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250
249화 제국의 공적이자 백작
본국으로 복귀한 티렌델은 전투 패배의 책임을 지고 좌천될 것을 예상했으나 뜻밖에도 그런 일은 없었다.
엘드그라실에 일어난 화재로 수도 메데아 전체가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영토 대부분이 숲으로 감싸여 있었기에 화재가 한 번 일어나면 크게 번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게 엘프들이 신성시하는 세계수에서 일어난 것이라면, 그리고 규모가 상당히 크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메데아의 마법사 전체가 동원되어 엘드그라실의 화재를 진화하려 애쓰고 있었다.
“잔가지는 포기해라! 본체만 무사하면 된다!”
“마법사 더 없나! 마법의 탑에서 스크롤을 몽땅 가져와!”
메데아의 상공을 뒤덮은 세계수 일부가 화르륵 불타오르다 보니 마치 세상의 종말이 찾아온 것 같았다.
“이게 무슨…….”
티렌델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세계수가 타오르는 광경을 구경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다른 엘프들이 그러하듯 그 역시 세계수 근처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세계수 앞에서 기사가 되었고 엘브랑데에 충성을 맹세했다.
누군가 어떤 엘프에게 엘드그라실이 뭐냐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모든 것이라고.
저 황금빛을 발하는 거대한 나무는 엘프라는 종족을 대변하는 존재였다.
그의 옆에 마르그레타 황녀가 와서 섰다.
“오셨군요, 티렌델 경. 에테르가 역류해서 이 꼴이 되었다고 합니다.”
“에테르가 역류……? 설마 엘드그라실을 가지고 마법을 쓴 겁니까? 그건 금지된…….”
“켈로디안 재상과 대의회가 그런 금기를 무서워할 리 없지요. 신성마법이 쓰인 듯한데 미티어 스트라이크를 막기 위해서일까요?”
그마저도 제대로 막지 못했다는 건 분위기에서 알 수 있었다.
즉, 엘브랑데는 운석 낙하에 이어 화재라는 대재난까지 당하고 있는 것이다.
“에일리드시여…….”
대체 뭘 어떻게 했기에 미티어 스트라이크가 메데아로 향하고 세계수가 불타오르는 걸까?
티렌델은 자신이 후퇴할 때의 광경을 떠올렸다.
불타오르는 엘드그라실의 가지.
그리고 그 앞에서 보란 듯이 서 있는 레오볼드 반다스.
그가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던 건 아마 티렌델의 착각이 아닐 것이다.
‘감히 엘드그라실을… 네놈만큼은 반드시 죽여 주마!’
한편 마르그레타는 티렌델의 표정에서 분노를 드러나는 이유가 궁금했다.
설마 대의회에 대한 분노는 아닐 테고…….
“화가 많이 나셨군요, 티렌델 경.”
“전하께서 제가 본 광경을 보셨다면 똑같이 분노하셨을 겁니다.”
“대체 어떤 광경을 보셨기에…….”
“레오볼드 반다스, 놈은 엘드그라실의 가지에 불을 질렀습니다. 저 화재 이상으로 타오르고 있었지요…….”
“예에?”
마그르레타는 순수하게 놀랐다.
세계수와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데도 그런 것은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본체의 에테르가 역류해서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충분히 느끼고 있었고 또 안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 외의 여러 가지는 멀쩡했다.
“어디의 가지에 그런 일이 발생한 거죠? 중앙 접경 지역인가요?”
티렌델은 거칠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이번에 레오볼드 그놈과 조우한 곳이죠. 놈은, 전장에서의 승리를 가져가는 것도 모자라서 우리에게서 신을 빼앗아가려 한 겁니다.”
“그렇지만 제가 느끼기엔 엘드그라실의 가지는 불타지 않았는데요…….”
이번에는 티렌델이 멍청한 소리를 냈다.
“…예?”
“저 화재를 제외한다면 가지는 다들 멀쩡해요. 제가 느끼고 있는걸요.”
“그, 그럴 리가 없는데… 제가 본 것은…….”
“티렌델 경의 눈이 잘못되지는 않았을 테니 레오볼드 반다스 섭정이 뭔가 술수를 쓴 모양이군요.”
“…….”
티렌델은 침묵했다.
황녀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엘드그라실의 가지가 타오르는 그 광경이 거짓이었단 말인가?
대체 어떻게?
‘그리고 무슨 이유로? 놈은 분명 나를 죽이고 가지를 불태우려 했었는데…….’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 혼란스러웠다.
마르그레타가 걱정스런 눈으로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티렌델 경을 패퇴시키고 이렇게 혼란스럽게 만들다니 대단한 사람인가 보군요.”
“…최소한 실력만큼은 저를 압도했습니다. 저는 그자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부하들을 잃고 추하게 후퇴해야 했죠…….”
하나밖에 없는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소매로 눈물을 닦아 주며 위로했다.
“너무 상심해하지 마세요, 티렌델 경. 이렇게 살아 있잖아요? 언제고 그와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거예요.”
“말씀 감사합니다… 그때야말로 놈을 죽일 수 있겠군요…….”
“죽이란 말이 아니었는데…….”
황녀의 하얀 얼굴에 난처한 웃음이 잠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이 엘븐 나이트는 힘으로 겨루는 방법밖에 모르는 모양이다.
하긴 대부분의 엘프가 그러했다.
오랫동안 인간을 비롯한 아인종과 전쟁을 하다 보니 대화와 협력의 필요성을 잊어버린 것이다.
―힘으로 찍어 누르면 되는데 왜 대화가 필요하지?
엘프들의 전반적인 기조는 이것이었고 그동안은 잘 먹혔다.
하지만 이제 변화가 필요한 때가 왔다.
그녀는 레오볼드를 만날 필요성을 느꼈다.
‘최소 100년 전부터 엘븐 나이트는 진 적이 없었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티렌델이 참전했는데도 그렇게 처참하게 패했다니 신기한 일이었다.
그리고 엘드그라실의 가지에 무슨 짓을 했는지도 궁금했다.
여러 이유로 당장 만날 수는 없겠지만 의지가 있는 이상 조만간 보게 될 것이다.
그녀는 진화되어 가는 세계수의 화재를 말없이 바라봤다.
아무래도 이 세계에 뭔가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 * *
“우리 모두가 패배했군.”
켈로디안은 고개를 숙이고 의자에 앉아 있는 티렌델을 바라봤다.
출전 당시의 그 당당하던 모습은 어디 가고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엘드그라실에 화재가 일어났다는 걸 가지고 저렇게 상심하진 않았을 테고, 아마 전투에서 패배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도 매우 처참하게.
종군마법사가 이매진 레코드 마법으로 기록한 광경을 보고 있자니 머리가 아파왔다.
“에테르 블레이드… 대전쟁 이후로 저 기술을 쓸 줄 아는 자가 다시 나타날 줄은… 위력은 어떠했나?”
“전율적이었습니다. 리빙메탈 장갑판을 과일 자르듯 하더군요.”
“그거 끔찍하군…….”
대체 어떻게 그런 힘을 가지게 되었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설마 부유대륙에 흩어진 신의 파편을 입수한 걸까?
대전쟁 당시의 기억을 갖고 있을 신의 파편이 순순히 협조할 리가 없는데?
더 끔찍한 건 그로 인해 일어난 피해였다.
비록 레오볼드가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이번에 엘브랑데가 입은 피해가 너무 컸다.
엘드그라실의 본체가 불타올랐고 접경지역에서 지력을 빨아들이던 가지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미티어 스트라이크로 인해 입은 피해에는 모두가 입을 다물어야 했다.
수만 명이 대피했고 천 명에 가까운 엘프가 목숨을 잃었다.
증발한 여러 기관과 관공서의 정보에 이르면 참담한 지경이다.
그 모든 것을 회복하려면 엘프 기준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리고 내 위신도…….’
켈로디안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감쌌다.
사실 지금까지 입은 피해보다는 자신의 위신이 더 큰 문제였다.
당장 대의회에선 마법의 탑을 잘못 관리했다며 물러나라고 난리였고 관료들의 눈초리도 심상치 않았다.
―꼭 재상 각하의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쟁에서 대패한 것도 그렇지요. 재상께서 제때 후퇴 명령을 내리셨다면 그렇게 큰 피해를 입진 않았을 겁니다.
웃기는 소리.
만약 티렌델에게서 보고를 듣자마자 후퇴 명령을 내렸다면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후퇴한다며 난리를 쳐댔을 것이다.
대의회의 원로들은 자신의 잘못을 남에게 전가하는 데에 장인급이었고 덕분에 모든 화살이 켈로디안에게 날아왔다.
‘이대로 물러날 순 없다. 어떻게든 만회해야 한다.’
켈로디안은 축 쳐져 있는 티렌델을 바라봤다.
처참하게 패배했다고 하지만 사실 개인의 힘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엘브랑데엔 지난 200년 동안 숨겨 놓은 힘이 많고 그중 하나를 꺼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다면 그의 의지.
꺾이지 않은 의지를 가진 자만이 신격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자네는 매우 상심한 것 같군. 레오볼드 그놈을 넘어서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건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놈은 상상 외의 괴물이었습니다. 죽이겠다고 맹세했지만 그럴 가능성이 있는지 회의감이 들 정도입니다.”
단 한 번의 전투로 이런 패배감을 안겨줄 정도라니 대단하긴 한 모양이었다.
켈로디안은 다시 물었다.
“그렇게 강하다면 자네가 그에게 덤벼들 일은 없겠군? 결과가 뻔하니 말일세.”
“아뇨.”
티렌델은 타오르는 눈빛을 하곤 으르렁거렸다.
“저는 언제고 놈을 죽일 겁니다. 그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말입니다. 설령 그것이 50년 후라도 상관없습니다.”
끝까지 달라붙겠다는 의지의 표현에 켈로디안은 흡족했다.
하지만 그는 티렌델이 자신에게도 증오를 품고 있음은 몰랐다.
그는 늦은 후퇴 결정으로 부하들을 죽이고 미티어 스트라이크를 발동시킨 켈로디안과 그것을 승인한 대의회 원로원 전체를 증오하고 있었다.
다만 켈로디안의 지위를 이용해야 했기에 연기를 하고 있는 것뿐.
만약 레오볼드가 여기에 있었다면 나 외에 연기를 잘하는 놈이 있다고 혀를 내둘렀을 것이다.
어쨌든 켈로디안은 그의 의지를 받아들이고자 했다.
“자네 혹시 대전쟁에 대해서 좀 아나?”
“신과 드래곤이 충돌한 전쟁이라는 건 들었습니다. 그들에게서 힘을 받은 챔피언이란 존재가 있고 우리도 휘말렸다는 것도요.”
최근에 태어난 엘프들은 대개 이 정도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엘드그라실과 부유대륙에 대한 비밀을 알고 있는 건 엘브랑데에서도 몇 되지 않았다.
“그렇군. 자네에게 제안을 하기에 앞서 알려 주고 싶은 것이 있네. 당시에 치열하게 싸웠던 신격의 일부는 아직까지 살아 있네. 아니, 보존되어 있다고 봐야겠지.”
“그라키에스의 경우도 있고 하니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런데 그게 저와 무슨 상관입니까?”
“그 신의 파편을 자네에게 주겠네.”
티렌델은 얼굴을 굳혔다.
“카이로스와 같은 신세가 되는 건 사양입니다.”
“아아, 오해하지 말게. 자네에게 흡수될 신격은 그리 나쁜 자가 아니야. 오히려 좋은 신이라고 할 수 있지. 비록 권능은 대단하지 않았지만 말일세.”
그 신의 파편을 한낱 엘프의 몸에 흡수시킨다고?
티렌델은 뭔가가 잘못 돌아가는 것을 느꼈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그는 힘이 필요했고 그건 엘브랑데의 수뇌부만이 줄 수 있었다.
“재상 각하께선 제가 그 힘을 흡수하길 바라는군요.”
“설욕을 해야 하지 않나? 패배감을 씻어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말일세. 만약 자네가 그 힘을 받아들인다면, 레오볼드 그놈에 뒤지지 않는다고 약속하지.”
“그런데 어떤 신격입니까? 설마 엘븐 판테온은 아닐 테고…….”
“그리 대단한 신은 아니야. 자네가 기억할 만한 존재도 아니고.”
이름을 말하면 곤란한 것 같았다.
하긴 신은 이름을 부여받아야 권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하니까…….
티렌델은 심사숙고한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힘을 얻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좋은 자세일세. 그 힘으로 제국의 공적 1호를 죽이도록 하게.”
“공적 1호라…….”
“이 정도 일을 벌였으면 공적 1호가 합당하지 않겠나? 놈은 허락도 없이 부유대륙에 상륙했고 우리의 계획을 방해했네. 그리고 우리가 불리하긴 했지만 어쨌든 전쟁에서 이겼지. 이대로 놔둘 수는 없어.”
“맞습니다. 그는 죽어야 합니다.”
그는 티렌델의 흉심을 모른 채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대의회는 다른 수단을 쓸 생각인 모양이지만 가끔은 힘으로 부딪쳐야 할 때가 있네. 자네만 믿네.”
티렌델은 입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레오볼드를 죽이고 나면 너도 죽여주마, 켈로디안.’
그는 퇴각 명령을 내리지 않아 부하들을 죽게 만든 켈로디안과 대의회 원로원을 용서할 수 없었다.
* * *
전쟁이 끝난 후, 레오볼드는 바그란이 아니라 자이움 제국으로 행선지를 바꾸었다.
크로이츠 백작을 비롯한 지휘관들이 반드시 황태자를 만나야 한다고 우겨댔기 때문이다.
“전하께서 작위 수여식과 성대한 연회를 약속하셨는데 설마 대리인을 보낼 생각은 아니겠지?”
그녀의 얼굴엔 체면을 좀 세워 달라는 뜻이 보란 듯이 나타나 있었다.
전쟁을 혼자서 종결짓다시피 한 그를 데리고 가지 않는다면 제국의 귀족들이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말이다.
로랜드 후작도 거들고 나섰다.
“지금 황도 제롬엔 목이 빠져라 그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만 수천 명이 넘소.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리라 믿소.”
어차피 제국 백작의 작위를 받기로 했으므로 이번 기회에 안면을 트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크로이츠 백작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연합군은 그대로 해산했고 그 누구도 레조트와 바노버에 대해선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전쟁의 명분 중 하나는 두 왕국의 해방이었지만 막상 책임을 지기는 귀찮았던 것이다.
내부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없는 건 아니었다.
―수만 명이 기아로 고통 받고 있다. 당장 식량 원조가 필요하다.
하지만 연합군 수뇌부는 퉁명스런 반응을 보였다.
―힘들게 싸웠는데 식량까지 내놓으라니 무슨 망발이냐?
―사정은 알겠는데 그만한 식량을 갑자기 구하는 건 어렵다. 운송수단도 마땅치 않고.
―엘드그라실의 가지가 불탔으니 지력이 서서히 돌아올 것이다. 조금만 더 버텨라.
애초에 연합군의 목적은 엘브랑데군에 승리를 거두고 엘드그라실의 가지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게 달성되었으니 고통 받고 있는 두 왕국엔 볼일이 없었다.
하지만 레오볼드는 달랐다.
그는 떠나기 직전 그랜든과 기사 몇 명을 차출했다.
“경들은 잠시 이곳에서 머물며 상세한 정황을 파악하고 인재를 모으고 있으시오. 곧 지원이 갈 거요.”
“명령을 내리시니 따르겠습니다만 거기에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랜든의 목소리엔 어차피 망할 나라라는 포기가 섞여 있었다.
왕도의 길거리에 아사자 수십 명의 시체가 방치될 정도면 말 다한 것이다.
두 왕국을 지탱하던 왕족들이 대부분 사망했고 관료와 유력자들은 주변 국가로 피신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무엇을 하든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레오볼드의 판단은 달랐다.
그가 원하는 진짜 인재는 아직 많이 남아 있었고 무엇보다 땅이 필요했다.
레조트와 바노버 두 왕국의 영토는 바그란의 몇 배에 달한다.
근처에 가장 큰 담수 용량을 자랑하는 라온 호수까지 있어 물을 대기에도 용이했다.
당장 부족한 식량만 어찌한다면, 그리고 인재들을 포섭한다면 두 왕국을 흡수해 키우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마침 두 왕국은 자이움과 엘브랑데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 지정학적인 면에서 상당한 가치를 가진 곳이었다.
미리 확보해 두면 나중이 편할 것이다.
물론 주변 국가에서 그걸 그냥 두고 보진 않겠지만.
레오볼드는 그랜든의 어깨를 두드렸다.
“전쟁은 끝났지만 경이 할 일은 아직 남았소. 이것만 이행하고 오면 남작의 작위와 신형 골리앗을 내리겠소. 다른 기사들에게도 골리앗이 우선적으로 지급될 거요.”
그랜든은 작위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골리앗에만 관심을 보였다.
“신형 골리앗이라면 영주님께서 쓰신 그…….”
“그건 첫 출전이라 정상이 아니었소. 경들에게 갈 때쯤이면 완벽하게 조정되겠지.”
아스테라의 기사에게 신형 골리앗의 지급만큼 기쁜 것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게 대륙 최강을 자랑하던 티렌델과 벨리알급을 손쉽게 꺾은 기종이라면 더더욱.
그랜든을 포함한 기사들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이곳에서 저희의 본분을 다하겠습니다, 영주님.”
“수고해 주시오.”
그렇게 레오볼드는 비행선을 타고 떠났다.
며칠간의 여행 끝에 도착한 제국의 황도 제롬은 환호성의 물결로 가득 차 있었다.
화려한 꽃이 만발했고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비행선을 향해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크로이츠 백작이 난간에 기대어 말했다.
“시민들이 그대를 환영하는군. 사실 권력자의 인정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민심이지. 황도의 얼간이들은 그걸 잘 모르는 것 같지만.”
“그렇습니까? 아직은 잘 모르겠군요.”
그녀는 웃으며 손가락으로 레오볼드의 턱을 받쳐 올렸다.
“잊지 마라. 그대는 황제를 암살한 흉수를 죽였을 뿐만 아니라 복수전까지 성공시킨 남자다. 이제 황도에 입성하면 그대와 인연을 맺고자 하는 자도 많겠지만 그 반대도 아마 넘쳐날 것이다.”
“그들이 두렵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처리하기 편하게 한꺼번에 덤볐으면 좋겠군요.”
“기개 하나는 대단하군. 하여튼 그대는 나의 것이니 시선 단속을 해두는 게 좋을 거야.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렸다간 그년의 얼굴 가죽을 뜯어내 버릴 거니까.”
레오볼드는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이거 어쩌죠? 제게는 도저히 버릴 수 없는 사람이 있는데.”
“아르마 애쉬포드 경 말인가. 하녀 출신임에도 남작의 작위를 받았다지?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를 곁에 두는 건 허용하겠다. 얌전히 영지에 처박혀 지낼 생각은 없는 것 같으니까.”
둘은 엄밀히 말하면 비니지스적인 관계였다.
원래 크로이츠 백작은 레오볼드의 재정적인 능력에 눈독을 들였고 그를 자신의 영지로 불러들여 가문과 재산을 맡기려 했었다.
하지만 무력적인 부분이 엄청나다는 것이 밝혀졌고 그녀가 잠시 다른 일을 하는 사이에 거물이 되어 버렸다.
이제 제국 백작의 작위와 땅을 받게 되면 그녀에게 밑질 것도 없었다.
바그란의 섭정까지 맡고 있는 사람을 영지에 처박아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의 영역과 활동을 인정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 하녀 출신 첩을 하나쯤 데리고 있는다 해서 큰 흠이라곤 할 수 없었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레오볼드의 입술을 매만지더니 곧 둘의 얼굴이 겹쳐졌다.
갑판에 지나가던 선원들이 화들짝 놀랄 정도의 화끈한 키스였다.
그리고 얼마 후 둘은 황도 제롬에 입성해 바라크 황태자와 대면했다.
그는 화려한 작위 수여식 겸 연회를 열어 레오볼드를 초대했다.
“이번 전쟁의 영웅들을 환영하오! 눈이 있다면 보고 귀가 있다면 들으시오. 여기, 황금의 혈통이 새로 태어났소. 레오볼드 반다스 백작! 그를 목도하라!”
퍼펑, 하는 소리와 함께 꽃가루가 연회장을 장식했고 악단이 웅장한 음악을 연주했다.
거대한 연회장에 모인 제국의 귀족들이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레오볼드는 이 끔찍한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