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211
210화 탐욕은 파멸을 부른다
4월 초가 되어 반다스 남작과의 거래가 무산되었다는 것이 데노바에 알려졌다.
이 이슈는 거래소 상인들에게 상당한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장이 나서서 거래를 무산시켰다는 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거래상대인 반다스 남작 정도의 소귀족이라면 후환은 두렵지 않겠지만 아깝다는 말이 나왔다.
부유대륙에서 가져온 금의 양이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단 말입니다. 원광 빼고 금만 따져도 3만 골드에 육박해요. 그걸 우리가 처리했으면 수수료가 얼맙니까.”
“증권 발행 안하고 수수료만 받아먹어도 좋았을 텐데 너무 욕심을 내는 바람에…….”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을까요? 필리프님이 직접 개입했다니 할 말은 없지만 대금 일부는 즉시 지급하고 나머지는 채권으로 지급하는 방법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시세를 따질 시간이 없었답니다. 거래가 3월 말까지인데 비행선이 하필 말일에 도착했어요.”
“일정을 맞춘 건 아니겠고 참 재수가 없었네요.”
“그나저나 반다스 남작이 가만히 있진 않을 텐데…….”
상인들은 그 성질머리면 즉시 제소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별다른 소식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며 반다스 남작령에서 금괴와 원광을 처리하려 한다는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났다.
합치면 4만 골드가 넘어 주변 영지는 물론이고 돈을 꾸러 돌아다니던 루아드 왕자의 귀에까지 들어갔단다.
데노바에선 군침을 흘렸지만 차마 끼어들 수는 없었다.
대신 일부 상인들이 부유대륙 원정대를 꾸려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 작은 영지에서 해냈는데 우리라고 못하란 법이 있습니까?”
“시장님께서 한마디 하시면 항로를 추적할 수 있을 겁니다. 따라가다 보면 부유대륙 위에 상륙할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죠.”
“알테마호가 한 달 만에 돌아왔지 않습니까? 부유대륙 위에 금덩어리가 굴러다니는 것이 확실하니 가져오기만 하면 됩니다.”
상인들은 눈앞에 금덩어리가 굴러다니는 것처럼 굴었다.
특히 반다스 남작령에서 금덩어리를 직접 만져봤던 제로드 휘하 상인들이 적극적이었다.
아무래도 이번 일의 발단이다 보니 건수를 올려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을 것이다.
필리프 시장 입장에선 참으로 답답한 상황이었다.
“그 증권 거래만 아니었어도 지금쯤은 4만 골드가 우리 손에 들어왔을 텐데…….”
물론 그걸 홀라당 먹을 수는 없지만 유통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 해도 상당한 이득을 올렸을 것이다.
그 좋은 기회를 날려버렸으니 어디에서 보충을 해야 하는데 전쟁이 끝난 터라 다들 돈줄이 마른 상태였다.
자이움 제국마저 재정이 부족해 국채를 발행하는 상황이고 바그란은 왕자가 직접 돈을 꾸러 다니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 가문에 연락을 해보겠소.”
그레고르 가문은 엘브랑데 12가문 중의 하나로 대의회의 구성원이었다.
엘브랑데는 여러 속주국을 지배하는 제국이라 황제가 존재하지만 실질적인 정치와 행정권은 대의회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자연스레 12개 대가문들의 힘과 영향력은 하늘을 찔렀고 그레고르 가문은 그중에서도 특출난 편이었다.
가문의 힘만으로도 엘븐 나이트 100명 정도는 움직일 수 있으니 말해 무엇할까.
그 정도면 어지간한 소왕국은 며칠 내로 휩쓸어 버릴 수 있는 전력이었다.
아무튼 필리프 시장은 가문을 내세워 본국에 정보를 요구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났음에도 그럴싸한 정보는 오지 않았다.
잔뜩 화가 난 그는 정보국장에게 직접 연락했지만 어이없는 말을 들어야 했다.
“유감입니다만 필리프 님, 담담 직원이 엘드그라실 순례행을 떠나는 바람에…….”
세계수 엘드그라실은 모든 엘프의 선조이며 동시에 신이었다.
엘브랑데에서 태어난 엘프라면 전 영토에 퍼져 있는 엘드그라실의 가지를 찾아 참배할 의무를 가지고 있었다.
그 직원도 분명 기쁜 마음으로 떠났을 테니 따질 수는 없었다.
“그러면 대체할 직원이 있을 게 아니오?”
정보국장은 안타깝다는 어조로 말했다.
“아시다시피 규정집에 의하면 부유대륙 방면 에테르 경로를 추적하는 직원은 한 명으로 두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 규정을 고쳐야 한다는 말이 나온 지가 20년이 넘었소! 아직도 안 고친 거요?”
“유감입니다, 필리프 님.”
“이런 젠장!”
필리프는 씩씩거리며 통신구를 집어 던질까 하다가 간신히 참았다.
변화를 거부하는 극단적인 보수성과 나태한 관료제의 결합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아스테라 대륙엔 이런 말이 있다.
엘프에게 무엇을 부탁하려면 최소 10년은 기다려야 한다고.
그들의 긴 수명을 빗대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변화를 바랄 수 없는 보수성을 비꼬는 걸 뜻하기도 했다.
그나마 빠르게 판단하고 움직이는 분야가 없는 건 아니었다.
인간과의 전쟁이 벌어졌다 치면 엘프들은 발정기에 접어든 짐승처럼 날뛰었다.
필리프는 동족의 그런 점이 싫었기에 가문과 엘브랑데를 등지고 데노바로 이주했다.
인연을 완전히 끊은 것은 아니지만 연락의 주기가 점차 길어지는 건 사실이었다.
엘프들의 사회는 그만큼 답답했다.
“보나마나 도보로 순례를 떠났겠지, 빌어먹을 놈.”
엘브랑데 제국은 아스테라의 1/4에 달하는 어마어마하게 넓은 면적을 자랑했다.
그 구석구석에 심어진 엘드그라실의 분신에 참배하려면 엄청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기차를 이용하면 될 텐데 위대한 아버지 엘프인 에일리드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고 그 모양이다.
정작 에일리드는 인간과 다른 종족의 좋은 점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한 바 있건만.
“원로원 그놈들이 문제야.”
대의회엔 여러 기관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원로원이 가장 격이 높았다.
300세를 넘어가는 연세를 자랑하는 원로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 보니 그 경직된 분위기를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놈들과 이야기하느니 시체에 대고 혼잣말을 하는 게 낫지.”
필리프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다른 통신구를 덮고 있던 천을 벗겨냈다.
하는 수 없이 에테르 경로 추적 없이 비행선을 보내야 할 것 같았다.
그가 힘을 쓴 덕분인지 며칠 지나지 않아 데노바에서 비행선이 한 척 이륙했다.
수많은 상인이 원정의 성공을 빌었다.
“꼭 부유대륙에 상륙해야 합니다!”
“금으로 선창을 꽉 채우고 돌아오시오!”
과연 그 소망대로 이뤄질지는 두고 볼 일이었다.
* * *
알테마호가 막 반다스 남작령에 도착한 시기.
바그란의 동부를 장악하고 있는 란티스 백작령에 한 명의 루아드 왕자와 수행원 일행이 방문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란티스 백작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아시겠지만 우리에게도 1만 골드는 결코 작은 금액이 아닙니다, 저하.”
“알고 있소. 그러니 이렇게 찾아와서 부탁하는 것 아니겠소? 이번에 왕가를 도와준다면 크게 사례할 것이오.”
얼마나 급했는지 루아드 왕자는 차용증까지 꺼내 들었다.
란티스 백작은 결국 자신이 돈을 빌려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신하 된 입장에서 왕가의 곤경을 구경하기만 하는 것도 불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가는 충분히 받아내야겠지.’
왕가 직할령에 속해 있는 은광의 1년 운영권 정도라면 충분할 것 같았다.
드워프들이 개발한 아말감법이면 상당한 은괴를 채굴할 수 있다.
“왕가의 곤경을 두고 볼 순 없지만 1만 골드를 융통하기 위해선 우리도 상당한 출혈을 감수해야 합니다…….”
“알겠소, 알겠으니 요점만 말해 보시오.”
“직할령의 사그리스 은광을 원합니다. 딱 1년만 파고 손을 떼지요.”
“…….”
이런 냉혈한을 보았나.
왕가 직할령의 사그리스 은광은 마족의 출현으로 현재 폐쇄 상태인데 1년만 파겠다는 건 인부들의 희생을 감수하고 빠르게 치고 빠지겠다는 뜻이다.
드워프들이 개발한 아말감법이면 단시간에 많은 은을 캘 수 있었다.
‘심보는 괘씸하지만 다른 수가 없군.’
바그란 3세는 워낙 많은 업무를 처리하느라 루아드 왕자에게 이번 일의 전권을 맡겼다.
돈이 땅에서 솟아나는 것도 아니고 결국 어디서 빌려야 하는데 다들 오랜 전쟁으로 돈줄이 말라 있었다.
왕가에 필요한 것은 폐쇄된 은광보다는 당장의 골드였다.
그리고 그것은 란티스 백작을 비롯한 대영주만이 해결할 수 있었다.
“…1만 5천 골드로 합시다. 기한은 2년. 그리고 이자는 오늘자 데노바 기준으로 맞추고 싶소.”
이 정도로 만족해야겠지.
란티스 백작이 시종에게 필기구를 가져오라 일렀을 때였다.
수행원 중 한 명이 달려와 그에게 귓속말을 했다.
“뭐라고? 알테마호가 돌아왔다고?”
“선창에 금이 가득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3만 골드가 넘어간다고…….”
루아드 왕자는 놀라서 벌떡 일어났고 란티스 백작은 눈살을 찌푸렸다.
왕가가 비행선을 대여해 준 얘기는 들었는데 그게 왜 갑자기 튀어나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저하, 잠시 진정하시고 저에게도 자초지종을 알려주십시오.”
“이거 실례했소. 그러니까 일이 어떻게 된 거냐면…….”
사정을 설명하는 왕자의 목소리는 완전히 흥분 상태에 빠져 있었다.
알테마호의 행적이 알려지자 란티스 백작은 멍한 표정이 되었다.
엘브랑데에서도 상상도 못하는 짓을 일개 남작이 저질렀단 말인가?
심지어 크게 성공해서 선창 가득히 금을 싣고 돌아왔고?
얼마나 놀랐는지 그는 눈을 심하게 문지르곤 다시 물었다.
“금을 가져왔다고 해도 원광인데 제련 과정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시세 계산이 그렇게 쉽게 됩니까?”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통짜 금덩어리를 가져왔다고 하오. 부유대륙엔 금이 굴러다닌다는 말이 되겠지.”
엘브랑데에서 가장 거대한 노천금광도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부유대륙이다 보니 뭘 갖다 붙여도 반론이 불가능했다.
가본 사람이 있어야 말이지.
“…….”
은광을 파먹을 생각을 하던 란티스 백작의 표정이 굳어졌고 루아드 왕자의 얼굴에선 웃음이 묻어났다.
“금덩어리니까 금방 처리가 가능하겠지. 3만 골드라, 이럴 줄 알았으면 비행선을 다 빌려줄 걸 그랬군. 참, 오늘 이야기는 없던 걸로 하겠소, 란티스 백작.”
“…그러시지요.”
그렇게 왕자와 수행원들은 영지를 떠났다.
란티스 백작은 주먹을 부르르 떨더니 부관들을 불렀다.
“반다스란 놈에 대한 자료를 전부 가져와. 지금 당장.”
누구의 명이라고 거역할까.
얼마 후 그의 앞에 몇 장의 서류가 대령되었지만 그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귀찮으니 읽으란 뜻이다.
부관이 서류를 집어 들고 반다스 남작에 대한 신상을 하나씩 읊었다.
그러던 중 란티스 백작의 눈이 번쩍 뜨였다.
“데노바 시장이 계약을 파탄냈다고?”
“예. 거래대금이 최소 2만 골드에 달하고 증권까지 합하면 5만 골드가 넘어간다고 합니다.”
“남대륙 주식회사의 지분이 엘프들에게 있어서 그런가… 아무튼 시장의 입장이 곤란하게 되었군. 남작은 어떤가? 길길이 날뛰었겠지?”
“그것이… 자세히는 모릅니다만 그렇게 화를 낸 것 같지는 않다고 합니다.”
“3만 골드를 날려버렸는데도?”
바보는 아니니 그런 것까지 계획에 들어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란티스 백작은 머릿속에서 제반사항을 고려해 상황을 꾸려 봤지만 도무지 그럴싸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아무도 상륙하지 못한 부유대륙에서 어떻게 성공을 확신한단 말인가?
그건 엘프들에게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다른 곳에 신경을 쓰고 있는 사이 묘한 놈이 영지를 꿰찼군. 반다스 남작이라…….”
“인사를 오라고 할까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금 처리 건으로 바쁠 텐데 놔둬. 잠깐, 혹시 선창에 원광도 있다고 했나?”
“예. 참고로 말씀드린다면 반다스 남작령엔 이렇다 할 제련소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위탁을 하겠군. 어디 보자… 그쪽 골리앗이 몇 대지?”
“현재 라움급 4대를 보유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빈약하군. 영주 두세 명이 합공하면 바로 무너지겠어.”
“준비할까요?”
란티스 백작은 그렇게 말한 부관을 미친놈 쳐다보듯 했다.
“제정신인가? 방금 왕자가 달려가는 거 못 봤나? 근위기사까지 있는데 시비를 걸었다가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죄,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생각을 하고 내뱉어야지. 내일부터 출근하지 마.”
그렇게 측근 중 한 명이 직장을 잃었다.
나머지는 바짝 긴장한 채로 란티스 백작이 중얼거리는 걸 들었다.
“얽힌 곳이 많아서 압박은 어렵겠군. 그렇다고 그냥 놔두자니 탐이 난단 말이지…….”
그가 탐을 내는 것은 금이 아니었다.
물론 금은 누구나 탐내겠지만 그것보다는 정보력을 원했다.
청어가 돌아오는 것을 정확히 예견하고 부유대륙에 상륙할 방법을 찾은 그 정보력 말이다.
“대체 어디서 그런 소리를 들었는지 모르겠어.”
“섀도우 엘프 아닐까요? 습격이 한 번도 없었던 게 미심쩍습니다.”
“지난 겨울, 그러니까 새 영주가 부임하고부터 습격은 한 건도 없었습니다. 뭔가 이상합니다.”
“…….”
란티스 백작도 이상한 건 알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원광은 따로 처리할 곳이 없으니 우리에게 의탁할 거네. 그때 접촉하기로 하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알고 준비하겠습니다.”
“나가 봐.”
측근들이 정원에서 나가자 란티스 백작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간 부유대륙은 마경이자 누구도 올라서지 못했던 전인미답의 땅이었다.
하지만 반다스 남작으로 인해 상륙할 방법이 있다는 게 알려졌으므로 많은 세력이 나설 것이다.
‘당장 근처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만 동원해도 어마어마한데…….’
특히 엘브랑데가 문제였다.
그 탐욕스런 엘프들은 무슨 수를 써서든 부유대륙을 차지하려 할 것이다.
‘비행선 한 척에 그만한 금이라… 눈이 뒤집어져도 이상하지 않지.’
엘브랑데뿐만 아니라 자이움 등 힘 좀 쓴다는 국가는 전부 나설 위험성이 있었다.
반다스 남작은 이 모든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걸까?
‘아무튼 당분간은 시끄럽겠군.’
부는 탐욕을, 탐욕은 갈등을 부른다.
그리고 반다스 남작은 그 갈등의 한가운데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정신이 나간 건지 자신이 있는 건지는 얼마 뒤면 밝혀질 것이다.
‘사사로운 감정은 접어두고 최대한 접점을 만들어 둬야겠어.’
우선은 원광 제련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 * *
란티스 백작령을 떠난 루아드 왕자 일행은 곧장 반다스 남작령으로 향했다.
중간에 쉬는 일 없이 뿔새를 달리게 한 결과 며칠 후에는 반다스 남작과 대면할 수 있었다.
영지민들이 깜짝 놀라거나 말거나 그는 레오볼드의 두 손을 붙들고 열렬히 흔들었다.
“남작, 나 좀 살려주시오.”
“누가 저하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는가 보군요. 암살자는 아니겠고 혹시 돈 문제입니까?”
“왕가가 발행한 채권이 있소. 만기가 얼마 안 남았지. 그게 4만 골드가 넘소.”
“4만 골드라. 어마어마한 금액이군요.”
“모든 것을 털어놓고 말하겠소. 나는 남작이 부유대륙에서 거대한 부를 가져왔다는 걸 알고 있소.”
“정확히 말씀드리면 아직 처리하진 않았습니다. 중간에 데노바에서 뒤통수를 치는 바람에.”
“그 건은 나도 애석하게 생각하오. 하지만 금은 녹이면 바로 화폐로 만들 수 있지 않소? 일단 채권부터 막고 생각합시다. 왕가가 사례할 거요.”
레오볼드는 물끄러미 그를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신하 된 입장에서 왕가의 곤경을…….”
“그 얘긴 란티스 백작에게서 들었으니 조건을 말하시오. 뭘 원하시오?”
“저하께서 급하신 모양이니 저도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겠습니다. 2만 골드를 드리고 2만 골드를 빌려드리는 걸로 거래하지요. 대신 남은 비행선 두 척을 원합니다.”
“비행선 두 척 해봐야 1만 골드를 넘지는 않을 텐데, 또 조건이 있소?”
“사그리스 은광을 원합니다. 딱 1년만 파고 돌려드리겠습니다.”
루아드 왕자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놈의 은광엔 대체 왜 달려든단 말인가.
마족이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와서 폐쇄된 곳인데.
몬스터와는 차원이 다른 놈들이라 골리앗이 아니면 상대할 수가 없는데 워낙 좁은 곳이라 사람 몇 명이 드나드는 게 전부였다.
아스테라엔 이런 식으로 폐쇄된 광산이 꽤 있다.
“…란티스 백작도 그 은광을 원했었지. 인명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최대한 파먹고 손을 떼겠다는 계산이었소. 남작도 그걸 원하시오?”
“오해를 불식시켜야겠군요. 은을 원하는 건 맞지만 인명 피해를 바라는 건 아닙니다. 사람은 한 명도 죽지 않을 겁니다.”
“그게 가능한 일이오?”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골리앗은 들어갈 수도 없는 그 좁은 광산에서 어떻게 마족과 싸운단 말인가.
재차 물어봤지만 레오볼드는 말할 의사가 없어 보였다.
“제게 필요한 것은 사그리스 은광의 1년 운영권과 다른 조건 하나입니다. 그 대가로 2만 골드를 드리겠습니다.”
“다른 조건은 뭐요?”
“올머스 경을 제 곁에 두었으면 합니다. 앞으로 여러 임무를 맡길 생각인데 이대로 떠나보내려니 아쉽더군요.”
“그건 나보다는 본인의 의사가 먼저요.”
“허락하신 걸로 알겠습니다. 그럼 계약서를…….”
루아드 왕자는 무슨 전개가 이렇게 빠른가 하고 당황했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의 의사만 있다면 이 영지에 머무르는 것은 큰 문제가 없었다.
이윽고 카슨 행정관이 작은 궤짝을 하나 들고 왔다.
밤새 대장간에서 금덩어리를 녹여 만든 금괴였다.
그 황홀한 광채에 잠시 시선을 빼앗긴 왕자는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부유대륙에서 이런 걸 가져오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군. 비행선을 더 원하는 걸로 봐서 상륙할 방법이 있는가 보오.”
“어렵지만 방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남들이 그걸 이용하기는 힘들 겁니다.”
“어째서 그렇소?”
“비밀입니다. 그걸 말씀드리면 제 밑천이 다 탄로 나지 않겠습니까?”
“뭐 그렇겠지. 충분히 이해하오.”
루아드 왕자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그에게 말했다.
“경이 나를 도와주었으니 나도 충고 한마디 하지. 알테마호의 선수상을 즉시 떼는 게 좋을 거요. 가능하면 이름도 바꾸면 좋겠지.”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엘브랑데와의 전쟁이 끝난 건 경도 잘 알 거요. 놈들이 알테마 숭배를 중단하라고 요구해 왔소. 그걸 감시할 목적으로 심판관을 파견하기로 했지. 티렌델이라고 하는 반쪽짜리 엘프인데 아주 흉악한 놈이니 경도 조심해야 할 거요.”
“엘븐 나이트인가 보군요?”
“그중에서도 한 손에 꼽을 정도지. 얼마나 강한가 하면 놈이 나타난 전선은 포기하라는 자이움 최고사령부의 지시가 있었소.”
“하프엘프인데 그 정도라… 꼭 만나 보고 싶군요.”
“나 같으면 절대 안 만나겠소. 인간을 아주 벌레로 안다니까.”
정말 지독한 놈인 모양이다.
왕자가 귀쟁이들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 동안 데노바에서 출발한 비행선이 부유대륙 남쪽에 도착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 잔해가 도착했다.
어느새 나타난 블루 드래곤이 비행선에 라이트닝 브레스를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느린 비행선은 브레스를 피할 생각도 못하고 정면에서 얻어맞았다.
허공에서 화려한 폭발이 일어나며 비행선이 산산이 분해되어 잔해를 흩뿌렸다.
지갈레온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잔해가 뿌려지는 것을 바라봤다.
―그 누구의 접근도 용납하지 않겠다.
반다스 남작령의 비행선은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