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86
“나를 뭘로 생각한 겁니까? 나는 독재자입니다.”
그렇지, 독재자였지.
지금까지 그의 행보는 다른 국가의 유명한 독재자와는 약간 거리를 두고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국군을 박살낸 것만 빼면 권한이 강한 대통령이라고 봐도 무리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을 기점으로 크게 달라졌다.
유지하는 대한민국의 모든 데이터를 감시하겠다고 선언했고 그 여파는 즉각 정부서울청사를 휩쓸었다.
“내가 분명히 경고했을 겁니다. 지난 해 예산내역 전부 해명해서 가져오라고.”
“대통령님, 이건···”
“말을 끊지 말고 똑바로 하십시오. 그래서 예산내역 어딨습니까? 왜 해명된 게 하나도 없어요?”
여가부 장관 진영순은 유지하 앞에서 쩔쩔맸다.
그가 정권을 쥐었을 때만 하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1조 원이 넘는 예산 전체를 들여다본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여성의 지지도가 특히 높은 만큼 설마 여가부를 건드리겠냐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 유지하의 얼굴은 진영순 장관이 기겁할 정도로 무서웠다.
“법인카드 사용 내역 어디갔습니까. 송년파티에 1억을 써놓고 왜 영수증 하나 없어요? 이거 당신들이 횡령한 거 아니야?”
“아닙니다, 횡령이라뇨, 절대 아닙니다···”
“미혼모 지원 물품 구입에 썼다는 이 30억은 루시아가 확인해 봤는데 미혼모 단체가 되팔아서 현금으로 인출했더군요. 여기에 대해서 해명할 말 있습니까?”
“오해십니다, 대통령님. 억울합니다.”
“뭐가 그리 오해고 억울합니까? 인출했잖아요. 이걸 분명히 확인했을 텐데 왜 가만히 있었습니까.”
자료를 내밀어도 진영순 장관은 억울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더 추궁하면 본격적으로 여성에 대한 박해라고 반박할 레퍼토리도 준비되어 있었다.
지금까지의 대통령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무 일 없이 넘어갈 것이다···
하지만 유지하는 독재자였다.
그는 차관과 국장급의 관료들을 불러 모았다.
“오늘부로 여가부는 해체입니다.”
“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여가부 예산은 복지부에 통합될 거고, 직원들도 그쪽으로 붙을 겁니다. 그리고 당신들은 전원 감옥행이야. 해명하고 돈 토해낼 때까지 못 나와.”
“대통령님!”
“치워.”
그의 명령에 여태껏 물고기처럼 평온하게 돌아다니던 드론들이 돌변했다.
붉은 LED를 번득이며 안으로 들어오더니 장관 휘하 공무원들을 잡아 그대로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아아아악!”
이렇듯 상관들이 끌려 나가자 직원들은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영문을 모를 표정이 되었다.
“뭐야, 저대로 감옥 가는 거야?”
“그 섬에 가는 거 같아요···테라 섬에···”
“아니 대한민국에서 이런 게 통용이 돼?”
아직 현실 인식이 잘 안 되는 것 같다.
유지하는 드론에 지시를 내려 직원들을 한 곳에 모았다.
“복지부는 세종청사에 있습니다. 당장 짐 싸서 내려가세요.”
“세, 세종시에요?”
“저희 서울에 기반이 다 있는데 갑자기 내려가라고 하시면 어떻게 해요···”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유지하는 울상이 된 직원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방금 내가 말한 게 개소리로 들립니까?”
“아, 아니요···”
“못 내려가는 사람은 미리 말하세요.”
눈치를 보던 몇 명이 손을 들었고 드론이 그들의 얼굴을 기록했다.
“당신들은 안 내려가도 좋습니다. 전원 해고니까. 공무원증 반납하고 집에 가세요. 그리고 경고하는데, 내일까지 세종청사에 등록 안하는 사람은 전부 해고입니다.”
공무원을 마음대로 해고하겠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듣다 못한 누군가가 일어서서 용감하게 발언했다.
“공무원의 처우는 헌법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러실 수는 없는 겁니다!”
유지하는 그에게 말했다.
“아직도 착각하는 것 같은데 이 자리에서 확실히 말해두지요. 한국에선 내가 법입니다.”
그걸로 끝이었다.
여가부는 해체되었고 마찬가지로 예산을 방만하게 쓰던 통일부도 박살났다.
다른 부라고 해서 멀쩡한 게 아니라 단지 얼마나 박살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외교부도 거의 해체에 준하는 수준까지 몰렸다.
작년에 문제가 된 직무유기와 외교관 특채 건 등을 해명하라고 했는데 끝까지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것이다.
유지하는 관련자를 모조리 해고하고 테라 섬으로 끌고 가는 강수를 두었다.
“해명할 때까지 못 나오니까 거기에서 변호사 고용해서 자료 모으는 게 나을 겁니다. 인터넷은 되니까.”
그 외에 예산을 방만하게 운용하던 공공기관장들이 대거 테라 섬으로 끌려갔고 공무원 사회 전체가 공포에 떨었다.
―뭐야?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공무원을 마음대로 해고하고 잡아가다니 선을 넘었다.
―해고하는 거야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 쳐도 섬으로 끌고 가는 건 납치잖아.
―완전히 미쳤네. 이거 국제사회에 알려야 된다.
가족들도 가만히 있진 않아서 열심히 외신에 이를 전파하고 유지하를 고소했다.
다만 유지하에 대해 극구 언급을 꺼리는 사법부가 이번 사태에 개입할 확률은 상당히 낮았다.
사법부까지 장악당할 현실적인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군형법은 인공지능 판사가 다루기 시작했으며 재심까지 받고 있었다.
군 내부의 온갖 부조리와 성추행 등에 제대로 된 철퇴를 내리면서 국민들의 지지도는 상당히 높은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함부로 유지하에 대한 고소 건을 다뤘다간 사법부 전체가 흔들릴 우려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사법부가 몸을 사리는 사이 이번 사태를 접한 국민들은 다소 엇갈리는 반응을 보였다.
상당수는 비판적이었지만 그에 못지않은 숫자가 이렇게라도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번에 잡혀간 놈들 보면 전부 쓰레기야. 횡령하고 외국 교민들에게 폭언하고 성추행하고···그런 놈들 족치는 게 뭐가 그렇게 나쁜 건데?
―법이 정하는 절차에 따라서 징계를 해야 된다고? 그래서 대한민국 꼬라지가 개판인 거야. 법이 그 새끼들을 보호하고 있잖아.
―예산 내역 제출하라고 하는데 왜 그래야 하느냐고 뻔뻔하게 되묻는 공무원들 싸그리 모가지 쳐버려야 돼.
―지금 한국이라는 환자에 필요한 건 약이 아니라 절단이야. 저 썩은 새끼들을 잘라야 하는데 어느 세월에 기다리고 있어?
이 모든 것이 자료로서 공개되었기에 누구나 알아볼 수 있었다.
행정부에서 얼마나 예산을 횡령해 왔는지 알게 된 인터넷 등지에선 당장 사형하라고 난리를 쳐댔다.
비교적 온건한 사람들도 유지하의 행동이 과하지만 누가 했어도 해야 될 일이었다는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이 남았다.
―유지하가 타락하면 어떻게 하지?
당연하지만 이 의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는 루시아가 있으니 괜찮다고 했지만 애초에 유지하의 창조물이라는 걸 간과한 생각이었다.
결국 독재자가 타락하면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은 없었다.
이러는 동안에도 아르마는 나무가 되어 대한민국이라는 토양에 뿌리를 내렸다.
둘은 하나가 되어 도저히 분리할 수가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한국에서 아르마의 감시를 벗어날 수 있는 인터넷망은 존재하지 않았다.
빅 브라더가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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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국민들은 주변에 뿌려진 드론들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하도 봐서 익숙해진 것이다.
행정부나 공공기관이 박살났다는 것도 티비 속의 이야기일 뿐이었고 녀석들은 얌전히 거리를 돌아다녔다.
외형도 나름 동글동글하게 생겨서 아쿠아리움을 누비는 물고기처럼 친숙했다.
다만 이 드론들은 지금까지 하이텍에서 선보인 종류와는 많이 달랐다.
북한의 시가전에 투입된 드론에 비해서도 크게 개량되었는데, 특히 출력이 엄청나게 향상되었다.
드론 네 대가 모이면 어지간한 차량을 들어 올려 날아갈 수 있을 정도였고 로봇 팔 을 뻗어 사람을 실어 나를 수도 있었다.
모두 이온 추진기의 힘이었다.
덕분에 드론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지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유지하의 목적은 돈이 아니며 소행성대에서 채굴한 자원으로 드론 따위는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섬뜩한 일이다.
군사용 드론이 아무런 제지 없이 시민들과 함께 돌아다닌다니 말이다.
심지어 이 드론들은 수가 엄청나게 많았다.
서울과 경기도 전역에 거의 40만 대 가까이 뿌려졌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였다.
신라하이텍에선 언제나 그렇듯이 침묵을 지켰고 사람들은 또 테라 섬이야? 하고 중얼거렸다.
언제부턴가 이상한 일이 발생하면 일단 유지하 대통령과 테라 섬을 의심하면 95% 정도는 맞았다.
그곳의 시설은 유지하의 소유였고 전혀 공개되어 있지 않았다.
군사용 드론을 수십만 대나 찍어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곳이다.
하여튼 한국인들은 드론과 지내는 데에 익숙했고 외국 언론들은 이를 이해할 수 없다며 비판했다.
그들 눈에는 전부 무장한 군인으로 보였던 것이다.
대인용 화기와 유탄으로 무장했으므로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한국에 머무르던 프랑스의 언론사 유로뉴스의 특파원은 이런 기사를 내기도 했다.
―서울에 뿌려진 드론만 20만 대 가까이 된다. 이 드론들은 어디든 존재하며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다···나는 한국인들의 무사태평함에 더 이상 놀라지 않겠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계획한 독재자에 대해서도.
비교적 호의적인 미국이나 다른 국가의 언론사들도 빅 브라더가 연상된다며 부정적인 기사를 실었다.
드론이 등장한 초기에 위험성을 경고했던 지식인들은 유지하 대통령의 행태를 크게 비판했다.
―봐라. 우리의 경고를 무시하니 이런 일이 발생했다. 이제 드론이 경찰의 역할을 대신하려 할 것이다.
―당신을 잡아가는 건 사람의 판단이 아니라 인공지능이다. 믿을 수 있겠는가?
―국군의 경우 인공지능 판사가 1초 만에 판결을 내린다. 법원도 곧 그렇게 될 것이다.
―이게 중국의 그 지독한 감시체제와 뭐가 다른가?
그러거나 말거나 한국인들은 인공지능과 드론에 너무 친숙해져 있었다.
―치안이 좋아져서 그리 나쁘진 않은데.
―난폭 운전하는 놈들이 엄청나게 줄었음. 배달 오토바이들도 얌전해지고.
―사각지대 없는 CCTV 같은 느낌임.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뭐 겁낼 일 없지.
―나는 차라리 루시아가 판사 했으면 좋겠는데. 최소한 고무줄 형량은 없을 거잖아.
아직까지는 큰 반발이 없었다.
그러나 유지하가 CP, 그러니까 시민점수제를 도입하면서 상당한 논란이 일었다.
“지금부터 모든 한국인에게 CP가 도입됩니다. 이 CP는 100점으로 시작해 올라가거나 내려갈 수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행동에 점수가 매겨지는 거죠. 그 역할은 드론이 맡습니다.”
회견장에 모인 기자들은 말문을 잃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기자가 질의했다.
“어 그러니까···사람에게 매겨지는 점수라는 거죠?”
“맞습니다.”
“그걸 드론이 판단한다?”
“정확히는 드론이 연결되어 있는 인공지능이 판단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죠.”
“···”
너무 충격적인 발상이라 회견장이 조용해졌다.
유지하는 그들 앞에서 자세한 내용을 발표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평가를 받습니다. 성적에 따라 대학에 가며 직장이 정해지고 외모와 키에 따라 연애가 결정됩니다. 가끔은 그게 돈일 수도 있지요.”
“국가에도 신용등급이 있고, 여러분에게도 신용등급이 있습니다. 나는 여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서 CP를 도입하고자 합니다. 성실하게 일하고 경찰서 한 번 들어가지 않은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혜택을 줄 겁니다. 잠깐 거리를 볼까요.”
기자회견장의 벽면에 드론이 촬영한 서울의 거리가 나타났다.
“공사현장이 보이는군요. 다들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플러스 1점입니다.”
“아, 사회복지사에게 삿대질을 하며 욕을 하는군요. 마이너스 1점입니다.”
“이 차량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아무래도 보복운전을 하는 것 같은데 거침이 없군요. 마이너스 2점입니다.”
유지하는 그런 식으로 거리에 보이는 사람들에게 점수를 매겼다.
듣고 있던 기자들은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이러려고 드론을 그렇게 뿌린 거였구나.
이렇게 하기 위해서 인공지능을 만들어 인터넷망을 장악하게 한 거였구나.
유지하는 연단에 팔을 얹고 상체를 기울였다.
예리한 눈이 기자들을 훑자 다들 고개를 움츠렸다.
“모든 것은 공공의 이익에 따라 인공지능이 판단합니다. 범죄를 저지르고 사회에 민폐를 끼치면 CP가 사정없이 깎입니다. 반면 문제없이 성실하게 일하고 생활하면 CP가 오릅니다. 간단하죠.”
하지만 그 파장은 전혀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이건 사상 통제보다, 전 국민 감시보다 더 심한 조치였다.
“과속 좀 한다고 CP가 깎이지는 않습니다. 평소 드론이 지켜보다가 어느 선을 넘었다 싶으면 그때부터 카운트합니다. 그러니까 평소 행동이 중요하겠죠.”
“그 CP가 많으면 무엇이 좋아지는가. 앞으로 메가시티에 입주할 때 많은 혜택을 받을 겁니다. 이 메가시티는 한국의 영토 곳곳에 지어지는 거대한 도시로서···”
유지하의 신호에 따라 건물이 솟아오르고 시설물이 설치되었다.
마침내 화면 전체에 거대한 도시의 모습이 나타났다.
모두가 입을 딱 벌릴만한 엄청난 규모였다.
“와···대단한데.”
“차가 안 보이는 걸 봐선 몽땅 지하에 집어넣었나?”
“완전 계획도시잖아?”
이건 인류연합의 메가시티를 축소한 버전이다.
아무래도 인구수 1억을 한 도시에 몰아넣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각지에 축소된 메가시티를 건설하는 대신 모든 물류가 유기적으로 연결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진짜 충격적인 것은 따로 있었다.
“CP가 내려가면 단기적으로는 월급이 깎입니다. 요즘 세상에 현금으로 월급을 받는 사람은 없죠? 루시아가 거래를 파악하여 월급을 깎아버립니다. 회수분은 국가의 세금으로 쓰일 겁니다.”
참다못한 누군가가 물었다.
“그러니까···계속 신호를 위반하면 월급이 깎여서 들어오는 겁니까?”
“즉각적인 벌금이라고 생각해도 될 겁니다. 이 벌금은 재산에 비례합니다. 재벌이 계속 신호를 위반한다면 벌금도 왕창 냅니다. 내가 3년 전과 같은 행동을 보인다면 수천억쯤 헌납하겠죠.”
나름 농담처럼 느껴졌지만 기자들은 아무도 웃지 못했다.
사람을 포인트로 평가하여 실질적인 피드백을 주겠다는 발상은 독재자가 아니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당장은 좋을지도 모른다.
공공에 피해를 끼치는 온갖 행위가 싹 근절될 테니까.
하지만 그것을 사회적 합의체인 법이 아니라 일개 인공지능이 판단한다는 것은 해도 너무한 처사였다.
더군다나 그 인공지능은 개인의 소유물이었다.
사실상 유지하가 모든 것을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이건 빅 브라더야.”
누군가 중얼거렸고 유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21세기 빅 브라더죠. 세간에선 내 통치를 두고 별로 독재가 아니라는 평도 있었던 모양인데, 이제부터는 조금 달라질 겁니다.”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기존에 범죄로 지정된 행위들은 CP를 대량으로 깎습니다. CP가 일정 이하로 내려가면 범죄자로 취급해 모조리 테라 섬에 쳐 넣을 예정입니다. 사법부의 판단과는 완전히 별개의 조치입니다.”
“100만 대의 드론이 거리를 지켜볼 겁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지랄도 조금만 할 수 있습니다.”
실질적인 공포정치가 시작됐다.
남은 시간은 41년
한국인들은 지문날인과 주민등록 등 국가의 통제에 꽤 익숙한 편이다.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군대를 겪어 어지간하면 위계질서를 따르는 성향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도 CP(Citizen Point)라는 개념을 듣고는 기겁했다.
인공지능이 실시간으로 사람을 평가해 월급을 깎고 처벌까지 한다니 말이 되는가 말이다.
유지하에 대해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던 사람도 이건 좀···하면서 물러서는 분위기였다.
사회 전체를 통제하겠다는 발상은 그만큼 위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점수제는 어김없이 도입되었다.
아니, 어느 사이엔가 적용되고 있었다고 보는 편이 맞다.
전국에 뿌려진 100만 대의 드론이 예전과는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으니까.
이 드론들은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며 순찰하는가 하면 도로를 감시해 난폭운전을 적발하기도 했다.
어떤 사람이나 차량이 경범죄, 그러니까 과태료를 무는 정도의 죄를 범하면 어김없이 날아와 모니터에 경고창을 띄웠다.
바로 이렇게 말이다.
「경고 : 시민번호 MC-S-372218의 CP를 차감합니다. 사유 : 난폭운전. 현재 CP : 99」
“···뭐야 이건?”
신재훈은 슈퍼카 안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새벽에 신호 좀 위반하고 과속 좀 했다고 이상한 드론이 날아온 것이다.
조수석의 애인이 요즘 말 많은 드론이라며 말렸지만 그는 오기를 부렸다.
“뭐 씨발 병신 같은 짓거리를 하고 있어. 좆도 아니니까 신경 끄자.”
올림픽대로를 시원하게 달리면 기분이 좀 나아질 것 같았다.
그는 애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페달을 힘껏 밟았다.
12기통 슈퍼카가 우렁찬 소리를 내며 새벽녘 올림픽대로를 질주했다.
하지만 제한속도를 두 배나 넘어선 광란의 질주는 얼마 가지 못해 멈추고 말았다.
드론이 다시 날아와 요란한 소리를 울려댔기 때문.
「경고 : 시민번호 MC-S-372218의 CP를 차감합니다. 사유 : 난폭운전. 현재 CP : 97」
“씨발 시민번호는 뭐냐고! CP는 또 무슨 지랄인데?”
“아 오빠 차 좀 세워보라고!”
듣다 못한 애인이 난리를 피워 그는 갓길에 차를 세웠다.
설명을 듣긴 했지만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야이···독재는 무슨 씨발 오바이트에 밥 말아먹는 소리를 하고 있어?”
“오빠는 요즘 한국 분위기 잘 몰라서 그래. 저 드론한테 잘못 걸리면 안 된다니까?”
“아 난 그런 거 모르겠고.”
애인은 신재훈을 미친놈 바라보듯 했다.
아무리 한성그룹에서 내놓은 멍청이라지만 이렇게 분위기를 모를까?
현재 한국은 강압적인 정책을 밀어붙인 유지하에 대한 반감으로 전국적인 시위가 일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얼마 전에 입국해서 상황을 모르면 알아봐야 할 게 아닌가.
“나 내릴 거야.”
여자가 문을 열려 했지만 신재훈은 오기로 급발진을 해댔다.
“지금 뭐하는 거냐고!”
“너 못 내려. 내가 지금부터 뭘 하는지 똑똑히 봐.”
“미쳤어 진짜!”
“그래! 나 미쳤어! 인간 신재훈!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한테 맞아서 이렇게 됐다 왜!”
둘이 투닥투닥하는 사이 슈퍼카의 속도는 170km를 넘어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