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233
232화 꿇어라
레오볼드는 뿔새를 타고 오하멜시에서 란티스의 영지까지 일직선으로 달렸다.
마침내 성이 보이는 언덕에까지 도착했지만 그를 막아서는 병력은 하나도 없었다.
“성 방어에 모든 병력을 투자한 건가?”
「네. 현재 30기에 달하는 골리앗이 성 내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10기 정도는 마스터께서 나타나면 덮치려 숨어 있고요.」
“성도 참 크게 지었군.”
골리앗이 뛰어다닐 수 있을 정도니 그 크기를 알 만하다.
아무튼 란티스는 단 한 번의 방어전을 수행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쏟아부었다.
가산을 털어 마법사를 고용하고 스크롤을 구입했다.
성 곳곳을 개조해 함정을 파는 건 덤이다.
개중에는 에테르 공학자들이 만든 마법 밧줄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이 마법 밧줄은 아주 튼튼해서 대응하기가 까다로워요. 베파르급이라고 하더라도 힘으로는 끊어내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내 능력을 쓰면?”
「실이나 다름없죠」
“그럼 됐어.”
선단이 잘 해준다면 란티스가 뛰쳐나올 것이므로 도구 따위에 당할 일은 없을 것이다.
레오볼드는 뿔새를 몰아 마을 어귀에 다가섰다.
수확기에 들어선지라 몇몇 농부들이 이삭을 줍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아무 희망도 드러나 있지 않았다.
“아르마, 여기 세금은 어느 정도지?”
「다른 곳과 비슷하네요. 80%입니다.」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쥐어짜는군.”
「그게 이곳의 스탠다드니까요.」
레오볼드가 경작지를 지나는데도 농민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하기야 전쟁은 귀족의 것이니 란티스가 전쟁을 벌인다고 해도 그들이 신경 쓸 바는 아닐 것이다.
하루하루 살아남는 데에만 급급한, 그야말로 하루살이 같은 인생.
여러 문헌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200년 전도 지금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지온의 말을 들어 보면 심지어 700년 전과도 비교해도 평민의 삶은 별 차이가 없다고.
“이건 뭔가 잘못됐어.”
문명의 발전에는 속도가 있을 수 있다.
각국이 처한 정세와 상황이 다르니 발전에 차이가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지구도 미국 같은 곳은 눈부시게 발전한 데 비해 어떤 곳은 중세시대보다 못한 삶을 영위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것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아스테라의 문명은 심하게 낙후되었다는 게 레오볼드의 판단이었다.
“에테르란 편리한 에너지가 있음에도 그렇단 말이지.”
이번에 에테르 기차를 개발한 드워프 불토른은 이런 말을 했다.
“오래된 자들은 200년 전도 지금과 별 다를 바 없었다고 했지. 하지만 하나는 확실히 달랐어.”
“그게 뭡니까?”
“에테르 기술력이야. 당시의 골리앗은 정말 거대했고 파괴력도 엄청났지. 심지어 부유대륙 이상의 고도로 비행선을 날리기까지 했다니까?”
“그런 기술이 갑자기 사라진 이유는 뭡니까? 인간들은 대전쟁의 여파로 기술을 잃었다고 해도, 드워프들은 비교적 멀쩡했잖습니까?”
“어… 그건 나도 잘 모르겠네. 내 아버지도 그렇고 하나같이 입을 다물었거든.”
심지어 왜 전쟁이 시작되었는지조차 알려져 있지 않았다.
어떤 전쟁이든 원인은 있기 마련이고 아스테라 대륙 전체가 휩쓸린 거대한 규모이고 보면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을 텐데도 그 원인은 아무도 몰랐다.
그저 신과 드래곤이 싸웠고, 거기에 아스테라의 여러 종족이 휘말렸다고 기록되어 있을 뿐이었다.
불토른은 아마도 신의 영역을 침범해서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했다.
“저 밤하늘을 보게. 뭐가 보이나?”
레오볼드는 우주를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는 탄식하며 말을 이었다.
“예전의 우리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지. 하지만 망원경이 개발되고부터 알게 되었네. 저 하늘 너머에 다른 세상이 있다는걸.”
“저 반짝반짝 빛나는 것 말입니까?”
“그렇네. 내 아버지께선 어떻게든 저기에 도달하기 위해 비행선의 출력을 높이고 설계를 바꾸셨네. 하지만 모든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지. 저 하늘 너머엔 뭐가 있을까 궁금하지 않나?”
“궁금하군요.”
“별로 안 궁금하다는 얼굴이군. 뭐 됐네. 그냥 해본 소리니까. 고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추워지고 숨쉬기도 힘든데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지!”
불토른의 탄식은 거기에서 끝났다.
레오볼드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넓은 들판 위에 비정상적으로 큰 성과 하늘이 걸쳐져 있었다.
저 성은 메가시티와 닮았다.
하늘을 찌를 듯 높고 크다는 점에서, 그리고 무언가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점에서.
다만 메가시티와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레오볼드는 목적은 인류를 보호하기 위함이었지만 란티스는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성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가 만들 세상에서 란티스 같은 인간은 필요가 없었다.
“그러므로 너는 죽어줘야겠다.”
레오볼드가 탄 뿔새가 곧장 영주성을 향해 달렸다.
* * *
란티스는 성 바로 앞에 선 뿔새와 한 인간을 보고 비로소 확신했다.
“놈이 베파르급을 수리했다! 방어태세를 갖춰라!”
미친놈이 아닌 이상 단신으로 여기에 오지는 않았을 테니 베파르급을 수리해 아공간에 넣었다는 것이 올바른 판단일 것이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는 질문은 지금 상황에선 중요하지 않았다.
“쏴라!”
파파팟―
성벽 위에 올라선 궁수들이 일제히 화살을 쏘아댔다.
하지만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별 소용은 없어 보였다.
그는 마치 유람하듯 성 주변을 돌았고 그게 란티스의 분노를 돋우었다.
“쥐새끼처럼 쏘다니는군, 빌어먹을 놈!”
기사 중 한 명이 무릎을 꿇었다.
“영주님! 혼자 다니는 지금이 기회입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놈을 생포해 오겠습니다!”
“바보 같은 소리!”
란티스는 거칠게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놈이 요행으로 하이 나이트를 생포했다고 믿지 않는다! 저 넓은 들판에서 요격하는 것은 자살행위야! 우리는 여기에서 놈을 기다린다!”
아무리 강한 기사라 할지라도 성 자체를 어찌할 수는 없었다.
물론 베파르급은 코어의 출력이 높으므로 성벽을 허무는 것은 가능했다.
하지만 란티스의 병력이 그걸 두고 볼 리가 없었다.
온갖 마법과 함정이 발동할 것이고 골리앗은 성을 허물기도 전에 무력화될 가능성이 높았다.
레오볼드는 뿔새를 타고 계속 성 주변을 돌았고 본격적으로 발리스타를 비롯한 공성병기가 쏘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를 맞힌 것은 한 대도 없었다.
그리고 저 멀리 하늘에서 세 척의 비행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알테마호를 비롯한 부유대륙 선단이었다.
영주성의 병사들은 그 덩치를 보고 비웃었다.
“갈리스토 함대가 훨씬 크다! 놈들은 상대가 안 돼!”
“에테르 캐논까지 있으니까 멀리서 쏘면 그대로 격침될걸!”
“우린 놈들이 추락하면 밑에서 줍기만 하자고!”
그렇게 떠드는 사이 갈리스토의 함대가 구름 속에서 튀어나왔다.
반다스의 선단에 비해선 덩치도 훨씬 컸고 1척이 더 많았다.
게다가 측면에 에테르 캐논을 1문씩 장착하고 있었다.
갈리스토 함대의 제독은 승리를 의심치 않았지만 반다스의 선단이 묘하게 빠르다는 것을 깨닫고 당황했다.
“저놈들 골리앗을 싣고 있지 않았나? 왜 저렇게 빠른 거지? 예정 위치와 상대속도 다시 계산하도록!”
“계산 끝났습니다! 11분 후에는 이곳으로 들이닥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리보다 1.3배 이상 빠릅니다!”
“너무 빨라!”
모습을 드러내고 최소 30분은 있어야 영주성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를 일이었다.
에테르 추진기의 출력은 정해져 있고 골리앗까지 싣고 있는데.
제독은 짧은 고민 끝에 지시를 내렸다.
“어쩔 수 없다! 당초의 작전은 포기하고 근거리 포격전에 들어간다! 포격전 준비!”
당초의 작전이란 외곽에서 에테르 캐논을 활용해 적 선단을 농락한다는 것이었다.
기동성에서 우위에 있었고 원거리 무기가 있으므로 충분히 해봄 직한 작전으로 여겨졌지만 실전에 들어서자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대체 뭘 했기에 저렇게 빠를 수 있는 걸까?
갑판 선원들이 욕설을 내뱉으며 움직이는 그 순간에도 반다스 선단은 빠르게 접근해오고 있었다.
선두의 알테마호 선수에는 지온이 로브자락을 휘날리며 서 있었다.
“후후… 녀석들, 너무 빨라서 놀라고 있군.”
사실 그도 이 배가 왜 이렇게 빠른 건지는 모른다.
그저 자신이 탄 배가 그 어떤 비행선보다 빠르다는 부분에 흡족할 따름이었다.
소싯적에도 그는 도망치는 것 하나만큼은 빨랐기에 오늘날까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드래곤폼으로 변신해 저 함대를 족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자신이 죽을지도 몰랐다.
‘여기서는 멋지게 마법 한 방을 날려줘야지. 더 이상 놈들이 나를 무시하지 못하도록!’
반다스 자작령에서 지온의 입지는 그리 크지 않았다.
영지민들은 물론이고 관료들마저 그를 흔한 마법사라고 여겼다.
제대로 된 마법은 보여주지도 않으면서 에테르 연구에만 매진하니 당연한 평가였다.
얼마 전부터 친해진 루시아나 스테피나 등이 그를 대단한 마법사라고 추켜세우긴 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그저 그랬다.
다만 지온이 비행선에 탑승한다고 선언하자 일부 존경하는 시선이 쏟아지긴 했다.
마법사는 어지간해선 비행선에 타지 않기 때문이다.
에테르 추진기와 부유석 때문에 제대로 마법을 펼치기 힘들다는 점도 이유가 되겠지만 그것보다는 죽기 싫었기 때문이다.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목숨을 검증되지도 않은 비행선에 맡겨서야 되겠는가?
하지만 지온은 드래곤이었기에 설령 비행선이 격침된다 하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뭔가 조치가 취해지겠지만.
지온은 두 팔을 벌리고 드래곤 하트를 가동시켰다.
마법진이 가동되며 그의 두 손에 에테르가 모였다.
“흐하하! 받아봐라! 메가 라이트닝!”
쿠르르릉!
그의 두 손에서 푸른 빛줄기가 뻗어 나가더니 여러 갈래로 갈라졌다.
갈리스토 함대는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마법에 깜짝 놀라 선회를 시작했다.
덕분에 포격수들은 에테르 캐논 발사를 중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랜든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놈들이 산개한다! 햄튼 선장, 지금이오!”
“아아이! 에테르 추진기 최대로, 놈들의 기함을 노린다!”
알테마호를 위시한 3척의 선단이 늑대처럼 갈리스토 함대에 달려들었다.
그들의 움직임에 깜짝 놀란 갈리스토의 비행선 측에선 에테르 캐논을 쏘았다.
하지만 얇은 빛줄기는 순식간에 펼쳐진 리빙메탈 장갑을 뚫지 못했다.
선단에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일부 선원들이 넘어진 정도에 불과했다.
용기를 얻은 그랜든은 곧장 밀고 나가도록 지시했다.
“기함! 기함을 우선 제압한다! 이대로 전진!”
“으아아아!”
잠시 후 알테마호가 기우뚱하며 베스타로스호의 좌현에 접근했다.
햄튼 선장은 고도를 조절하여 양 비행선이 나란히 항해할 수 있도록 했다.
“엘윈 경! 지금이오! 널빤지를 만드시오!”
내리는 게 아니라 만들라는 말은 이상했지만 알테마호에선 당연한 것이었다.
엘윈이 기다렸다는 듯 스위치를 누르자 현측에 있던 리빙메탈이 분해되더니 순식간에 널빤지 형상으로 변해 베스타로스호를 꽉 붙들었다.
도망칠 수도 없게 된 것이다.
고도를 낮춰 도망가려 했던 갈리스토 제독의 얼굴은 흙빛이 되었고 그랜든은 검을 치켜들며 고함을 질렀다.
“지금이다! 백병전으로 놈들을 제압하고 배를 탈취한다! 나를 따르라!”
“그랜든 경을 따르라아!”
알테마호를 따르던 두 비행선도 각각 비행선 한 척씩을 맡아 백병전에 들어갔다.
이로서 공중전의 전황은 반다스 선단이 절대적인 우세를 점하게 되었다.
골리앗 한 대씩을 싣고 있음에도 기동력에서 압승을 거둔 것이다.
밑에서 쳐다보던 란티스는 갈리스토의 함대가 왜 저렇게 느린지 이해하지 못했다.
“왜 저렇게 느린 건가? 대체 왜?”
“갈리스토의 비행선이 느린 게 아니라 저쪽이 빠른 게 아닐까요?”
“그러니까 왜?”
그걸 알고 있으면 여기 있진 않았겠지.
어쨌든 공중전은 반다스의 압도적인 우세로 드러났다.
남은 비행선 한 척은 꽁지가 빠져라 도망가고 있었고 회생의 기미는 없어 보였다.
잠시 후 베스타로스호의 깃발이 내려가며 반다스 자작의 인장이 올라갔다.
란티스는 패배를 직감했지만 부하들 앞에서 내색할 수는 없었다.
앞서 요격을 주장했던 기사가 다시 건의했다.
“영주님! 곧 있으면 비행선에서 골리앗이 내려올 겁니다! 그 전에 저놈을 어떻게 해야 합니다!”
“…….”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 나가 봐야 승산이 없다는 건 누구보다 그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이번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 있다면 레오볼드를 성 안으로 끌어들여 머릿수로 덤비는 것이었다.
아무리 강해도 동시에 골리앗 여러 대를 상대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 틈을 타 마법과 함정, 여러 도구를 사용해 무력화하면 된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갈리스토의 함대가 적의 수중에 넘어간 이상 그 작전을 유지할 이유가 없었다.
비행선 6척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이었고 거기에 정신 나간 고위마법사까지 있었다.
그들이 내려오기 전에 놈을 잡아야 한다.
고뇌하던 란티스가 결정을 내렸다.
“전 병력, 출격 준비. 조용히 성문을 열어라.”
곧이어 30기에 달하는 골리앗이 영주성을 빠져나왔다.
목표는 레오볼드였다.
* * *
“어어, 기사님! 저놈들이 빠져나왔어요!”
카티나는 망원경으로 밑을 내려다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영주성이 열리며 수십 기의 골리앗이 튀어나온 것을 목격한 것이다.
그랜든은 망원경을 빼앗아 보고는 곧장 지시를 내렸다.
“햄튼 선장! 탈취한 비행선은 놔두고 일단 내려갑시다! 영주님을 보호하는 게 먼저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지온이 햄튼 선장의 길을 가로막았다.
“그, 지온님?”
“어이, 마음이 급한 건 알고 있지만 그냥 구경하기만 하자고. 그렇게 쉽게 당할 놈은 아니니까.”
“란티스가 영주님을 붙잡기 위해 무슨 준비를 했는지 모르셔서 하는 말씀이십니다!”
“나도 마법사니까 다 알아. 그런데 그게 쓸모가 있진 않다고. 저놈은 완전히 미친놈이라니까?”
영주를 미친놈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지온뿐이다.
그렇게 부른 후엔 처절한 응징을 당하지만 지온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는 한참 동안 레오볼드의 무지막지함에 대해 늘어놓았고 그랜든은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그걸 아십니까?”
“그거야 내가 직접…….”
“직접?”
“아니, 아니다.”
드래곤 자존심이 있어서 직접 맞아봤다는 소리는 하지 못했다.
어쨌든 시선을 끄는 데는 성공해 그랜든은 고도를 내리자는 의견을 포기하고 바라만 보게 되었다.
넓은 들판을 30기의 골리앗과 마법사를 태운 뿔새 몇 마리가 가로질렀다.
레오볼드는 유유자적 돌아다니다가 뿔새를 어디론가 보내고 아공간을 열어 베파르급 골리앗을 꺼냈다.
그르릉 소리를 내며 골리앗이 일어서자 란티스는 부하에게서 투창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달려가면서 창을 힘껏 던졌다.
길이 5미터짜리 단창이 베파르급을 향해 일직선으로 쏘아져 나갔다.
레오볼드는 그걸 피하는 대신 뭉툭한 끝을 잡아챘다.
끼긱, 하는 소리와 함께 창이 허공에서 정지한 채 바르르 떨렸다.
“약하군, 란티스.”
“네놈, 네놈!”
란티스는 당초의 포위 작전을 잊어버린 채 다른 창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의 골리앗은 구시온급으로서 베파르급에 비하지는 못하지만 근위기사나 고위귀족용으로 개량된 기종으로 높은 출력을 자랑했다.
란티스도 에테르 혈통을 가진 귀족이자 기사로서 바그란 전체를 뒤져도 그만한 실력자를 찾기는 힘들었다.
그랜든 같은 소수를 제외한다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네놈만 없었더라면!”
레오볼드는 그가 던지는 창을 잡아 옆에 던져놓았다.
다섯 개의 창이 쏘아졌지만 최종적으로 그를 맞힌 것은 하나도 없었다.
창이 다 떨어지자 그가 란티스를 조롱했다.
“끝인가? 네 신세를 보는 것 같군.”
“예의를 갖춰라, 반다스! 나는 이 나라의 백작이자 대영주다!”
“얼마 전까진 그랬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네놈은 반역자에 불과해. 옆의 기사들도 마찬가지고.”
“이노오옴!”
“바그란 3세의 이름으로 네놈들을 토벌하겠다. 충성심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지금 무릎을 꿇어라.”
“…….”
당연하게도 무릎을 꿇는 기사는 없었다.
란티스는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내 자랑스런 기사들은 네놈의 혓바닥에 놀아나지 않는다!”
“그래? 그럼 죽어야지.”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주위를 둘러싼 마법사들이 그리스 마법을 발동시켰다.
레오볼드는 에테르가 불길하게 변화하는 것을 느끼고 곧장 뛰어올랐다.
“파이어볼!”
화염 덩어리가 공중에서 부딪쳐 폭발했지만 골리앗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대마법진은 어지간한 마법을 전부 무효로 돌려 버린다.
“지금이다! 밧줄을 던져라!”
아르마가 경고했던 그 마법 밧줄이다.
레오볼드가 땅에 내려오자마자 밧줄이 그를 덮쳤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밧줄처럼 보였지만 에테르로 강화된 녀석으로 어지간한 힘으로는 절대 끊어지지 않는 위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레오볼드가 탄 골리앗은 그걸 끊어 버렸다.
“놈이 밧줄을 끊어냈다!”
“어, 어떻게?”
사실은 힘으로 끊은 게 아니라 염동력을 써서 분리한 것에 불과했다.
기사들은 앞뒤 볼 것도 없이 그에게 달려들었고 레오볼드는 란티스가 던진 창을 양손에 집어 들고 던지기 시작했다.
쐐액!
란티스가 던질 때와는 차원이 다른 굉음이 터져 나왔다.
쾅!
골리앗의 복부에 창이 돋아나더니 뒤로 수십 미터를 날아갔다.
창의 운동에너지를 버티지 못한 것이다.
정확히 복부를 노렸는지라 기사의 신세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부하들이 죽어가는 것을 본 란티스는 분노해 그에게 달려들었다.
“이노오오옴!”
“넌 그 말밖에 할 줄 모르나? 뻔한 놈이군.”
검을 꽉 쥔 골리앗이 쿵쾅거리며 일직선으로 돌진했다.
순간 허공에 검광이 교차되며 란티스가 탄 골리앗이 휘청거렸다.
힘겨루기에 들어가자 란티스는 안간힘을 써서 레오볼드를 밀어붙이려 했다.
“네놈만 없었다면, 네놈만 없었다면!”
“그랬으면 뭐? 평화롭게 이 일대를 지배할 수 있었다는 거냐? 네 욕심대로 평민들을 갈아 넣으면서?”
“네놈이 나타나면서 모든 것을 망쳤다! 바그란은 네놈으로 인해 멸망할 거다!”
어떻게 알았지?
악에 받쳐 되는 대로 지껄인 말이었지만 핵심을 꿰뚫기는 했다.
둘이 대치하는 사이 기사들이 달려들었고 레오볼드는 봉인마법진을 문질러 지웠다.
그의 가슴팍에는 아르마가 새로 새겨준 에테르 하트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간의 전투 데이터와 그랜든의 에테르 하트를 연구한 결과를 반영해 구축하기 시작한 것으로 모든 면에서 이전의 에테르 회로를 완전히 능가했다.
순간 베파르급 골리앗의 검이 황금빛으로 물들더니 대검의 형상으로 변했다.
기사들은 물론이고 란티스마저 그걸 보곤 경악해 주춤주춤 물러났다.
“에, 에테르 블레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