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266
265화 이건 전쟁이 아니다
레오볼드가 나타나기 이전만 해도 전쟁은 극소수 수뇌부의 것이었다.
전쟁은 기사가 타는 골리앗 대 골리앗의 순수 힘 싸움이 전부였으며 정찰조차 중요시되지 않았다.
워낙 덩치가 크고 느리다 보니 아무리 숨겨도 사전에 발각당하는 게 다반사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골리앗에 대항할 만한 무기가 개발되었느냐면 아니라서 대전쟁 이후 200년 동안은 전쟁의 양상이 거의 고정되었다.
서로 전쟁의 의지가 확고하면 선전포고를 한 다음 주요 축선을 점령해 버티고 그것을 뚫어내면 승리였다.
골리앗이 전술의 다양함과는 배치되는 병기이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
레오볼드는 그런 고루한 상황에 변화를 가져왔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언제든 골리앗을 탑재한 비행선에 공격당할 가능성을 일깨워 줌으로써 각국에 비행선 운용을 강제했다.
덕분에 힘 좀 쓴다 하는 국가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비행선을 정찰에 써야 했다.
안 그러면 언제 골리앗을 탑재한 비행선이 날아와 쑥대밭을 만들지도 모르니까.
그런 면에서 레오볼드는 대단히 골치 아픈 존재였다.
왜 그런 걸 도입해서 쓸데없이 돈을 쓰게 만드느냐는 것이다.
―도움 되는 거 하나 없이 비용만 증가했다. 어차피 골리앗은 훤히 드러나게 되어 있는데 이게 뭐냐?
―에테르석 수급도 벅찬데 부유석에 들어가는 돈도 장난이 아니다. 경제적인 부담을 노렸다면 칭찬해 주고 싶다. 정말로.
―이계에서 온 용사라더니 신탁이 잘못된 모양이다. 마계에서 온 마왕이 딱이다.
여러 불만에도 불구하고 바그란이 비행선을 이용해 여기저기 정찰하기 시작하자 타국도 똑같이 따라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전술에 대한 경직성은 갈리스토군에도 어김없이 존재했다.
대전략, 그러니까 전쟁의 목적과 공세종말점, 최종방어선 등을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국왕인 팔커스 2세뿐이었다.
휘하 장군들도 전체적인 윤곽은 몰랐으며 자신이 담당한 전장에 대한 지휘권만 갖고 있을 뿐이었다.
장군들이 그러한데 현장 지휘관들이야 말해 무엇할까.
대부분의 기사는 나가면 나가고 싸우라면 싸우는 존재에 불과했다.
왜 싸우는지, 이 지역을 점령하면 어떤 이득이 있는지, 그리고 전투에 돌입해서는 어느 선까지 피해를 감수할 수 있는지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200년 넘게 골리앗을 이용한 정면 힘 싸움만 벌이다 보니 유연한 전술이 소멸해 버린 것이다.
그에 반해 그랜든이 이끄는 척탄병 부대는 자신들의 임무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대전략까지야 몰랐지만 이번 작전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그리고 향후에 어떤 임무가 내려질지 정도는 다들 이해했다.
그것은 수천 명 중에서 100명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혹독한 교육 훈련을 시킨 결과물이었다.
척탄병 부대는 건장한 20-30대 남성들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에테르 감응력만 있다면 당장 준기사로 임명해도 될 정도로 실력이 좋았다.
거기에 독도법과 제대별 기초전술, 최소한의 생존스킬까지 익히고 있다 보니 야전에 투입할 병력으로서의 역량은 기사들보다 훨씬 나았다.
즉, 레오볼드가 원하는 정예병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말단 병사까지 그런 역량을 갖추고 있다 보니 그랜든의 지시를 정확히 수행해 냈다.
야밤에 지도만 보고서 헤이스톤 주변의 지형을 정확히 파악하는가 하면 효과적인 매복 지점까지 찾아냈다.
후방에 투입된 분대는 20명 중에서도 최정예였기에 가장 이동거리가 길었음에도 한 명도 낙오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이 모든 것이 비밀리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헤이스톤 연락소에 수십 명의 기사와 지원부대가 있었다는 걸 감안하면 대단한 성과였다.
그 성과는 곧 결과로 나타났다.
장애물을 겸해 세워진 골리앗 5대가 폭발해 나자빠지자 놀란 기사들이 천막에서 뛰쳐나왔다.
“무슨 일이냐!”
“공격이다! 적습이다!”
“총원 경계 태세! 횃불과 발광석으로 불을 밝혀라!”
하도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에 한 조치였다.
그러나 그 비전술적인 조치는 곧 실수였음이 드러났다.
사방이 어두운 가운데 골리앗 주변만 환해지자 척탄병들이 조준하는 게 아주 편해진 것이다.
그랜든은 설마 레오볼드가 말한 대로 행동하는 멍청이들이 있을 줄은 몰랐는지 잠시 멍해졌다.
‘밤에 자기 위치를 알리는 바보들이 있단 말인가?’
200년 동안 골리앗으로 싸우느라 기본적인 등화관제도 잊어버린 것 같았다.
그런 바보들에게 줄 선물은 하나.
“에테르폭탄 재장전 준비.”
“준비됐습니다.”
에테르폭탄의 재료도 결코 만만한 게 아니다.
일단 주재료로 에테르석이 들어가는데다 점화회로를 합하면 골리앗은 몰라도 어지간한 집 한 채 정도는 충분히 구입할 수 있는 비용이 들어간다.
그래도 한 방에 골리앗을 박살 낼 수 있으니 남는 장사였다.
“2, 3분대 발사.”
횃불과 발광석이 밝힌 골리앗을 향해 십여 발의 에테르폭탄이 날아갔다.
폭발음이 이는 순간 주변의 공기가 흔들리며 골리앗의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쿠쿵!
어찌나 폭발이 강했는지 근처에 있던 기사들이 휩쓸려 날아갈 지경이었다.
떨어져 있었던 지원부대도 천막과 함께 휩쓸렸고 연락소가 붕괴되었다.
“이 폭발은 대체……!”
헤이스톤 주둔군의 지휘관 엠브리오 백작은 깜짝 놀라 천막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군데군데 박살 나 쓰러진 골리앗과 기사들의 조각난 시체뿐이었다.
자고 있는데 전력의 절반이 날아갔으니 황당할 지경이었다.
그는 급히 부관을 호출했다.
“무슨 공격인가! 적은 어디에 있나!”
“모, 모르겠습니다, 백작님!”
“그 모르는 걸 알아오는 게 네놈의 임무야! 이 멍청한 놈!”
“죄송합니다!”
“일단 잔존한 골리앗이라도 후퇴시켜!”
지시를 받은 기사들은 서둘러 골리앗에 올라타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야밤인지라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행동도 굼떴다.
덕분에 골리앗 20대가 좁은 주둔지를 빠져나갔을 때쯤엔 척탄병 2, 3분대가 4분대와 합류한 시점이었다.
그랜든은 먼 거리에서 발광석이 반짝거리는 걸 보고 망원경을 내렸다.
“그렇게 당했는데도 조명은 포기가 안 되나 보군. 1분대를 제외한 분대, 일제사격 준비.”
15명이 한꺼번에 에테르폭탄을 발사하면 그 위력이 장난이 아닐 것이다.
기사들은 발광석에 의지해 골리앗을 옮기고 있었는데 줄이 하나여서 참 조준하기 편했다.
흡사 맞히라고 대주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랜든은 그제야 레오볼드가 가르친 것들이 이해가 되었다.
‘이 지형에서 저렇게 한 줄로 이동하면 좌우에서의 공격에 취약해진다.’
자신이 저 상황에 처했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답은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마법사를 동원해 척탄병이 있을 법한 곳을 공격하는 게 최선인데 이 어두운 밤에 제대로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병사들이 평민이라 에테르의 흔적을 찾아내는 것도 극히 어렵다… 답은 경보병을 투입해 수색하는 것뿐이군.’
보병에는 보병으로 대항해야 한다.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겠는데 그에 대해 레오볼드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의문이었다.
마침내 각 분대에서 보고가 들어왔다.
“3분대 발사 준비 끝났습니다.”
“2분대 보고 드립니다. 적 선두가 목표 지점에 도착했습니다.”
“좋아. 발사.”
에테르폭탄 15발이 골리앗을 향해 발사되었다.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며 일렬로 후퇴하던 골리앗들이 처참하게 분해되어 나자빠졌다.
골리앗들과 함께 후퇴하던 엠브리오 백작마저 어느새 전사했는지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간신히 살아남은 몇몇 기사가 골리앗에서 뛰어내리다가 중상을 입었다.
“으아악! 내 다리!”
“후퇴하라! 전열에서 이탈해 후퇴하라!”
그랜든은 그 참상을 묵묵히 바라봤다.
이건 전투라고 할 수 없었다.
‘일방적인 폭력에 가깝군. 적은 우리를 보지도 못한 채 궤멸했다…….’
골리앗은 단 한 기도 동원하지 않고 비행선과 병사들만으로 이뤄 낸 성과였다.
그는 이번 전투를 계기로 아스테라에 큰 변화가 일 것이라고 느꼈다.
기존 세력이 골리앗을 고집하려 해도 이런 전과가 튀어나오면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에테르폭탄이 엘브랑데에서 나왔다고 그랬나? 조만간 각국에 다 퍼지겠군.’
혼자만 알고 있었다면 모를까 바그란에서 복제에 성공한 이상 그 기밀은 지킬 가치가 없었다.
엘브랑데 입장에선 여러 왕국이 바그란을 견제하길 바랄 것이므로 제조법을 풀어 버릴 가능성이 높았다.
레오볼드 또한 그 점을 언급했고 말이다.
‘앞으로는 우리도 저 폭탄의 대응법을 훈련해야겠어.’
글쎄, 지금쯤 본국에선 어느 부대가 열심히 훈련하고 있지 않을까?
그가 아는 레오볼드는 모든 상황에 대처법을 세워 두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의 적이 되지 않는 게 최선이었다.
* * *
그날 밤 바그란이 동원한 비행선은 5척, 척탄병은 100여 명에 불과했다.
그랜든과 엘윈, 그리고 카티나와 전직 근위기사들은 척탄병 4개 분대를 지휘하여 갈리스토와 바그란을 연결하는 주요 축선 5개를 공격했다.
그 결과 골리앗 100여 대를 파괴하고 다수의 지휘관을 전사시키는 성과를 올렸다.
사실상 갈리스토군의 전열이 완전히 붕괴된 것이다.
현장에 파견된 기사들조차도 믿지 못할 엄청난 전과였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골리앗 100대를 파괴? 심지어 우리 골리앗은 한 대도 동원하지 않았는데?
―야음을 틈타고 신형 병기를 동원하는 등 온갖 유리한 점이 있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놀라운 성과다.
―전하께서 이건 전쟁이 아니라 그대들의 훈련이라고 말씀하신 게 이런 이유였구나…….
바그란의 수뇌부는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지만 갈리스토는 달랐다.
공격이 야밤에 이뤄진 데다 지휘관이 대부분 전사하는 바람에 통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5개의 주둔지는 그대로 버려졌고 사태파악은 날이 낡은 후에도 몇 시간이나 지연되었다.
그리하여 팔커스 2세는 오후가 되어서야 100여 대의 골리앗이 파괴되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전방의 방어선이 무너진 것은 덤이었다.
쾅!
인내심을 잃은 국왕의 주먹이 회의용 테이블을 두들겼다.
“100대! 100대란 말이오! 이게 무슨 장난인 줄 아나! 장군들은 씹어 먹을 바그란 놈들이 공격할 때까지 뭘 한 거요?”
경험 많은 장군들은 이런 때에는 침묵을 지키고 폭풍의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단 한 번의 야습으로 갈리스토는 회복이 어려운 타격을 입었다.
그럼에도 적의 규모는커녕 정체조차 파악하지 못했다는 게 국왕을 분노하게 했다.
“현지에서 지휘관이란 놈들이 올린 보고가 뭔지 아시오?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였소! 대체 골리앗 100대를 잃은 것 외에 아는 게 뭐냔 말이오! 당신들도 내게 같은 말을 할 거요?”
주변의 시선을 받은 총사령관 에른스트 후작이 입을 떼었다.
“실례지만 전하, 판그랄 대공께서 귀띔하지 않으셨습니까? 바그란의 신무기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게 뭐냐고 버럭하려던 팔커스 2세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대공이 직접 경고한 무기가 생각난 것이다.
‘에테르석을 이용해 만든 폭탄 발사기? 그게 마법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의 상상력은 협소하기 그지없어 에테르폭탄 발사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또 그걸 중요하게 여긴다 해도 뭔지 모르는 이상 대응법이 나올 리 만무했다.
“이미르 공화국에서 이상한 무기를 만들었다는 소문은 들었소. 그게 바그란에 전해졌다는 것도.”
“그렇다면 대공께 부탁을 드려서 그 무기를 입수하는 게 순리 같습니다.”
에른스트 후작이 정론에 가까운 주장을 폈으나 팔커스 2세는 볼살을 떨며 분노했다.
“대공에게 그런 부탁을 하라니, 내 체면을 어디까지 깎아내릴 셈이오?”
“…….”
불행히도 갈리스토 국왕의 체면은 골리앗 100대보다 더한 것인가 보다.
그 후로 회의는 골리앗 전투에 나서지 않고 비겁하게 행동하는 바그란군과 레오볼드에 대한 성토의 장으로 이어졌다.
당연하지만 그런 성토는 아무런 결과도 낳을 수 없었다.
장군들도 그걸 알았지만 팔커스 2세를 말릴 수가 없어 묵묵히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단 하루 만에 전력의 25%를 상실했소! 앞으로도 이런 결과가 나오지 말란 법은 없어! 최악의 경우 대공에게 부탁해서 미티어 스트라이크를 발동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오.”
“그 마법을 어디에 발동한단 말씀이십니까?”
“당연하지 않소? 바그란의 수도 로제론이지. 잘난 체하는 드래곤이나 레오볼드 그놈의 힘으로도 그 마법은 막을 수 없을 거요. 대전쟁에서도 그런 기록이 있었소.”
듣고 있던 귀족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만약에 실패한다면 드래곤이 우리의 수도에 날아오게 될 겁니다!”
지갈레온이 바그란의 서부 영지를 초토화시켰다는 건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
갈리스토는 레오볼드를 제외한 바그란을 촌구석이라고 여겼지만 서부 영지는 그럭저럭 쳐주는 편이었다.
그들이 반항도 못하고 박살 났다면 갈리스토도 수도를 제외하고는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
“드래곤쯤이야 에테르 캐논으로 방어할 수 있지 않소? 마법사도 있지. 우리는 바그란 놈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 줄 차례요.”
“저, 전하!”
아무래도 팔커스 2세는 골리앗을 잃은 것 때문에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장군들이 일어서서 그를 말렸고 회의는 간신히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렇다고 뾰족한 대책이 나온 것은 아니었다.
지난밤에 잃은 전력의 25%는 복구할 길이 없었고 남은 300대로 전쟁을 이끌어 가야 하는 처지였다.
그때 판그랄 대공에게서 연락이 왔다.
별도의 밀실에서 대화한 팔커스 2세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신성교국에서 우리에게 신의 유물을 제공한다고 하오! 그것이면 놈들도 더 이상 개수작을 부리지 못할 거요.”
“혹시 어떤 신의 유물인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시간과 공간의 신 테라호크의 유물이라고 하오. 일정 범위 안에 들어온 적들을 느리게 해주는 놀라운 물건이지!”
“오오!”
대부분의 장군은 감탄했지만 에른스트 후작은 눈을 끔뻑였다.
지금 상황에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실례지만 전하, 바그란은 5개 축선에 동시에 공격을 가했습니다. 그 중 어디에다 유물을 써야 할지요.”
순간 회의실의 공기가 싸늘해졌다.
테라호크의 유물도 결국 대규모 골리앗 전투에나 유효한 것이었다.
바그란은 골리앗을 운용하지 않았으며 비행선은 워낙 고도가 높아서 유물에 영향을 받을지 의문이었다.
답답해진 팔커스 2세는 호통을 내질렀다.
“이런 걸 전쟁이라고 할 수 있나! 레오볼드란 놈은 왜 갑자기 나타나서 아스테라의 전통을 어지럽히는지 영문을 모르겠군!”
회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고 고뇌의 시간이 깊어졌다.
* * *
엘브랑데의 총통이 된 드리즈덴 페더우드는 바그란이 대승을 거뒀다는 소식을 듣고도 낙담하지 않았다.
“에테르폭탄을 썼음에도 그 정도의 승리를 거두지 못한다면 오히려 이상하지. 문제는 놈들이 단시간에 어떻게 복제했는가 하는 점이야.”
“내게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죠?”
“그건 자네가 이번 일을 맡아주어야 하기 때문일세.”
드리즈덴의 앞에 있는 사람은 섀도우 엘프 델피나로서 티렌델 사태에도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녀가 부여받은 신격은 밤과 그림자의 신격인 녹턴.
전투력 면에서는 그다지 높지 않지만 모든 흔적을 감추고 잠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요컨대 암살자나 도둑에 딱이었고 드리즈덴은 그걸 역겨워했다.
그녀에게 녹턴의 신격을 부여하기로 결정한 것은 자기 자신이었음에도.
“이번 전쟁은 레오볼드 그놈의 승리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 자이움의 밀사가 전한 바에 의하면 레오볼드와 지갈레온이라는 드래곤은 참전을 못하게 되었다는군.”
“그렇다면 갈리스토에 승산이 있지 않나요? 그쪽은 판그랄 대공의 지원을 받을 테니까.”
드리즈덴은 혀를 쯧쯧 찼다.
“이래서 섀도우 엘프들은… 그 영악하고 사악한 자가 대비책 하나 세워두지 않았을 것 같나? 내가 장담하는데 갈리스토는 일주일이면 수도가 점령당하지 않으면 다행일 거야.”
“거기에서 우리가 할 일이 뭐가 있죠?”
“우리가 아니라 자네일세. 섀도우 엘프들을 받아들여 달라는 부탁을 했었지? 부담이 상당한 만큼 자네도 내 요구를 들어주어야겠어.”
델피나의 부탁이란 섀도우 엘프가 살 땅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었다.
최근 들어 바다에서의 섀도우 엘프의 영역이 계속 좁아지고 있었다.
아마 그것은 바그란을 위시한 해안선에 연한 국가들이 본격적인 영역 확대에 나섰기 때문일 것이다.
반다스 남작령에서 해적들의 본거지를 박살냄에 따라 그들이 갈 곳이 없어졌다.
각국은 고기잡이가 의외로 돈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배 건조에 한창이고 말이다.
당장 섀도우 엘프들이 밀려나진 않았지만 조만간 활동에 제한을 받을 것이라는 게 델피나의 예측이었다.
그녀의 소망은 단 하나, 동족들이 쉴 땅을 찾는 것이고 그것은 엘브랑데만이 줄 수 있었다.
“내게 원하는 게 뭐죠?”
“두 가지를 해줘야겠어. 쉽지만은 않겠지만 신격을 부여받은 자네이니만큼 해낼 수 있을 거야.”
“불가능하다는 소리처럼 들리는군요.”
“실패하면 자네와의 약속은 없었던 걸로 하지.”
사실 성공하고 돌아와도 엘브랑데에 섀도우 엘프를 위한 땅은 존재하지 않았다.
신성한 엘드그라실의 가호가 내려진 땅에 섀도우 엘프를 들이는 건 누구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델피나도 그것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지만 일단 희박한 가능성에 매달려야 하는 처지였다.
그녀가 말없이 재촉하자 드리즈덴은 서류 한 장을 꺼냈다.
“쉬운 것과 어려운 것 두 개가 있네. 무엇부터 듣겠나?”
“쉬운 것부터 듣죠.”
“바그란에 잠입해서 마르그레타 루스텔을 죽이게.”
델피나의 입이 쩍 벌어졌다.
엘브랑데의 황녀를 죽이라고?
물론 배신자니까 죽이고 싶은 마음을 이해는 하지만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럴 필요성이 있나 싶었다.
그녀의 존재만으로도 엘브랑데는 단결할 테고 그의 자리는 더 굳건해질 텐데 말이다.
하지만 드리즈덴의 결심은 단호했다.
“이유는 말할 수 없네. 황녀를 죽이게. 티렌델 그놈도 거기에 있을 확률이 높으니 최대한 마주치지 않아야 할 거야.”
“그런 걸 어떻게 아는 거죠?”
드리즈덴은 그녀의 질문을 무시하고 말했다.
“어려운 임무는 신성교국에 잠입해 어떤 유물을 훔쳐오는 것일세.”
“…그렇게 어렵진 않은 것 같은데요?”
“이야기를 다 들은 후에도 그런 소릴 할 수 있는지 두고 보지. 그 유물의 주인은 테라호크일세. 시간과 공간의 신이지.”
그걸 어떻게 알았냐는 질문은 중요하지 않았다.
보나마나 음험한 정치인들끼리 쑥덕대었을 테고 이 늙은이는 거기에서 이용할 가치를 찾아냈을 것이다.
문제는 자신에게 그걸 가르쳐주었다는 것에 있었다.
“내게 뭘 시킬 셈이군요.”
“의외로 똑똑하군. 맞아. 그건 보통 유물이 아닐세. 시전자의 영혼을 과거로 돌려보낼 수 있는 굉장한 물건이지. 이쯤 하면 자네의 역할을 알 수 있겠나?”
“…내 영혼을 레오볼드 반다스의 과거로 보내 그를 암살하게 할 작정인가요?”
“바로 맞췄네.”
“에일리드시여…….”
드리즈덴은 섀도우 엘프 따위가 위대한 에일리드를 주워섬기는 것을 듣고만 있었다.
만약 그 계획이 성공한다면, 눈엣가시인 레오볼드 반다스란 인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테라호크라는 신격에는 한계가 있으며 그걸 아르마가 알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레오볼드라는 인간은 수십 년 전에도 충분히 강했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