 것이 맞지 않나?
―인류연합은 우리와의 회담을 취소했다. 메가시티는 못 내어주겠다는 거다.
엄밀히 말하면 유지하는 메가시티의 소유권을 못 넘겨주겠다고 말한 것뿐이었다.
어지간한 국가급의 재원이 투입되는데 그걸 화폐 따위에 넘기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각국의 정치인들은 러시아나 미국, 독일은 뭐냐고 투덜댔지만 인류연합과 특별한 관계라는 것을 간과한 주장이었다.
머지않아 양자로 들일 텐데 지금 집 한 채 사준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문제는 그런 정치인들의 선동에 휩쓸려 부화뇌동하는 사람들이었다.
유지하는 더 이상 그들에게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조만간 메가시티의 문이 좁아질 겁니다. 방어시스템은 이미 준비되었고 메가시티는 완벽한 자급자족 도시로 거듭날 겁니다. 메가시티끼리의 연결이 끊어져도 최소한 식량만큼은 수급할 수 있습니다.”
각 메가시티가 자체적인 에너지 수급원과 스마트팜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메가시티 아프간은 그런 면에선 다소 부족했지만 조만간 해결될 것이다.
“슬슬 통합을 시작해야겠군요.”
“최대한 많은 사람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나 조건은 결코 낮추면 안 됩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한 폭력적인 언행을 메가시티 안에서 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단순히 유지하 헤이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중범죄자와 음모론자, 종교시설을 지어달라고 떼쓰는 신도들까지 포함한 개념이었다.
그 외에도 여러 세부적인 조건이 있으며 메가시티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누군가는 유지하에게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그럼 메가시티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은 어쩌란 거냐? 다 죽으란 거냐?
유지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그 사람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그에게 인류 전체를 책임지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였다.
하지만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세계 경제는 나락으로 향하고 있었고 물류마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식량 수입이 안 되어 배급제가 시작된 국가도 있었다.
폭동이 일상화되어 치안이 불안정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메가시티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은 차고 넘쳤다.
하지만 메가시티의 문은 시간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