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249
248화 타오르는 엘드그라실
미티어 스트라이크는 광역살상마법 중 하나로, 일단 발동하면 취소가 불가능한 것으로 악명이 높다.
운석이 그리 크진 않지만 초속 단위로 낙하하기 때문에 그 운동에너지는 메가톤급에 육박한다.
현재 자이움과 엘브랑데 양국은 각국은 미티어 스트라이크 마법을 상대편 수도에 조준해 놓고 24시간 감시 체제를 구축했다.
수틀리면 바로 보복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에 비해 대응책은 부실했는데, 운석 낙하를 막을 방법이 딱히 없었다.
자이움은 포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엘브랑데는 있긴 했으나 후폭풍이 막대했고 그마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여하튼 수도 메데아를 노리고 미티어 스트라이크가 발동된 것은 확실했다.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라 엘브랑데의 수뇌부가 발칵 뒤집혔다.
―대체 누가 쏜 거냐?
―설마 자이움이? 저열한 인간 놈들이 공멸을 각오한 건가?
―아니다! 자이움은 아니다! 함부로 보복했다간 역보복을 당한다!
켈로디안은 결사적으로 자이움이 아니란 소식을 퍼트리기 위해 애썼다.
그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확증 파괴를 막기 위해서였다.
오해로 인해 또 다른 미티어 스트라이크 마법진을 가동한다면 그때야말로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날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진실을 말할 수도 없었다.
동족의 분노와 증오를 어떻게 감당하란 말인가?
어쨌거나 낙하지가 확정된 이상 그것을 막아야 함은 당연했다.
켈로디안은 즉각 1지구에 대피령을 발동했다.
“전 인원은 5km, 아니, 그것도 부족하다! 10km 밖으로 즉각 대피하라!”
수백 명에 달하는 엘프들이 비명을 지르며 대피하기 시작했다.
워낙 파괴력이 높은 마법인 만큼 10km 밖에서도 안심할 수 없었다.
황족 일가는 물론이고 제국 행정부의 여러 부서와 에테르 추적 시스템이 모조리 날아가게 생겼다.
이는 금화로 환산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켈로디안은 가장 먼저 대피한 후 급히 정보국장을 찾았다.
“국장, 즉시 방어 시스템을 가동하게!”
“방어막으로는 완벽히 막을 수 없습니다. 최종 방어책을 써야 합니다.”
그의 굵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국장이 말하는 최종 방어책이란 신의 방패를 말하는 것이었다.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 진짜 신을 동원하는 것으로, 엘드그라실에 탑재되어 있는 무한의 회로를 이용해 만들어 낸 신격에서 신성마법을 뽑아내는 방법이었다.
엘븐 판테온의 후보인 만큼 그 위력은 막대했고 대부분의 마법을 막아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미티어 스트라이크까지 막을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게다가 엘드그라실에 어떤 피해가 닥칠지 두려웠다.
억지로 신성마법을 뽑아내는 만큼 신격에 충격이 갈 것이 명확했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신격을 동원해도 확실히 막을 수 없었고 부작용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무엇보다 다른 재상과 대의회에 공격을 당할 우려가 있었다.
―대체 뭘 했기에 예정도 없이 신격을 동원한 거요?
―미티어 스트라이크를 발동했는데 그게 우리한테 돌아왔다고? 지금 장난하자는 건가?
―엘드그라실을 저 꼴로 만든 책임은 반드시 져야 하오.
―아무래도 그대는 삼재상에 걸맞지 않는 인물인 것 같군.
켈로디안은 정적들이 쏟아낼 모함을 생각하곤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두 재상은 그의 축출을 노릴 것이고 발동을 승인한 대의회도 자신에게 책임을 미룰 것이다.
책임을 지는 건 하나면 충분하니까.
그는 부들부들 떨려오는 몸을 간신히 진정시켰다.
암울한 미래를 맞고 싶진 않았지만 운석이 떨어져 완전히 파멸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 어떤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저 마법은 막아야 하네. 즉시 시행하게.”
“알겠습니다.”
무한의 회로에 잠들어 있는 신격은 극비 중의 극비라 발동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정보국장이 엘그드라실 가까이에 위치한 신의 탑에 연락을 하자 곧장 무한의 회로가 가동되었다.
황금색 광채를 뿜어내던 세계수 전체가 희미하게 떠는 듯했다.
전례 없던 일에 엘프들이 공황 상태에 빠졌다.
“세계수가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울부짖고 있어… 감당하지 못할 고통이 몰려오는 거야…….”
황녀 마르그레타는 수뇌부가 무언가를 저질렀음을 직감했다.
그녀는 엘드그라실을 수호하는 황가의 일원이자 가장 깊게 연결되어 있는 엘프였다.
무한의 회로가 있다는 건 몰랐지만 거대한 힘이 엘드그라실에서 빠져나가고 있다는 건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야…….”
황급히 주변을 수소문해 겨우 켈로디안에게 연락이 닿았지만 그는 발뺌을 하기 바빴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황녀님께서 신경 쓰실 일이 아닙니다.”
“어떻게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죠? 세계수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
“…저 마법을 놔두면 우리는 더한 고통을 받아들여야 할 겁니다. 그러므로 다소의 방어책을 강구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저도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알려드릴 의무가 없습니다.”
통신이 끊겼고 마르그레타는 힘없이 통신구에서 손을 떼었다.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제국 황가의 일원이면서 그녀는 모든 사안에서 배제당하는 형편이었다.
다른 황족들은 수뇌부가 제공하는 물질적인 향응을 즐기는 모양이지만 그녀는 그럴 수 없었다.
마르그레타는 하늘에서 전해져 오는 강렬한 에테르에 몸을 떨었다.
‘미티어 스트라이크… 인간들이 발동한 건 아니야.’
대의회가 가만히 있을 리 없으니 연쇄적으로 발동해야 하고 이는 메데아 전체를 뒤덮고도 남았다.
딱 하나만 발동했다는 건 실수라는 것이고 이는 대륙 중앙에서 뭔가 틀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쟁에서 졌을 확률이 높아…….’
마르그레타는 이번 전쟁에 명분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가장 크게 반대한 사람 중 하나였다.
목소리는 높았지만 실권이 없어서 결국 무시되었고 그녀는 그것을 아쉽게 여겼다.
만약 전쟁에서 졌다면, 엘븐 나이트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엘브랑데로선 다행스런 일이었다.
명분 없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만큼 끔찍한 것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티렌델 경은 무사해야 하는데…….’
그녀는 말없이 손을 붙잡고 기도를 올렸다.
미티어 스트라이크가 메데아를 향해 쇄도하는 이런 급박한 상황 속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엘드그라실에서 신격이 강제로 분리되었다.
이름은 없지만 언젠가 엘븐 판테온의 일원이 될 신격이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우우우욱―
메데아 전체에 음산한 소리가 퍼져 나갔다.
한편 아르마는 운석의 속도가 늦춰지는 것을 감지해 냈다.
「마스터, 이대로 가면 낙하하기 직전에 멈출 겁니다.」
“원인을 알아낼 수 있겠어?”
「엘드그라실에서 거대한 신성마법이 발동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무한의 회로가 가동된 것 같습니다.」
그 운동에너지를 상쇄할 수 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미쳤군. 자기들의 신을 방패로 쓴 건가?”
「엄밀히 말하면 엘븐 판테온은 아닙니다. 영혼이 뭉쳐진 덩어리에 불과하니까요.」
케인이 말하길, 무한의 회로에서 만들어진 신격은 이름을 부여받아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의 신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 절차가 없으면 그저 영혼 덩어리에 불과하며 권능도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신격을 동원하면 미티어 스트라이크를 막아 내는 것도 가능한 모양이었다.
레오볼드는 엘프들의 능력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대단하군. 과연 최강국을 자처할 만해.”
「이대로 놔둘까요?」
“그럴 순 없지. 엘프들은 이번에 피를 좀 봐야 해.”
그는 균형의 수호자는 아니었지만 앞으로 제국을 만들기 위해선 엘브랑데가 굳건하게 서 있으면 곤란했다.
갈등은 흔들림을, 그리고 빈틈을 만들어 낸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세력을 만들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다소 억지를 쓸 수밖에.
“중력 크레인으로 눌러 줘. 원래 예정된 피해를 입도록.”
「알겠습니다.」
세틀러호나 채굴선의 기능인 중력 크레인은 행성 채굴용이다.
어마어마한 중력을 컨트롤할 수 있어서 다소의 방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융합로가 약간의 에테르를 뿜어내자 운석의 낙하에 가속도가 붙었다.
켈로디안은 신격이 완성한 신성마법이 급격히 흩어지는 것을 느끼고 경악했다.
“어째서 마법이 무너지는 거냐? 왜?”
정보국장이 급히 보고를 해왔다.
“각하! 신격이 무너집니다! 더 이상 신의 방패를 가동할 수 없습니다!”
“이런 젠장!”
최후의 수단으로 방어마법이 있긴 하지만 기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제 운석은 메데아 상공 수십 km에까지 다다랐다.
방어마법이 전개되었지만 운동에너지가 워낙 컸던지라 힘없이 깨졌다.
그리고 대폭발이 일어나며 반경 3km가 그대로 증발했다.
지진이라도 발생한 듯 일대가 뒤집혔고 충격파가 사방을 휩쓸었다.
안전한 곳으로 대피했던 엘프들도 충격파와 지진에 몸을 휘청거렸다.
거대한 빛 덩어리가 세계수만큼이나 높은 고도로 뿜어졌고 수많은 파편이 화염에 휩싸인 채 사방으로 날아갔다.
파편 하나하나가 파이어볼 이상의 위력을 갖고 있다 보니 부수적인 피해도 엄청났다.
“으아아악!”
“모두 피해라! 건물로 몸을 숨겨라!”
켈로디안은 가장 안전한 곳에서 그 끔찍한 참상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터무니없는 위력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용서할 수 없다…….”
그의 눈에 분노가 깃들었지만 같은 장소에 있던 원로원 의원들은 혀를 차며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분노는…….”
“애초에 재상의 직위를 감당할 위인은 아니었죠. 이번 기회에 내려가는 것도 좋을 겁니다.”
“마법의 탑을 어떻게 관리했기에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쯧쯧…….”
그들은 켈로디안의 직함 앞에 전이라는 글자를 붙여주었다.
낙하의 여파에 메데아 일부가 철저히 박살 나는 도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신격을 잃은 엘드그라실의 일부가 버티지 못하고 불에 타오르기 시작했다.
워낙 큰 나무인 만큼 화재의 규모도 엄청나 도시 전체가 환하게 불타올랐다.
“에테르가 역류했다!”
“가지를 얼려라! 화재가 번지지 않게 해!”
엘프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 * *
전황이 급격하게 기울어졌다.
갑자기 출현한 블루 드래곤은 눈앞의 모든 것을 공격했고 양측 부대는 후퇴하기에 급급했다.
어찌된 일인지 전혀 공격이 먹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갈레온 앞에 무릎 꿇어라!
비행선 포격에 지레 겁을 먹고 도망갔던 드래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앞발을 휘두르는 단순한 공격에도 가공할 힘이 실려 있었고 주변에는 끊임없이 마법이 몰아치고 있었다.
화염의 폭풍을 간신히 버텨 내면 푸른 번개가 강타하는 식이라 도저히 상대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이 드래곤은 움직임마저도 날렵했다.
이상한 추진기를 달고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전장을 옮기는 덕분에 주변 골리앗들은 끌려 다니기 바빴다.
덩치도 큰 놈이 기동성에 화력까지 겸비하다 보니 도저히 상대가 안 되었던 것이다.
크로이츠 백작은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을 직감했다.
레오볼드의 공이긴 하지만 어쨌든 엘브랑데는 주력을 잃고 지리멸렬하게 후퇴하는 중이었다.
그들을 추적하는 것보다는 물러나서 전열을 정비하는 것이 나아 보였다.
“사령관님, 지금 후퇴해야 합니다. 드래곤에 의한 피해가 너무 큽니다.”
“으음…….”
총사령관 로랜드 후작은 전황을 살폈다.
사실 지갈레온은 골리앗을 공격하고는 있었지만 완전히 박살 내지는 않았다.
아르마가 내린 지시는 혼란을 일으키라는 것이었지 다 죽이라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끔 잘못 맞았는지 몇 대가 폭발하긴 했지만 어쨌든 그의 잘못은 아니었다.
로랜드 후작은 바로 그 장면에 깊은 우려를 표했다.
“피해가 커지는군. 드래곤을 잡을 방도가 없는 이상 여기에 머물러 있는 건 무리인 것 같소.”
“인근 바노버 왕국의 성으로 후퇴해 전열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마법 함정을 쓴다면 놈을 상대할 수 있을 겁니다.”
“경의 의견을 받아들이겠소. 전군, 후퇴하라!”
총사령관에게서 지시가 떨어지자 수백 대의 골리앗이 후퇴하기 시작했다.
지갈레온은 크게 분노하는 척하며 그들을 추적했다.
―도망치려는가! 어림도 없다!
그런데 지금 전장엔 레오볼드와 동행한 비행선 8척이 떠 있었다.
햄튼 제독은 지갈레온의 정체에 대해 몰랐기에 에테르 캐논을 써서라도 놈을 저지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기에 이르렀다.
“영주님께서 분투하고 계시는데 구경만 하고 있을 순 없다! 전 선단, 포격 준비!”
에테르 캐논은 명중률이 낮아 골리앗을 공격하는 데에는 부담이 컸다.
에테르석 몇 개면 돈이 얼마인데 그걸 허공에 날려 버릴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덩치 큰 드래곤이라면 그런 문제는 없었다.
또한 선단의 포술장 휘하 선원들은 몇 차례의 시험포격으로 자신감을 가진 상태였다.
“거리 보정, 조준 끝났습니다!”
“쏴라!”
몇 줄기의 빛이 지갈레온의 전신을 두들겼다.
―끄아아악!
강화된 에테르 캐논의 위력은 드래곤이라 하더라도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현재 지갈레온은 아르마의 시술을 받아 방어마법과 리빙메탈 아머로 전신을 보호받고 있는 상태였다.
따라서 고통은 의외로 크지 않았다.
‘별로 안 아프잖아? 가만, 저놈들이 왜 나를 공격하는 거지?’
생각해 보면 햄튼과 선원들은 그의 정체를 모른다.
지온이라는 마법사는 자이움 출신의 괴팍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선단에 스테피나가 있었다면 즉각 중지하라고 연락할 수 있었을 테지만 그녀는 오지 않은 모양.
‘젠장, 도망가야겠군.’
그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전장에 난입해 엉망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했으면 영주도 만족할 것이다.
지갈레온은 다시 쏟아지는 포격을 피해 도망갈 준비를 했다.
한편 레오볼드는 후퇴하는 엘브랑데군을 추적하고 있었다.
엘븐 나이트는 대륙 최고의 기동력을 자랑하지만 그는 더 빨랐다.
꽤 벌어져 있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지더니 기어코 후미의 골리앗 한 대가 꼬리를 잡혔다.
“죽어라.”
쾅!
일검에 골리앗이 반쪽이 되어 나뒹굴었다.
뒤에서 부하들이 하나둘씩 죽어가자 선두의 티렌델은 곧장 정지했다.
“이대로 사냥당할 순 없다! 여기서 놈과 싸운다!”
“티렌델 님, 안 됩니다!”
부하들이 그의 골리앗을 끌고 가려 했고 티렌델은 저항했다.
“놔라! 우리 뒤에 엘드그라실이 있다. 이대로 갈 순 없다!”
“웃기는군!”
폭음이 들리며 골리앗 한 대가 허공으로 치솟았다.
레오볼드가 주먹에 에테르를 감아 복부장갑을 올려친 것이다.
엘븐 나이트들은 할 말을 잃었다.
벨리알급이 비교적 가벼운 기종이긴 하나 저렇게 허공으로 뜰 정도는 아니었다.
레오볼드는 자신을 막는 골리앗들을 반쪽으로 갈라 버리며 외쳤다.
“지금까지 도망쳤던 주제에 무슨 헛소리냐! 나를 죽이겠다는 네놈의 결심은 겨우 그것뿐이었나! 대륙에 평화를 가져오겠다는 네놈의 정의는 그 정도인가!”
“레오볼드 이놈!”
티렌델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에게 돌진했다.
하지만 완벽한 상황에서도 상대가 되지 못했는데 제정신이 아닌 지금 싸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골리앗 수 대가 나가떨어졌고 그도 레오볼드의 주먹질 한 방을 버티지 못했다.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복부장갑판이 함몰되었고 티렌델은 극심한 충격을 받았다.
“크헉!”
레오볼드는 쓰러진 벨리알급의 복부를 밟고 조롱했다.
“나약하기 짝이 없군. 힘이 없는 자의 정의는 공허할 뿐이다.”
“내가… 우리가 엘브랑데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마라…….”
“허약한 귀쟁이들 몇 놈이 몰려와 봐야 결과는 같을 뿐이다. 대륙을 지배하겠다고? 나에게 지배당하는 게 너희의 운명이다.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지.”
“이 빌어먹을 놈…….”
엘프의 역사를 언급하자 티렌델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그는 이 모욕을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무력한 나머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신세였다.
블랙 나이트가 다리에 힘을 주자 벨리알급이 쓰러진 땅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끼인 벨리알급이야 말할 필요도 없이 극심한 충격을 받고 있었다.
“대장님!”
“저기 아군 함대가 온다!”
엘프들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엘드그라실을 지키기 위해 후방에 주둔하고 있던 비행선 함대가 전황이 위태로움을 짐작하고는 여기까지 나온 것이다.
에테르 캐논이 포격을 쏟아부었고 엘븐 나이트 몇이 레오볼드를 붙잡고 늘어졌다.
“같이 죽자!”
“티렌델 님! 지금 피하십시오!”
당연하지만 티렌델이 그냥 갈 리 없었다.
그는 훌쩍 뒤로 물러난 레오볼드 덕분에 일어날 수 있었다.
에테르 캐논이 쉴 새 없이 땅을 두들기는 가운데 부관이 그에게 와서 보고했다.
“티렌델 님! 메데아가 미티어 스트라이크 공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뭐? 그게 무슨 헛소리냐?”
“사실입니다! 마르그레타 황녀님을 포함해서 다수의 황족이 피신했습니다! 관료들은 물론이고요!”
“미친… 인간들의 소행인가?”
“그것이 확실치 않습니다. 에테르 파장을 조사한 결과 마법의 탑에서 발동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대의회 놈들이 기어코 저질렀군.”
후퇴하자는 그의 제안을 무시하고 발동시켰다가 뭔가가 잘못된 모양이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여기서 죽을 순 없었다.
‘나는 살아야 한다… 오늘의 치욕을 되갚아주기 위해서라도!’
레오볼드와 대의회 놈들을 한꺼번에 족치지 않으면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티렌델은 포격을 막아 내는 블랙 나이트를 보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네놈이 강한 건 인정한다… 허나 다음에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가 몸을 돌리자 엘프들이 후퇴하기 시작했다.
비행선 함대의 포격이 레오볼드에게 집중되었고 그는 일부러 블랙 나이트를 바닥에 쓰러트렸다.
‘맞아 주는 척 하는 것도 힘들군.’
다년간 수련한 연기가 효과가 있었는지 엘브랑대의 함대는 슬금슬금 움직이더니 도망가 버렸다.
레오볼드는 근처에 있는 엘드그라실의 가지에 다가갔다.
‘아르마. 해적군도에 있는 것과 비교하면 어떤 것 같아?’
「강력한 흑마법이 펼쳐져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라키에스의 것과 동일한 파장입니다.」
‘흑마법으로 엘드그라실을 타락시키다니… 그네들의 신이 아니었나?’
「신을 만들기까지 하는데 이용하는 것쯤은 별 문제가 아니겠죠.」
‘하긴 그렇군.’
아무튼 이 가지가 레조트와 바노버 두 왕국에 펼쳐진 극심한 기아의 근원이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주변의 땅은 상당히 풍요로웠다.
‘두 왕국의 지력을 흡수하는 건가? 이게 가능하다는 건 지력을 내보낼 수도 있다는 건데.’
「확보할까요?」
‘세틀러호로 회수하고 홀로그램을 표시해.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그러려니 할 거야.’
가까이에 있다면 사기 행각이 드러나겠지만 엘브랑데군과 연합군 모두 도망간 상태였다.
잠시 후 세틀러호가 중력 크레인을 가동해 엘드그라실을 땅과 함께 뽑아 올렸다.
홀로그램이 주변에 뿌려지자 마치 엘드그라실이 화재로 타오르는 듯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그럴싸하군.”
레오볼드는 어깨를 으쓱하곤 대검을 쥐고 복귀하기 시작했다.
멀리서 도망가고 있던 티렌델은 부하의 외침에 눈을 돌렸다.
엘드그라실의 가지가 불에 타오르고 있었다.
나무의 비명이 들려오는 것 같아 그는 눈물을 뒤로 뿌렸다.
“내 목숨을 걸고 너를 죽이겠다…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