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294
293화 큰 것이 온다
테라 플릿이 만들어 놓은 화재는 몇 주간 계속되었다.
워낙 길게 지속되다 보니 엘브랑데의 1/10에 해당하는 면적이 화재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었다.
수많은 엘프가 짐을 싸서 고향을 떠나는 중이며 그 와중에 화재에 휩싸여 완전히 무너진 도시도 꽤 되었다.
엘프의 도시가 대부분 숲에 있다 보니 거세게 일어난 화재를 버티지 못하는 것이다.
그걸 컨트롤할 중앙기관의 부재가 화재를 부추겼다.
마법이든 뭐든 동원해서 화재를 진압해야 할 주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덕분에 가을이 다가오자 엘브랑데 전역이 화재에 휩싸인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실제로는 전체 면적의 15% 정도에 불과하지만, 어디를 가도 시뻘겋게 불타고 있는 숲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레오볼드는 시비리 위성을 통해 엘브랑데가 활활 타는 모습을 지켜봤다.
“화재란 자연의 재생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너무 오래 타는 게 문제군. 슬슬 정리를 해야겠어.”
정리란 에테르 역장을 펼쳐서 대지를 뒤집어 버리는 것을 뜻한다.
제아무리 큰 화재가 일어났다 하더라도 수십만 톤의 흙이 뒤집어지는 데 멀쩡하진 못하기 때문이다.
“세틀러호를 동원하겠습니다.”
“최대한 신속하게 진압해. 연기 때문에 주변 국가들까지 피해를 입을 지경이니까.”
주변 국가라고 해봐야 엘브랑데의 등쌀에 무너지기 일보직전이었지만 자치령을 생각해야 했다.
그렇게 세틀러호가 날아다니며 땅을 헤집었다.
대륙 전체를 불태울 듯 번지던 화재가 힘없이 픽픽 꺼져 나갔다.
무럭무럭 솟아오르던 검은 연기가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고 황폐화된 숲의 전경이 드러났다.
자연의 힘은 위대하니 몇 년 후에는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것이다.
그것이 엘프가 인위적으로 조성한 숲은 아닐 테지만.
하여튼 엘브랑데의 붕괴와 대화재 건으로 인해 바그란은 거대한 자원줄을 쥐게 되었다.
자이움이 있긴 하지만 그들은 엘브랑데에 손을 뻗칠 어떠한 여력도 없었다.
남은 엘프들은 잘해봐야 문명을 잃고 원시부족 비슷한 처지가 될 것이므로 장애물이 되기는 어려웠다.
아르마가 탐사정을 통해 찾은 각지의 자원 현황을 보고했다.
“온갖 희귀 금속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문명의 발달을 억누르고 숲을 조성한 덕분에 매장량이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금을 예로 들면 21세기 인류가 캐낸 금의 양이 20만 톤을 약간 넘는데 엘브랑데에 존재하는 금광 몇 개의 추정매장량만으로도 그것을 넘길 정도였다.
각종 희귀 금속도 마찬가지고 미스릴이나 오리하르콘 등에 이르면 격차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진다.
테라 행성의 크기가 지구보다 약간 작다는 점을 감안하면 특이한 일이었다.
아르마는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든 행성 같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원래 금 같은 무거운 원소는 행성의 형성 시기에 지각 깊은 곳에 가라앉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조사 결과에 의하면 테라의 금은 대부분 지표면에 포함되어 있답니다.”
“선지자가 행성까지 만들 정도의 문명이라면 그런 것쯤이야 손쉬운 일이겠지. 얼핏 다이슨 스피어 비슷한 것도 봤으니까…….”
얼마나 거대한지 감이 오지 않았지만 행성 몇 개가 안에 들어갈 정도니 보통 크기는 아닐 것이다.
사실 레오볼드는 수정의 홀에 들어가서 본 것이 환상, 혹은 꿈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바이오칩을 통해 들어온 항해도가 있으므로 그렇지는 않은 것 같지만.
어쨌든 선지자의 진짜 고향엔 오메가 원이 둥지를 틀고 있고 예전보다 더 강해진 것이 확실해졌다.
그녀를 족치고 선지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월등한 규모의 함대를 조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바로 자원 채굴이었다.
테라와 마레 주위를 돌고 있는 소행성대로는 충족이 되지 않았고 결국 행성을 파먹어야 한다.
다행히 아르마는 이날을 대비해 우주 플랜트와 부유대륙 기지 등 착실히 준비를 다져왔다.
“그렇다고 우주선 건조에만 열을 올려서는 안 되겠지. 당장 먹여 살려야 할 인원이 있으니까.”
“자치령의 인구를 합치면 300만 명이 넘습니다. 식량 공급이 완전히 끊겼으므로 우리가 나서야 합니다.”
“그거 큰일이군.”
300만이라는 숫자는 엄청나지만 대책이 없는 건 아니었다.
기존 바그란에서 나오는 식량이 꽤 넉넉할뿐더러 몇 년 동안 공을 들여온 부유대륙의 스마트팜이 완성 직전이었다.
외부의 관측을 신경 쓸 필요가 없어서 지구의 캄차카 반도보다 몇 배나 더 큰 규모를 자랑했다.
당장 대량의 식량을 공급하긴 힘들지만 몇 주만 지나면 사정이 달라질 것이다.
“그 몇 주를 어떻게 버티느냐가 문제인데… 부족한 식량이 어느 정도지?”
“하루에 약 2,800톤, 기간으로 따지면 최저 137,000톤에서 최대 176,400톤이 필요하겠네요.”
“만만찮은 숫자군…….”
갈리스토와 타소스 공국의 식량 건을 간신히 해결했더니 또 식량 문제가 터졌다.
자치령 인구만 있는 게 아니라 당장 드워프들도 받아들여야 한다.
거기에 엘프 정착지까지 합치면 긍정적인 전망이 나오지 않았다.
식량을 사는 것도 어려운 게, 알테마가 데노바를 박살 냈기 때문이다.
상인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기반이 망가져서 물류망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
최근에는 자이움마저도 반쯤 적대적으로 돌아서는 바람에 식량을 구하기가 요원했다.
“다행스럽게도 길이 없는 건 아닙니다. 수확기에 들어섰기에 최대한 식량을 긁어모으면 절반 정도는 충당이 가능합니다.”
“절반은 만들어 내야 한다는 소린데 하늘에서 식량이 떨어지진 않을 것 같단 말이지.”
역시 허리띠를 졸라매는 수밖에 없을까?
절대적인 지배 체제를 구축해 놓았고 길어 봐야 두 달 정도 절약하면 되기에 큰 반발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절약해도 레오볼드가 오기 전의 바그란 사정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다만 풍족한 식생활을 누리다가 갑자기 공급이 줄어들면 두려워하는 여론이 생길 수 있으므로 신경은 써야 했다.
“몬스터만 먹을 수 있다면 식량 고민을 할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참 아쉬워.”
“현재로선 탈취 공정에 상당한 자원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식감도 끔찍해서…….”
“어떻게 만들 수는 있다는 말이군. 정 급하면 그거라도 먹여야지 어쩌겠어.”
아스테라는 해양 식량 자원에 대한 지식이 얕은 편이라 적당히 둘러대도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그때 아르마가 고개를 하늘 쪽으로 살짝 돌리더니 심상치 않은 어조로 보고했다.
“마스터, 아무래도 선지자가 말한 곧, 이라는 단어는 몇 주 안이라는 의미였나 봅니다.”
“왜, 뭐가 왔어?”
“무언가가 이 행성으로 오고 있습니다. 질량은 약 6천만 톤이고 속도를 늦추고 있는 걸로 봐서 인공체인 것 같네요.”
레오볼드는 벌떡 일어났다.
선물이라고 해서 이전 선지자의 유물 비슷한 건 줄 알았는데 너무 큰 것이 왔다.
* * *
“감속 종료했습니다. 현재 선물은 정지 궤도에 위치해 있습니다. 질량은 약 6천만 톤, 외형은 부정형에 가깝고 길이는 약 2.5km에 달합니다.”
레오볼드와 아르마는 순양함 한 척을 이용해 우주에 나가 상황을 지켜봤다.
선지자의 선물은 지금까지의 유물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큰 인공 구조물이었다.
겉은 회색과 검은 색의 리빙메탈로 이루어져 있었고 어딘가에서 떼어낸 듯한 절단면이 인상적이었다.
“저쪽이 꽤 반듯하지 않아? 더 큰 구조물의 일부분인 것 같은데.”
“떼어낸 게 맞는 것 같네요. 아마 마스터께서 보신 그 링 월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슨 기능을 가졌느냐가 문제인데… 일단 탐사정을 보내 봐.”
탐사정 몇 기가 뽈뽈거리며 구조물로 향했다.
곧이어 전체 구조가 드러났고 아르마가 통제실로 추측되는 곳에 접속했다.
“보안이 상당히 잘 되어 있어서 당장 뚫기는 어렵습니다. 마스터가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설마 내 지문이 등록되어 있진 않겠지?”
“선지자니까 뭐든지 가능하죠.”
레오볼드는 아르마와 함께 셔틀을 타고 중앙통제실로 추측되는 공간으로 향했다.
“압력 평형, 온도 유지… 이제 들어가셔도 됩니다.”
“선지자의 덩치는 우리와 비슷한 것 같군.”
왜냐하면 통제실의 콘솔과 스크린 등의 크기가 현존하는 것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수정의 홀에서 본 선지자는 행성을 손에 쥘 정도로 거대했지만 그건 문명의 발달 정도를 표시한 것일 확률이 높았다.
즉, 선지자는 레오볼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육체를 가진 생명체라는 것이다.
“하긴 아스테라의 생명체도 우리와 닮았으니까…….”
문어 외계인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조금 섭섭했다.
레오볼드가 통제실 안에 들어가자마자 조명이 밝아졌다.
그리고 가운데 위치한 의자에 앉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묘한 기계음이 섞인 목소리였다.
「종족 체크… 확인. DNA분석 시작… 확인. 에테르 동기화 체크… 확인.」
「이클립스 기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후계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뭘 만들 수 있지?”
「후계자님이 원하시는 식량은 뭐든지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단, 그에 상응하는 에테르 에너지와 유기물이 필요합니다.」
“유기물에서 식량을 뽑아낸단 말이군…….”
이쪽의 사정을 정확하게 알고 이런 물건을 보내 주는 걸 보면 확실히 선지자는 대단한 존재였다.
유기물의 원자를 재배열해 먹을 수 있는 식량으로 바꿀 수 있다니.
아르마가 옆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통제실에 접속하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저보다 성능이 좋은 인공지능인 것 같네요.”
그녀의 목소리에선 왠지 모를 아쉬움이 묻어났다.
레오볼드는 옆을 슬쩍 바라본 뒤 기지의 인공지능에게 물었다.
“유기물이라면 정확히 어떤 걸 말하는 거지?”
「일반적으로 쓰레기라 불리는 유기물로도 먹음직스러운 식량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단, 생산품이 복잡한 원자구조를 가질 경우 시간과 에테르 에너지가 더 많이 소모됩니다.」
“여기에도 혹시 밀이 있나? 3천 톤을 생산한다고 하면 어느 정도의 시간과 에테르가 필요하지?”
인공지능은 즉시 대답을 내놓았다.
「현재 가동률로는 시간당 약 500톤을 생산 가능합니다. 필요한 에테르 에너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콘솔에 그래프가 표시되자 아르마가 귀띔했다.
“미완성 에테르 오리진으로도 충분히 감당 가능합니다.”
“다행이군, 최대로 가동했을 때의 생산량은 어느 정도지?”
「시간당 10만 톤 이상을 확보 가능합니다.」
“충격적인데.”
뭔가 단위 수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 계산으로 이 기지 몇 개만 있으면 80억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다.
본격적인 우주시대에 접어들면 식량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는 걸까?
레오볼드의 문명은 유전자조합을 바꿔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 내고 인공적으로 고기를 대량으로 생산할 정도에 이르렀지만 선지자의 문명은 그걸 초월해 버린 것 같았다.
문제가 있다면 현 기지를 침식하고 있는 플레이그였다.
인공지능이 일부 구역을 보여 주자 레오볼드의 얼굴이 굳어졌다.
“플레이그… 여기에도 있었군.”
“언뜻 비스트급으로 보이지만 크기가 다소 큽니다. 오메가 원의 힘이 강해짐에 따라 진화에 성공한 건지도 모르겠네요.”
“당장 족쳐야겠어.”
이 소중한 기지에 플레이그 따위가 돌아다니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엘브랑데의 화재를 진압하러 돌아다니던 세틀러호에서 어설트 아머가 사출되었다.
타이탄이 만들어지고 있었기에 레오볼드가 이걸 타는 건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동안 수고했다, 딩고. 오랫동안 고생했으니 해체하지 않고 적당한 곳에 전시를 해두마.”
콕핏을 두드리자마자 동기화가 시작되었다.
예전보다 강해져서인지 어설트 아머의 출력도 어마어마하게 늘어났다.
‘반응탄이 아니라 단독으로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은데?’
비스트급 두 마리가 어설트 아머의 접근을 눈치채고 기지 외부로 나와 포효했다.
하지만 레오볼드는 어설트 아머를 절묘하게 조종해 접근전을 펼쳤다.
레일건 포신에 에테르 블레이드가 만들어지더니 그대로 비스트급 두 마리를 동시에 갈랐다.
「비스트급 침묵. 하프늄 탄두를 쓸 필요도 없었군요.」
‘여기까지 와서 비스트 따위에 애를 먹으면 곤란하지. 코어 회수하고 기지 가동률을 좀 올려보자고.’
「알겠습니다, 마스터.」
레오볼드는 한동안 우주를 떠돌면서 인공지능이 말한 후계자란 개념에 대해 생각했다.
‘라사도 그렇게 말했었지. 자신을 가리켜 우리라고도 했었고.’
어쩌면 라사는 수많은 의식이 합쳐진 존재일지도 모른다.
한때는 번성했으나 어떤 일을 계기로 쇠퇴하게 된 집단의식이 우주로 뻗어나갈 가능성을 가진 종족을 찾아 도와주는 거라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아스테라의 문명은 일종의 실험장일 가능성이 높았다.
‘외부에서 진입이 힘든 걸로 봐선 생명의 요람 뭐 그런 거겠지.’
그렇게 따지면 라사가 그를 부른 것도 이해가 되었다.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아스테라의 문명에 개입해서 고쳐달라는 것이다.
‘결국 나는 틀리지 않았어.’
자신의 인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속에서 피로감과 허무함이 사라지고 뿌듯한 감정이 차올랐다.
그는 어설트 아머에 탑승한 채로 한동안 자유롭게 우주룰 유영했다.
* * *
이클립스 기지는 기존 우주 플랜트의 옆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재질 대부분이 리빙메탈로 이루어진 만큼 결합은 쉬웠고 통제컴퓨터나 에너지 공급 등도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아르마는 기지의 인공지능을 완전히 흡수하는 데 성공했다.
레오볼드의 허락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더 정교하고 빠른 연산이 가능하게 되었고 이는 에테르 오리진의 완성이 앞당겨졌음을 의미한다.
사실 에테르 오리진의 완성은 그런 것보다는 에테르 태양이 방출하는 에너지의 총량에 더 의지하지만.
아무튼 이클립스 기지는 현재 0.005%의 낮은 가동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는 기지가 오랫동안 방치되었음을 의미한다.
선지자가 직접 만든 것이라 그런지 기능에 큰 문제는 없었고 에테르가 공급되자 빠른 속도로 가동률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36시간 후면 가동률이 30%까지 치솟을 것 같습니다.”
“현재 상태로도 공급량은 충분하지?”
“네. 직할령 중 한 곳에 급히 매스 캡쳐를 설치하는 중입니다.”
이클립스 기지에서 생산된 식량은 우주 플랜트로 운송되어 매스 드라이버를 통해 지상으로 옮겨진다.
지상에 도착한 식량은 곧장 수레를 통해 각지로 공급될 예정이었다.
레오볼드는 예상도를 보고 헛움음을 터트렸다.
“22세기의 매스 드라이버와 기원전부터 사용하던 수레가 결합됐군. 이걸 바람직하다고 해야 하나.”
워낙 기술 발전이 빨라서 아스테라의 전체적인 문명이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각지로 공급될 때에는 기차를 이용하니 다행이라고 할까.
다르게 보면 22세기 인류연합에서도 형태는 다르지만 수레는 곧잘 사용했다.
인류가 정보를 기록하는데 있어 종이보다 나은 걸 발명하지 못한 것과 비슷한 예였다.
하여튼 이클립스 기지가 본격적으로 가동됨에 따라 식량 걱정이 완전히 사라졌다.
레오볼드는 아르마와 함께 최종적으로 식량이 생산되는 구역에 발을 디뎠다.
“원자를 재배열하면 어떤 식으로 보일까 생각했는데 3차원 프린터와 별 차이가 없구만. 그나저나 빵도 만들 수 있나?”
“만들 수는 있지만 밀가루를 생산하는 쪽이 압도적으로 빠릅니다. 그리고 우리 인건비가 낮기 때문에 그쪽을 활용하는 편이 좋죠.”
“하긴 사람들을 놀릴 수도 없으니까…….”
바그란은 기술 발달의 초입을 걷고 있기에 이런 식으로 불협화음이 일어날 가능성이 많았다.
21세기 지구 같았으면 시간이 중요하니 부작용을 감수하고서라도 밀어붙였겠지만 아스테라엔 적용할 수 없었다.
“15세기부터 19세기, 나아가서 우주진출 전 단계까지 빠르게 압축하는 식으로 가자고.”
그 경우 아버지는 농부였는데 아들은 우주비행사 훈련을 받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의식의 변화로 인해 세대 간의 갈등이 발생할 여지가 있었고 여러모로 문제가 많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아스테의 문명은 결국 우주로 향해야 한다는 게 레오볼드의 지론이었다.
“…우주를 바라보는 건 좋지만 일단 수백만 명을 먹이고 난 이후에 생각할 문제지.”
“시험적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봤어요.”
빵과 치즈뿐인 간단한 구성이었지만 품질은 레오볼드가 지구에서 먹던 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원자 재배열만으로 이런 걸 만드는 건 어떻게 보면 마법보다 더한 기적의 산물이었다.
“대량으로 공급하면 기존 농작지가 박살 나겠는데. 비슷한 수준까지 내려야겠어.”
“알겠습니다. 그리고 자치령이나 이미르 공화국에서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엘브랑데가 무너졌으니 마운틴포지에 더 있어도 될 텐데?”
“테라 플릿을 보여 주는 바람에…….”
확실히 세틀러호를 비롯한 순양함들은 드워프들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토록 바라던 우주로 진출할 방법도 생겼으니 열심히 매달릴 수밖에.
마운틴포지는 대단한 요새이긴 했으나 너무 좁고 환경도 열악했다.
“거긴 비우고 완전한 광산으로 만드는 게 낫겠어. 일단 드워프들은 순차적으로 받아들여. 그리고 자치령 쪽은 식량 공급이 우선이야.”
그쪽은 정착지 건설이 완성되지 않았다.
300만 명을 한꺼번에 받아들일 순 없으니 우선적으로 식량을 공급해서 영양 상태를 호전시키는 게 우선이었다.
레오볼드와 아르마는 그 외에도 의약품 공급 등 몇 가지를 논의했다.
그러는 중에도 이클립스 기지의 가동률은 높아지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식량 생산이 시작되어 리빙메탈로 만들어진 컨테이너에 차곡차곡 쌓였다.
통제컴퓨터가 매스 드라이버를 정확히 조준해 지상으로 쏘았다.
컨테이너는 불과 몇 분 만에 지상에 도착해 매스 캡쳐에 정확히 포획되었다.
그렇게 도착한 컨테이너는 수요량에 따라 골렘들이 분류해 밖에 내놓았다.
수레를 몰고 온 일꾼들은 밀자루가 끊임없이 나오는 것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부유대륙이 좋긴 하나 봐. 식량이 계속 나오네.”
“비행선은 통 안 보이던데 언제 오는 건지 모르겠네.”
“시끄럽고 빨리 나르기나 하자고! 이거만 다 하면 오늘 일은 끝이야!”
“양이 장난이 아니라서 철야를 해야 될 것 같은데요?”
그만큼의 돈을 챙겨주니 일꾼들로선 바라마지 않는 일이었다.
감독관의 지시 끝에 기차로 옮겨진 식량은 바그란 전역에 공급되었다.
부족한 식량분을 계산해 보고 머리를 쥐어뜯고 있던 관료들의 표정이 활짝 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