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19
#닥터 플레이어 19화
“안 좋게 변한 부분을 도려내고, 새살이 돋게 하면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다시 나빠지지 않을까요?”
프랑은 어두운 안색으로 되물었다.
지금껏 다른 치료사들이 치료했을 때도 비슷했다. 처음에는 상태가 좋아졌다가, 곧 다시 악화하였다.
하지만 레이몬드는 간단한 해결책을 이야기해 주었다.
“자세를 바꿔주면 됩니다.”
“……네?”
“중간중간 누워 있는 자세를 바꿔주면 상처가 악화하는 걸 막을 수 있습니다.”
프랑은 순간 멍한 얼굴을 하였다.
“저, 정말입니까?”
“네, 욕창은 거동이 불편한 환자분들이 계속 한 자세로 누워 있어 상처 부위에 압력이 가서 생기는 병이거든요. 그러니 자세만 바꿔줘도 예방할 수 있습니다.”
“……!”
놀라 경악하는 프랑을 보며 레이몬드는 씁쓸히 생각했다.
‘의학에서는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이곳에는 아니니까.’
의학은 욕창을 ‘압박 궤양(Paressure sore)’라고 부른다.
스스로 자세를 바꾸기 어려운 환자가 한 자세로 계속 누워 있으며 압력을 받아 생기는 상처라는 뜻으로, 해결책은 이름만큼이나 간단했다.
자세를 바꿔주면 된다.
‘이 간단한 지식을 몰라 욕창이 불치의 질병이 된 것이지.’
프랑이 경악해 물었다.
“어, 어떻게 그런 놀라운 사실을…….”
“고대의 지식입니다.”
만능 변명으로 대충 둘러댄 레이몬드는 간단한 수술 도구가 들어 있는 왕진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렸다.
이제 환자를 치료할 시간이다.
“그러면 곧바로 수술을 시작하겠습니다.”
“수…… 술 말입니까?”
처음 듣는 단어에 프랑은 말을 더듬었다.
“네, 수술. 죽은 조직을 쳐내고, 염증을 도려내 깨끗한 새살이 돋아나게 할 겁니다.”
프랑은 놀란 얼굴을 하였으나, 곧 감정을 추리고는 간절한 음성으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치료사님만 믿을 테니, 아버지를 치료해 주십시오!”
그렇게 즉석에서 수술이 시작되었다.
하인들이 환자를 옆으로 돌려 눕혔다.
그때, 환자, 프랑의 아버지가 희미한 음성으로 말했다.
“자, 잘 부탁합니다, 치료사님.”
긴 고통이 담긴 음성이었다.
뭉클.
레이몬드의 가슴이 흔들렸다.
상처를 보며 역하게 생각했던 마음이 가셨다.
환자는 지금껏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런 마음이 들며, 레이몬드는 환자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주었다.
“잘 치료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죽은 조직 위주로 쳐낼 테니, 별로 아프지 않을 겁니다.”
맞잡은 손을 통해 온기가 전달되었고, 레이몬드의 따뜻한 마음이 환자를 위로해 주었다.
“감…… 사합니다.”
레이몬드는 수술을 시작했다. 환부에 마취 효과가 있는 약초를 도포 후 수술 칼을 들었다.
다행히 앞선 수술들에 비해 어렵지 않았다.
더구나 레이몬드의 역량 자체도 꽤 상승한 상태다.
‘상태창.’
레이몬드는 자신의 능력치를 확인하였다.
[플레이어 스테이터스]이름 : 레이몬드
클래스 : 외과의사(SSS)
직업 등급 : 초보 레지던트
레벨 : 20
경험치 : 15/50
스킬 포인트 : 35
칭호 : 더러운 사생아
보조 직업 : 활성화되지 않음
[스탯]체력 : 6
감각 : 18
지력 : 17
?? : 1
여분 스탯 포인트 : 0
어느덧 감각이 18로 올라왔다.
이게 정확히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 짐작할 수 있는 건 있었다.
‘초보 레지던트’치고는 굉장히 뛰어난 수준이라는 것!
‘사용. 서전의 손놀림!’
[감각 : 18 → 28]스킬마저 사용하자, 도저히 초보 레지던트라고는 여길 수 없는 손놀림이 펼쳐졌다.
그래도 레이몬드는 만만하게 여기고 허투루 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섬세하게 죽은 조직을 쳐내었다.
‘욕창은 얼마나 환자에게 정성을 쏟아붓느냐가 정말 중요해.’
레이몬드는 외과학의 지식을 떠올렸다.
모든 병이 다 그렇겠지만, 욕창은 특히 더 그러했다.
얼마나 더 정성껏 소독해 주느냐, 간호하느냐, 수술하느냐에 따라 경과가 정말 많이 달라졌다.
그 사실을 잘 아는 레이몬드는 최선을 다해 안 좋은 조직을 쳐내었다.
검게 썩은 살을 도려내었고, 노란 진물을 걷어내었다. 짓무른 조직을 걷어내고 건강한 살이 자랄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천연 항생 물질이 들어간 약초로 꼼꼼하게 소독을 해주었다.
“다, 다 된 겁니까?”
레이몬드가 장갑을 벗자 프랑이 긴장된 음성으로 물었다.
“네, 일단 일차적인 치료는 잘되었습니다.”
“……!”
프랑은 한없이 기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치료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과하게 감사를 표하는 모습에 레이몬드는 손을 저었다.
“아직 끝난 건 아닙니다. 안 좋은 염증을 더 치료해야 합니다.”
상처가 완전히 깨끗해지고, 새살이 돋을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상태를 봤을 때 꽤 시간이 걸릴 거야. 그때까지 계속 관리를 해줘야 해.‘
그때, 프랑이 망설이는 얼굴로 물었다.
“그러면 혹시 그때까지…….”
프랑이 걱정하는 바를 눈치챈 레이몬드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완전히 나을 때까지 제가 책임지고 치료하도록 하겠습니다.”
프랑의 얼굴이 환해졌다.
“감사합니다!”
* * *
이후 레이몬드는 최선을 다해 환자를 치료했다.
최소 하루에 두 번씩. 직접 상처를 살피며 소독을 하였고, 문제가 있으면 즉각적인 처치를 하였다.
그런 레이몬드의 노력 덕에 환자의 상태는 극적인 호전을 보였다. 생각보다 빠른 경과였다.
‘관리를 잘해주었으니까.’
현대 지구에서도 욕창은 난치였다. 치료법은 간단하지만, 쉽게 낫지 않는 병이었다.
그 이유는 하나. 관리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자세를 바꿔줘야 하는데, 쉽지가 않았다. 반면 잘 관리만 하면 생각보다 빠른 호전을 보인다.
다행히 프랑은 하인들과 함께 지극정성으로 아버지를 돌보았고, 레이몬드의 최선을 다한 치료와 합쳐 좋은 효과를 보일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프랑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말했다.
어떤 치료사도 치료 못 하던 병을 레이몬드 덕분에 치료한 것이다. 레이몬드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좋아지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 계속해서 상처가 곪다가 사망하셨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프랑은 감사한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프랑이 레이몬드에게 더욱 감사한 건 비단 아버지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치료할 때 보여준 레이몬드의 태도.
그게 프랑의 가슴을 울렸다.
‘세상에 저런 치료사가 있다니.’
지금껏 아버지를 치료하러 온 치료사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역겨운 것을 봤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고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들의 반응을 이해는 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징그러운 상처고, 악취마저 심하니까.
피를 이어받은 프랑도 아버지의 상처를 볼 때마다 괴로운데, 그들은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레이몬드는 전혀 그런 것이 없었고, 심지어 병 들어 괴로워하는 아버지를 중간중간 위로해 주기까지 했다.
그런 레이몬드의 따뜻한 치료에 그들 부자가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는지 모른다.
저 청년은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걸 넘어, 상처 입은 마음까지 치료해 주었다.
“아버지를 따뜻하게 대해 주셔서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거듭된 감사에 레이몬드는 어색한 얼굴을 하였다.
‘뭐, 대단한 걸 한 건 아닌데. 너무 고마워하네.’
그가 생각하기에 특별히 대단한 걸 한 건 아니었다.
그냥 병을 치료하며 싫은 티를 안 냈으며, 괴로워하기에 가끔 위로하는 말을 던져줬을 뿐이다.
그가 아무리 돈 밝히는 속물(?)이라도 치료사라면 이 정도는 기본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별것 아니었습니다. 좋아지셔서 다행입니다.”
머쓱해서 한 말에 프랑은 더더욱 감탄했다.
‘저렇게 훌륭한데, 겸손하기까지. 누가 저런 분을 못난 사생아라고 폄훼한 건지.’
그는 더욱더 감사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욕창은 완전히 회복되었고, 곧 승급 시험 결과를 확인하는 날이 다가왔다.
* * *
“……뭐라고?”
개린슨 백작은 냉철하던 평소와 다르게 멍하니 반문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욕창을 치료했다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제대로 확인한 건가?”
심사관은 쩔쩔매며 고개를 숙였다.
“저도 믿을 수 없어 몇 번이나 확인해 보았습니다. 깨끗한 새살이 돋아나 완전히 치료된 상태입니다.”
“하! 그게 말이 되는가? 욕창이야. 욕창이라고! B+급 치료사들도 치료하기 어려운. 그런데 F급도 안 되는 그놈이 치료해 냈다고?”
심사관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치료된 걸 치료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죄송합니다. 하지만 정말 깨끗하게 치료되었습니다.”
개린슨 백작은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말도 안 돼. 어떻게 된 거지?’
어쨌든 곤란했다.
정말 욕창을 치료한 게 맞는다면 놈이 치료사가 되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내가 직접 확인해 보겠네.”
“네?”
“내 눈으로 직접 보겠다고!”
개린슨 백작은 프랑의 집으로 직접 행차했고, 깨끗하게 새살이 돋은 상처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 이렇게?’
믿을 수 없었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제길. 그러면 레이몬드, 그놈에게 치료사 자격을 주어야 한단 말인가?’
개린슨 백작은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욕창 환자를 치료했으니 탈락시킬 명분이 없었다.
‘망할.’
사촌 누이, 4왕비마마에게 뭐라고 변명해야 할지 곤란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개린슨 백작이 미처 생각 못 하고 있는 게 있었다.
지금 레이몬드의 합격이 문제가 아니란 것을.
고작 합격을 결정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곤란한 문제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랭크(Rank) 결정.
B+급 치료사도 치료하기 어려운 욕창을 해결해낸 레이몬드의 등급을 결정해야 했다.
* * *
“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구려.”
“그러게 말입니다.”
치유의 탑의 시험관들은 모두 한없이 곤란한 얼굴을 하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힐은 F등급도 안 되는데, B+등급의 치료사도 치료하기 어려운 욕창을 치료해 내다니. 이런 경우 도대체 어디에 기준을 맞춰 등급을 주어야 한단 말이오?”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던 사태에 직면했으니까!
시험관들은 곤혹스러워하며 갑론을박하였다.
“그래도 B+급 카테고리에 속하는 질병을 치료했으니, B+등급을 주어야 하는 것 아니오? 아니면, A등급?”
“말도 안 되오. 어찌 F등급 이하의 힐을 지닌 치료사에게 B+등급을 준단 말이오?”
“그렇다고 F급을 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니오?”
다들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때, 낮게 가라앉은 음성이 회의장을 갈랐다.
“D등급 정도가 적당하다.”
“개린슨 백작님?”
“고대의 비술로 몇몇 어려운 질환을 치료해 내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놈이 A등급에 버금가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어. 그러니 약간의 가산점을 주어 D등급 정도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데?”
시험관들은 엉거주춤 개린슨 백작의 눈치를 살폈다.
아무리 그래도 D등급은 너무 낮은 등급이라 생각한 것이다.
“이견 있는 사람 있는가?”
“…….”
하지만 시험관들은 뭐라 입을 열지 못했다.
여기서 반대 의견을 내었다가는 개린슨 백작의 눈 밖에 날 테니까. 그러면 치유의 탑 생활은 끝이었다.
“아, 아닙니다.”
“D등급이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백작님의 판단이 정확하십니다!”
서로 눈치를 보던 시험관들은 앞다투어 고개를 끄덕였다.
개린슨 백작은 인상을 찌푸렸다.
물론 그도 레이몬드에게 D등급을 주는 게 말도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정도는 해야 4왕비마마께 면이 서겠지.’
불합격은 못 시켰지만, 그래도 등급을 대폭 깎았으니, 4왕비도 그럭저럭 만족할 것이다.
‘항의해도 소용없어.’
치료사의 등급을 정하는 건 치유의 탑의 고유 권한이었다.
레이몬드가 항의해도 개린슨 백작은 절대로 등급을 바꿔주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 * *
하지만 개린슨 백작의 음모는 커다란 암초를 만났다.
다음 날 생각지도 않은 상대의 방문을 받은 것이다.
그것도 무려 두 명이었다.
어거스트 백작과 소피아 공주!
둘이 연달아 그를 찾아온 것이다.
레이몬드의 등급 결정 소식을 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