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25
“흐음···”
노인의 눈빛이 먹음직스런 사냥감을 바라보는 포식자의 그것으로 변했다.
“아예 이노텍을 인수하지 않겠나?”
“이노텍을요?”
“이번에 스타필드라는 법인도 만들었다며? 모르긴 몰라도 자네가 우주 관련된 사업을 할 거라는 점은 분명하겠지. 부품사로 하이텍이 있긴 하지만 규모가 너무 작아. 이노텍 정도면 딱이지. 어떤가?”
“음···”
유지하는 일부러 뜸을 들인 다음 말했다.
“관심이 없는 건 아닙니다만 적자가···”
“적자난 거 깨끗이 정리해서 줄 테니까 자네가 세계적인 방산기업 한 번 만들어보게. 거 전차에도 블랙메탈을 적용할 수 있다며?”
그의 말투에서는 어떻게든 혹을 떼버리고 싶은 심경이 드러났다.
하긴 계속되는 불황으로 다들 적자를 줄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구매자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이 나타났으니 미끼를 던지는 것이다.
“글쎄요···적자를 정리한다 치더라도 맡은 사업이 있으니 당분간은 적자를 감당해야 하는 처지인데···”
유지하가 고민하는 척하자 그가 급해졌다.
“2년 동안 한성에서 적자를 보전해줌세. 대신 신규 사업은 제외야.”
“3년으로 하시죠. 제가 알아보니까 장갑차량 부품공급 계약이 그때까지더군요.”
“알았네. 또 있나?”
“이건 좀 다른 맥락인데···회장님께서 위원회를 만들어 국내의 배터리 공급을 조율해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신 회장은 깜짝 놀랐다가 그 의미를 알아채곤 버럭 소리 질렀다.
“예끼 이 사람아! 행간에 숨은 의미를 내가 모를 줄 아나? 자네 큰아버지부터 시작해서 상대하기 귀찮은 사람들 다 나한테 떠넘기겠다는 계산 아닌가?”
“국내 재계의 큰 어르신 아니십니까? 노년에 위원장 자리 하나 차지하시면 면이 서실 겁니다.”
“돈도 없는데 면은 무슨. 그래서 자네가 월급이라도 주나?”
“제가 아니라 배터리 공급을 원하는 사람들한테서 받으셔야죠.”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는 간단한 논리다.
“···노년에 심심하진 않겠군. 늙다리들 상대하는 건 자네보다는 내가 걸맞겠지.”
“단, 공급해선 안 되는 기업이 하나 있습니다.”
“미래그룹 말인가? 하긴 그쪽이 심하긴 했지. 동생 몫까지 아득바득 다 뺏으려고 드는 건 도리가 아니야. 그래도 미래자동차에 배터리 공급을 안 하면 여러 말이 나올 텐데.”
“물량이 없다고 하세요. 아니면 뒤로 한참 미뤄도 좋습니다. 한 3년이면 충분하겠죠.”
배터리 공급을 직접 통제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국내 업체들은 워낙 형편이 어려워서 얻어낼 게 없었다.
또한 신 회장이 위원회를 관리한다고 해도 권유의 형식이라 최종적으로는 유지하가 결재권을 가지게 된다.
그러니까 귀찮은 건 다 떠넘기고 실속만 챙기겠다는 속셈이다.
신 회장은 이런 사항을 눈치 챘으면서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기생오라비도 울고 갈만한 녀석과 인연을 이어가고 싶은 욕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요즘 그쪽은 중국에 선을 대는 모양이더라고, 뭐 좋은 소식이라도 들었나 보지?”
NCC의 이사 쟈오저룬이 말한 것과 관계가 있나?
지금쯤은 검사수가 2천만을 넘었을 테니 누군가를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봐야 정밀하게 가공은 불가능하지만.
「확인하겠습니다」
유지하는 보고를 들으며 물었다.
“맡으시겠습니까?”
“젠장, 알았네, 알았어.”
“오늘 나온 이야기들 정식으로 문서화해서 계약 체결하지요.”
“내 쪽에서 해결하지. 그건 그렇고 오늘 저녁에 술 한 잔 어떤가? 좋은 막걸리집이 있는데 내가 사겠네.”
은근한 목소리로 권했으나 유지하는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너무 바빠서 안 되겠습니다.”
“거 어른이 권하면 슬그머니 받아들여야 할 때도 있는 법이네. 바쁘다니 할 수 없구만. 먼저 가네.”
“살펴 가십시오.”
그는 거래를 마치고 돌아가는 도중 손자 하나가 또 사고를 쳤다는 소식을 접했다.
정확히는 어제 새벽에 일어난 일이었다.
“요 새끼가 경찰차를 들이박고 도주해? 그것도 술 처먹고? 당장 직위해제하고 차 전부 압수해! 뭐? 그런 놈을 왜 빼줘? 유치장에 처박혀 있으라고 해!”
그는 성질을 내며 폰을 아무렇게나 집어던졌다.
재벌 3,4세들이 사고치는 건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요즘 것들은 좀 심했다.
한심함에 유지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놈 반만 닮았으면 걱정이 없겠구만.”
녀석이 망나니에서 개과천선했듯이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치는 그의 손자도 언젠가 정신을 차릴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인간 세상의 끝이 도래했다
2103년은 인류가 공식적으로 태양계 외부에 진출했던 때다.
하지만 지구의 누구도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아니, 기억하지 않으려 애썼다.
슬픔의 밤이 일어난 해이기 때문이다.
2103년 겨울이 채 지나가기 전의 어느 밤.
아직 자지 않고 있던 어린아이들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유성군을 목격했다.
아이들의 고사리 같은 손가락이 유성군을 가리켰고, 부모들은 경악했다.
그것은 인류 멸망의 징조였던 것이다.
도합 2천 마리가 넘는 플레이그가 갑자기 지구 대기권에 출현했다.
성체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았으나 그래도 몇 만 톤은 족히 나가는 녀석들이 인류의 도시에 낙하했다.
그 충격은 가히 엄청나 전 세계의 도시가 불타올랐다고 해도 될 정도였다.
나중에 집계된 통계지만 이때 무려 5억 명이 한꺼번에 사망했다고 한다.
인류는 이 날을 슬픔의 밤이라 부르며 플레이그에 대한 증오를 가슴에 새겼다.
그리고 그 증오는 훗날 인류연합을 결성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
유지하는 꿈에서 깨어나 어둠을 바라봤다.
그는 슬픔의 밤 세대는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당시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태어나기 전의 일을 아는 것은 화성에서 흡수한 선지자의 유물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누구도 정답을 모르지만···’
시간을 보니 아침 6시였다.
세틀러호에서 돌아와 겨우 4시간밖에 자지 않았지만 숙면을 취한 것처럼 개운했다.
대충 옷을 챙겨 입자 노크소리와 함께 아르마가 들어왔다.
“마스터, 식사를 준비해 놓았습니다.”
오늘의 메뉴는 각종 잡육을 갈아 구운 것에 토마토 소스를 얹은 것이다.
둘 다 스마트팜에서 빠르게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우주군의 주력식량 중 하나였다.
대부분의 장병들에게는 플레이그도 거부할 맛이라는 악평을 들었지만 유지하는 촌스러운 이 요리를 좋아했다.
“스프래틀리 군도에서 사건이 있었습니다. 중국 남해함대 소속 군함이 필리핀 군함을 밀어내고 블랙메탈을 확보했습니다.”
아르마의 목소리는 마치 자장가처럼 부드럽고 나긋나긋했다.
“오래 대치하더니 드디어 저질렀군.”
“필리핀에서는 격렬히 항의하며 자국 군함을 총동원했지만 중국의 물량에 맞서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다른 동남아 국가는 손대기가 어렵겠고···미국은? 괌에서 출항한지 좀 됐잖아.”
“남쪽의 섬 몇 개를 확보하고 좀처럼 움직이지 않습니다. 중국과의 마찰이 꺼려져서일지도 모르겠네요.”
중국은 자국 영해에 블랙메탈이 없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달려들 수밖에 없고 미국은 상대적으로 느긋한 입장이었다.
다만 스프래틀리 군도가 한쪽에 완전히 넘어가면 남중국해에서의 운신이 곤란하므로 어떻게든 개입은 할 것이다.
그 시기는 아마도···
“미 해군이 레일건을 줌왈트급 1번함에 탑재 시도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7함대에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일단 탑재하고 실전에서 평가하자는 거군. 정신 나간 친구들이야.”
“UN에서는 중국에 정식으로 탐사면허를 발급받으라고 압박할 계획입니다만 상임이사국이라 쉽지 않을 것 같네요.”
“끝내 블랙메탈을 캐겠다 이거군. 쟈오저룬의 태도로 봐서 한국에 보내는 건 절대 안 할 모양이던데 왜 확보하려고 하지? 설마 사이커가 있나?”
“확인된 바는 없었습니다만 가능성을 찾아볼까요?”
“흠···쟈오저룬 그 여자가 의심스러워. 시뮬레이션 한 번 돌려봐.”
“마스터.”
“왜?”
아르마가 짐짓 목소리를 낮추었다.
이 자택은 철저하게 방어되고 있는데도 습관이란 게 생긴 모양이다.
“마스터가 해외로 나가실 때 납치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중국이 직접 나서지는 않고 다른 세력을 이용하겠죠.”
유지하는 입술을 닦으며 피식 웃었다.
“날 납치해서 죽이게? 그래봐야 전 세계의 공분을 살 뿐인데.”
“그 세력이 마스터를 고문해서 해상도가 높은 분해기를 제작하라고 하면 어떨까요?”
“일본에 갔을 때는 왜 납치를 안 했을까?”
“거리가 너무 짧습니다. 하지만 장거리를 갈 경우 기회가 생기죠. 중국이라면 테러리스트 몇 명을 사주해서 하이재킹을 시도할 수 있을 겁니다. 그 후 마스터를 구출하며 은혜를 입게 하는 거죠.”
무슨 영화에나 나올 법한 스토리였다.
하지만 아르마는 절대 허튼 소리를 하지 않는다.
이 시나리오가 그나마 가능성이 높기에 제시하는 것이다.
“중국도 레일건 첩보를 입수했을 거란 말이지.”
“해상도가 높은 분해기로 각종 무기를 제작할 수 있다는 것쯤은 알 겁니다. 중국은 바로 그걸 필요로 하죠. 물론 배터리도 중요하겠고요.”
“직접적으로 날 건드렸다가 일본처럼 역풍 맞긴 싫으니 다른 세력을 이용해서 마치 자기들이 구출한 것처럼 조작한다···”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만 만약 한다면 호주에 가실 때를 노릴 겁니다.”
유지하는 정부로부터 어택급 잠수함 관련 프리젠테이션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초도함을 신라중공업에서 건조한다는 조건이었다.
미리 테러리스트를 밀입국 시켜뒀다가 하이재킹을 시도한다···
9.11 테러 이후 공항의 검문이 까다로워졌지만 한국의 경우엔 꽤 느슨했다.
아르마가 물었다.
“취소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흠···아니야. 이번 기회에 깔끔하게 소탕해보자고.”
“그러면 하이재킹까지는 놔둘까요?”
“놈들이 본색을 드러내면 쓸어버려. 그리고 배후를 확인해서 어디와 연결되어 있는지 알아내.”
뱀을 잡으려면 풀숲을 건드려야 한다.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지만 아르마와 시비르 전투지원 위성까지 있는 마당에 유지하에게 위험이란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나를 납치할 그 테러리스트, 어디일 것 같아?”
“아프간의 탈레반이겠죠. 그들은 미국의 철수를 시작으로 아프간 전역을 점령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중국이 그들과 은밀히 접촉했다는 첩보가 많아요.”
탈레반에 대해서는 유지하도 조금 들은 바가 있었다.
“광신도들은 인류연합에도 있었지. 결국 다 쓸려나갔지만.”
인류가 슬픔의 밤 사태를 겪으며 호주에 모였을 때, 참으로 다양한 일이 일어났다.
그 중의 하나가 플레이그를 신으로 모시는 종교의 탄생이었다.
유지하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세상에는 온갖 인간군상이 있는 법이다.
둘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시간이 되어 출근했다.
출근길 라디오에서 경제 얘기가 흘러나왔다.
―최근 통영과 거제에선 훈풍이 불고 있습니다. 신라중공업이 2천 명이 넘는 근로자들을 새로 모집했고 지원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신라중공업은 무려 200척이 넘는 채광선을 주문받았다고 하는데요. 그래서인지 주가도 폭발적인 상승세에 있습니다.
―이 놀라운 기적의 주인공이신 유지하! 부회장님은 모시지 못했고요. 직접 꿩 대신 닭이라고 말씀하신 유경석 회장님을 모셨습니다. 회장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스피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유지하는 깜짝 놀랐다.
“라디오 꺼.”
“들어봐도 괜찮지 않을까요?”
“보나마나 내 자랑만 하다 들어가시겠지. 민망하니까 꺼.”
“하지만 마스터, 주위 차들도 다 똑같은 채널을 듣고 있습니다.”
경제가 워낙 어려워서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차량이 판교사업장을 향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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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하는 출근하자마자 신라오토 주행시험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아르마가 개발한 알고리즘을 윈드러너에 장착해 실제로 달려보는 날이었다.
시험장에 나가니 임상현 사장 외에 국토교통부에서 사람이 나와 있었다.
“첨단자동차과 강승현 과장님입니다.”
“이거 큰일인데요. 괜히 일 벌렸다가 국토부에 망신당하는 거 아닙니까?”
유지하가 너스레를 떨자 그는 황급히 손을 저었다.
“아이고, 아닙니다, 부회장님. 저야 그냥 구경꾼일 뿐인데요. 저는 없다 취급하시고 테스트 진행하시면 좋겠습니다.”
부이사관급이 테스트를 지켜본다는 건 국토교통부에서 꽤 관심을 가졌다는 증거다.
현재까지 나와 있는 자율주행 알고리즘의 경우, 글로벌 초기업들이 10년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데이터를 획득하고 주행을 테스트해도 겨우 레벨 3에 머물러 있었다.
그 와중에 자동차업체로선 아기나 다름없는 신라오토에서 자율주행을 테스트한다고 하니 신기할 수밖에.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개인이 자율주행 알고리즘을 수정해 쓸 만하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일단 지켜보는 것이다.
유지하는 강 과장과 함께 준비된 윈드러너에 올라탔다.
“아, 이거. 그때 그 시연회에 나왔던 그 윈드러너네요.”
“신형 배터리 탑재했으니까 하루 종일 달릴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시작합시다.”
―자율주행 1호차 출발하겠습니다.
1호차는 천천히 시험장을 달렸다.
주행을 지속하고 신호를 인식하고 멈추는 것까진 완벽했다.
하지만 돌발은 어떨까?
도로 중간에 갑자기 사람 그림이 튀어나오자 1호차는 비교적 부드럽게 멈춰 섰다.
뒤에 타고 있던 강 과장이 태블릿에 뭔가를 슥슥 적어나갔다.
그 후에도 테스트는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1호차에 탑재된 알고리즘은 주변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했고, 또 승객을 배려해 조심스럽게 운전했다.
강 과장은 언젠가부터 태블릿에 기록을 관두고 연신 감탄만 하고 있었다.
기본적인 주행이나 주차 같은 거야 다른 자율주행차도 다 하는 거니까 그렇다 치자.
하지만 간략하게나마 표현된 교차로를 무리 없이 빠져나가는 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것도 직원들이 동원된 꼬리물기와 신호위반차까지 제시된 상태에서 1호기는 부드럽게 교차로를 빠져나갔다.
‘이거 레벨 3가 아닌데?’
그는 한국에서 자율주행차를 가장 많이 타본 사람 중의 하나였다.
테슬라부터 시작해서 웨이모 등 글로벌 초기업들의 자율주행차를 많이 타봤고 그 한계까지 인식하고 있었다.
그들이 자신하는 자율주행차는 실제로 타보면 이질감이 심하다.
숙련된 드라이버가 모는 부드러움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1호차는 마치 사람이 운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각에서 튀어나온 오토바이, 역주행하는 자전거, 무단횡단 하는 사람 등 모든 돌발에 무리 없이 대처했다.
라이다도 없는 차가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하지?
강 과장은 어이가 없어 운전석에 누가 없는지 시트를 더듬기까지 했다.
유지하가 그걸 보곤 낮게 웃었다.
“하하, 차가 괜찮죠?”
“부회장님, 이거 야간주행이나 악천후도 가능합니까?”
“모든 상황에서 준비된 상태입니다. 공사장이나 갑자기 도로가 좁아지는 등의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고요.”
그 정도면 일반도로나 고속도로 주행은 껌이다.
물론 도로가 혼잡한 상황에서의 대처를 봐야겠지만, 강 과장은 이미 확신한 상태였다.
1호차는 주행시험장을 벗어나 판교사업장의 구석구석을 다녔다.
강 과장은 점심시간 사업장을 나가려는 차들로 도로가 막힌 상황에서 1호차의 작동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차들이 안 끼워주자 슬금슬금 머리를 밀어 넣더니 기어코 합류에 성공하는 게 아닌가.
합류한 후 짧게 넣는 비상깜빡이는 승리의 세레머니일까, 고맙다는 표시일까?
이건 차량이 암묵적인 룰까지 판단한다는 증거로서 지금까지 이 기능이 구현된 자율주행차는 맹세코 한 대도 없었다.
‘허···’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길다면 긴 오전주행이 끝나고 강 과장은 1호차에서 내렸다.
유지하가 그에게 물었다.
“오늘 타보셨는데 소감은 어떻습니까?”
그는 머리를 휘휘 흔들었다.
“···어쩌면 K-시티에서 주행시험은 필요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느낀 바로는 그렇습니다.”
“그래도 인증을 받으려면 할 건 해야겠죠. 하여튼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그 후에도 1호차는 사내택시를 자처해 사우들을 태우고 다녔다.
다들 아무도 없는 자동차가 혼자 이곳저곳을 다니는 걸 보고 신기해했다.
직장인 익명 앱 위스퍼에선 이 날 주행시험에 대한 갑론을박이 오갔다.
―님들 국토교통부 과장이 극찬을 하고 갔다는데 어떻게 생각함?
―그 양반 자율주행차 테스트 할 때마다 와서 그러잖아.
―아니 이번에는 좀 다른데? 그 1호차 진짜 택시처럼 운행했다던데. 멀리서 손 흔들면 스윽 와서 사람 태우고.
ㄴ진짜? 그럼 그냥 가라고 하면 감?
ㄴ물러서면 알아서 갈길 감. 우리 직원들이 그거 보고 황당해하던데.
―오늘 타봤는데 사람이 운전하는 게 확실함. 아니면 그렇게 부드러울 수가 없음.
―다 필요 없고 부산에서 사고 안내고 한 달 운전하면 자율주행 5레벨 인정해줌.
―나중에 막 차에 타면 이러는 거 아냐? 당신들은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휴먼.
―드디어 인공지능이 이 세상을 지배할 때가 왔음. 님들도 미리미리 인공지능 찬양할 준비 해두셈. 난 사육해달라고 할 거임.
ㄴ인공지능이 님을 뭐하러 사육함?
ㄴ그 매트릭스 영화에서 인간을 배터리로 쓰자너. 그렇게 되고 싶음.
ㄴ아 진실 필요없다고 그 빨간드레스 눈나하고 결혼하고 싶다곸ㅋㅋ
ㄴ미친···
이 글들은 여러 커뮤니티에 게시되어 많은 화제를 낳았다.
그리하여 두 번째 주행시험에서는 각종 언론사에서 취재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내테스트에서 이 정도의 취재 열기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다.
어떤 기자는 직접 시승한 후 이런 기사를 쓰기도 했다.
―본 기자가 탑승한 신라오토의 SUV 윈드러너는 충격 그 이상이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이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의심할 것이다. 그러나 직접 확인한 결과, 외부의 개입은 없었다···
―기자는 반나절 동안 이 차를 타면서 기쁨보다는 공포를 느꼈다. 언젠가 이런 차가 도로를 누비는 날이 오면,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운전할 필요가 없어지니 무수한 실업자가 양산될 것이다. 자율주행차, 정말 머지않았다. 이제라도 관련 법안을 충실히 입법해야 할 때다.
유지하는 따로 사이트를 열어 신청만 하면 이 자율주행차를 탈 수 있도록 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