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18
#닥터 플레이어 18화
그때, 중앙에 앉아 있는 인상 나쁜 중년 남성이 레이몬드에게 말했다.
“힐을 펼쳐보도록.”
고압적인 어투였다.
‘이번 시험의 총책임자인 개린슨 백작인가?’
레이몬드는 중년 남성의 정체를 눈치챘다.
“알겠습니다.”
피시시.
촛불 같은 빛이 희미하게 피어올랐다. 금방이라도 꺼질 듯 위태한 하얀 빛에 심사관들은 더더욱 비웃음을 지었다.
개린슨 백작과 한편인, 아까 비웃음을 던졌던 심사관들이었다.
“이거 보는 제가 다 민망하군요.”
“저건 F등급보다도 훨씬 못하지 않습니까? 치유력이 맞긴 맞는 겁니까?”
개린슨 백작도 날카로운 어조로 말했다.
“승급 시험을 칠 최소한의 자격도 안 되는 것 같군. 무슨 생각으로 그런 치유력을 가지고 승급 시험을 치려는 거지? 환자를 치료하는 게 우습나?”
서슬 퍼런 일갈이었다.
다른 도제였으면 하얗게 안색이 질렸을 것이다.
하지만 굳건한 심지를 발현 중인 레이몬드는 아니었다.
‘이런 상황. 예상하고 있었어.’
지금은 시험 면접.
그러니 그의 치유력에 공격이 집중될 건 뻔한 일이었다.
그래서 레이몬드는 이런 상황이 오면 어떻게 답변할지 다 예상 답안을 생각해 둔 상태였다.
‘문제는 얼마나 더 설득력 있게 주장을 펼치느냐는 건데.’
강철의 심장의 도움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안 그랬다면, 긴장감에 제대로 이야기도 못 꺼낼 뻔했다.
‘최대한 조리 있게 잘 이야기해야 해.’
그렇게 생각하며, 레이몬드는 숨을 들이켰다.
솔직히 그는 달변가는 아니었다. 아니, 달변가는 무슨. 맨날 구박받으며 눈치만 보던 그가 무슨 말을 그렇게 잘하겠는가?
냉정히 그의 언변 실력은 평균하였다.
‘그래서 준비해 왔지.’
레이몬드는 속으로 생각했다.
마침, 마켓에 이런 상황에 딱 맞는 스킬이 있어서 미리 구입해 왔다.
“질문에 답변하겠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이었다.
메시지가 떠올랐다.
[스킬, ‘언변’이 발현됩니다!] [언변]분류 : 보조 스킬
등급 : 일반
숙련도 : D
-이야기를 더욱 잘할 수 있게 됩니다.
-환자를 위할 때 강철의 심장과 시너지 효과를 이룹니다!
레이몬드의 음성이 자신도 모르게 차분하면서 단단해졌다.
시험관들이 흠칫 놀라는 순간, 레이몬드가 말을 이어갔다.
말을 하는 본인도 놀랄 정도로, 강렬하고 호소력 있게.
“먼저 환자를 치료하는 게 우스우냐는 질문에 답변하겠습니다. 우습지 않습니다. 어찌 치료사로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단 한 번이라도 죽어가는 환자를 곁에서 지켜본 치료사라면 감히 그런 생각을 떠올리지조차 못할 것입니다.”
시험장이 조용해졌다.
레이몬드의 목소리는 묵직했고, 환자를 생각하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 진심 어린 모습에 시험관들은 더는 레이몬드를 가볍게 비웃지 못했다.
개린슨 백작도 순간적으로 말이 막혔다가 입을 열었다.
“……그대의 치유력이 자격 미달인 건 알고 있겠지?”
“알고 있습니다.”
두근.
레이몬드의 심장이 뛰었다.
자신이 이렇게 당당하고 멋지게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저는 스스로의 부족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노력했습니다. 오로지 환자를 살리기 위해. 부족한 만큼 남들의 몇 배나.”
잠시 정적이 흘렀다.
레이몬드의 말에 압도된 것이다.
개린슨 백작은 입술을 인상을 찌푸렸다.
‘면접에서 압박해 최하점을 주려고 했더니.’
상황이 뜻하지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대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중요치 않아. 중요한 건 정말로 환자를 살릴 수 있냐, 없느냐이다.”
냉정한 답변이었지만, 레이몬드는 도리어 이렇게 받아쳤다.
“옳은 말씀입니다. 저도 백작님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
“제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 얼마나 노력했느냐, 등은 혼자만의 사정일 뿐이지요. 정말 중요한 건 환자를 살릴 수 있는 능력! 그걸 잘 알기에 저는 어떻게든 환자를 살리는 방법을 연구하고 노력했습니다.”
시험관들은 침음을 삼키다 물었다.
“그게 바로 고대의 비술, 의술이란 것이오?”
“네.”
레이몬드는 시험관들을 쭈욱 둘러보았다.
“개린슨 백작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치료사에게 중요한 건 오로지 환자를 살리는 일뿐입니다. 따라서 저는 힐의 등급보다도 실제로 환자를 살릴 수 있는 능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해 어떻게든 의술을 익혔습니다. 시험관들께서도 제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십니까?”
그 물음에 시험관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레이몬드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힐은 환자를 살리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수단에 불과한 힐의 등급을 실제 환자를 치료하는 능력보다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건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정곡을 찔린 시험관들은 입을 다물었고, 시험장의 분위기는 완전히 레이몬드 쪽으로 넘어왔다.
이제 그들은 더는 레이몬드의 치유력 등급으로 트집을 잡지 못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승급 시험이 끝난 건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단계가 남아 있었다.
“말은 잘하는군. 그래, 힐의 등급보다 실제로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하지. 하지만 레이몬드 경, 그대는 과연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할 수 있는가?”
레이몬드는 묵묵히 개린슨 백작을 바라보았다.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저는 그걸 증명하러 이 자리에 온 것입니다.”
“……!”
“제가 치료해야 할 환자를 알려주십시오.”
거침없는 레이몬드의 태도에 개린슨 백작은 입술을 꿈틀거렸다.
‘건방진. 두고 보자. 과연 네놈이 지정된 환자를 보고 난 다음에도 그런 건방진 표정을 지을 수 있을지.’
“렉싱턴 거리의 알핀가(家)로 가도록. 그곳에 그대가 치료할 환자가 있다.”
“알겠습니다.”
레이몬드는 고개를 숙이고 등을 돌렸다.
개린슨 백작은 레이몬드의 뒷모습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레이몬드의 당당한 태도가 심기를 건드렸다.
‘건방진 놈.’
개린슨은 놈의 건방진 얼굴에 절망을 심어주고 싶었다.
“환자의 병명이 궁금하지 않은가?”
“무엇입니까?”
개린슨 백작은 회심의 어조로 입을 열었다.
마치 듣고서 겁먹지나 말라는 투였다.
“욕창이네.”
욕창.
그 단어가 퍼지는 순간, 시험장에 한없이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았다.
‘욕창!’
‘승급 시험에서 그런 어려운 질환을 치료하라고 하다니.’
시험관들은 침음을 삼켰다.
모든 시험관이 레이몬드가 치료해야 할 환자의 병명을 알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아직 병명을 모르고 있던 일부 시험관들은 기가 질린 얼굴을 하였다.
‘욕창이면 이 시험은 치르나 마나야! 무조건 떨어질 거야.’
욕창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가?
피부가 짓눌려 생기는 병으로 힐을 쓰면 조금 회복이 되긴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살이 썩고 물러져 끝없이 악화만 되는 병이다.
오죽하면 B+급의 치료사도 실패했겠는가?
그런데 알 수 없는 건, 레이몬드의 반응이었다. 욕창이라는 무시무시한 병명을 들었는데,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묘한. 아리송한 표정이었다.
“……욕창이라고요?”
“그래, 미리 말하지만, 시험 환자를 변경하는 건 절대로 불가하네. 그 환자를 치료하는 데 실패하면 자네는 불합격…….”
“치료하면 합격인 것이지요?”
“……응?”
개린슨 백작은 눈을 크게 떴다.
레이몬드는 전혀 절망한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살짝 반기는 듯한?
심지어 확인하듯 이렇게 묻기까지 했다.
“정말 욕창 환자인 거지요?”
“……그래.”
“그 환자를 치료하면 확실히 합격하는 것이고요?”
개린슨 백작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그래, 그 환자를 치료하면 합격이지만…….”
네놈이 그럴 수 있을 리가 없다! 라고 이야기하려는 순간이었다.
레이몬드는 크게 기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네, 감사합니다! 그러면 환자를 치료하러 가보겠습니다!”
“…….”
그러고 신이 나서 휙 사라진 레이몬드를 보고 시험관들은 멍한 얼굴을 하였다.
“뭐지……? 저건?”
그들은 혼란에 빠져 중얼거렸다.
“……혹시 욕창이 얼마나 어려운 질환인지 모르는 건가?”
“아니면, 좌절해서 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
그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 * *
물론 레이몬드는 욕창이 무슨 질환인지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것도 이 레이펜타이나 대륙의 누구보다도 더 자세히. 확실하게.
‘욕창이라니! 정말 다행이야!’
레이몬드는 개린슨 백작이 들으면 기함할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레이몬드는 진심이었다.
‘어떤 환자가 배정될지 걱정이었는데. 욕창이면 걱정 없어.’
욕창이면 ‘미숙한 레지던트’ 수준의 실력으로도 얼마든지 치료 가능했다!
‘지구’에서도 욕창은 레지던트급에서 전담해 처치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 이유로 힐로는 치료가 쉽지 않은 질환이지. 듣자 하니 B+등급의 상급 힐러도 실패했다고 하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환자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이곳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삐쩍 마른 노인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냄새가 좋지 못합니다. 죄송합니다.”
늙은 환자의 아들, 프랑은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욕창에서 냄새가 난다더니. 확실히 냄새가 심하긴 하네.’
레이몬드는 속으로 생각했다.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과 실제 느끼는 건 천지 차이였다. 역한 느낌이 몰려왔다.
하지만 레이몬드는 그 마음을 겉으로 티를 내지 않았다.
싫어하는 모습을 보이면, 분명 상처 입을 테니까.
“괜찮습니다. 병의 상태가 안 좋으니 당연한 거지요. 환자분께서 많이 고생이실 것 같습니다.”
오히려 환자를 걱정하는 레이몬드의 답에 보호자는 감탄한 얼굴을 하였다.
‘지금껏 다른 치료사들은 모두 인상을 찌푸리기 바빴는데. 다르구나.’
그때, 레이몬드가 물었다.
“부친께서는 거동은 전혀 못 하시는 겁니까?”
“네, 노환으로 기력이 약해지셔서 저렇게 누워만 계신 지 오래되었습니다.”
레이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욕창 환자의 전형적인 경우였다.
“상처 부위를 보겠습니다.”
같이 따라 들어온 고용인이 환자의 몸을 돌려주었다.
엉덩이. 정확히는 꼬리뼈 부위의 살덩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끔찍한 모습이었다.
드러난 속살은 온통 염증이 가득했고, 더럽게 변해 누런 고름이 흘러나왔다. 여기저기가 썩어 검게 변한 부분도 있었다.
‘흐읍.’
레이몬드는 침음을 삼켰다.
생각보다 상태가 더 심했다.
비위가 상해 쳐다보기 힘들었지만, 억지로 참았다.
‘그래도 다행이야. 아직 뼈가 드러나지는 않았어. 이 정도면…… 3등급 수준이야. 내 실력으로도 충분히 치료 가능해.’
만약 뼈가 드러나고 감염이 되면, 치료가 굉장히 까다로워진다. 뼈를 깎아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행히 그런 최악의 상태는 아닌 것 같았다.
‘이 정도 등급이면 관리만 잘해주면 빠르게 회복할 수 있어.’
그때, 보호자, 프랑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 어떻습니까?”
지금껏 숱한 치료사가 실패한 뒤라, 걱정이 심한 것 같았다.
“치료할 수 있습니다.”
“정말입니까?!”
프랑의 눈동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커다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