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81
푸틴은 몸 관리를 잘해왔지만 이젠 고령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였다.
너무 늦기 전에 옛 위성국들을 병합시켜서 소비에트 연방을 재건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유지하의 전폭적인 협력이다.
경제적인 협력을 넘어서 파트너가 되기로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실무진 협의에서 저 마이크로 이온 추진기는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안트론은 어렵다고 해도 순항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신형 드론은 꼭 필요했다.
푸틴 대통령은 한참 동안 라선시에서 벌어지는 시가전을 지켜봤다.
투입된 드론은 얼마 되지도 않는데 죽어나가는 것은 북한군 게릴라뿐이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이군.”
“저 드론들은 지금까지 투입된 전장에서 압도적인 교전비를 달성했습니다. 미군이라 할지라도 우세를 점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저거 수백 대만 투입해도 어지간한 도시는 점령이 가능하겠어.”
최초 평양 시가전에서 2만 대를 투입한 후 드론은 계속 개량되었고 함흥에선 수천 대 수준으로 줄었다.
이제 라선시에는 겨우 500대의 드론이 투입되었다.
도시의 규모에서 차이가 나지만 패주해 몰려든 게릴라의 숫자는 비슷하다.
결국 500대로 2만 대를 대체할 자신이 있는 것이고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었다.
푸틴 대통령은 자문하듯 물었다.
“그가 진정으로 바라는 게 뭐일 것 같소?”
“땅 아니겠습니까? 캄차카 반도에도 흥미를 보였고 정보망에 의하면 만주를 가지고 미국과 갈등을 빚었다고 합니다.”
“땅만 욕심낼 사람 같지는 않단 말이오. 분명히 다른 목적이 있을 거요.”
북한에서 손을 떼라고 하더니 기어코 멸망시키는데 성공했다.
이제 그의 목적이 무엇인지 대강 짐작이 갔다.
동아시아에 확고한 자신의 세력을 세우고 싶은 것이다.
가능성은 희미하지만 만약 그게 맞다면 러시아로선 환영이었다.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유럽과 맞닿은 서부를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개발이 어려운 동부의 험악한 땅보다는 모스크바와 상트 페데르부르크를 위시한 서부의 위성국들이 훨씬 더 중요했다.
그 위성국들을 병합해 소비에트 연방을 재건하는 것은 푸틴뿐만이 아닌 모든 러시아 인민의 숙원이었다.
그는 결단을 내렸다.
“최대한 정보망을 가동해서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뭔지 알아내시오. 우리가 줄 수 있는 것과 그에게 요구할 것을 정리하시오.”
“회담 전에 반드시 정리해서 보고서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가지 전투를 지켜봤다.
아무래도 8월 중으로 한반도 통일 선언이 나올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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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발표한 새로운 물질 안트론은 각국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다.
특히 중국과 일본은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안트론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 애썼다.
아무래도 이웃국가인데다가 많은 원전을 운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사일 한 방이면 그 원전을 정지시킬 수 있다는데 관심이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한국 내의 온갖 인맥과 정보망이 동원되었지만 제대로 된 정보가 나오지 않았다.
500미터 안에서 기폭되면 모든 핵반응이 정지된다는 것뿐이었다.
중국은 극한의 공포에 빠져들었다.
만약 저 안트론을 양산 가능하다면, 유사 시 동부 해안에 위치한 수십 기의 원전이 콘크리트 덩어리로 전락할 수도 있었다.
핵미사일은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이 망설임 없이 개전을 선택한 걸로 봐서 예전에 전력화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지금쯤은 충분한 숫자가 양산되었을 것이다.
일부에선 한국전쟁 자체가 한국의 사기극이라는 주장이 나왔으나 가능성은 낮았다.
북한이 대규모 방사포로 선공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제 UN 등 국제무대에서 북한은 더 이상 나라로 취급되지 않고 있었다.
한국의 통일이 확실시되었으니 다시 갈등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는 진단이 나왔다.
왕쉬안 상장은 그런 점에서 계속 한국과 외교적으로 접촉하려 애썼다.
그는 군인이었고 과거 중화민국의 영광을 되살리는 것보다는 실리적인 면을 추구했다.
양안전쟁이 완전히 실패하고 대도시의 폭동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현재.
중국에 필요한 것은 외부와의 갈등이 아니라 내부를 봉합하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중국의 국명을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유지하가 평생 상대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중국, 즉 중화인민공화국이다. 국명을 바꾼다면 이야기를 들어줄 수도 있다.’
그는 자신의 군벌에 의향을 내비쳤으나 상당한 반발에 부딪쳤다.
“국명을 바꾼다니요? 중화민국이 아닌 이름을 누가 인정하겠습니까.”
“소국에 먼저 머리를 숙이면 우리의 체면이 크게 깎일 겁니다.”
“대만성이 우리를 비웃고 있는데 한국이 가세한다면 누가 우리를 따르겠습니까?”
“차라리 군을 추슬러서 한국을 공격하는 게 어떻습니까? 만약 그 자만 확보할 수 있다면, 향후 100년은 안심할 수 있습니다.”
하나같이 얼빠진 소리뿐이었다.
“한국을 공격하자니 제정신인가? 서해안에 깔린 레일건 포대만 10개소가 넘어!”
“육로를 통해 80군처럼 남하한다면 가능성이 있습니다.”
“만약 실패하면 우리가 아니라 중국이 끝장이야!”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전비는 이미 써버렸고 공장은 멈췄습니다. 돈 나올 구석이 없습니다.”
“그러니 한국에 손을 내밀어서 돈을 벌어야지!”
“···”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이제 중국이 사는 길은 한국에 매달리는 것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양 상장의 말대로 국명을 바꾼다면 조금이나마 가능성이 있었다.
김정은이 은닉한 재산을 청산해서 선물로 들고 간다면 유지하도 박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이 경우 중앙의 통제력이 매우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신장 위구르와 티벳, 동북 3성.
안 그래도 병력이 부족해 연쇄 폭동이 일어나는 형국이다.
동북 3성의 경우 한국의 영향력이 강해지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지역이었다.
하지만 양 상장의 군벌은 이런 것까지 감수하기로 했다.
중요한 것은 해안가의 대도시를 위시한 중앙이기 때문이다.
‘욕심을 부려 모래를 다 주워 담으려다간 오히려 흘러넘치는 법.’
물을 끼얹어 단단히 다질 필요성이 있었고 그게 유지하의 협조였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종합해 특사를 한국에 파견했다.
절대 거만하게 굴지 말라고 엄명을 내린 상태라 특사단은 공항에서 쭈뼛거려야 했다.
유지하는 그 보고를 받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만날 일 없습니다. 국명부터 바꾼다면 모를까.”
그의 한 마디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중국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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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안트론의 발표 이후 일본은 큰 의심을 갖게 되었다.
―저 안트론은 우리의 핵실험이 실패한 것과 관련이 있는가?
발표를 보자면 탄두 형태로 만들어 미사일에 탑재한다고 되어 있으므로 관계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
당시 핵실험 근처 해역은 완전히 통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스텔스 미사일이 아닌 이상 레이더에 잡히지 않을 리 없다.
하지만 일부 언론에서 소형화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한국은 하나를 해명해야 한다. 안트론 탄두의 소형화는 어디까지 가능한가?
―마침 핵실험 당일에 레일건 순양함의 테스트가 있었다. 우연치고는 너무도 공교롭지 않은가?
한국의 반응은 없었고 일본은 의구심만 가진 채 애를 태웠다.
심증은 있으나 뚜렷한 물증이 없는 상황.
우익 세력에선 오자와 정권에 핵실험 당일의 데이터를 공개하라는 압력을 넣었다.
레일건을 발사했다면 특유의 파공음이 기록되어 있었을 거라는 주장이었다.
오자와 총리는 이 주장이 실린 주간지를 읽다가 간이 철렁하는 것을 느꼈다.
‘그때 들린 굉음이 설마···?’
분명히 기폭 전에 뭔가가 터지긴 했다.
하지만 가능성이었고 유지하에게 따질 수도 없었다.
현재 국내에 이온빔 핵융합로의 건설을 위한 기자재가 들어오는 중이었다.
양국 간에 마찰이 발생한다면 건설이 전면 취소될 가능성이 있었다.
‘이 건은 숨겨야 한다.’
설사 한국의 짓이 맞다 하더라도 오자와 총리로선 대놓고 항의할 처지가 못 되었다.
이미 상황은 벌어졌고, 적당히 한국에 붙는 것이 이득이기 때문이다.
최초의 안드로이드 루시아가 출시된 지금은 더 그렇다.
이 안드로이드는 합성피부로 덧씌워져 사람과 거의 흡사한 외모를 자랑했다.
가격은 약 5천만 엔이지만 개별로 구입하는 것은 어렵고 최소가 100단위였다.
보스턴 다이내믹스 측에서는 유지보수를 위해 어쩔 수 없다고 발표했다.
일본도 정부 차원에서 이 안드로이드를 구입했다.
아직 용도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민간에서는 벌써부터 엄청난 인기를 모으고 있었다.
사람과 같은 안드로이드.
철완 아톰 이후로 일본의 오랜 꿈이자 숙원이었다.
그것이 비로소 실현됐으니 행사다 뭐다 난리를 치는 것도 이해가 간다.
‘한국에 대한 반감이 있음에도 저런다는 것은···’
일본의 여론이 반으로 나뉘었음을 의미한다.
전통적인 우익관을 가진 혐한파와 그런 거 상관없고 잘 좀 지내보자는 친한파.
주류는 혐한이었으나 최근 경제계나 문화 쪽을 보면 친한도 만만치 않았다.
이번 루시아가 일본 내에 얼마나 파장을 일으키느냐에 따라 세력 판도가 바뀔 가능성도 있었다.
오자와 총리는 후자가 최대한 여론을 이끌기를 바랐다.
‘여기까지 와서 한국에 무작정 적대하라는 건 너무 피곤한 일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적당히 인정하고 타협하는 게 최선이었다.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는 저 멍청이들은 그걸 모르는 것 같지만.
―일본의 핵무장을 방해한 조선과 단교하라! 재일을 추방하라!
전공투 이후로 시위에 대해 거부감을 갖게 된 우익들이 수천 명이나 모일 수 있었던 것은 유지하에 대한 적개심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해고된 전직 자위대 간부들도 그런 주장에 동조했다.
혐한과 우익의 결합으로 일본이 불타고 있는 것이다.
한편 그런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안드로이드 루시아가 일본에 상륙했다.
일본 정부의 의뢰를 맡은 행사 대행업체에선 이 안드로이드를 최대한 사람처럼 꾸며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하지 않은 대대적인 쇼케이스를 열었다.
「한국에서 온 안드로이드 소녀대, 마침내 일본에 상륙!」
이 낯 뜨거운 제목에 한국인들은 황당해 했지만 일부 일본인들은 열광했다.
그들은 안드로이드가 출시되기를 정말 기다렸던 것이다.
가격이 너무 높고 개인은 구입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런 것들은 차츰 해결될 것이라 보았다.
―안드로이드 루시아 최고다!
―일본은 틀렸어···그러니까 한국이 먼저 가도록 해.
―젠장, 한국이 이 정도로 나오면 인정할 수밖에 없잖아?
오타쿠들의 열망이 도쿄 돔에 모였다.
평소 도쿄 돔은 공연 무대로서 상당히 독특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거의 5만 명에 달하는 유료관객을 모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무수한 아티스트 중에서도 소수에게만 허용된 명예였다.
그런데 안드로이드 루시아의 쇼케이스는 그걸 넘어서서 모든 기록을 갈아치웠다.
기자재를 다 치우고 좌석을 추가로 시공해 기어코 12만 명을 채웠고 암표는 100만 엔에 육박했다.
가히 열광적인 인기라고 할 수 있겠다.
이윽고 조명이 깔리고 레이저쇼가 시작되자 12만 명이 루시아를 외쳐댔다.
마침내 등장한 루시아는 겉으로 보기엔 인간과 차이점이 없었다.
다들 외형은 같았지만 메이크업과 의상으로 다양화를 꾀하니 다른 개체로 느껴졌다.
그들은 관객을 향해 손을 흔들며 가끔은 돌아다니며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이 쇼케이스는 일본 전역에 방송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심지어 혐한 시위마저 잠시 중단될 정도였다.
한국은 쟤네들이 왜 저러지? 하는 분위기였고 아르마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래도 미친 것 같아요.”
“안드로이드에 대한 일본의 열정이라고 해두지. 우리는 우리 일을 하자고.”
“네. 숙군 작업을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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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어느 날, 함경북도의 라선특별시에서 총성이 멎었다.
대부분의 게릴라가 소탕 당했고 살아남은 자들은 포로가 되어 곧장 테라 섬으로 이송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공포에 떨고 있는 북한 주민들과 소수의 한국군뿐이었다.
평양, 함흥, 청진에 이어 북한의 대도시라고 할 수 있는 곳이 모두 함락된 것이다.
다만 전쟁이 끝났다고는 할 수 없었다.
북한은 워낙 산지가 많고 지금도 도처에서 게릴라들이 준동하고 있기 때문.
합참에선 신속히 이들을 소탕할 계획안을 수립했고 정부 요인들은 백두산에 들러 한반도가 통일되었음을 선언했다.
“1951년 7월 27일 휴전협정 이후로 한국과 북한은 분단의 길을 걸었습니다. 2028년 8월 15일, 양국이 다시 합쳐졌음을 만방에 선언합니다.”
휴전 당사국이라곤 아무도 없는 한국만의 선언이었다.
하지만 전 세계가 한국 주도의 통일을 인정했으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미국과 러시아, 일본 등은 통일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1차 한국전쟁은 3년 하고도 1개월 동안 이어졌다. 2차 한국전쟁은 3개월 만에 끝났다. 한국군의 용맹과 유지하 대통령의 결단력에 경의를 표한다.
―러시아는 통일 한국의 재건에 최선을 다해 협력할 것이다. 곧 열릴 유지하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필요한 것들을 모두 제공하겠다.
유지하의 현재 직위는 대통령 권한대행이지만 이쯤 되면 세계에서 인정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국내의 반응도 열광적이었다.
수십 년의 분단을 극복하고 마침내 한반도를 통일한 지도자가 나타난 것이다.
그런 초인 앞에서 계엄령이 언제 풀리냐 하는 것은 사소한 문제에 불과했다.
한국군의 주력 7군단이 복귀해 서울 시내에서 개선식을 벌였고 국민들은 아낌없는 환호를 보냈다.
바야흐로 한국 전체가 열광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지하는 아르마와 함께 조용히 숙군 작업을 진행했다.
원래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는 법.
전쟁이 빨리 끝나긴 했지만 비리와 범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작게는 물자 횡령부터 민간인 약탈과 포로 학대까지 다양한 범죄가 있었고 이 모든 것을 아르마가 기록해 놓았다.
군사법원이 작동하면 이야기가 안 되므로 인공지능 판사를 적용하도록 시스템도 짜 놓았다.
3일간의 축제가 끝나고 8월 20일 평소와 같은 아침이 찾아왔다.
군복을 입은 안드로이드 수십 대가 합참과 계룡대, 각 군 본부에 들이닥쳤다.
내가 법이다
지난 3개월 동안 한반도에 퍼부어진 물자의 양은 장난이 아니었다.
각종 유류부터 전투식량, 탄약, 피복류와 의약품 등 그야말로 산더미 같은 물자가 항구와 공항을 통해 들어왔다.
전쟁 자체가 갑작스럽게 시작되었기에 한국군에겐 이 많은 물자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불출할 시스템이 없었다.
그리하여 많은 물자가 주먹구구식으로 분배되었다.
항공기 하나 없는 육군부대에 항공유가 가는가하면 전투식량이 필요한 곳에는 의약품만 잔뜩 배정되었다.
그래도 이런 실수는 애교에 속했다.
상당히 많은 간부들이 이런 물자를 주인 없는 것이라 여겼다.
그렇잖은가?
다들 북진에 바빴기에 기동이 최고의 미덕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물자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여유도 필요도 없었다.
상부에선 최대한 빨리 움직이라는 지시를 내렸고 때에 따라선 물자를 버리기도 했다.
“이번 유류분 실셈해야 된다고요? 주임원사, 지금 북진해야 하는데 그럴 정신이 어딨습니까? 거 으슥한 곳에 묻어두고 사령부에 보고하세요.”
보고가 되었다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다.
이런 물자는 전쟁이 끝난 뒤에야 누군가에 의해 파내어졌다.
새로운 주인은 해당 간부와 계약을 맺은 업자들이었다.
이들은 군수품임에 분명한 물자를 파내 사회에 내다 팔았다.
명백히 불법이었지만 사회 전체가 북진과 통일에 불타오르고 있었기에 지적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규모가 너무 커서 언론이 이를 폭로해도 조형근 대통령부터 전쟁인데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통수권자가 이 지경이니 군인들에게 열의가 생길 리 만무하다.
작전은 비교적 훌륭히 해냈지만 군수품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경우가 너무 많아서 아르마조차 일일이 추적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녀의 주인인 유지하는 일개 의원일 뿐 여기에 개입할 어떠한 권한도 없어서 생긴 참사였다.
그럼에도 아르마는 군수품 유출에 직접 관여한 간부들의 명단과 증거만큼은 확실히 기록하는데 성공했다.
지금 각 군 사령부에 들이닥친 안드로이드들이 요구한 것도 그들의 신병이었다.
“국가감찰관입니다. 전시 군수품 관리법에 의거, 아래 명단의 간부들을 체포합니다. 지금 즉시 호출해 주십시오.”
11사단 지휘통제실에서 근무하고 있던 참모장 이덕훈 대령은 갑자기 들이닥친 안드로이드들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것들은 뭐야? 위병소는 대체 뭐하는데 이런 것들을 통과시켰어?”
인간도 아닌 기계가 군복을 입고 간부들을 요구하니 황당한 노릇이었다.
“루시아입니다. 이번에 출시한 안드로이드인데···”
한 간부가 말했고 이덕훈 대령은 인상을 팍 썼다.
“아는데 그래서 그 기계가 무슨 권리로 간부들의 신병을 요구하는 거야? 니들 누구 명령 받고 왔어?”
“대통령님의 지시입니다.”
“대통령?”
현 시점에서 대통령이라 불릴만한 사람은 한 명뿐이다.
바로 그의 얼굴이 벽면에 투사되었다.
“11사단 참모장 이덕훈 대령.”
“예, 옛! 대령 이덕훈!”
나이 지긋한 대령이 젊은 대통령 앞에서 차렷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지휘통제실의 그 누구도 우습다 여기지 못했다.
육본은 물론이고 합참의 기라성 같은 장성들도 유지하에게는 쩔쩔맸다.
군 통수권자라서 어쩔 수 없이 따르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