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210
209화 룰을 바꾸는 대가
비행선 알테마호가 귀환했다.
영지민들은 물론 영지 전체가 크게 들끓었다.
설마 부유대륙이라는 마경에서 조각배나 다름이 없는 알테마호가 돌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사실 아스테라의 누구에게 물어도 가능성이 없다고 답을 할 것이다.
알테마호는 겉으로는 조금의 손상도 입지 않은 것처럼 보였기에 사람들이 더더욱 환호했다.
“오오오!”
“계류장을 열어라! 밧줄을 준비해라!”
직원들이 달려가는 사이 데노바 상인들은 급히 회의를 가졌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가능성이 0%에 가깝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진정하세요. 알테마호가 복귀하긴 했지만 선창에 화물이 실렸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게 2만 골드 이상이라는 보장도 없죠. 우리는 계약서대로 요구하기만 하면 됩니다.”
다들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반다스 남작을 흘깃 바라봤다.
확실히 계약서에 의하면 알테마호의 선창에 실린 화물이 2만 골드 이상이어야 거래가 최종적으로 성립된다.
그리고 그 화물에 대한 시세 평가는 중앙거래소의 오늘 시세를 기준으로 하게 되어 있었다.
“뭘 가져왔는지는 몰라도 그게 2만 골드를 값어치를 할 일은 없을 겁니다. 부유대륙 위에선 뭐 금덩어리가 굴러다닌답니까?”
“하하, 저 유명한 엘브랑데 노천금광도 그 정도는 아닙니다.”
다들 웃었으나 불안한 마음은 감출 수 없었다.
만약 선창에 2만 골드 이상이 실렸다면 거래는 정상적으로 성립된다.
그건 3만 3천 골드에 달하는 증권 거래도 정상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을 뜻한다.
3만 3천 골드를 반다스 남작이 가져가게 되는 것이다.
재수 없으면 금화 대신 남대륙 주식회사의 지분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상황이 여기에 이르자 상인들은 입안이 바짝 마르는 것을 느꼈다.
‘정보국 놈들은 대체 뭘 한 거야? 복귀하지 못할 가능성이 99%라며?’
‘애초에 부유대륙에 가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어. 선창만 확실히 살피면 돼.’
이윽고 알테마호가 계류장에 내려앉았다.
레오볼드는 널빤지를 디딤돌 삼아 내려오는 그랜든 휘하 선원들을 치하했다.
“항해는 성공적이군. 모두가 그대들 덕분이오. 대단히 수고 많았소.”
그랜든은 사람들의 환호에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가 레오볼드를 바라봤다.
“영주님, 정말 말씀드릴 것이 많습니다만 우선 이것부터 확인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그게 뭐요?”
“부유대륙산 금입니다. 모두가 볼 수 있게끔 저울로 직접 확인하시죠.”
“금이라. 위험을 무릅쓰고 부유대륙에 상륙한 보람이 있었군 그래. 거기 누구 있소?”
눈치를 보던 상인 중 한 명이 나섰다.
그는 두툼한 뱃살을 가진 제로드라는 상인으로 이번 남대륙 주식회사의 주주이기도 했다.
“어차피 금광석일 텐데 저울로 잴 수가 없잖습니까. 저희가 따로 처리를 해서 함유량을 통보해 드리겠습니다.”
오늘만 넘기면 되기에 어떻게든 시간을 끌려는 꼼수였다.
하지만 그는 레오볼드의 손가락 까닥까닥에 궤짝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리고 황금 덩어리들을 목격했다.
“오오…….”
꾸미지 않은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상인만큼 금을 많이, 그리고 자주 접하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그건 모두 제련소에서 가공된 금이었다.
광물을 취급하는 상인들도 이런 금 덩어리들을 좀처럼 구경하기 힘들 것이다.
그것이 궤짝 가득한 양이라면 더더욱.
레오볼드는 주먹만 한 금덩어리 하나를 그의 얼굴 앞에 가져다 댔다.
“금이라 그런지 상당히 무겁군. 당신은 이게 진짜 금인지 확인해 줄 수 있을 거요.”
“무, 물론입죠.”
제로드는 금을 받아들다가 하마터면 떨어트릴 뻔했다.
평소 취급하던 은에 비해 두 배나 무거웠기 때문이다.
이것만 봐도 전체가 금이란 걸 알 수 있었고 상인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는 확인해 보겠다는 말과 함께 금덩어리에 선명한 잇자국을 남겼다.
선명한 노란색의 광택에 생각보다 무거운 무게, 그리고 부드러운 특성까지 완벽한 금이었다.
그런 금덩어리가 궤짝 가득 들어 있었다.
이 정도의 금이라면 중앙거래소가 아닌 대륙 어디에서나 2만 골드를 가볍게 넘는 가치를 가진다.
심지어 선창에는 금 덩어리는 아니지만 금맥이 선명한 광석이 작은 언덕처럼 쌓여 있었다.
주춤주춤 와서 궤짝과 선창을 들여다본 상인들이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레오볼드가 팔짱을 끼고 말했다.
“이로서 계약 성립이군. 약속대로 중앙거래소 오늘 시세에 맞춰 계산해 주시오. 대충 봐도 3만 골드는 가볍게 넘을 것 같은데…….”
“여, 영주님…….”
“그리고 내가 구입한 증권 말인데… 모조리 권리를 행사하겠다고 시장께 전해주시오.”
데노바의 시장은 귀족은 아니지만 거의 국왕 대우를 받으며 아스테라 전역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다.
이번 상품 거래에 찍힌 것도 시장의 직인이다 보니 도저히 거부할 수가 없었다.
상인들은 그제야 절벽 끄트머리에 몰렸다는 것을 절감했다.
이제 선택지는 두 개뿐이다.
증권 거래를 이행해 파산하거나 반다스 남작의 바지자락을 붙들고 늘어지거나.
물론 후자를 택한다 해도 피해액이 줄어든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뱃전을 휘어 감는 크라켄처럼 레오볼드의 바지를 붙들고 늘어졌다.
“영주님! 잠깐 드릴 말씀이!”
“저에게는 가족이 있습니다! 토끼 같은 아내와 여우같은 자식들이… 아니, 이게 아니고!”
당연하지만 레오볼드는 거래를 무효로 돌릴 의사가 전혀 없었다.
3만 골드를 포기하는 미친놈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는 상인들을 직시하며 또박또박 말했다.
“데노바 상인들의 신뢰를 걸고, 계약이 이행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소. 시장님께서도 이번 계약에 기대를 걸고 계시지 않소? 빨리 거래를 시작합니다. 시간이 없단 말이오.”
시간이 없다?
그와 동시에 계류장 시계탑이 1번 울렸다.
정오가 1시간 지났다는 뜻이다.
분명 계약은 오늘까지이므로 시간을 끌면 어떻게든 될지도 모른다.
상인들은 의미 모를 미소를 짓는 레오볼드가 미심쩍었지만 일단 저지르기로 했다.
“이대로 3만 골드를 내주면 우리는 파산입니다.”
“남대륙 주식회사 지분을 내준다면 엘브랑데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대주주이지 않습니까?”
“방법은 그것밖에 없군요.”
제로드와 상인들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데노바 중앙거래소에 그런 말이 있다.
강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룰을 바꿀 수 있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다.
세간에선 데노바의 상인들이 신뢰를 목숨보다 중요시한다고 믿지만 그건 그들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상인들은 자신보다 약한 상대와 거래할 때에는 엘프 이상으로 잔인해질 수 있었다.
물론 파행이 거듭되면 중앙거래소의 위상이 위협받으므로 어지간하면 공정하려고 노력은 한다.
하지만 이렇게 큰 건에서는 룰을 바꿔도 뭐라고 할 세력은 극히 드물었다.
반다스 남작이 항의를 하겠지만 판결이 내려지려면 연 단위의 시간을 필요로 하므로 제풀에 나가떨어질 확률이 높았다.
“이번 거래는 무효로 합시다. 남대륙 주식회사에 엘브랑데 대가문의 지분이 있으므로 그걸 핑계로 대면 시장도 어쩔 수 없을 겁니다.”
엘브랑데가 데노바에 선을 대고 남대륙 주식회사에 개발권을 준 것은 시장이 엘프이고 주주 다수가 데노바의 상인이기 때문이다.
만약 반다스 남작이 계약대로 지분을 요구한다면 엘브랑데는 손을 뗄 가능성이 높았다.
남대륙 주식회사의 독점 개발권도 증발하는 셈이다.
“그래도 최소한의 성의는 보여야 될 텐데.”
“프리미엄을 천 골드 더 얹어주는 선에서 끝내지요. 내가 시장에게 말해두겠습니다.”
“좋습니다. 룰을 바꾸고 버텨봅시다.”
상인들은 마음대로 결론을 내고 통신구를 통해 데노바 시장에게 연락했다.
이제 10시간만 있으면 4월이었다.
* * *
상업도시 데노바엔 국왕이 아닌 시장이 존재한다.
이 시장은 귀족은 아니었으나 어지간한 국왕 이상의 영향력을 가졌다.
이는 데노바가 가진 전략적 위치와도 관련이 있었다.
엘브랑데가 강성할 것 같으면 인간 왕국에 힘을 실어주는 식으로 아스테라의 균형을 맞춰왔기 때문이다.
엘프들은 데노바 특유의 행보를 박쥐라고 비하했지만 하필 대가문 중 한 곳이 크게 투자하고 있어서 목소리를 낮춰야 했다.
엘브랑데는 매우 보수적인 국가라 어지간한 변화는 통용되지 않았고 그게 금권이면 더했다.
즉 엘브랑데 내에선 화폐이외의 유가증권, 주식, 수표, 권리 등이 일체의 효력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엘프라고 돈 벌지 말라는 법은 없었기에 답답함을 느낀 일부 엘프들이 데노바에 투자했고 그건 엘브랑데가 데노바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래 봐야 엘브랑데의 군사 행동 한 번이면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돌아가지만 말이다.
이에 위협을 느낀 데노바는 자체적인 군대를 양성하고 용병을 고용하는 등 군사력을 확충했지만 2천 명의 엘븐 나이트를 가진 엘브랑데에 상대가 될 순 없었다.
다만 전략적 추로서의 기능은 충분히 가능했다.
인간 왕국들이 밀릴 것 같으면 자금을 조달해 주고 보급품을 대는 등 신경을 써 왔던 것이다.
엘프 입장에선 여러 대가문에서 투자를 하고 있다 보니 충분히 분노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아무튼 상업도시 데노바의 시장은 3월이 지나가기 9시간 전 통신구로 급한 연락을 받았다.
약 한달 전 성사된 거래를 완전히 무효화해야 한다는 상인들의 연락이었다.
시장 필리프 그렌고르는 상세한 내용을 전해 듣곤 긴 귀를 살짝 움직였다.
“…5만 골드가 넘는 거래를 날려 버리자고? 자네들 제정신인가?”
반다스 남작령에 가 있던 제로드는 충분히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했다.
자칫 잘못하면 남대륙 주식회사의 지분이 넘어가므로 위험하다는 것이다.
필리프 시장은 한숨을 내쉬며 종이에 뭔가를 휘갈겨 썼다.
“그러니까 신뢰 대신 이득을 얻어야 한다는 소리군, 그렇지?”
“바로 그렇습니다.”
“이제 9시간 남았으니 시간을 끌면 거래 자체가 무효화될 거고, 반다스 남작은 아무것도 못할 거라는 말인가?”
“역시 시장님께선 전체적인 계획을 단숨에 꿰뚫어 보시는군요.”
“반다스 남작 입장에선 중앙거래소에 이의를 제기하겠지만 연 단위의 시간이 걸리는 재판을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지겠고?”
“금액이 금액이다 보니 바그란 왕가에서 잔소리를 좀 하겠지만 시장님의 영향력이면 충분히 무마할 수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필리프 시장은 엘프, 그 중에서도 가장 고귀한 혈통이라는 하이엘프이기 때문이다.
신의 챔피언을 배출해낸 혈통을 가졌으면서 데노바의 시장을 맡다 보니 엘브랑데 내에선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대가문의 원로인 그에게 직접적으로 뭐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하여 필리프는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열심히 돈을 버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적당 선이어야 했다.
이런 식으로 룰을 바꾸는 것은 상대가 아무리 약체라도 자제해야 할 사안이었다.
제로드를 비롯한 상인들은 큰 피해를 보게 생겼다며 징징거렸다.
또한 남대륙 주식회사의 지분이 넘어가면 데노바가 입을 피해에 대해서도 넌지시 언급했다.
“저희가 입을 피해야 데노바가 입을 피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남대륙 주식회사가 독점 개발권을 잃어서야 되겠습니까?”
“시장님께서 결정을 내려주시면 시간을 끌겠습니다.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참으로 뻔뻔한 자들이 아닐 수 없었다.
‘판돈을 걸고 도박을 하다 질 것 같으니 판을 뒤엎어 버린다라.’
필리프는 상인들의 수장 입장이었기에 요청을 무시하지 못했다.
다만 그는 반다스 남작의 입장을 들어 볼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하필 3월 마지막 날에 알테마호가 귀환했다는 게 찝찝했기 때문이다.
‘만약에 이 모든 게 그의 계획대로라면.’
최악을 대비해야 하는 것은 군사 지휘관뿐만이 아니다.
필리프는 데노바의 시장으로서 반다스 남작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볼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하여 남작령에 들어간 상인들은 투덜거리면서도 통신구를 넘겨주어야 했다.
“필리프 시장입니까? 이런 식으로 만나는 건 처음이군요.”
분명히 하이엘프라는 걸 들었을 텐데도 이렇게 나오는 건 밑질 게 없다는 계산을 끝냈기 때문일 것이다.
필리프는 용건부터 말하기로 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반다스 남작. 만약 거래가 무효로 돌아가면 어떻게 할 작정입니까?”
“설마 한 달 전 우리가 체결한 계약을 말하는 겁니까? 부유대륙산 화물에 대한 독점 거래 계약서와 증권들?”
“바로 그겁니다.”
“놀랍군요. 이 상인들이 그걸 무효화시킬 생각을 했다라… 신뢰를 잃어버릴 텐데 상관없나 보지요?”
“거기까진 감수할 수 있습니다.”
신뢰는 확실히 중요하지만 어떤 면에서 돈은 더 중요했다.
3만 골드는 어지간한 대영지의 1년 운영비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현재 바그란 왕가가 4만 골드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그 중요성을 알 수 있다.
물론 바그란이 그 지경이 된 것은 1년에 걸친 전쟁으로 지속적인 재정을 투입했기 때문이지만.
필리프는 조용히 말했다.
“힘이 있는 자는 룰을 바꿔도 됩니다. 그것이 아스테라의 법칙이지요.”
데노바는 엘브랑데나 자이움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어지간한 소왕국보다 큰 영향력을 가지는 상업도시였다.
일개 남작의 항의는 가볍게 무시할 수 있었고 신뢰도를 잃을 일도 없었다.
그들을 대체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그런데 반다스 남작은 뜻밖의 발언을 했다.
“그럼 그렇게 하시죠. 몇 시간만 끌면 계약이 무효화되니 돈을 아낄 수 있겠군요. 어쩌면 남대륙 주식회사의 지분을 보호할 수도 있겠고.”
“…거래를 무효화하는 대신 편의를 봐드릴 순 있습니다. 앞으로 데노바와 거래하는 데 있어 수수료 우대를…….”
“필요 없습니다. 아예 상인들을 철수시키는 건 어떻습니까?”
화물 감정을 하지 않으면 계약 자체가 성립되지 않으므로 신경전을 벌일 필요 없이 상인들을 철수시키라는 이야기다.
필리프는 이맛살을 찌푸리고 다시 물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그건 오히려 내가 물어보고 싶군요. 나를 이렇게 대해도 괜찮겠습니까?”
“우리는 이 사태를 감당할 힘이 있습니다.”
“데노바의 시장이 결정을 내렸다니 어쩔 수 없겠군요. 하지만 명심하십시오. 만약 우리와 다시 거래를 하려 한다면 3만 골드로는 어림도 없을 겁니다.”
필리프는 차마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라고 말하지 못했다.
전형적인 협박이지만 찝찝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통신을 끝내고 반다스 남작과 그 영지에 대한 자료를 처음부터 검토했다.
갑작스레 영주가 된 귀족 출신 용병.
영지를 압박하는 불한당들을 물리치고 암염광산과 청어로 상당한 돈을 벌었다.
그리고 왕가에서 비행선을 빌리더니 부유대륙으로 보내 버렸다.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봤을 땐 미쳤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거기가 어디라고 배를 보낸단 말인가.
“하지만 그는 성공했지…….”
상인들의 증언으로 봤을 때 최소 2만 골드가 넘어가는 금을 확보한 것은 사실인 것 같았다.
“반다스 남작이 그 정도의 금을 처분하지 못할 리는 없다… 시간을 들여서 처분하고 바그란 왕가에 재정을 댄다면…….”
비행선을 더 확보해서 선단을 꾸려 부유대륙에 보낸다면 어떨까?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이미 그는 성공한 바 있다.
부유대륙에 상륙할 수 있는 모종의 방법이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필리프는 한참 동안이나 집무실 안을 서성거렸다.
아무래도 자신이 뭔가 실수를 한 것 같은 느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시간을 계속 흘러갔다.
댕―!
집무실 바깥의 시계탑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고 필리프는 고개를 들어올렸다.
“오후 4시…….”
데노바 중앙거래소가 5시에 문을 닫는다는 걸 생각하면 실질적으로는 1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는 소리다.
지금부터 감정을 서두르더라도 정상적으로 거래를 끝내는 것은 어려웠다.
물론 필리프 시장은 중앙거래소의 폐장을 늦출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
하지만 그는 끝내 통신구에 손을 얹지 못했다.
마침내 중앙거래소가 폐장했고 상인들이 즐겁다는 듯 보고를 해왔다.
“시장님의 결단 덕분에 3만 골드 혹은 남대륙 주식회사의 지분을 보호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나중에 섭섭하지 않으시도록 사례를 하겠습니다. 모쪼록 마음 푸시길…….”
상인들의 아첨이 이어졌지만 필리프 시장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이런 식으로 룰을 바꿔선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비행선이 3월 마지막 날에 온 것이 우연이 아니라면, 모든 것을 그가 계획했다면.’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데노바는 상상도 못할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 * *
밤새 대장간의 화로가 달아올랐다.
카슨 행정관은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인부들이 금괴를 만드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는 알테마호가 금을 가지고 귀환했다는 것보다는 계약이 무효로 돌아갔다는 것을 더 기뻐했다.
“그런 장사치들과 엮이지 않았으니 참 잘 된 일입니다, 영주님.”
계약이 무효로 돌아감으로써 일어나는 갖가지 사태에 대한 인식은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남작령의 행정관으로서 상당한 규모의 재정을 운용했을 텐데 시야에 한계가 있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다만 레오볼드도 그에게 큰 것을 바라는 건 아니었다.
“이 영지의 살림을 맡아주는 정도면 충분하지.”
큰 그림은 그가 그리고 아르마가 세부적인 계획을 짜므로 다른 인재들은 그것을 돕는 정도면 족했다.
하여튼 행정관에 의하면 이번 원정으로 영지는 약 3만 골드에 달하는 재정을 확보하게 되었다.
원광은 손도 대지 않은, 순수한 금덩어리만 계산한 것이다.
“현재 대장간에서 밤새 화로에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만 한계가 있네요. 그리고 원광에서 금을 분리하는 것은 여기서는 어렵습니다.”
“수수료를 내고 위탁해야겠군. 어디가 좋을까…….”
“가까운 곳으로는 란티스 백작령이 있겠습니다.”
“란티스 백작이라…….”
바그란 왕국의 대영주 중 한 명으로 동부에서는 상당한 위상을 가진 인물이다.
다만 영주라는 존재는 영지 내에선 왕과 다름이 없어서 실질적으로 그가 다른 영지에 큰 영향력을 끼칠 수는 없었다.
그를 걸렀다간 피곤해질 일이 많으므로 적당히 맞춰 줄 뿐.
아무튼 란티스 백작령은 규모가 크므로 제련소 시설도 충분히 갖춰져 있었다.
반다스 남작령의 경우 재정은 충분한데 인재에 한계가 있어 당장 제련소를 운용하긴 어려웠다.
레오볼드는 위성영상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정도면 위탁해도 되겠군. 하지만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 필요는 없어.”
“적당히 소문만 내겠습니다.”
“그걸 다 처리하면 총 재정은 얼마가 되지?”
“원광을 제련하는 수수료를 뺀다면 약 4만 7천 골드가 될 것으로 추측됩니다.”
일개 남작령에서 취급하기엔 너무나도 큰돈이다.
하지만 아스테라 전체를 지배할 구상을 가진 레오볼드 입장에선 그저 구실에 불과했다.
“행정관한테 적당히 넘겨주고 남은 돈으로는 비행선을 인수하기로 하지.”
현재 바그란 왕가엔 세 척의 비행선이 존재한다.
남은 두 척은 알테마호보다는 작지만 그럭저럭 원정에 동원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부유대륙에서 금을 가져왔다는 소문을 들은 루아드 왕자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란티스 백작이 그를 부추길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의 평소 성향을 분석해보면 가능성이 매우 높아요.”
“내가 만만하게 보이니 찍어 누르겠다는 건가.”
“언제나 그렇듯 힘을 가진 자는 룰을 바꿀 수 있죠.”
하긴 지구에서도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 바 있다.
힘의 원리가 좀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아스테라 대륙이라면 일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레오볼드는 그들이 현명한 선택을 하기를 바랐다.
룰을 바꾸려 시도하다간 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