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239
238화 영혼의 안식처
“나무의 가지치고는 좀 크군.”
“엘드그라실 본체는 수백 km나 위로 올라가 있으니까요. 뿌리도 최소 저 정도는 될 거예요.”
레오볼드와 아르마는 발가드의 탐험대가 발견한 엘드그라실의 가지를 바라봤다.
일명 세계수의 가지, 파편으로 불리는 그것은 영롱한 황금빛을 뿌리며 한 섬에 자리하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바로 옆의 섬에 새로운 가지가 돋아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엘드그라실은 자동적으로 자신의 분신을 만드는 걸까? 어떻게 생각해?”
“엘브랑데에서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엘드그라실은 번식이나 접목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오직 자의로만 가지를 형성한다고 하네요.”
“하긴 신으로 숭배받는 존재니까 그 정도는 해야겠지.”
엘프들은 이 나무에서 에테르가 나온다고 믿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에테르는 저 멀리 우주에 있는 에테르 태양에서 나오는 것이며 엘드그라실의 정확한 능력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단지 에테르를 저장하고 주변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것 정도로는 뭔가 부족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대기와 온도를 안정화시키는 기능도 포함되어 있답니다. 엘브랑데를 예로 들면 북쪽 끝단과 남쪽 끝의 온도가 거의 비슷해요. 부유대륙도 마찬가지고요.”
“대단하긴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한데…….”
레오볼드는 연구를 위해 가지를 옮기고 싶었다.
일단 세틀러호를 동원하면 섬 채로 옮기는 것은 가능해 보였지만 부유대륙에 끼칠 영향력이 염려되었다.
가지가 없어졌다고 갑자기 온도가 영하로 곤두박질치고 숨쉬기가 힘들어지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고민한다고 결론이 나는 건 아니지. 일단 옮겨보자고.”
현장에는 지갈레온이 본체로 돌아가 루시아를 태우고 날고 있었다.
―이봐, 꼬마 마녀. 영주가 저 가지를 옮기고 싶다는데 어떻게 할 것 같아?
―쉽지. 세틀러호를 동원해서…….
―세틀러호라는 건 뭐 하는 물건이냐?
―아차. 아무것도 아니야.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러고 보니 어깨가 결리는군. 마사지라도 해야겠어.
지갈레온은 협박조로 말했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괴물에 크게 놀랐다.
―뭐, 뭐, 뭐냐 저 악마는?
―내 본체야. 크고 아름답지?
―크고 아름답기는 개뿔이! 저건 인간들이 부르는 마왕 아니냐?
지식이 부족한 지갈레온이라고 해도 이계에서 오는 악마와 마왕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몇 개의 다리를 가지고 부유대륙을 돌아다니는 거대한 금속제 괴물은 마왕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수가 없었다.
루시아는 그런 지갈레온의 피부를 꽉 깨물었다.
―마스터는 예쁘고 멋지다고 칭찬해줬는데 눈이 삐었어?
―눈이 삔 건 그놈이겠지! 저게 어딜 봐서 예쁘다는… 흐아악!
그때 지갈레온이 부유대륙 쪽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루시아의 본체가 중력마법을 동원해 그를 끌어당긴 것이다.
침착하게 대응했다면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었겠지만 그는 경험도 담력도 부족했다.
덕분에 드래곤 주제에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신세가 되었다.
―다시 말해 봐, 내가 누구라고?
―어딜 봐도 마왕이잖냐! 그것도 거대한! 지금 네 모습을 인간들이 보면 뭐라고 할까?
―…….
루시아는 갑자기 할 말이 없어져 그를 놓아주었다.
그녀의 주인인 레오볼드나 아르마가 염려하는 것도 그 부분이었다.
결국 그녀는 성장을 거듭해 마왕으로 거듭날 것이고 주변 문명을 파괴할 것이다.
자신의 운명이 최후에는 주인의 적이 될지도 모른다는 게 그녀를 우울하게 했다.
위성을 통해 둘이 하는 짓을 보고 있던 레오볼드는 잠시 작업을 중단하게 하고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루시아, 괜찮아?
―괜찮아요, 마스터.
“전혀 괜찮지 않아 보이는데. 지온이 하는 말 따윈 신경 쓸 필요 없어.”
―하지만 제가 남들과 다른 건 사실이잖아요. 저는 오래전부터 아스테라의 아인종에게 배척받아 온 마왕이에요. 언제 본색을 드러낼지 모르는…….
“내게 루시아란 이름이 어떤 건지 얘기했던가?”
―전혀요.
“루시아는, 내 연인이었어.”
뜻밖의 당혹감이 그녀를 감쌌다.
대충 붙였거니 싶었는데 연인이었다니.
레오볼드는 원본 루시아에게 말하듯 다정한 어조로 그녀를 달랬다.
“내 선생이자 인생의 반려자이기도 했지. 그리고 그녀는 플레이그 퀸에게 죽었어.”
―결국 다른 차원의 제가 그녀를 죽인 거로군요…….
“네가 아니야. 그건 다른 개체야.”
―마스터가 그렇게 말씀하셔도 저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결국 괴물이 되고 말 거라고요.
“그렇다면 운명을 바꿔. 내가 과거로 돌아와서 플레이그 퀸과 싸웠듯이, 너도 운명을 바꾸라고. 나를 도와 그 플레이그 퀸과 싸운다는 선택지는 생각해본 적도 없어?”
―마스터…….
“이름을 붙였을 때부터 그걸 기대했다는 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난 널 믿기로 했어. 그러니까 너도 날 믿어 줘. 플레이그 퀸처럼 되도록 놓아두지는 않을 테니까.
루시아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뭔가를 결심했는지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태어났을 땐 마스터와 있지 않았으니, 죽을 땐 마스터와 함께 죽고 싶어요.
“그거 상상하기에 따라서는 생각보다 끔찍한 말인 거 알아?”
―선지자를 만나고 싶어 하셨죠? 저도 만나고 싶어졌어요. 소원 하나만 빌게.
“무슨 소원?”
―그건 만나고 얘기할게요.
거기에서 의식이 끊어졌다.
루시아의 본체는 아무렇지도 않게 부유대륙을 돌아다녔고 둘은 다시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레오볼드는 지온에게 세틀러호를 공개할 필요성을 느꼈다.
‘루시아의 본체까지 본 이상 숨길 필요는 없겠지…….’
지갈레온은 비록 멍청하고 나약하고 겁이 많기는 하지만 떠벌이는 아니었다.
지금까지 그가 비밀을 떠벌린 적은 없었고 드래곤이라는 것을 들키지도 않았다.
최소한 입은 무겁다는 것이다.
평소 돌아다니면서 하는 짓을 봐서는 1g도 안 될 것 같지만.
어차피 엘드그라실을 옮기는 것은 보통 수단으로는 안 되므로 세틀러호를 계속 숨겨 둘 순 없었다.
‘일정보다는 조금 빠르지만 큰 상관은 없겠지.’
발가드도 그렇고 여기까지 온 이상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아스테라 대륙 전체에 세틀러호를 공개할 날도 올 것이다.
“아르마, 광학위장망 풀고 차단기 설치해.”
「네, 알겠습니다.」
전장 700미터에 100만 톤의 거체를 자랑하는 우주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갈레온은 루시아를 태우고 유유히 부유대륙의 상공을 날고 있다가 깜짝 놀랐다.
―뭐, 뭐냐? 저건?
* * *
그간 지갈레온은 자신이 아스테라에서 살아남은 마지막 드래곤이며 거대한 생명체라는 것을 은근히 자랑스럽게 여겼다.
사실 아스테라엔 전장이 50미터를 넘어가는 물체가 별로 없었다.
스케일에서 차원이 다른 엘드그라실과 비행선뿐인데 전자는 거의 신급 존재였으므로 논외였다.
자연스럽게 비교의 대상이 될 만한 것은 비행선 정도였는데 뭘로 보나 자신이 우월하다고 여겼다.
―일단 무게는 내가 더 많이 나가거든! 그리고 녀석들은 너무 느려!
드래곤이라면 다양한 방면에서 우월함을 뽐낼 일이 많을 텐데 왜 하필 무게로 우쭐함을 느끼는지 모를 일이다.
하여튼 지갈레온은 자신보다 큰 것은 거의 없다는 걸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런데 여기, 세틀러호가 등장했다.
전체가 리빙메탈인 거대한 우주선이 자신의 위에 떠 있자 그는 놀라 추락할 뻔했다.
―뭐, 뭐냐? 저건?
“저게 뭐냐면, 내가 타고 온 배야. 우주라는 바다를 항해해서 여기까지 온 거지.”
―배라고? 아무리 봐도 배 같지는 않은데? 그나저나 대체 왜 저렇게 무식하게 큰 거야? 말도 안 되는 크기잖아!
여기서 초대질량 입자가속기를 내장하고 있어 저런 덩치가 되었다는 건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
“진정하고 내 말 들어 봐. 내가 이계에서 온 용사라는 소문은 들었지?”
―들었지. 믿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였지만.
“그게 진짜라면 어떨까?”
―이계에서 온 용사라… 이계란 곳은 저런 거대한 것이 필요한 곳인가 보군.
단순히 거대한 것으로 끝이 아니라 압도적인 중량감이 있었다.
게다가 선미에선 막대한 에테르까지 느껴졌다.
지갈레온이 보기에 저 배는 엄청난 힘을 숨기고 있는 괴물처럼 느껴졌다.
그는 뭘 잘못 먹었는지 여유로움을 찾고는 세틀러호 주변을 날아다녔다.
―이게 배라고? 젠장, 대전쟁 당시에 본 신들의 배와는 비교도 안 되잖아. 영주! 이 배의 힘은 어떻지?
“마음만 먹으면 아스테라 전체를 불태울 수 있겠지.”
―그럼 지금이라도 귀쟁이 놈들의 빌어먹을 숲을 불태우면 되는 거 아냐?
레오볼드는 그에게 여정의 목적을 설명할 필요성을 느꼈다.
짧은 설명이 이어졌고 그가 수십 년 동안 찾던 선지자의 고향이 여기라는 것까지 튀어나왔다.
지갈레온은 짐짓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말만 들어 보면 선지자는 라사 같은데? 별로 존재감 없는 신 말이야.
“우리도 그렇게 추측하고 있어. 그를 만나러 여기까지 왔는데 시끄럽게 굴 순 없지.”
―이미 충분히 시끄럽게 굴었잖아? 영지전을 하고 사람들을 죽이고.
“신에게 기도하러 조용한 신전에 왔는데 옆에서 귀찮게 구는 녀석이 있으면 머리를 쥐어박아 주는 정도는 괜찮잖아?”
―아, 그러니까 영주는 라사의 신도군.
“나는 다른 신들은 제대로 된 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러니까 신은 선지자뿐이지.
―하긴 내가 봐도… 그나저나 이계는 어떤 곳이지?
“에테르는 없고 인간만 존재하는 곳이라고 보면 될 거야. 엘프도 몬스터도 없어.”
―그거 신기하군. 어떻게 인간만 있을 수 있지? 에테르도 없는데 어떻게 이런 배를 만든 거야?
“내 입장에선 여기가 더 신기해. 몬스터와 드래곤이 있는 세상이니까. 그리고 에테르가 있는데도 이렇게 발전을 못 했다는 것도.”
―공방의 드워프도 그런 말을 자주 하긴 했었지…….
“그나저나 잠깐 비켜 줘. 지금부터 엘드그라실을 옮길 테니까.”
―저거 뿌리가 섬과 일체화되어 있어서 뽑기가 힘들 텐데. 자칫 잘못하면 죽어버릴지도 모른다고?
“그런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해.”
지갈레온이 자리를 비워주자 아르마의 통제에 따라 세틀러호가 중력 크레인을 가동했다.
엘드그라실을 품은 거대한 섬 전체가 들썩이더니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갈레온은 옆을 날아다니며 감탄하기 바빴다.
―젠장, 내 눈으로 봐도 못 믿겠군! 이건 정말 미친 짓이야!
―아 좀 시끄러워! 이런 거 처음 봐?
―처음 본다 왜!
둘이 옥신각신하는 사이 세틀러호는 에테르 역장을 가동해 빠르게 사라졌다.
지갈레온은 장점인 속도를 이용해 쫓아가려 했지만 갈수록 멀어지는 것을 보고 포기하고 말았다.
―엄청나게 빠르군. 그나저나 저 배는 어디로 가는 거야?
“해적군도에 내려놓을 거야. 거기 연구소를 하나 차려서 연구해 봐야지.”
―영주, 갑자기 저 배가 타고 싶어졌어.
“나중에 태워줄 테니까 지금은 포기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꼭 태워주는 거야, 꼭!
“그래, 꼭.”
어린애처럼 약속한 레오볼드는 반짝거리기 시작한 통신구에 손을 얹었다.
발가드 탐험대가 뭔가를 발견했나 보다.
* * *
“영주, 아무래도 신의 파편을 발견한 것 같소. 200년 전 그람 제국이 건조한 배요.”
“200년 전의 배니 다 썩었겠군.”
“아니, 의외로 멀쩡하오. 내가 보기엔 우리가 몰고 온 선단보다 훨씬 나아 보이는데?”
“그래? 신의 파편이라서 그런가?”
“금방이라도 하늘로 떠오를 것처럼 멀쩡하오. 먼지만 좀 앉았을 뿐이오.”
“자아가 있다고 들었는데, 대화할 수 있겠나?”
“잠깐만 기다리시오. 지금 내부를 탐색하는 중이오.”
얼마 지나지 않아 발가드가 뭔가를 발견했다며 다시 통신을 걸어왔다.
“선장실에 들러붙었군. 정신이 나간 것 같은 녀석이라 대화는 어려울 것 같소.”
“대화가 아예 안 되나?”
“영주가 와서 들어 보면 알겠지만 말이 이어지지가 않소. 횡설수설한다니까.”
“그럼 통째로 가져와서 대화하는 수밖에.”
“뭘 어떻게 한다는 말이오?”
마침 비행선이 좌초된 섬은 그리 크지 않아 가볍게 옮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빠르게 부유대륙과 해적군도를 왕복한 세틀러호는 탐험대를 돌려보낸 발가드와 알비온 위에 나타났다.
“영주, 내가 지금 헛것을 보고 있는 것 같은데.”
“헛것이 아니야. 내가 타고 온 배지.”
“알테마시여… 그럼 이계에서 온 용사라는 소문이 진짜였단 말이오?”
“그럼 셈이지. 묻고 싶은 게 많겠지만 잠깐 비켜 줘. 섬 채로 옮길 테니까.”
“이건 정말이지…….”
발가드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더니 알비온과 함께 자리를 비켰다.
곧이어 세틀러호가 중력 크레인을 가동해 섬을 들어 올려 남동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레오볼드는 자초지종을 설명했으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했다.
하긴 그가 걸어온 행적은 이 짧은 시간에 설명하기엔 너무도 짙고 길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들으면서도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소.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한 것 같군. 영주가 말한 아스테라 정복이란 게 헛소리가 아니었다는 거 말이오.”
“내가 이걸 밝힌 건 지갈레온과 자네 둘뿐이야. 당분간은 비밀로 해주었으면 좋겠어.”
“그야 당연한 일이지. 그나저나 인간만 있는 세상은 어떤 곳이오?”
“글쎄, 보는 시야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사람 사는 세상은 비슷하다고 봐야지.”
“거기도 똑같다는 거군. 이해했소.”
“그리고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그라키에스에 대해 아나?”
“블랙 드래곤 그라키에스. 잘 알지. 내가 직접 싸워 본 몇 안 되는 드래곤이오.”
“흑마법을 부린다고 들었는데 정확한 능력은 어떻게 되지?”
“설마 그라키에스가 되살아난 건 아닐 테고, 뭐가 어떻게 된 거요?”
레오볼드는 엘프와 카이로스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는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귀쟁이 놈들은 인간을 말살시키는 것도 모자라 과거의 영광까지 꺼내어 난도질하려 하는군. 내게 맡겨주시오. 직접 처리하겠소.”
발가드는 에테르 하트의 출력만 따지면 카이로스의 절반밖에 되지 않지만 엄청난 전투경험과 골드 드래곤의 권능으로 그걸 커버하는 타입이었다.
그에 반해 카이로스는 제정신이 아닌데다 흑마법을 봉쇄당하고 싸워야 한다.
또 카이로스가 쓸 골리앗은 아무래도 평범한 데 비해 발가드의 것은 출력이 300E가 넘어가는 괴물 알비온이었다.
이 모든 것을 따져 보면 둘의 전투는 발가드가 상당한 우세를 점할 거라고 아르마는 추측했다.
하지만 레오볼드는 당장 그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스케줄에 의하면 내가 마지막이야. 그러니까 나는 치명상을 입고 녀석을 간신히 막아낸 영웅이 되는 거지.”
“하… 그게 영주의 방식이군.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내가 뭐라고 할 건 아니겠지. 그런데 혹시 그건 알고 있소?”
“뭘?”
“방금 데려간 신의 파편 말이오. 그놈은 영혼을 다루는 케인이라는 신이었소.”
“영혼을 다룬다라…….”
“정확히 말하자면 영혼을 인도하는 역할이라고 봐야겠지. 그래서 예전에는 죽은 자의 입에 동화 한 푼을 넣곤 했었소. 뱃삯으로 쓰라고.”
“어디로 인도하는 거지?”
“그걸 아는 건 오직 케인뿐이오.”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없겠군.”
“그놈 완전히 미쳤다니까.”
어쨌든 발가드는 계속 부유대륙을 탐험하는 것으로 대화가 끝났다.
레오볼드는 아르마가 호출한 셔틀을 타고 해적군도로 향했다.
수천 개의 섬 전체에 세틀러호의 에테르 역장이 펼쳐져 있었고 그 가운데 거대한 섬이 내려앉고 있었다.
“크군.”
신의 파편이 박힌 배는 200년 전에 건조한 배답게 상당한 덩치를 자랑했다.
물론 세틀러호나 섬에 비하면 한없이 작지만 최소 5,000톤 정도는 되어 보였다.
이는 갈리스토에서 건조한 왕의 기함 베스타로스호에 비해서도 3배 이상 더 큰 것이다.
‘불토른이 과거 비행선은 지금보다 훨씬 크다고 했는데 그 말이 맞았군.’
어쩌면 그의 선조가 이 배를 건조하는 데 관여했을지도 모르겠다.
셔틀이 그를 갑판 위에 내려놓았고 아르마가 선장실로 안내했다.
고풍스러운 장식이 먼지로 뒤덮인 선장실로 들어서자마자 희미한 목소리가 그를 반겼다.
―너는… 이것은 라사의 계시…….
“넌 누구냐? 뭘 보고 그런 말을 하는 거지?”
―보는 게 아니다. 너희 가슴에 잠재된 힘을 느낀 것이지…….
「마스터가 흡수한 선지자의 유물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신은 맞는가 보군.’
지금까지 그의 힘을 눈치챈 자는 제법 되지만 선지자의 유물을 느낀 존재는 플레이그 퀸에 이어 두 번째였다.
레오볼드는 사기를 치기로 했다.
“나는 라사의 대리인이다. 그의 의지를 갖고 마침내 이 땅에 왔다.”
―오오, 우리의 창조주시여! 아스테라의 진정한 주인이시여! 당신의 대리인을 기다렸나이다!
“말해라. 넌 누구지? 그리고 어떤 경위로 여기에 있는 거냐?”
―보잘것없는 저의 이름은 케인입니다… 인간들이 그렇게 붙여주었지요…….
별로 특이할 것 없는 소신 케인의 행적이 흘러나왔다.
레오볼드는 다른 것은 흘려 넘겼지만 그가 영혼을 인도하는 대상이 엘드그라실이라는 것만은 제대로 알아들었다.
그 거대한 나무의 기능은 에테르를 발산하는 게 아니라 영혼의 저장고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현제 엘드그라실은 수많은 영혼으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이겠군.”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엘프들이 이용했기 때문이지요…….
“어떻게? 엘프들이 왜 그걸 이용하려 했지?”
―엘드그라실에 모인 영혼은 자아가 없는 에너지 덩어리에 가깝습니다… 지닌 힘도 대단하지 않지요… 하지만 그 영혼을 무한의 회로에서 가다듬는다면 거대한 존재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아인종들이 말하는 신이지요…….
레오볼드는 뒷머리를 망치로 때리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신을 만들 수 있다니.
그리고 엘프들이 그걸 이용했었다니.
‘엘드그라실이 에테르를 발산한다는 건 그렇게 믿게 하기 위한 프로파간다였군.’
이쯤 되면 국부 에일리드를 신으로 받들기 위해 벌이는 일련의 행사도 헛짓거리는 아니었다.
영혼을 모아서 신을 만들고 에일리드라고 이름을 붙이면 되니까.
케인에 의하면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엘븐 판테온이 꽤 된다고 한다.
“그렇게 신을 만들어서 뭘 할 작정이지?”
―그거야 엘븐 판테온이 아닌 이상 모를 일이지요… 하지만 엘프들의 목적은 확고합니다. 그들은 먼 미래의 재앙을 대비하고자 합니다…….
먼 미래의 재앙은 혹시 플레이그를 말하는 게 아닐까?
엘프들에게 미래를 내다보는 힘이 있어 언젠가 마레의 플레이그가 성체로 성장하는 것을 예견하고 대비하고자 했었다면?
조각난 퍼즐이 맞춰지며 대전쟁이 발발한 이유 중 하나가 떠올랐다.
엘프들이 아스테라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은 플레이그에게 진화를 허용하지 않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면 플레이그의 진화에 필요한 무언가가 이 땅에 있어야 한다는 뜻인데.’
그게 무엇인지 현 시점에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레오볼드는 엘프들에게 찬성하지도 않았다.
인간은 언제고 플레이그를 극복하고 우주 저 멀리로 뻗어나갈 가능성이 있는 종족이기 때문이다.
‘지구의 과학기술과 테라의 에테르기술이 합쳐진다면 충분히 가능해.’
차원과 시간을 넘는다면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우주를 여행할 수 있지 않겠는가?
플레이그만 없었어도 22세기의 인류는 그렇게 했을 것이다.
상념이 깊어지는데 아르마가 급히 보고했다.
「마스터, 카이로스가 활동을 개시했습니다.」
고개를 든 레오볼드의 시야에 처참하게 파괴된 왕궁과 골리앗의 잔해, 그리고 시체가 즐비한 게 보였다.
카이로스가 접경지대를 벗어나 인간 왕국을 습격한 것이다.
“암살이 아니라 순수한 파괴였군.”
「골리앗은 엘브랑데의 기종이 아니라 자이움의 것을 수리해 썼습니다. 귀도 잘랐기 때문에 겉으로는 종족을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아스테라의 발전을 가로막고 싶다 이거지…….”
녀석의 행보가 그의 목적과 부합하므로 당분간은 놔두겠지만 반다스 백작령에 발을 디딘다면 생명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그때 케인이 신기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음, 엘드그라실의 가지가 근처에 있군요. 아무런 영혼도 없는 깨끗한 가지이니 좋은 안식처가 될 겁니다…….
“가지도 영혼을 저장할 수 있나?”
―물론입니다. 내 힘을 받아들인다면 그 어떤 영혼도 저장할 수 있습니다. 비록 그게 원래의 영혼은 아니겠지만요…….
어쩌면 미친 엘프와 블랙 드래곤의 영혼까지 획득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레오볼드는 다음 사냥감을 향해 뿔새를 타고 달리는 카이로스를 바라봤다.
이제 대륙은 걷잡을 수 없는 혼돈의 도가니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