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190
189화 선지자의 아이들
“대통령님,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자세히 얘기하면 깁니다만,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군요. 내가 미래에서 왔다는 건 얘기했지요?”
“예… 2180년에서 오셨다고…….”
“하지만 어떻게 왔는지는 모르지요?”
그거야 그렇다.
상식적으로 22세기 인류연합의 인물이 한국인 얼굴이었을 리는 없을 테고, 유지하도 그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은 하지 않았다.
배성민의 입장에선 꼭 알 필요는 없으니 굳이 호기심을 가지지 않았다.
만약 알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가 설명해 주겠거니 생각했던 것이다.
이제 오랜 기다림이 풀리려 하고 있었다.
“나는 혼자서 온 게 아닙니다. 인공지능 아르마와, 우주선 한 척과 함께 왔죠.”
“우주선이라면 그 어스 플릿의…….”
“아닙니다. 그보다 훨씬 거대한 녀석입니다. 세틀러호라고 하는데 전장 700미터가 넘어가죠.”
“그렇게 큰 우주선이 있었다고요?”
현재 인류연합에서 가장 거대한 우주선은 유지하급 1번함 유지하함이다.
이름은 좀 그렇지만 전장이 500m에 달해 기존의 전투순양함에 비해서 확실히 크다.
하지만 그 전함마저도 세틀러호에 비한다면 어린아이처럼 보일 것이다.
배수량에서 2배 가까이 차이가 나니.
“세틀러호는 방주선이자 개척선단의 기함입니다. 개척선단의 목표는 나중에 설명하기로 하고, 나는 그 우주선을 타고 지구에 왔습니다. 2025년 가을 동해에 착륙했죠.”
배성민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물었다.
“혹시 그때 일어났던 해일이…….”
“세틀러호가 착륙하면서 일으킨 겁니다. 나는 해저에 잠겨 있으면서 앞으로의 일을 계획했죠.”
“그리고 당시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던 한국인 유지하의 육체로 영혼을 옮겼습니다. 선지자의 유물 중 하나죠.”
인간의 영혼을 옮길 수 있다고?
배성민은 갑자기 숨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그… 도저히 믿기지 않습니다만…….”
“그냥 그런 게 있다는 수준으로 받아들이십시오. 나는 물론이고 아르마도 그 유물의 원리를 모릅니다.”
하긴 선지자의 유물이 대개 그런 식이긴 하다.
핵융합로에 쓰이는 열변환기조차 그 원리를 알아낼 수 없어 연구진들이 밤낮을 새고 있는 실정이었다.
영혼을 옮기는 건 그런 차원을 넘어선 감이 있지만 일단은 들어 보기로 했다.
“그 영혼교환기를 통해 나는 유지하의 행세를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타고 온 우주선은 숨겨 두었죠.”
“혹시 지금은 어디 있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녹스에 있습니다. 태양계의 9번째 행성 말이죠.”
배성민은 황당함에 입을 쩍 벌렸다.
“그게 실존하는 행성이었습니까?”
“과학계에선 한 30년 전부터 존재는 확실시되고 있었습니다. 단지 거리가 너무 멀어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죠.”
“혹시 세틀러호가 거기에 있는 이유는…….”
“거기에 워프게이트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우주, 선지자의 고향으로 통하는 일종의 문이죠.”
선지자는 배성민뿐만 아니라 인류연합의 정치인들 중 아는 사람이 꽤 있었다.
하지만 그가 정확히 어떤 존재인지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최근에는 존재감마저 희미해졌다.
선지자의 유물은 철저히 통제되어 유지하의 그림자에 가려졌기 때문이다.
시민들 중에선 인류연합의 모든 발명품과 기술력이 강인공지능에서 파생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뭐가 개발되었다 하면 관리국 아니면 산하 연구소에서 발표하니 그럴 수밖에.
“선지자의 고향은 어떤 곳입니까?”
“거기에 뭐가 있는지 어떤 곳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럼 아무 의미도 없군요.”
“내가 이 시대로 오면서 결심한 것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반드시 플레이그를 박멸하겠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선지자의 고향으로 가겠다는 겁니다. 개척선단의 목표도 그거였습니다.”
그제야 배성민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유지하는 지구를, 인류연합을 떠나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설마 대통령님, 인류연합을 버리실 겁니까?”
“버리는 게 아니라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뿐입니다. 설마 내가 독재자 노릇을 했던 게 정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죠?”
“하지만 무엇보다 필요한 조치였습니다. 대통령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플레이그에게서 살아남는 전제하에서는 그렇겠죠. 그들이 없어져도 여전히 독재체제를 유지할 필요성이 있습니까?”
배성민은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었다.
그러니까 대통령은 독재의 선악이 아니라 필요성의 차원에서 말하는 것이다.
“나는 독재가 필요악이냐 악이냐를 가르려는 게 아닙니다. 플레이그와 내가 사라진 세상에서 독재는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싶은 겁니다.”
배성민은 유지하가 없는 세상에 대해서 쉽게 떠올리지 못했다.
그가 살아온 세월도 꽤 되었지만 최근 20년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플레이그가 사라지더라도 이런 체제를 지속하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극도로 낮은 범죄율을 바탕으로 한 사회 안정성은 물론이고.
인공지능이 대부분의 생산수단을 점유하고 있어 자원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거기에 빈부격차가 극도로 줄어들어 시민들이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메가시티에서 가장 높은 직위를 가진 유지하 대통령과 보통시민이 받는 수당의 격차는 겨우 20배에 불과했다.
이는 사회 최하위 계층에도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하여 범죄율을 0에 가깝게 낮추는 결과를 가져왔다.
나태함이나 창의성의 저하 등 단점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용납 가능한 정도였다.
어차피 대부분의 기술 개발은 강인공지능이 진행하고 연구원들은 추종하기 바쁘기 때문이다.
유지하의 목소리가 배성민의 생각에 비집고 들어왔다.
“그 모든 장점은 루시아가 있다는 전에하에 성립되는 겁니다. 그렇죠?”
“예, 아무래도 그렇죠.”
“나도 루시아가 없었다면 독재는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겁니다. 그 루시아가 나와 함께 선지자의 고향으로 갑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배성민은 그제야 문제의 본질을 깨달았다.
대통령과 그를 주인으로 모시는 인공지능은 선지자의 고향으로 떠나야 한다.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
대답하지 못해 입을 다물고 있는데 유지하, 아니, 유진이 다시 말했다.
“재차 물었습니다만 생각을 바꿀 수는 없다고 하더군요. 꼭 나와 함께 선지자의 고향에 가야겠답니다.”
“그렇다면 대통령님도…….”
배성민이 말을 하다 말자 유진이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나는 이 시대와 관련이 없는 사람입니다. 부모조차 버렸고 비서실장을 제외하면 친한 사람도 거의 없으며 플레이그를 박멸하면 의무도 끝납니다.”
유진은 인류가 플레이그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 낸 인간이다.
최근 만들기 시작한 군단타격함대의 파일럿과 큰 차이는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플레이그 박멸이 운명이고 의무인데 원래의 시간대에서는 실패했다.
이 시간대에서라도 그것을 성공시킨다면 의무는 끝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이 시간대에 머물 이유가 사라진다.
배성민은 그가 친한 사람으로 자신을 꼽았다는 게 은근히 기뻤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이해합니다만 대통령님, 플레이그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 얘기는 그때 가서 하는 게…….”
“워프게이트가 언제 사라질지 알 수 없으니 서둘러야 합니다. 그리고 이 준비는 플레이그와의 전쟁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이 정도라면 선지자의 고향에 가겠다는 결심을 바꿀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인공지능도 따라간다고 했으니 메가시티와 인류연합도 멀쩡하진 않을 것이다.
유진이 원하는 건 그 준비를 미리 해야 한다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대통령님이 황금궁전을 세우고 시민들을 억압하는 이유는…….”
“더 이상 독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독재란 양면의 칼날과 같아서 자신들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겠죠.”
“그렇게 극단적일 필요가 있었을까요?”
“비서실장도 얼마 전에 있었던 플레이그의 침공 사건에서 여론이 바뀐 걸 봤을 겁니다.”
“예…….”
“10년 이상을 안락하게 지내놓고 조금 불편해지자 불평불만을 털어놓습니다. 그걸 비난하는 게 아닙니다. 나도 그랬을 거니까요.”
그러니까 유진의 말은 그가 만든 시스템 자체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동시에 배성민은 그 시스템이 사라졌을 때 시민들이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도저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플레이그를 박멸한 뒤의 일입니다만, 나와 루시아는 선지자의 땅으로 떠납니다. 인류연합과 메가시티를 지탱하는 시스템이 사라진다는 소리겠죠. 그러므로 시민들은 그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합니다. 비서실장 정도면 그 준비를 할 수 있을 겁니다.”
배성민은 깜짝 놀라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예? 제가요?”
“독재자로는 만족 못하고 영원한 권력을 추구하는 사악한 황제의 반대편에 선 민주주의 투사 정도면 어떻습니까? 시민들이 아주 잘 따를 것 같은데.”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저, 전 못합니다. 능력도 의지도 없습니다. 시민들도 받아들이지 않을 거고요.”
“영웅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거란 말도 못 들어 봤습니까? 여기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이대로 따라하면 됩니다.”
“…….”
참으로 자세하면서 먹먹한 시나리오였다.
자신이 이걸 거절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내민 것이다.
‘차라리 이게 낫지…….’
그는 유진이 뭔가를 꾸미고 있었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황제가 되려 하는 등 이해하지 못할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해야 한다…….’
유지하라는 이름을 깔고 자신이 그 위에 올라서고 싶진 않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의 결심은 확고하고 자신의 충성심도 아직은 유효한 모양이니까.
다만 궁금한 것은 이렇게 해도 분열은 피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대통령님과 루시아가 사라진다면 결국 인류연합의 분열은 확정적일 겁니다. 구심점이 없어지니까요.”
“그게 자연스러운 겁니다.”
“자연스럽다는 말씀은…….”
“내가 오기 전의 세계가 비정상적인 것은 아니잖습니까?”
“그렇긴 하죠.”
“80억의 인구가 있으면 80억 개의 사상이 있는 겁니다. 인류연합과 메가시티는 플레이그에 대비한 총력전 태세일 뿐이었습니다. 플레이그가 사라진다면 그것들도 자연스레 사라져야죠.”
“다만 나는 창조주로서 인류가 그걸 요긴하게 썼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메가시티를 기반으로 발전을 해나가면 좋겠죠.”
유진은 선악이라는 기준을 거부한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필요성뿐이다.
그는 독재를 했지만 그게 자신에게 이득이 되어서가 아니었다.
‘인류를 보존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이제 플레이그가 박멸된다면 인류는 그에게 큰 빚을 지게 된다.
하지만 그걸 갚을 길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먼 길을 떠나기 때문이다.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는 채.
“…하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게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는데. 아무튼 말해 보십시오.”
“언젠가 대통령님이 일을 끝마치셨을 때…….”
유진은 짐작했다는 듯 말했다.
“그건 아마 어려울 겁니다. 편도 50년이나 걸리니까요.”
“예?”
“세틀러호의 순항속도로 50년이 걸리는 곳입니다. 뭐가 있을지도 모르니 귀향은 꿈도 꿀 수 없겠죠. 그러니 약속은 어렵습니다.”
“그런 길을 꼭 가셔야겠습니까…….”
“나는 선지자의 아이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죠. 목숨이 다하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그를 만나야 합니다.”
만나서 무슨 말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유진의, 아니, 유지하의 마음을 바꿀 수는 없다는 것.
그래서 배성민은 하고자 했던 말을 털어놓기로 했다.
“언젠가 대통령님이 모든 의무를 끝마치셨을 때, 이곳으로 돌아오겠다고 약속해 주십시오. 그럼 저도 이 일을 맡겠습니다.”
물론 그가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고 자신이 살아있으리란 보장은 더더욱 없다.
그럼에도 약속받고 싶었다.
화면 속 유진의 얼굴 표정이 잠깐 흔들리는 것 같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약속하죠. 가능하다면 꼭 돌아오겠습니다.”
그때가 되면 인류는 빚을 갚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새로운 빚을 안기게 되거나.
* * *
황금궁전의 건설이 끝나 준공식이 열렸다.
유지하 대통령은 역대 최대의 화려한 준공식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비좁은 메가시티 특성상 그런 게 가능할 리 없었다.
준공식을 성대하게 열려면 주변 건물을 철거해야 한다.
놀랍게도 대통령은 그렇게 했다.
관리법에 보장된 시민들의 권리를 헌신짝 버리듯 하고 쫓아낸 것이다.
수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쫓겨나 거주지를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었고 이는 엄청난 반발을 불러왔다.
―아무리 대통령이라지만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 완전시민을 쫓아내다니.
―완전시민은 자유롭게 거주지를 옮길 권리가 있다. 이건 폭거다.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대통령이 이상하다.
대통령이 이상하다는 건 전부터 많이 나왔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확실히 굳어졌다.
시민들의 불만이 하늘을 찔렀지만 그는 그것들을 무시한 채 준공식에 참석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최초로 황제라는 단어가 나왔다.
본격적으로 황제를 자칭하진 않았지만, 황제가 살 만한 궁전 등으로 포장한 것이다.
그 연설을 들은 시민들은 하나같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황제라니 미친 거 아닌가?
―권력을 이양한다 해놓고 황제는 대체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
반응은 극히 좋지 않았다.
가장 열정적으로 유지하를 지지하던 사람들도 아 이건 좀 하고 한 발 물러섰다.
무엇보다 유지하의 최측근이었던 배성민 의원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 결정타였다.
“이로서 우리는 절대자의 부패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누구든 실수를 하고 보통 시민의 실수는 시스템으로 보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절대자의 실수는 그 어떤 것으로도 보완이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합니다.”
배성민 의원의 논리는 이랬다.
―반응탄의 몇 천배 위력을 가진 폭탄이 아무런 제재 없이 돌아다닌다고 해보자.
―우린 그 폭탄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저지할 방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그 폭탄이 실수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닥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그 폭탄을 해제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이전에 미국이 내세운 맹견론과 같은 논리였다.
그의 의견에 동감하는 사람이 늘어났지만 그 힘을 어떻게 가질 것이냐에 대해선 의문이 있었다.
인류연합의 힘은 전부 대통령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여튼 배성민 의원 주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대통령은 그것을 방관했다.
보통 사람도 아니고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사람이라 상징성이 엄청난데 왜 방관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인류연합을 감싸는 가운데 플레이그의 두 번째 침공이 있었다.
수천 마리가 넘는 플레이그 비스트급이 지구 근처에 나타났다.
지구주역사령부에서 즉각 대응에 나섰지만 모든 플레이그를 요격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었다.
거의 10%에 달하는 플레이그가 살아남아 지구로 낙하했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피해가 생겨났다.
플레이그 자체가 운석이 되어 지구를 폭격한 것이다.
1만 톤이 넘어가는 무지막지한 질량이 세계 곳곳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메가시티는 폐쇄 중이었고 적극적으로 요격에 임한 탓에 큰 피해는 입지 않았지만 루시아의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났다.
시민들이 그것을 알게 된 것은 핵융합로가 멀쩡함에도 전력이 끊긴 지역이 많다는 것에서부터였다.
그것은 드론과 안드로이드에도 어김없이 적용되어 주변의 치안이 완전히 무력화되었다.
메가시티 퍼시픽의 서부지구에서 시민들의 불만이 시위라는 형태로 터져 나왔다.
―완벽하다는 메가시티 시스템이 겨우 이 정도냐?
―음식도 물도 없으면 굶어죽으라는 거냐?
―더 이상은 못 참겠다! 대통령이 직접 나와서 해명해라!
수십만 명이 시위에 나섰으나 곧 출동한 방어 시스템에 의해 무력화되었다.
주동자 수십 명이 끌려 나갔고 그 중에는 배성민 의원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수십 대의 카메라 앞에서 시민들에게 외쳤다.
“오늘을 기억하십시오! 이것이 자유와 권리를 한 명에게 위임한 대가입니다! 눈을 뜨고 귀를 여십시오! 그러지 않는다면 더 큰 대가를 치를 겁니다!”
중계는 곧 중지되었지만 인류연합의 시민들은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들었다.
그리하여 배성민 구명운동이 시작되었다.
각지에서 평화시위가 열렸고 유지하 대통령은 그런 움직임이 귀찮아졌는지 구금해두었던 시민들을 풀어주었다.
덕분에 시민들 사이에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퍼졌다.
―인공지능도 메가시티도 완벽한 게 아니다. 우리는 권리를 스스로 쟁취할 수 있다.
―대통령은 자기가 황제나 되는 듯 착각하고 있다. 인류연합이라는 이름도 인류제국으로 바꿀 모양이다.
―그는 더 이상 예전의 대통령이 아니다. 우리가 막아야 한다.
하지만 시민들에겐 힘이 없었다.
그 힘을 가진 통합우주군은 전적으로 인공지능의 지시를 받고 있었다.
지구와는 완전히 분리된 생태계에서 살고 있는지라 메가시티의 격앙된 분위기를 접하기 힘들었다.
“지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 같은데 괜찮은지 모르겠네요.”
“신경 꺼. 우린 플레이그를 막는 것만 집중하면 돼.”
최근 통합우주군의 관심사는 플레이그와 유진으로 요약할 수 있었다.
전자는 당연한 것이겠지만 후자가 특이한데, 선지자의 유물을 몸으로 흡수했다.
화성에 도착한 선지자의 유물을 회수하라는 임무를 맡겼더니 그걸 홀라당 먹어버린 것이다.
당시 상황을 보면 빛 덩어리가 유진이 탄 어설트 아머에 흡수되었다.
기체는 달라진 게 없으니 그의 육체가 흡수한 게 분명했다.
2함대 지휘부의 고민이 깊어졌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흡수한 것 같은데 내놓으라고 할 수도 없고 난감하군.”
“상부에 보고는 했는데 어째 답변이 없습니다.”
“무시해. 어차피 달라질 건 없으니까.”
메디컬 체크가 이어졌지만 큰 이상은 없는 모양이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유진의 몸에서 뿜어지는 사이필드가 보통을 넘었다는 점이었다.
사이커가 많은 통합우주군 특성상 그는 엄청난 존재감을 뿜어냈다.
파일럿들은 그를 만난 뒤 이렇게 말했다.
“이 느낌을 이해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왜 엄청나게 존경하거나 숭배하는 사람을 직접 만났을 때 가슴이 뛰잖습니까. 도저히 눈을 쳐다볼 엄두가 안 났습니다.”
“존재감이 엄청납니다. 어딜 가도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대화를 주도적으로 이끕니다.”
애초에 실력도 워낙 높았던 터라 파일럿들은 자연스럽게 그를 따르게 되었다.
중위에 불과한 계급은 문제가 아니었다.
심지어 처음에 유진을 아니꼽게 봤던 소냐마저도 더 이상 그를 배척할 수 없었다.
그에게서 아빠와 흡사한 분위기가 풍겼기 때문이다.
‘이상해… 왜 저런 남자에게서 아빠의 향기가 나는 거지?’
그녀는 어릴 적 아빠의 품에 안겨 있을 때의 향기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잠이 들 것 같은 익숙하고 편안한 느낌이었다.
정작 그 아빠는 최근 많은 시민들에게서 비판을 받고 있지만, 그녀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한편 유진은 또다시 선지자의 유물을 습득하고 고민에 빠졌다.
사이필드가 더 강해진 덕분에 존재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제는 평범한 사이커도 내 존재감을 느낀단 말이지.”
“덕분에 인기 좋잖아요.”
세가 있다는 건 뭐 나쁘지 않지만 그게 플레이그에까지 영향을 끼치면 곤란했다.
사이커들이 느낀 그 존재감을 플레이그가 못 느낄 리는 없기 때문이다.
유진이 선지자의 유물을 다시 흡수해 강해진 것을 질시해서였을까?
태양계 명왕성 부근에 강렬한 에테르 폭풍이 불었다.
수많은 플레이그 사이로 직경 1,000km가 넘어가는 낡은 구조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류연합이 둥지라 불렀던 그것이다.
유진과 둥지의 주인은 거의 동시에 서로의 존재를 눈치챘다.
“상당히 빨리 왔군.”
플레이그 퀸과 둥지가 태양계에 출현했다.
그녀는 도착하자마자 사념파를 모든 사이커에게 보냈다.
―우리는, 선지자의 아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