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181
#닥터 플레이어 181화
‘엥?’
레이몬드는 눈을 크게 떴다.
‘페어링. 이게 뭐야?’
설명이 떠올랐다.
[페어링 : 영수와 맺는 계약. 상대의 절대적인 호의와 사랑을 받는다.]‘영수? 묘인족은 영수가 아닌데? 진혈족이라 영수의 속성을 띄는 건가?’
레이몬드는 진혈족에 대한 지식을 떠올렸다.
일반적인 수인족이 동물의 속성을 띈 유사 인간이라면 진혈족은 다소 달랐다.
일족의 뿌리가 되는 혼돈에 영수의 피를 타고나 인간보다 영수의 속성을 강하게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반쯤은 영수에 가깝다고 할까?
‘……설마 묘인족의 선조인 위대한 아묘도 누군가의 애완동물이었던 건가? 그래서 이런 페어링이 가능한 거고?’
레이몬드는 헛기침을 하였다.
어쨌든 페어링은 사절이었다.
‘이런 거 함부로 맺으면 안 되지.’
미엔의 입장에서도 정신이 오락가락할 때 이런 중요한 계약을 하는 건 좋지 않았다.
‘몸이 회복되고 정신을 차리면 생각이 달라지겠지.’
[페어링을 거절합니다!]레이몬드는 소년이 상처받지 않도록 부드럽게 말했다.
“난 엄마가 아니라, 선생님이란다.”
“……선생님?”
“응, 너를 치료해 주고 무조건 위하는 힐러 선생님.”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으나, 자신이 거절당했다는 걸 안 걸까? 미엔은 풀이 죽은 음성으로 답했다.
“……네, 선생님.”
“그래, 착하지. 만약 언제든 필요한 일이 있으면 찾아오렴.”
“……정말 찾아가도 돼요?”
“응, 언제든지.”
레이몬드는 별생각 없이 답했다.
미엔은 헤헤 미소 지으며 깊은 잠에 빠졌다.
그때, 메시지가 떠올랐다.
[페어링을 거절당한 상대가, ‘홀로 갈망 상태’에 빠집니다!]“…….”
레이몬드는 그 메시지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뭔가 불길한 메시지인데.’
아마 어린 꼬마가 그에게 감동해 일시적으로 저런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았다.
‘금방 괜찮아지겠지.’
레이몬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가보겠습니다. 혹시나 문제가 있으면 바로 연락해 주십시오. 앞으로 미엔에게 필요한 갑상선 호르몬은 인편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레이몬드는 묘인족 마을을 떠났다.
* * *
바로 영지로 내려가진 않았다.
보리슨 영지로 향해 증거를 수집했다.
‘역시 예상대로야. 마정석 광산 쪽에서 교란 물질이 흘러나오고 있어.’
마정석 광산을 기점으로 계곡의 물을 조사했다.
그 결과 상류는 깨끗.
마정석 광산이 있는 지점에서부터 교란 물질이 확인되었다.
‘이 정도면 증거로 확실해.’
레이몬드는 영지로 돌아갔다.
이후 정식으로 트렌비 백작에게 만남을 청했다.
-내가 왜 그대와?
“위임관으로서 명하는 겁니다. 이것마저 따르지 않는다면, 국왕 전하의 권한을 대리해 당신을 처벌하겠습니다.”
레이몬드는 싸늘하게 말했다.
아무리 자신의 이득이 중요하다지만, 다른 영지민들이 어떻게 되든 말든 마정석 채굴을 속행한 이다.
말이 곱게 나올 리가 없었다.
-…….
트렌비 백작은 어쩔 수 없이 만남에 응했고, 레이몬드는 그를 압박할 요량으로 자신을 따르게 된 영주들을 모조리 동행시켰다.
토르 영지.
메핀 영지.
크란 영지.
랜슨 영지.
이 4개의 영주들이 그를 보필하듯 따랐다.
그뿐이 아니었다.
레이몬드는 지금 그들 4명 영주를 모두 합친 것보다 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현재 그는 루인 영지의 실질적 영주일 뿐 아니라, 불의의 일로 영주를 잃은 쿤카 영지와 보일 영지의 권한도 가지고 있었으니까.
즉, 레이몬드는 지금 3개 영지의 동시 영주나 다름없었다. 곧 제후가 될 이였고.
거기에 왕국 최고 천재 기사 엘무드도 있었고, 왕국 최고 공작가의 가장 유력한 후계자 크리스틴도 있었다.
“…….”
반면, 트렌비 백작은 혼자였다.
트렌비 백작은 이를 악물었다.
‘아무도 오지 않다니.’
사실 그는 이 만남에 나오기 전, 자신을 지지하던 다른 영주들에게 동행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들 모두 핑계를 대어 거절했다.
‘몸이 좋지 않아서…….’
‘영지에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런 핑계를 대었지만, 이유야 명확했다.
이제 대세가 레이몬드에게 기운 것을 안 것이다.
라팔드 지방의 주요 영지는 총 10개.
그중 7개가 레이몬드의 영향력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사실상 라팔드 지방 전체가 레이몬드의 손에 들어온 거나 마찬가지였다.
‘트렌비 백작은 이제 끝이야.’
‘더 연을 이으면 안 돼.’
더구나 레이몬드는 이번 괴질의 원인을 트렌비 백작의 마정석 광산으로 지목했다.
레이몬드는 명실상부 휴스톤 왕국 내 전염병 최고 전문가.
그런 그가 한 말이니 확실할 거다.
이제 트렌비 백작은 파멸이었다.
모두가 그 사실을 알았다.
“…….”
그리고 트렌비 백작 본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만 인정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한때 레이몬드를 몰아내고 라팔드 지방의 제후가 될 것을 꿈꾸던 자신이 이런 처지가 되었다는 걸.
“제가 요구하는 건 간단합니다. 당장 마정석 광산의 채취를 중단하십시오.”
레이몬드는 단호히 말했다.
“…….”
트렌비 백작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안타깝게도 레이몬드가 내민 증거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었다.
사실 트렌비 백작 본인도 마정석 광산이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짐작을 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괴질 환자가 발생한 영지는 랜슨 영지가 아니라 바로 마정석 광산이 자리한 보리슨 영지야. 하지만 트렌비 백작은 그 사실을 은폐했어. 마정석 채취에 영향을 받을까 봐.’
레이몬드는 혀를 찼다.
처음 트렌비 백작이 더블 A급의 힐러 도리안 자작을 불렀던 것도 본인 영지에 발생한 환자들 때문이었다.
‘하여튼. 자신의 욕심을 위해 사람이 죽어나가는 걸 아랑곳하지 않다니.’
추악하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은근히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기도 했다.
‘현대 지구에서도 이런 일은 흔하지. 몇 푼의 돈 때문에 유독 물질이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걸 아랑곳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니까.’
레이몬드는 강하게 이야기했다.
“마지막 경고입니다. 당장 제 말을 따라 마정석 광산을 멈추십시오.”
“……따르지 않으면?”
“군사를 일으켜 당신을 토벌하겠습니다.”
“……!”
트렌비 백작이 눈을 크게 떴다.
“……뭐라고? 감히!”
벌떡 일어난 그의 몸에서 거센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트렌비 백작은 전장에서 커다란 공을 세운 역전의 용사! 그만큼 강력한 기세에 레이몬드의 가슴이 순간적으로 쪼그라들었다.
하지만.
[환자를 위해 나서고 있습니다!] [스킬, ‘강철의 심장’이 발현됩니다!]또한, 스킬 말고 그의 가슴을 든든하게 해주는 일이 있었다.
“감히! 주군께!”
“당장 자리에 앉으십시오, 백작!”
“후회하지 할 짓 하지 마십시오!”
“래번 공작가를 적으로 돌리고 싶은 건가요?”
엘무드를 비롯한 이들이 우르르 대신 나서서 압박을 해주었던 것이다!
강약약강의 레이몬드는 가슴이 한없이 든든해지는 걸 느끼며 말했다.
“난 위임관이자 차후 라팔드 지방의 제후가 될 이입니다. 따라서 라팔드 지방의 영지민들에게 해를 끼치는 이를 토벌할 권한이 있습니다.”
트렌비 백작은 몸을 떨었다.
하지만 한마디도 반박 못 했다. 레이몬드의 말 중 틀린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모든 걸 포기하고 자리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하, 하…… 전쟁에서 공을 세워 가문을 일으켜 세우려 했건만, 이렇게 되다니.”
좌절한 음성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보리슨 영지는 마정석 광산을 제외하면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으니까.
영지민도 고작 200명 남짓.
조그만 장원만도 못한 영지였다.
기껏 공을 세워 영지를 받았건만 빈털터리가 되게 된 것이다.
‘더구나 마정석 채굴 준비를 하며 마탑에 잔뜩 빚도 졌을 테니. 빚더미만 남게 되겠어.’
레이몬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잘못하면 자신이 트렌비 백작과 같은 꼴이 될 뻔했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등골이 서늘했다.
‘……조금 불쌍한 것 같기도 하네.’
물론 트렌비 백작은 용서받지 못할 잘못을 저질렀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다른 이들의 죽음을 아랑곳하지 않았으니까. 그건 어떤 이유로도 변명하지 못할 잘못이었다.
하지만 같은 처지가 될 뻔해서일까?
멍하니 영혼을 잃은 표정으로 좌절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조금 불쌍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어쩔 수 없지. 그렇다고 도와줄 일도 아니고.’
도움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등을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어떤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잠깐. 트렌비 백작의 처지를 잘 이용하면 굉장히 큰 이득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가여운 마음에 트렌비 백작을 도와주려는 건 아니었다.
저런 잘못을 저지른 이를 뭘 도와준단 말인가? 아무리 개인적으로 동정심이 간다지만, 그건 아니었다.
‘오히려 벌을 주어야겠지.’
그가 하려는 건 반대.
좌절한 트렌비 백작을 이용해 큰 이득을 보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트렌비 백작에게도 벌을 내리면서 말이야.’
레이몬드는 생각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건 트렌비 백작에게 벌을 내릴 뿐 아니라, 마탑 놈들에게도 거하게 한 방 먹일 수 있는 방법이야. 하자.’
레이몬드는 늘 마음 깊은 곳에 마탑을 향한 적개심을 지니고 있다.
드워프와 더불어 최악의 돈벌레 놈들!
더구나 이번 사태에 마탑 놈들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었다.
마정석 채취 시설을 설치할 때 문제를 미리 알아냈으면 재앙이 일어나는 걸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즉, 마탑은 안이한 일 처리로 직무를 유기했다.
‘그러니 마탑 놈들도 이번 사태에 책임을 져야지.’
결심한 레이몬드는 입을 열었다.
“백작님의 처지는 이해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는 건 어떻습니까?”
“뭘 말이오?”
마침 메시지가 떠올랐다.
[힐러 로드로서 영지 단위의 협상을 하려 합니다!] [스킬, ‘협상의 기술’이 발현됩니다!]그뿐이 아니다.
[상대가 ‘진상’임을 확인합니다!] [상대의 진상 패턴은 ‘만만한 진상’. ‘진상 특수기 : 호구 만들기’가 발현됩니다!]레이몬드는 한결 혀가 매끄러워지는 걸 느꼈다.
“라팔드 지방의 예비 제후로서 본인이 보리슨 영지를 사도록 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
트렌비 백작의 눈이 커졌다.
이게 갑자기 무슨 말인가?
“그게 무슨……?”
“마정석 광산이 폐쇄되면 보리슨 영지는 아무런 가치가 없지 않습니까? 예비 제후로서 백작님의 처지를 배려해 구입해 주겠다는 뜻입니다.”
물론 거짓말이다.
배려는 무슨.
어마어마한 이득을 챙길 거래였다.
‘일종의 사기인가?’
하지만 트렌비 백작은 그런 사실은 꿈에도 생각 못 하고 물었다.
“그러면 얼마에 살 것이오?”
“마이너스 10만 페나입니다. 즉, 백작님이 제게 10만 페나를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