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251
250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레오볼드는 며칠간 제국에 머물며 백작의 작위와 땅을 수여받았다.
황도의 유력자들은 백작 작위를 수여하는 것에는 의외로 관대했다.
사실 백작 작위는 제국 전체를 따져 보면 수십 명이 넘어서 큰 의미는 없었다.
작위가 실질적인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땅과 힘, 그리고 영향력이 필요했다.
반다스 백작은 땅과 영향력은 있으되 제국 내에서의 기반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황태자가 하사한 땅은 황도에 붙어 있긴 하지만 제국군이 주둔지로 쓰던 곳이라 별 쓸모가 없지.
―왜 거길 달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철도도 없어서 고생 꽤나 할 거야.
다만 레오볼드가 거기를 달라고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먼저 발가드의 골리앗 알비온이 발굴된 곳이기 때문이다.
이는 대전쟁이 벌어진 땅이라는 것을 뜻하고 열심히 파보면 뭔가가 더 나올지도 모른다는 아르마의 조언이 있었다.
그리고 황도에 가깝다는 건 급변사태 발생 시 조치하기가 용이하다는 장점도 있었다.
크로이츠 백작령과도 상당히 가까운 편이어서 비행선만 제대로 투입한다면 얼마든지 써먹을 수 있는 땅이었다.
레오볼드는 황태자에게 한 가지를 더 요구했다.
“수만 명을 먹일 수 있는 식량이 필요합니다. 가급적 빠르면 좋겠습니다.”
“식량이라… 바그란은 적당히 먹고살 수 있지 않소?”
“레조트와 바노버, 두 왕국에 보낼 생각입니다.”
“거긴 왜? 이미 끝나지 않았소?”
그렇게 묻는 바라크 황태자는 정말 의문이라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대제국의 지배자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두 작은 왕국은 그 정도 의미밖에 안 되는 것이다.
하기야 지금 와서 조치를 취한다 해도 이미 늦었다는 분석이 많았다.
나라를 이끌어 갈 유력자들의 공백은 그렇다 치더라도 당장 땅이 썩어가는 것이 문제였다.
흑마법이 땅을 뒤덮어 대기근이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라 그 어떤 방법도 무소용이었다.
“두 곳도 결국 선제 폐하의 충성스런 신하 아니겠습니까? 같은 신하 된 입장에서 그들의 위기를 두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바라크 황태자의 눈은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하다니 가소롭다는 뜻을 품고 있었다.
“반다스 백작이 그렇게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는 줄은 몰랐는데… 뭐 좋소. 나도 그렇게 생각하도록 하지. 하나만 약속한다면 식량을 대가 없이 내주도록 하겠소.”
“어떤 겁니까?”
“나에 대한 충성.”
“한 차례 전쟁으로 충성심을 증명하는 데에는 부족했던 모양이군요.”
“아니, 그게 아니오.”
그는 소파에 몸을 기댄 뒤 담배에 불을 붙였다.
“선제께서 승하하신 뒤, 온갖 협잡꾼들이 황궁을 어지럽히고 있소. 현 제국의 불안은 그들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오. 나만의 힘으로 그들을 물리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소.”
“제국의 적은 상당히 크고 강대하군요.”
레오볼드는 제국의 적이라는 부분에 힘을 주었다.
황태자와 제국을 동일시한 것이다.
과연 그는 얼굴에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바로 그렇소. 현재의 제국을 보시오. 엘브랑데는 대놓고 야심을 드러내고 있고 황궁은 지배자의 부재를 틈타 권력을 잡아 보려는 협잡꾼들로 가득하오. 이 전례 없는 위기를 돌파하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말이지.”
사실 바라크 황태자는 유력한 계승권자이긴 하지만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
제국은 평소 여러 권력자들의 암투로 한 해에 수십 명이 죽어 나가는 혼돈의 도가니였고 황제가 암살된 뒤엔 증상이 훨씬 심해졌다.
황태자조차 황궁이 아니면 제대로 목숨을 보장받을 수가 없으니 오죽할까.
그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피아의 확실한 구분과 언제든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강력한 아군이었다.
레오볼드의 힘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기인 것이다.
“거기에 프로잔 후작과 크로이츠 백작이 가세한다면 더욱 힘이 되겠죠.”
“물론 두 귀족과는 이런저런 의견을 교환하고 있소. 하지만 나는 반다스 백작의 의사를 묻고자 하오. 내게 충성을 맹세할 수 있겠소? 제국이나 황가가 아닌, 나 개인에게 말이오.”
둘은 대놓고 황태자를 지지하고 있었지만 관계가 아주 단단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레오볼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바라크 황태자는 황가의 직계가 아니었다.
카이로스에 의해 대부분의 황족이 사망한 덕분에 급하게 방계를 수혈할 수밖에 없었고 선제가 남긴 유언장에 의거 그가 황태자 자리에 올랐다.
워낙 급하게 올랐던 터라 황도는 물론이고 황궁에도 그의 수족이라 할 만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당장 그가 연 작위 수여식과 연회비용도 개인 금고에서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사실상 황궁조차 확실하게 지배하고 있지는 못한 것이다.
‘프로잔 후작과 크로이츠 백작은 실세지만 다른 귀족들도 많아…….’
제국은 워낙 크고 넓어서 실세 귀족이 아주 많다.
그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 아전투구를 벌이고 있다 보니 한 시간 뒤의 미래도 내다보기가 쉽지 않았다.
쉽사리 답이 나오지 않자 바라크 황태자는 몸이 달았는지 그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필터도 없는 독한 담배 연기에 레오볼드가 살짝 눈살을 찌푸리자 끄기까지 했다.
“드워프들이 피는 담배라 좀 매울 거요. 그건 그렇고 대답을 듣고 싶은데…….”
조급하게 묻는 걸로 봐서 그의 지지가 간절한 모양이다.
레오볼드는 값을 높여 부르기로 했다.
“한 가지만 약속해 주신다면 전하께 개인적인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그게 뭐요?”
“사면장을 주십시오.”
“사면장? 그거야 어렵지 않지.”
“반역을 제외한 모든 죄의 사면을 원합니다.”
시종을 불러 당장이라도 사면장을 쓸 기세였던 바라크 황태자가 흠칫했다.
생각해 보니 이건 쉽게 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반역을 제외한 모든 죄를 사한다는 건 개국공신에게나 내릴 수 있는 것이었다.
레오볼드의 능력과 야심으로 보아 소소한 죄를 짓지는 않을 것이고 최소 제국이 들썩일 만한 소란을 일으킬 것이 분명했다.
그런 것까지 사면해 준다면 다른 귀족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
“그 사면장은 전하께서 황위에 오르기 전까지는 쓰지 않을 겁니다.”
“황위에 오르기 전까지는 쓰지 않는다라…….”
그러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바라크 황태자는 깃털펜을 들고 물었다.
“반역을 제외한 모든 죄라고 했소?”
“기한은 무제한을 원합니다. 그리고 한두 달 안에 일어난 일은 동일한 죄로 취급을 받았으면 합니다.”
“한꺼번에 많은 소란을 일으킬 생각인가 보군. 내전이라도 생각하고 있소?”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좀 그렇지만, 늘 있는 일 아닙니까? 최소한 전하께 위해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좋소.”
거위의 속깃털로 만든 펜이 양피지 위를 누볐다.
푸른 직인까지 찍히자 아무 말도 않고 서 있던 시종이 조심스럽게 그것을 레오볼드에게 건넸다.
“부디, 나를 배신하지 마시오.”
“전하와 함께하겠습니다. 그러면 누구를 죽이면 됩니까?”
황태자는 태연하게 말하는 레오볼드에게서 두려움을 느꼈다.
이건 제국의 누구든지 간에 죽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아닌가.
하기야 기록관을 통해 본 그의 전투력은 인간인지 의심이 가는 수준이었다.
수백 명이 보고 들었기에 조작의 여지도 전혀 없었다.
바라크 황태자는 그와 손을 잡은 것이 옳은 결정인지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오볼드의 도움은 반드시 필요했다.
“당장 그대의 힘이 필요하지는 않소. 대혼란 속에서 피아를 가려내는 것만 해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거든.”
“그렇다면 당분간은 다른 곳에 가 있겠습니다.”
“크로이츠 백작과 인연을 맺었다지? 두 귀족이 함께 나를 보필해 줬으면 좋겠소. 축하금은 곧 기차를 통해 보내겠소.”
“감사합니다.”
황태자와의 면담은 그렇게 끝났다.
전쟁도 끝났고 엘브랑데도 당분간은 큰 움직임을 보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레오볼드는 그 평화가 오래 가지 않으리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 * *
엘브랑데와 연합군 전쟁에서 누가 이득인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얼핏 생각하면 엘드그라실의 가지를 불태우고 엘브랑데군을 물리친 연합군이 이긴 게 아닌가 싶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는 않았다.
결국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레조트와 바노버 두 왕국은 아직도 기근에 시달리고 있으며 엘브랑데는 황제 암살에 대한 사과는 물론이고 재발방지 약속조차도 하지 않았다.
함부로 발동시킨 미티어 스트라이크가 메데아에 상당한 타격을 주었지만 이걸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자이움 제국은 황제 암살에 대한 빚을 갚았다고 자화자찬했지만 큰 의미는 없었다.
그나마 성과로 내세울 만한 것은 연합군이 전쟁에서 이겼다는 것뿐이었다.
갑자기 출현한 블루 드래곤 때문에 흐지부지되고 말았지만 호사가들은 엘브랑데가 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수십 년 이래 처음 있는 패배다. 아마 어지간한 나라의 역사서에도 대 엘브랑데전의 승리는 적혀 있지 않을 것이다.
―승리의 견인자는 바로 바그란 왕국의 레오볼드 반다스 백작이다. 그는 이전에도 황제의 암살자를 단독으로 잡는 등 큰 공을 세운 적이 있다.
―놀라운 것은 그가 전장에서 에테르 블레이드를 썼다는 점이다. 그건 역사서에나 기술되어 있는 기술인 줄 알았는데.
―그리고 그가 탑승한 골리앗은 블랙 나이트라고 불리는 기종으로, 그 어떤 골리앗과도 비교를 불허한다고 한다.
원래 전쟁은 진행 중일 때보다는 시작되기 전과 끝난 후에 이런저런 얘기가 나오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레오볼드와 그의 블랙 나이트는 호사가들에게 이야깃거리로 안성맞춤이었다.
연합군에 속한 국가들이야 그를 크게 경계하지 않았다.
어차피 같은 자이움의 신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브랑데는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엘드그라실의 화재를 수습하고 나니 대의회에선 정체불명의 골리앗에 대해 정보를 캐내라고 닦달하기 바빴다.
정보국이 총동원되었지만 대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오리무중이었다.
“자이움 기종의 파생형인 것 같긴 한데 원본을 추적할 수가 없습니다.”
“저희가 아는 바, 자이움에선 예산 부족으로 골리앗 신규 생산 설비를 들인 적이 없습니다. 최소한 제국제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바그란에서 만들었단 말인가.”
놀랍도록 효율이 뛰어난 에테르 기관의 예를 생각해 보면 골리앗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았다.
하지만 정보국장은 몇 가지의 이유로 바그란이 블랙 나이트를 생산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코어 생산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에테르 출력을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는 에테르 공학자가 필요하며 코어에 들어가는 자재를 구하는 것도 극히 어렵다.
―그리고 골리앗은 경험이 없는 자가 손대기가 까다로운 물건이다. 본국에서도 골리앗 라인에 서는 장인은 최소 20년 이상의 경력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라.
―무엇보다 코어에는 몇 가지 핵심부품이 필요한데 현재 우리가 수출하는 부품의 에테르 허용량은 벨리알급보다 훨씬 아래다. 따라서 블랙 나이트 같은 괴물이 튀어나오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데 튀어 나왔잖아?”
바로 그게 정보국장의 애를 먹이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블랙 나이트는 존재할 수가 없는 물건이었다.
티리엘이 탑승한 벨리알급을 가볍게 박살내는 골리앗이 존재한다니,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매진 레코드에 나타난 골리앗은 진짜였다.
“키가 상당히 크군. 특유의 광채가 나타나지 않는 걸로 봐선 흘리는 에테르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겠고. 대단히 수준 높은 작품이야…….”
대체 누가 만들었는지 당장 납치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보국장은 이런 것들을 종합하여 켈로디안 재상에게 보고했다.
그는 내용을 읽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모른다?”
“존재할 수가 없는 골리앗입니다.”
“그걸 알아내는 게 자네 역할 아닌가? 코어 출력도 모른다, 어디에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대체 아는 게 뭔가?”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대의회에서 나와 자네를 벼르고 있네. 언제 목이 달아나도 이상하지 않은 처지야. 그런데도 이렇게 안이하게 대처해서야 되겠나? 정보국에 투입되는 예산은 엘드그라실이 내려주는 게 아니야.”
언제나 그렇듯 실무자는 예산 얘기만 나오면 쪼그라들게 되어 있다.
켈로디안 재상이 재정국의 책임자가 아님에도 그렇다.
정복국장은 고개를 숙이는 대신 좋은 방법을 생각해냈다.
“블랙 나이트의 출처와 상세한 제원을 알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만들지 못하게 할 수는 있습니다.”
“방법을 말해보게.”
“시동석과 회로에 쓰이는 1등급 미스릴의 공급을 끊는 겁니다.”
시동석은 코어를 최초로 가동시키기 위해 필요한 부품이고 1등급 미스릴은 코어 내부에 들어가는 값비싼 가공품이다.
두 부품이 골리앗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크진 않지만 대체품이 없다는 특징이 있다.
미스릴은 그나마 자이움 등에서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정밀도와 품질이 낮은 편이라 코어에 넣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시동석은 에테르석을 개조해 만드는 것으로 대체품이 없었다.
오직 엘브랑데만이 시동석을 공급할 수 있는 것이다.
무슨 말을 하나 기대하고 있던 켈로디안의 얼굴이 붉게 변하더니 버럭 화를 내기 시작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그걸 수출하지 않으면 돈은 어디서 벌어? 자네 재정국장실에 쓰여 있는 문구가 뭔지는 아나?”
“인간은 미워해도 그들의 돈은 미워하지 마라입니다.”
“우리가 골리앗 부품 수출로 벌어들이는 돈만 한 해에 20만 골드가 넘어. 시동석과 1등급 미스릴 와이어는 아마 11% 정도가 될 걸세. 그걸 포기하자고?”
“그게 재상 각하의 실책은 아니지 않습니까?”
“뭐라고?”
“잘 생각해 보십시오. 이번 전쟁의 여파로 인간에 대한 증오가 극에 달했습니다. 대의회는 물론이고 엘븐 나이트들 사이에서도 이대로 놔두면 안 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죠. 그 시작을 켈로디안 재상 각하께서 끊는 것에 불과한 겁니다.”
“내가 시작을 끊는다라…….”
“부품 공급을 끊어 버리면 대금을 받지 못하게 되겠죠. 하지만 그건 재정국이 알아서 할 일입니다. 그리고 재정국은 재상 각하의 관할이 아니지 않습니까?”
“…….”
켈로디안은 창밖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삼재상은 사이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서로를 극단적으로 견제하며 힘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부품에 필요한 광산을 일부 폐쇄하여 대금을 축소한다면 비난을 받는 쪽은 다른 재상일 것이다.
“나는 어디까지나 부품의 불법 유출을 조사하기 위해 권한을 발동하는 것뿐이고… 맞나?”
“특수한 상황에선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겠죠.”
켈로디안은 정보국장의 윗머리를 보며 가슴 속 뭔가가 뒤틀리는 것을 느꼈다.
이건 엘브랑데 전체를 보아선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칼로 자신을 찌르는 얼간이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물러나길 종용하는 두 재상에게 경종을 울릴 필요성이 있었다.
“그리고 두 부품의 공급 제한은 자이움을 비롯한 인간 왕국에도 상당한 타격을 안겨줄 겁니다. 일정 출력 이상의 골리앗을 제작하지 못하게 되니까요.”
“그건 그렇지…….”
“요약하면 재상 각하를 곤란케 하는 자들을 한꺼번에 옭아맬 수 있습니다.”
“예산은 얼마나 들겠나?”
“내일 오전 중으로 필요한 예산안을 올리겠습니다.”
“즉시 시행하게.”
얼마 후 엘브랑데는 데노바를 통해 공급하던 시동석과 1등급 미스릴 와이어에 대한 생산을 중단했다.
덕분에 전쟁으로 소모된 골리앗을 생산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던 여러 국가가 발칵 뒤집어졌다.
재고관리 시스템이란 게 있을 리가 없어서 그때그때 들어오는 부품으로 생산하는 형편인데 공급망이 완전히 막혀 버린 것이다.
관련자들은 황급히 데노바에 연락을 취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들어야 했다.
“본국에서 공급을 끊어버렸습니다. 저희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 본국이 대체 어디요?”
차마 엘브랑데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사실 문의하는 사람들도 본국이 어딘지는 짐작하고 있었다.
데노바와 엘브랑데의 깊은 관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평소에는 모른 체하고 교류를 했는데 갑자기 공급이 끊기자 다들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는 가운데 레오볼드가 바그란에 귀환했다.
그는 몹시 피곤해 보였다.
* * *
“섭정 각하를 뵙습니다.”
레오볼드는 관료들의 인사를 대충 받아넘기고 집무실로 들어섰다.
지난 며칠간 카밀라의 영지에서 있었던 강행군은 강철체력을 지닌 그로서도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너무 오래 바그란을 비워 두면 안 된다는 핑계를 대고 빠져나오긴 했는데 다음에 또 방문해야 할 것 같았다.
안 그러면 그녀가 여기로 쳐들어올지도 모르니까.
“피곤하군…….”
의자에 몸을 눕히는데 아르마가 접시에 영양제를 담아 가져왔다.
어째 성기능 보완에 특화된 것들뿐이었다.
그녀가 레오볼드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며칠 동안 즐거우셨길 빕니다.”
“그녀와는 비지니스적인 관계야. 나한테는 아르마 너뿐이라고. 수십 년 동안 같이 지내놓고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는데. 로드맵에도 있었잖아?”
“저를 그렇게 여기신다면 여기 키스 한 번만 해주세요.”
하라는 대로 하자 사무적이던 표정이 사라지고 평소의 아르마로 돌아왔다.
그녀는 헛기침을 한 뒤 영양제를 치우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엘브랑데에서 골리앗 부품 공급을 차단했습니다. 덕분에 자이움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난리입니다.”
“대체제가 없나?”
“시동석은 엘브랑데만 만들 수 있고, 1등급이 아닌 미스릴 와이어는 출력 상한이 많이 낮습니다. 120E 정도…….”
“힘으로는 누르기 힘드니까 나름 특단의 조치를 생각해냈군.”
레오볼드는 쓴웃음을 지었다.
지구도 아닌 테라 행성에서 이런 금수조치를 당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아마 나를 목표로 한 거겠지?”
“겸사겸사로 추측됩니다. 이번 전쟁으로 엘브랑데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고, 그걸 만회하고자 하니까요.”
“돈은 많으니까 다소의 출혈은 상관없다 이건가. 다른 국가들은 골치가 아프겠어.”
현재 엘브랑데와 인간 왕국들은 사이가 극히 안 좋기는 하지만 교류까지 완전히 끊은 것은 아니었다.
민간 상단을 중심으로 무역이 알음알음 이뤄지고 있었고 특히 데노바를 통한 무역은 건재했다.
지갈레온이 깽판을 치긴 했지만 거긴 금융지구이고, 상업지구는 멀쩡히 남아 있었던 것이다.
뭐 나쁜 방법은 아니었다.
경제적인 제재는 21세기 지구에서도 매우 효율적인 방법이었고 아스테라에서는 더욱 그랬다.
골리앗은 어느 국가나 일정량을 갖추어야 하는 무기였고 거기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이라면 큰 의미를 가진다.
그들이 잘못 생각한 게 있다면 하필 상대가 레오볼드라는 점이다.
정확히 그를 조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불똥이 튄 것은 분명했고, 그건 절대 넘어갈 수 없었다.
레오볼드는 로드맵 한구석에 놓인 골리앗 양산 계획 중의 하나를 끌어왔다.
“골리앗 따윈 치워 버릴 예정이었지만 이렇게 시비를 걸어온다면 퇴역 시기를 조금 늦춰도 되겠지. 엘프들에게 22세기의 기술력을 보여 주자고.”
“이참에 골리앗 생태계의 주도권을 가져오는 건 어떨까요? 블랙 나이트를 양산한다면 엘프들에게서 완전히 독립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몇 대 생산할 예정이었으니 큰 상관은 없겠지. 최종적으로 출력은 어느 선까지 가능할 것 같아?”
“미스릴 와이어를 세밀하게 배치해 에테르 회로의 집적도를 높이고 시동석을 개량한다면 250E까지는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200E 수준에서 안정화시킨 블랙 나이트도 상당한 수준이었는데 만약 250E 짜리가 양산된다면 아스테라 전체가 뒤집어질 것이다.
그래 봐야 레오볼드에겐 뒤뚱거리는 깡통에 불과했지만.
“앞으로 계속 방해받을 수는 없으니 이쯤 해서 독립하는 것도 좋겠지. 우리는 우리 식대로 가자고.”
“네, 준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