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191
190화 그녀의 목소리
원래의 역사에서 플레이그란 이해할 수 없는 우주괴물이었다.
수많은 행성을 먹어치우고, 끝없이 군단을 불린 끝에 인류를 파멸시키기에 이르렀다.
그 과정에서 제대로 된 의사소통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지구와 인류를 공격했을 뿐.
그러나 플레이그가 지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일정 등급부터는 자아가 있었고 최상위 개체인 타이탄과 퀸에 이르면 인간 이상의 지능을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만 인류가 그걸 인식할 수 없었기에 별 의미는 없었다.
어지간한 사이커는 물론이고 유지하 대령마저도 플레이그 퀸이 울부짖는 소리밖에 듣지 못했으니까.
그런 점에서 이번 플레이그 퀸이 사이커 전체에게 대화를 건 것은 매우 특이한 일이었다.
―우리는, 선지자의 아이들이다.
유진은 물론이고 로저스 대위를 비롯한 다른 파일럿들도 놀랐는지 벌떡 일어났다.
“뭐야 이거? 누가 나한테 말을 건 거야?”
“여자 목소리인 것 같은데…….”
이 목소리의 주인공을 유진은 잘 알고 있었다.
유물해석기관 아크의 수장이자 그의 연인이었던 루시아 로자노의 목소리다.
플레이그 퀸이 왜 그녀의 목소리로 사이커 전체에게 의사를 전달했을까?
‘그녀는 죽었는데…….’
정확히 말하면 유진은 그녀가 죽은 것을 보지 못했다.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3년 동안 전장에서 떠돌아다니다가 회복된 후 지구를 찾아가 보니 멸망해 있었을 뿐이었다.
지구의 지각이 부서져 있었으니 인류는 멸종했다는 결론을 내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유일한 가능성은 납치.
‘…설마 인간들을 데려간 건가.’
굳이 루시아의 목소리로 의사를 전달하는 걸 보면 소통의 창구로 써먹기 위해 데려갔을지도 모르겠다.
그 경우 루시아를 비롯한 인간들의 생존은 바라기 힘들 것이다.
‘죽었다고 생각하는 게 좋겠군. 하지만 의문점은 남아…….’
이 시간대의 플레이그 퀸이 루시아를 만났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그녀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을 시점이기 때문이다.
‘나와 같이 시간을 거슬러 온 건가? 그게 아니라면 기억을 공유하는 다른 개체인가.’
그녀가 쓴 우리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것이다.
다만 명왕성 주역에 출현한 플레이그 퀸과 둥지는 절대적인 존재는 아니었다.
‘예전보다 빨리 등장해서 그런가? 사이필드도 약하고 둥지도 별 볼 일 없군.’
명왕성 주역의 정찰위성에서 보내온 둥지의 크기는 예전보다 훨씬 작았다.
‘저 정도면 해볼 만하다.’
문제라면 플레이그 퀸이 과연 무엇을 말하는가이다.
결코 좋은 의사는 아닐 것이다.
대기실에 있던 파일럿들은 유진이 묵묵히 있자 흥분을 가라앉히곤 앉았다.
“이 목소리, 중위한테도 들렸지?”
“예, 들리는군요.”
“난 내가 미치지 않았나 고민했다고. 안 좋게 헤어진 애인 목소리인 줄 알고.”
“누구 목소리인지 헷갈리진 않았고요? 일단 지구의 사이커에게도 들린 모양이니까 조용히 들어보죠.”
소냐의 일침에 로저스 대위는 입을 다물었고 나세르는 집중하는 듯 눈을 감았다.
그리고 플레이그 퀸의 의사가 전해져왔다.
―너희들이 우리를 두려워하며 준비를 해왔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선지자의 아이들이며, 너희들의 관리자이다.
―너희들이 두 가지만 약속한다면 건드리지 않을 것을 약속하마.
그 두 가지란 아마 받아들이기 힘든 종류의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파일럿들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는 가운데 다시금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너희에게서 모든 에테르를 회수하겠다. 너희가 코어라고 부르며 쓰는 것은 본디 우리의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회수하는 것이 합당하다.
에테르를 회수하겠다는 말에 사이커들이 경악했다.
그게 없으면 현재 인류연합의 기술은 상당수 무력화되기 때문이다.
블랙메탈부터 시작해서 기반기술이 한 둘이 아니고 인류가 손쉽게 우주로 진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플레이그 코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테르가 존재했다.
그런데 그것을 가져가겠다고?
―말도 안 돼. 그건 우리를 지구로 처박겠다는 이야기야.
―우리를 관리한다고? 대체 누가 그걸 인정했지?
사이커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희한하게도 유진을 비롯한 파일럿들은 그들의 전체 의사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재래시장에 온 것처럼 사방이 시끄러운 가운데 사이커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플레이그 퀸의 두 번째 조건이 제시되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너희 중에서 가장 강력한 사이커를 내게 보내라. 그렇다면 너희의 안전을 보장하겠다.
가장 강력한 사이커란 말에 모두가 유지하를 떠올렸다.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사이커였고 지금도 그러했다.
비록 사이커란 존재가 알려진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다들 그에 비견될 존재는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예측했다.
압도적인 에테르 감응력과 사이필드를 펼치는 능력은 다른 사이커와 비교조차 불가능했다.
그런 그를 왜 데려가려고 하는 걸까?
사이커들이 가상공간에서 웅성웅성 떠드는 가운데 충격적인 의사가 전달되었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된다면 우리는 즉각 공격을 멈출 것이고 너희의 항구적인 안전을 약속하겠다.
―그러나 하나라도 이행되지 않을 시에는 너희들의 적이 되어 이 작은 항성계를 파괴와 공포로 물들일 것이다.
―그러니 선택하라.
사이커들은 둥지 외부로 전개된 수천 마리의 플레이그를 보고 전율했다.
하나같이 지금까지 등장한 비스트나 나이트급과는 차원이 다른 거대한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만약 저들이 일거에 지구로 쳐들어온다면 인류연합의 함대로는 버티기 힘들 것이다.
그녀는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모든 에테르를 회수하겠다는 것과 가장 강력한 사이커를 데려가겠다는 것.
그것만 충족된다면 인류의 영구적인 안전을 보장한다고 하니 가히 충격적인 발언이 아닐 수 없었다.
사이커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우리 힘을 다 가져가겠다고? 그게 가능하기나 한가?
―저쪽이 원조인 모양인데 다른 방법이 있나 보지.
―그건 그렇고 우리 힘을 다 가져가면 우주 진출이 어렵게 되잖아?
―맞아. 대부분의 기술이 에테르 기반이라서 태양계로 나가기가 어렵게 될 텐데.
―이건 지구에 처박혀서 나오지 말란 거야.
한편 가장 강력한 사이커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그게 누구를 뜻하는가는 확정적이었지만 대체 무엇 때문에 데려가려고 하는 걸까?
―사이커는 역시 유지하 대통령이겠지?
―데려가려는 이유를 모르겠네. 에테르를 가져온 사람이라서 그런 건가?
―이건 밀수 아닐까? 에테르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플레이그 입장에서는 아니꼬운 거지.
―근데 왜 직접 데려가지 않고 회유하는 거야? 평소처럼 공격해도 되는 거 아냐?
―공격해 보고 만만치 않다 싶었던 거지.
―그럼 우리도 순순히 따를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 이날을 위해 십몇 년 동안 준비해 왔잖아.
―그 군단을 보고서도 하는 말이야? 화성주역 함대 어쩌고 해봐야 규모에서 상대가 안 되던데.
―대통령이 판단하겠지.
최근에야 황제니 뭐니 이상한 짓을 하곤 있지만 유지하는 대통령이었다.
인류연합의 의사결정은 모두 그의 입에서 나오니 만큼 결단을 기다리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하지만 그는 묵묵부답이었다.
플레이그 퀸은 한 달의 말미를 주었다.
―통합되지 않은 종족이라 의사를 모으기가 힘들겠지. 너희의 시간으로 한 달을 주겠다. 잘 생각하고 판단하라. 종말과 평화는 오롯이 너희의 선택이다.
인류연합의 시민들은 바짝 긴장한 채 대통령의 결단을 기다렸다.
시간이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 * *
“음성 파형을 분석한 결과 루시아 님과 85.21% 일치했습니다.”
“애매한 숫자이긴 한데 루시아를 데려간 건 맞나 보군. 문제는 그녀가 살아있을 가능성인데…….”
“살아있어도 마스터께서 기대하시는 방향은 아닐 거예요.”
“아마 그렇겠지.”
플레이그의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살아있다는 기준 자체가 다를 수도 있었다.
미래의 시간대에서 그들은 인간까지 플레이그화시켰기 때문이다.
단 아무나 그렇게 되는 건 아니고 체내에 바이오칩 등 금속부품을 삽입해야 최소한의 조건이 맞춰진다.
유진이 통제를 위해 사람들에게 바이오칩 시술을 하지 않은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평범한 인간은 플레이그로 변하지 않고, 사이커들은 저항성을 가진다.
루시아가 상체를 숙여서 그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루시아 님을 생각하고 계신가요?”
“…아니, 이젠 다 잊었어.”
25년 전의 연인이다.
완전히 잊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이젠 별 의미가 없었다.
그녀가 플레이그로 넘어간 이상 인류의 편은 아닐 테니까.
만약 유진이 잡혀가고 루시아가 결단을 내릴 위치에 있다고 해도 똑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아무튼 플레이그 퀸의 등장과 제안은 유진에게 있어서도 꽤 놀랄 만한 사건이었다.
“관리자란 말은 에테르 전체를 관리한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어쩌면 그들이 우리를 공격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들의 것을 가져갔다고 생각하는 거죠.”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서 반박은 못하겠군.”
현재 인류연합의 에테르 기반 기술은 대부분 플레이그 코어에서 시작된다.
그게 없다면 가장 중요한 블랙메탈부터 만들어지지 않는다.
세틀러호부터 시작해서 인류연합에서 건조한 우주선의 선체가 플레이그 레비아탄 등을 닮은 것도 그들에겐 거슬리는 요소였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들은 예상보다 빨리 왔고 이젠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
단 빨리 온 것이 유진에게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둥지의 규모가 예상외로 작았기 때문이다.
“원래 시간대에서 최초로 등장한 둥지의 규모는 직경 2,000km가 넘었습니다. 또한 플레이그 퀸이 발하는 사념파 또한 지금의 두 배는 강력했고요.”
“그렇다면 저 플레이그 군단이 가진 힘은 원래의 절반이라고 보면 되겠군.”
여기에선 시간이 중요하다.
플레이그 퀸과 둥지는 주변의 무기물을 흡수해서 힘과 규모를 키우기 때문이다.
일단 명왕성 주역에 등장한 만큼 명왕성과 위성 카론은 끝장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현재 둥지와 플레이그 본대 주위에서 레드 클라우드가 관측되었습니다. 조만간 카론을 침식할 것으로 보입니다.”
정찰위성까지 흡수되면 더 이상 관측은 어렵다.
그때 플레이그 퀸이 유진에게 사념파를 보냈다.
―시간을 거스른 것이 너뿐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나의 초대를 받아들여라. 작은 도둑아.
루시아가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다른 사이커들은 조용합니다. 마스터에게만 사념파를 보내는 것 같네요.”
“일대일로 담판을 짓자는 건가. 나쁘지 않군.”
유진은 그녀의 사념파에 의식을 집중했다.
한없이 어둡고 광활한 우주에 금속으로 된 루시아가 서 있었다.
안경을 벗은 것은 구현하기 귀찮아서일까?
“…루시아? 네가 납치한 건가?”
“대화하기 위해서다. 너희에겐 단합된 의사가 존재하지 않으니까.”
“대화를 원하다니 꽤나 평화로운 종족인 것 같군. 원래부터 그랬다면 좋았을 텐데.”
퀸은 비아냥을 무시하고 유진의 바로 앞에까지 걸어왔다.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긴 말은 하지 않겠다. 선지자의 땅으로 향하는 이정표를 내놓아라.”
선지자의 고향, 그리고 유진이 흡수한 열쇠를 말하는 것 같았다.
“그는 너희에게도 선지자인가?”
“바보 같은 질문이군. 너의 연인을 흡수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다시 묻지. 선지자란 너희의 신인가?”
“대답할 이유가 없다. 네가 할 일은 오직 하나, 이정표를 내놓는 것이다.”
“내 몸에 있는 열쇠를 말하는 건가?”
“그래, 열쇠.”
플레이그 퀸이 손으로 유진의 오른쪽 가슴을 쓰다듬었다.
연인을 유혹하는 듯한 동작이지만 그 손길은 아주 차가웠다.
“문이 열렸더군. 이정표가 있어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건 너도 알고 있겠지.”
“그걸 말해주는 건 이정표를 빼앗겠다고 작정한 모양이군.”
“되찾는 것이다. 원래 우리의 소유였으니.”
“선지자는 플레이그가 아니라 인류에게 선물했어.”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플레이그 퀸은 뒤로 물러나더니 양팔을 좌우로 펼쳤다.
인류가 에테르 기반 기술을 습득하기 전 어떻게든 지구의 대기권을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숱한 로켓이 폭발했고 가까스로 지구를 벗어난 탐사선도 그리 멀리 가지는 못했다.
기껏해야 주변 행성 내려앉아 정보를 보내왔을 뿐이었다.
목성의 타이탄까지 영향력을 넓힌 지금의 인류연합이 보면 별거 없는 기술력이었다.
플레이그 퀸이 보라는 듯 말했다.
“하등하고 미개한 종족이지. 우리가 없었다면 너희는 그 작은 행성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너희에게 선지자가 왜 선물을 하겠는가?”
“글쎄, 너희보다는 우리가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르지.”
도발적인 발언에도 플레이그 퀸은 흥분하지 않았다.
“그 말이 얼마나 멍청한 것인지 깨닫게 해주고 싶군. 마지막 기회를 주마. 우리에게 신병을 의탁해라. 이정표만 가져가면 너와 너희 종족의 안전을 보장하겠다. 물론 에테르는 회수해야겠지.”
“그 말은 우리더러 지구에 처박혀 있으란 의미인가?”
“우리의 에테르를 도둑질하기 전에는 그렇게 살지 않았나? 너희에겐 자격이 없다.”
“그걸 왜 우주괴물 따위가 판단하는지 모르겠군.”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겠지. 만약 한 달 뒤에도 네가 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너의 정체를 폭로할 것이다.”
“나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들리는데.”
“시간을 거스른 것이 너 혼자만은 아니니까. 자, 선택해라. 이대로 너의 비밀을 동족에게 알릴 것인지, 안정을 찾을 것인지.”
“그 안정이란 곧 사육이야.”
“너도 동족을 사육하지 않았나? 비좁은 공간에 몰아넣고서 자유를 빼앗았지. 우리도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다.”
“미안한데 그걸 받아들일 종족은 어디에도 없을 거야.”
“약속대로 한 달을 주지.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라겠다.”
우주공간이 사라지고 유진의 시야엔 안드로이드 루시아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몸을 늘어뜨렸다.
“내 정체를 폭로하겠다는군.”
“오히려 잘된 일이군요. 마스터의 정체가 폭로되면 시민들이 들고 일어날 테니까요.”
그렇긴 하다.
지금 유지하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행패만으로는 공분을 일으키기에 부족했다.
만약 플레이그 퀸이 정체를 폭로한다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전부를 밝힌다면 의외로 단합되는 결과가 나오겠으나 적당히 가공한 정보만 유출한다면 아주 쉽게 분란이 일어난다.
“기다린다는 전제하에서는 그렇겠지. 하지만 우리는 기다릴 이유가 없어.”
플레이그 퀸이 한 달의 말미를 준 것은 힘을 축적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의사 통합을 존중하는 듯 말했지만 명왕성 주역에서 레드 클라우드가 관측되는 걸 보면 전혀 아니었다.
“군단타격함대만 준비되면 끝이야. 바로 공격해서 끝장내면 돼.”
그 함대엔 에테르 차단기를 포함해서 플레이그의 탐지수단을 회피하기 위한 모든 기능이 집약되어 있었다.
그간 훈련시켜 놓은 파일럿들만 배속시키면 준비는 끝난다.
파일럿들의 수준이 그리 탁월하진 않지만 저쪽은 더 약해졌다.
다만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루시아가 관측한 것을 종합해서 보고했다.
“지금 출현한 플레이그 퀸이 원래의 개체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째서?”
“원본이었다면 명왕성 주역에 도착하자마자 정찰위성부터 박살냈을 테니까요.”
“그게 아직도 남았나?”
“네, 근처 소행성에서 중력자 정보를 보내오고 있습니다. 어지럽네요.”
인류가 플레이그에 대해 지식을 갖고 있듯, 플레이그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바보가 아니며 인류의 눈과 귀를 가리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정찰위성을 놔뒀다는 건 현재의 플레이그 퀸이 원본이 아니라는 걸 의미한다.
“목소리 파장이 85%만 일치한다고 했나? 기억 공유가 부정확했던 게 분명해.”
“우리는 선지자가 열어준 문을 통해 과거로 왔지만, 그들의 수단은 한정적일지도 모르겠네요.”
모든 것은 가능성이다.
진상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플레이그 퀸과 둥지의 박멸이 먼저다.
유진은 결단을 내렸다.
“달라진 건 없어. 둘의 박멸만이 인류가 살길이야.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군단타격함대의 준비를 끝내.”
“알겠습니다.”
한편 메가시티 내에선 이번 사건에 대한 음모론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 * *
그녀의 목소리가 사이커들에게 들린 후, 인류연합 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워낙 들은 사람이 많아 입을 단속하는 것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플레이그 퀸의 등장이 알려졌고 그녀의 제안까지 낱낱이 까발려졌다.
1시간 뒤에는 수억에 달하는 인구가 이번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되었다.
난리가 나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다.
―에테르하고 유지하만 데려가면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우주괴물의 말을 어떻게 믿어. 지금껏 우리를 공격한 놈들 아니야?
―근데 에테르가 원래 그놈들 것이란 건 맞는 얘긴가?
―틀린 말은 아니지. 에테르 코어하고 플레이그 코어는 같은 거니까.
―그럼 우리가 도둑질한 건가?
―우리가 아니라 그 사람이…….
그러는 가운데 유지하가 이 모든 일의 원흉이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내가 뭐랬어? 결국 그 사람이 문제라니까. 에테르 기술을 갖고 오지만 않았어도 이런 사태를 겪진 않았을 거야.
―대통령이 만들어 놓은 메가시티에서 잘 먹고 잘 살면서 하는 얘기가 겨우 그건가?”
―유지하 대통령이 들으면 참 슬프겠네.
반발이 이어졌지만 그는 주장을 멈추지 않았다.
―인류연합하고 메가시티를 만든 이유가 뭐야? 플레이그와 싸우기 위해서 아냐? 근데 자기가 그 기술을 갖고 오지 않았으면 만들 이유가 없어지는 거 아니냐고.
―내 말 틀려? 유지하만 없어지면 더 이상 공격할 일 없고 안전을 보장하겠다잖아.
―그걸 믿는 게 멍청한 거지.
―멸망해 봐야 알겠냐. 기회를 줄 때 유지하를 쫓아내는 게 답이야. 나이트급 이상이 바글거리는 군단을 어떻게 막는다는 거야?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는 배성민 의원이 끼어 있었다.
그는 감시 시스템의 눈을 피해 많은 사람과 만나 소통했다.
유지하의 최측근이었던 사람마저 변심한 것을 두고 많은 논란이 일었다.
―얼마나 실망했으면… 쯧쯧.
―최근에 대통령이 이해 못할 짓을 많이 하긴 했지.
―이해 못할 짓이 아니라 미친 짓이지. 지가 황제야 뭐야?
―확실한 건 항복 안하면 멸망한다는 거야. 그를 내주고 예전으로 돌아가야 돼.
시민들은 사이커들이 과장한 플레이그 군단의 규모에 두려워했다.
유진이 군단타격함대를 노출하지 않았기에 승산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배성민 의원이 바쁘게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설득하는 사이 유진은 수많은 파일럿들과 함께 군단타격함대에 들어간 상태였다.
미리 통신망을 차단했기에 그 일이 메가시티에 알려지는 일은 없었다.
다들 소행성대 사이에 숨겨진 어마어마한 규모의 함대에 입을 쩍 벌렸다.
“이런 함대를 숨겨두고 있었다니…….”
“진짜 장난이 아니네.”
군단타격함대는 인류연합 최고의 전력으로서 목표는 오로지 태양계에 출현한 플레이그 퀸과 둥지의 말살이었다.
지금 그 함대가 출항을 준비하고 있었다.
「메인 엔진 점화. 에테르 역장 전개.」
2백 척이 넘는 전투함이 하나가 되어 우주공간으로 쏘아져 나갔다.
배성민은 정치인들을 만나다가 문득 천장을 올려다봤다.
차라리 저 너머에 있었으면 싶었다.
별 능력은 없지만 잔심부름은 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대통령은 그에게 역겨운 역할을 맡겼다.
도저히 하고 싶진 않았지만, 그가 원하는 거라 생각하니 거부할 수가 없었다.
‘대통령께선 인류를 지키려 싸우시는데 나는 협잡질이나 하고 있군.’
눈앞의 정치인들이 바로 그 협잡질의 공범이었다.
시민들의 환심을 사 의원직에 오른 뒤 온갖 수단을 동원해 쥐꼬리만 한 권력이나마 가지려 했던 자들.
구세대 기득권의 상징인 이들이 이제 자신과 손잡아 유지하를 쫓아내고 인류연합을 통째로 먹어치우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뜻대로는 안 될 것이다.
‘대통령이 떠나기 전 너희들은 죽는다.’
그것이 유지하가 인류를 위해 남기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인류가 알아차리는 것은 한참 후가 되겠고 어쩌면 영원히 모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그는 오늘을 위해 살아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