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know nothingness? RAW novel - Chapter 203
71. 범람 (2)
주탑 사이로 케이블이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현수교 가운데가 붕괴했다.
대피하지 못한 차량들이 무너진 철골 아래로 추락했다.
교량을 지지하는 케이블은 끊어지지 않은 채 덜렁거렸고, 해룡이 몸부림치면서 높이 치솟은 주탑이 흔들렸다.
해룡은 그것으로 성이 안 찬다는 듯, 괴성을 지르면서 한쪽 주탑으로 나아가 몸으로 부딪치기 시작했다.
차량들이 이리저리 뒤엉키며 아수라장이 되었다.
“과, 광안대교가…….”
“미친…….”
“아아…….”
게이트키퍼들이 충격에 빠졌다.
랜드마크인 광안대교가 무너지는 장면은, 부산을 지키던 게이트키퍼들에게 심적인 충격을 준 것 같았다.
사기는 전투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를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유진은 즉시 일갈했다.
━마!
유진이 일으킨 노호성은 굉음이 되어 광안리 앞바다를 뒤흔들었다.
그의 목소리가 일으킨 파동이 해수면을 진동시켰다.
유진은 이 순간 스스로를 박유원이라고 세뇌했다.
그 녀석이라면 뭐라고 소리쳤을까.
“이 쉐이가 돌았나!”
그리고 그는 게이트키퍼에게 칼 하나를 빌린 다음, 땅을 박차고 해룡에게 날아갔다.
해룡이 광안대교를 무너뜨리며 부산 게이트키퍼들의 자부심을 건드렸다.
마땅히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그는 일부러 더 분노에 찬 움직임으로 거칠게 맞붙었다.
수상비(水上飛)의 수법으로 바다 위를 달려서, 해룡에게 그대로 몸통 박치기를 날렸다.
거대한 해룡의 동체가 충격에 휘말려 뒤로 멀리 날아갔다.
그 몸짓에 아직 끊어지지 않은 케이블이 휘말려 진동했다.
바닷물이 치솟았다.
유진은 검을 들어, 백사장에서 싸우는 게이트키퍼들이 모두 볼 수 있을 만큼 거대한 검기를 일으켰다.
그리고 그대로 바다를 향해 내리꽂았다.
바다가 크게 패이면서, 해수면이 출렁였다.
물에 있던 해룡의 동체가 그대로 찢어발겨졌다.
그 여파로 크게 해일이 일어 백사장을 덮쳤다.
유진이 흘끗 돌아보자 사기를 회복한 게이트키퍼들이 파도 속에서도 꿋꿋하게 괴물과 전투를 이어가고 있었다. 유진은 다시 검을 들어 해룡을 내리찍었다.
그리고 모두가 들리게 소리쳤다.
“광안대교의 복수다!”
유진은 검을 마구 휘둘렀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어마어마하게 많은 검기를 떨어뜨렸고, 그 검기들은 해수면을 꿰뚫고 들어가 해룡의 몸통을 난도질했다.
무너진 광안대교를 배경으로, 바다가 시뻘겋게 물들었다.
유진은 멈추지 않았다.
“죽어!”
해룡의 몸에서는 촉수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마왕의 세포를 이식받은 놈이다. 이 정도의 상처는 회복할 수 있으리라.
유진은 해룡을 깡그리 찢어발기려 했다.
바다를 배경으로 싸우고 있자니, 마치 부산의 게이트키퍼들과 같이 자부심이 강하던 바다의 검객들이 떠올랐다.
남해삼십육검(南海三十六劍).
천해연(天海連).
그의 검 위에서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유진이 일으킨 혼원기가 일대의 자연기를 모두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유진은 칼끝을 내리고 해룡을 향해 내질렀다.
처음에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점차 일대의 자연기와 풍랑을 빨아들이면서 회오리는 거대한 규모의 토네이도가 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바다에서 용오름이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아니, 도리어 하늘이 바다를 빨아들이는 것 같기도 했다.
하늘과 바다가 서로 잇닿았다.
하지만, 그 안에 깃든 것은 유진이 만들어 낸 칼날의 폭풍이다.
천해연에 휘말린 해룡은 수백 조각으로 찢겨나갔다.
피와 살점이 부산 앞바다에 흩뿌려졌다.
***
박유원은 게이트키퍼들의 포위를 뚫고 나간 괴물들을 추적했다. 바다 인근은 상업지였으나 조금만 벗어나면 주택가로 이어진다. 민간인들의 희생이 우려되었다.
박유원은 최대한 빠르게 움직였다.
게이트키퍼들의 포위를 뚫은 것은 대개 날랜 개체들로, 전투력 자체가 높다고는 할 수 없었다.
비명 소리를 쫓아 나아가니 들소 정도 되는 크기에 개를 닮은 괴물이, 빌라로 뛰어올라 창을 깨뜨리고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옥상으로 대피한 주민들이 소리를 질렀다.
박유원은 곧바로 나아가 검을 휘둘러 괴물을 베었다.
괴물은 순식간에 허리가 절단되었다.
“개쉐이가…….”
꿈틀거리는 괴물의 머리통을 박살 내면서, 박유원은 찰나의 감상을 느꼈다.
예전의 그는 괴물 하나도 제대로 상대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주제에 심마까지 앓아, 오랜 시간을 바보로 살았다.
하지만 그의 사부이자 형님인 유진을 만나 심마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화경이라는 경지까지 강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검을 휘두르고 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홍유진이라는 사람을 만나면 필연적으로 강해지게 된다.
그리고 그 힘은 다시, 필연적으로 세상을 위해 쓰이게 된다.
그렇다면…….
“살려주세요!”
박유원은 도로에 차 한 대가 괴물에 붙잡혀 있는 것을 보았다. 두 발로 뛰어다니는 사마귀 같은 것이 보닛에 갈고리를 꽂고 차창을 향해 고개를 들이밀고 있었다.
운전자는 움직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하얗게 질려 있었다.
박유원은 늦기 전에 최대한으로 속도를 높였다.
창날 같은 괴물의 이빨이 차창을 꿰뚫기 전에, 박유원이 어깨로 괴물을 박았다.
그는 괴물과 뒤엉켜 아스팔트 위를 굴렀다.
내공으로 육체를 보호했음에도 피부가 갈려 나갔다.
피투성이가 된 박유원은 다 찢긴 티셔츠를 벗고, 괴물의 머리에 검을 박았다.
운전자가 말했다.
“고맙습니다. 괘, 괜찮으세요?”
박유원은 씩 웃어준 다음 다른 괴물을 찾아 달렸다.
상념이 이어졌다.
그에게 있어서 그의 형님은 무(武)의 상징과 같았다.
인간이되, 그 이상의 무언가를 몰고 다니는 운명적인 존재였다.
그런 형님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무공을 가르치고, 진정한 무공을 배운 사람들은 다시 세상을 위해 힘을 쓴다.
그렇다면, 그게 세상의 이치인 것은 아닐까?
그래서일까.
이렇게 숨을 헐떡이며 괴물을 찾아 달리고 있는 이 순간.
박유원은 세상과의 일체감을 느끼고 있었다.
무언가가 보일 듯, 보일 듯했다.
무언가가 잡힐 것도 같았다.
하지만 아직은 애매했다.
더 싸우다 보면 알게 될지도 모른다.
박유원은 사거리 한복판에 서 있는 거대한 괴물을 발견했다.
오거다.
그냥 오거가 아니라 전신 곳곳에서 촉수가 일렁이는 오거였다.
형님이 말한 그 마왕의 세포라는 것에 감염된 놈이다.
저리 큰 것이 어떻게 포위망을 넘어섰는지 의아할 지경이었다.
저런 괴물은, 갓 화경에 이른 자신 혼자서는 상대할 수 없다.
하지만 상대가 더 강하다고 해서 꼭 피하란 법은 없지 않나.
그런 어이없는 생각을 하면서, 박유원은 괴물을 향해 쇄도했다.
오거가 창으로 사람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빌딩을 주먹으로 부수려는 순간이었다.
박유원이 오거의 등을 검으로 베었다.
오거는 괴성을 지르면서 박유원을 향해 뒤돌아 주먹을 휘둘렀다.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빠르고 강했다.
박유원은 검을 세우고 내기를 일으켜 검막을 형성했다.
“큭!”
검막이 깨졌다. 그는 아스팔트 바닥을 나뒹굴다가 연석에 튕겨 올라 가로수에 부딪쳤다.
“커헉!”
박유원은 피를 토하면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내상이 있었다. 차오르는 울혈을 뱉어낸 다음 검에 의지해 몸을 일으켰다.
오거는 이제 그를 표적으로 삼고 있었다.
“센데…….”
게이트 쪽의 싸움이 치열한지, 지원이 오지 않고 있었다. 박유원은 바닷가 쪽에서 무언가가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광안대교라도 무너졌나…….”
그는 다가오는 오거를 올려다보았다.
크다.
전신에서 촉수가 일렁거리는 게, 딱 봐도 강하다.
박유원은 입매를 비튼 다음, 땅을 박차고 다시 오거에게 덤벼들었다. 오거는 덩치에 안 맞게 민첩했다. 뒤로 물러나면서 정확하게 박유원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박유원은 허공에서 방향을 틀었다.
가까스로 오거의 주먹이 그를 스치고 지나갔다.
풍압에 전신이 떠밀리는 것 같았다.
박유원은 그의 옆에 있는 두꺼운 팔을 검으로 갈랐다.
매화검법이었다.
매화 향이 퍼지는 동시에, 오거의 팔이 갈라지며 바닥에 떨어졌다.
팔뚝이 얼마나 무거운지 떨어지면서 굉음이 일었다.
박유원은 곧바로 오거에게서 멀어지려고 했다.
“으앗!”
분노한 오거는 다른 손을 휘둘러 박유원을 낚아챘다. 그리고 그의 몸뚱이를 악력으로 짜부라뜨리려 했다.
박유원이 내공을 일으켰다.
“끄으윽…….”
하지만 오거의 힘이 너무 강했다. 박유원은 이를 악물었다. 건물 창문으로 사람들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내기가 일어나며 일대에 바람이 불어 들었으나, 오거의 손아귀는 요지부동이었다. 아니, 오히려 더 강해졌다.
박유원은 점차 힘이 달리는 것을 느꼈다.
“제기랄…….”
욕설을 내뱉으며 오거의 손을 물어뜯을 생각까지 하는데.
그때, 누군가가 오거를 공격했다.
오거는 그 공격을 무시했으나, 계속 공격이 이어지자 박유원을 놓고 그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박유원은 바닥에 떨어졌다.
“크윽…….”
간신히 몸을 회복하고 몸을 일으켰다.
오거와 대치하고 있는 무인과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이 동시에 눈을 크게 떴다.
조해진이었다.
“박유원?”
“너 이 자식…….”
놀란 조해진이 박유원을 향해 무어라 더 말하려 했으나, 오거가 공격하는 바람에 서둘러 몸을 뺐다. 이어서 조해진이 이끌고 온 무인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거대한 오거 한 마리를 상대로 무인들이 진형을 형성했다.
전선에서 물러난 조해진이 박유원에게 다가왔다.
“몸 괜찮나.”
“괜찮다.”
박유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도망 안 갔네?”
“이럴 때 도망치면 부산에서 장사 접어야지. 별수 있나.”
그간 수련에 매진했는지, 조해진 또한 제법 강해져 있었다. 화경에 이른 박유원만큼은 아니지만 초절정에는 이른 듯했다.
조해진이 박유원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미간을 모았다.
“엄청 강해졌네.”
“그렇지.”
“그 무사부 덕분인가?”
“맞다.”
“그때 잘 보일 걸 그랬네.”
“너는 잘 보이려고 노력해도 안 된다.”
“왜?”
“형님은 남자도 얼굴 따지거든.”
“헛소리…….”
오거와 조해진 휘하의 무인들이 싸우기 시작했다. 박유원과 조해진도 검을 말아 쥐고 전투를 준비했다.
박유원이 문득 조해진에게 물었다.
“아직 만나나?”
“아니. 헤어졌다.”
“그래?”
“그래.”
“그렇구만.”
박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지.”
“알긴 뭘 알아.”
“됐고, 저 새끼부터 조지자.”
박유원이 오거를 향해 달려갔다. 조해진도 뒤이어 따라붙었다.
박유원과 조해진의 검기가 동시에 오거를 향해 날아들었다.
***
전 세계에서 게이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범람이었다.
“마치 대홍수 같군.”
스크린에 떠오른 전 세계 게이트의 현황을 보면서, 노엘이 중얼거렸다.
그는 몸을 반투명한 액체에 담그고 있었는데, 그가 앓는 유전병의 진행을 막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다.
그는 마왕의 촉수를 가져와 연구했고, 조금이나마 모방하는 데 성공했다. 마왕의 세포가 가진 재생력만을 구현해, 병의 진행을 최대한 늦추고 있는 것이다.
“예. 정말 대홍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비 대신 괴물이 쏟아질 뿐이죠.”
그의 곁을 수행하는 직원이 말했다.
노엘이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잘 이겨내고 있지. 안 그래?”
“예.”
“유진 덕분이야. 유진이 정말로 지구의 무공 수준을 한 단계 높였어.”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노엘은 사업가다. 어떤 사안에 대한 결과를 그저 감으로 평가하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수치를 확인하고 통계를 낸다.
실질적으로 유진은 지구의 무공 수준을 한 단계 올렸다.
특히 세계 투어를 기점으로, 무인들이 가파르게 강해졌다.
가장 대단한 부분은, 이미 고수들인 무인을 더 강하게 만든 것이다. 삼류 무인들을 이류, 일류로 만드는 것보다 초절정의 무인을 화경으로 만드는 게 훨씬 파급력이 크다.
“정부에서는 그놈들 풀었나?”
“예. 부분적으로 지원하고 있답니다.”
“그렇군.”
노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빠르게 이겨낼 수도 있겠어. 다음 스텝을 준비하는 것도 괜찮겠지.”
“다음 스텝이라고 하시면.”
“이번 대홍수가 끝나고 나면…….”
각 정부의 수뇌들은 이번 사태가 엘프와 혈교의 수작이라는 정보를 알고 있었다.
언제까지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들에게 마땅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지.”
저번 토벌은 그의 개인적인 탐사대에 가까웠다.
다음 토벌은 전 세계의 지원을 등에 업은 진짜 공격이 될 것이다.
“판타리아를 친다.”
204.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