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196
#닥터 플레이어 196화
겹겹이 쌓인 륜이 막대기 옆을 스쳐 지나갔다.
이윽고, 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음식물이었다.
‘하필, 위치가.’
레이몬드는 침음을 흘렸다.
인간에게는 없는 그리폰의 특유의 기낭(Air-sac)으로 향하는 길에 음식물이 걸쳐 있었다.
‘잘못 건들면 음식물이 기낭으로 향하는 길을 완전히 막아버리거나, 아니면 기관지 더욱 깊숙한 곳으로 파고 들어갈 거야.’
그러면 숨길이 막혀 죽게 될 것이다.
그때, 경고 메시지가 울렸다.
‘할 수 있을까?’
레이몬드는 어쩔 수 없이 그런 걱정이 들었다.
잘못하면 본인의 손으로 상대를 죽이게 되는 것이니까. 망설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때 그리폰의 말이 떠올랐다.
‘나 위대한 그리폰! 널 믿겠다.’
“……!”
레이몬드를 입술을 깨물었다.
‘해내자. 뒤로 물러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야. 사용, 바인드 마법!’
막대기 끝에 매달린 노끈이 살아 있는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법 수준에 비해, 지력 스탯이 ‘무척’ 높습니다!] [마법의 세밀한 ‘응용’이 가능해집니다!]레이몬드는 최대한 집중하여 마법을 펼쳤다.
그리고 이윽고.
질끈.
노끈으로 음식물을 한 바퀴 둘러 묶는 데 성공하였다!
‘이제 이걸 가지고 나와야 해.’
막힌 음식물은 딱딱한 뼈가 아니었다. 잔뜩 씹은 물컹한 고기였다.
따라서 힘을 강하게 주면, 바스러지며 놓칠 것이고, 반대로 힘을 너무 느슨하게 하여도 안 되었다.
레이몬드는 높은 지력을 이용해 가장 적절한 힘을 유지하였다.
그러며 막대기를 뒤로 빼었다.
천천히.
긴장되지만, 서두르지 않고.
이윽고.
[마나가 모두 소모되었습니다! ‘천공의 눈’ 마법이 종료됩니다!]메시지와 함께 시야가 암전되었고.
파앗!
막대기가 입 밖으로 빠져나왔다!
레이몬드는 서둘러 막대기의 끝을 바라보았다.
‘시야가 암전되어 마지막에 보지 못했어. 혹시 음식물을 놓쳤으면?’
다행히 음식물은 막대기 끝에 매달려 있었다.
치료에 성공한 것이다!
‘후아.’
긴장이 풀려 레이몬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폰은 잠시 쿨럭쿨럭 기침하더니 갑자기 돌발 행동을 하였다.
벌떡 일어나더니 커다란 울음을 터뜨리며 입을 쩍 벌리고 레이몬드의 머리를 향해 고개를 숙인 것이다!
“마스터, 안 돼!”
“주군!”
“이놈, 멈춰라!”
모두 깜짝 놀라 달려들었다.
그리폰이 레이몬드의 머리를 씹어먹으려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레이몬드 본인도 놀라 뻣뻣이 굳었다.
‘이 망할 놈이? 살린 은혜를 원수로?’
날름.
하지만 그리폰이 혀를 내밀어 레이몬드의 머리를 핥았다.
[다 좋아졌어! 고맙다! 고마워! 너는 내 은인이다, 매혹이 가득한 인간이여!]잡아먹으려는 게 아닌, 감사의 인사를 하려는 거였다!
레이몬드는 어색하게 뒤로 물러났다. 고마워하는 건 좋았으나, 침은 더러웠다.
‘어쨌든 좋았어! 치료해 줬으니, 이제 약속대로 셔틀로……!’
레이몬드는 ‘내 셔틀이 되어라!’라고 외치려다가 흠칫 멈추었다.
‘잠깐. 그렇게 하는 것보다 이게 낫지 않을까?’
그가 얻은 스킬은 ‘고양이의 유혹’이었다.
즉, 강제로 복종시키는 것보다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 거다.
계산을 끝낸 레이몬드는 그리폰의 털을 어루만졌다. 진심(?)을 담아서.
“이제 괴로운 건 없니?”
“네가 좋아져서 나도 기뻐. 앞으로는 꼭 조심하고. 네가 앞으로 건강하게 사는 것, 그게 나한테 받은 은혜를 갚는 길이니까.”
잘생긴 얼굴과 성스러운 표정, 따뜻한 음성.
그 삼단 콤비네이션이 순진한 그리폰의 마음을 직격했다.
그리폰은 감동한 듯 입을 벌리고 말을 잇지 못했다.
[상대 마수가 당신의 진심을 느껴 완벽한 감동 상태에 빠집니다! 상대 마수의 마음을 완전히 빼앗았습니다!] [스킬, ‘고양이의 유혹’이 성공하였습니다!] [앞으로 상대 마수는 당신에게 절대적인 호의를 바칠 겁니다!]메시지처럼 그리폰이 울먹이며 음성을 보냈다.
[이, 인간들은 항상 우리를 죽이거나 이용하려고만 했는데, 세상에 이런 착한 인간이 있다니…… 나 위대한 그리폰! 앞으로 그대에게 내 마음을 바치겠다!]‘좋았어!’
레이몬드는 주먹을 움켜쥐었고, 그리폰도 만족스러운 울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레이몬드는 귀중한 셔틀을 얻게 되었다.
* * *
이물을 빼낸 그리폰은 완전히 회복되었다.
“혹시 우리를 태워줄 수 있니, 그리폰?”
[물론이다! 싸우라는 것 외엔 네 부탁이면 모두 들어주겠다, 착한 인간!]평화주의자 그리폰이라니. 참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그전에 내 이름을 지어주어라.]“응?”
[넌 내 메이트. 그대가 부를 이름을 지어주어야 한다.]메이트.
그리폰과 감정적 교류를 나누는 라이더를 뜻하는 말이다.
‘이름이라. 뭐로 하지?’
작명에는 재주가 없어 고민하다가 적절한 명칭을 떠올렸다.
“셔트폰. 앞으로 네 이름을 셔트폰으로 할게.”
셔틀과 그리폰을 합친 이름이었다.
그리폰은 만족한 듯 울음을 터뜨렸다.
“……기품보다는 너의 사명과 그리폰을 합친 이름이야.”
[어쨌든 마음에 든다! 고맙다, 착한 인간!]레이몬드 일행은 그리폰에 탈 인원을 추렸다.
‘덩치가 커 5명은 탈 수 있겠구나.’
어차피 그리폰을 타고 한 번에 날아갈 거라 중간에 적을 만날 걱정은 안 해도 되니 엘무드 제외한 호위 인원은 모두 돌려보내기로 했다.
나머지 4명은 레이몬드, 한슨, 크리스틴, 린든이 가기로 했다.
“저, 저는……! 남아서 환자를 치료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린든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무시무시한 마수의 등에 타는 게 두려운 듯했다.
그때, 한슨이 린든의 어깨를 탁 잡았다.
“남은 환자를 걱정하다니, 훌륭히 성장했구나, 린든.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치료원에는 메이, 메리 후배들이 남아 있으니.”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감히 나 같은 게 갈 곳이 아닌 것 같아서……!”
“그래, 부담감이 느껴질 수도 있겠지. 이해해. 무려 죽음의 사신, 천연두를 정복하러 가는 길이니. 하지만 알잖니.”
한슨은 천연두 환자를 걱정하는지 심각한 얼굴을 하고 이는 레이몬드를 힐끗 눈짓했다.
“마스터께서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다는 걸.”
“…….”
“우리는 그저 마스터께서 펼치는 기적에 동행하기만 하면 돼. 그러니 부담감 느낄 필요 없단다.”
‘그게 아니라 그리폰 타는 것 무섭다고요, 이 나쁜 선배야!’
린든은 울상을 지었지만, 더는 아무런 말도 못 했다.
그리폰보다 한슨이 더 무서웠으니까.
“준비됐습니다, 주군!”
엘무드가 외쳤다.
일행의 안전을 위해 안장처럼 몸을 고정할 장치를 설치한 거다.
그리폰의 등에 올라탄 한슨, 크리스틴, 엘무드는 이렇게 다짐했다.
‘마스터와 함께 기적을 이루겠어!’
‘이번엔 나도 내 몫을 하겠어. 마스터 홀로 위험을 감수하게 하지 않겠어!’
‘주군, 어떤 고난이 와도 제가 지키겠습니다!’
그리고 린든과 레이몬드는 벌벌 떨었다.
‘으아아. 하늘 날기 싫어. 떨어지는 것 아니야?’
‘으어어, 이거 생각보다 무섭잖아?’
특히 레이몬드는 그리폰의 몸 위에 오르는 순간 간과한 사실을 떠올렸다.
자신의 겁쟁이 본능을!
빨리 갈 수 있다는 것만 생각했는데, 막상 저 높이 날아오른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막막했다.
[그러면 출발하겠다, 착한 인간이여.]“자, 잠……!”
화악!
그리폰이 커다란 4장의 날개를 움직였다.
후웅!
풍압과 함께 육중한 몸이 떠올랐다.
[간다!]역시 엘더 그리폰!
강렬한 속도로 하늘을 꿰뚫고 쏘아져 나갔다.
“으아악!”
‘아악!’
린든은 소리를 질렀고, 레이몬드는 너무 놀라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다행히 중간에 강철의 심장이 발현되긴 했지만, 두려움을 완전히 없애주진 못했다.
힐끗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가 까마득한 광경을 보고는 눈을 질끈 감고 셔트폰의 깃털을 움켜쥐었다.
‘으아아. 무서워.’
한편, 남겨진 일행은 저 아래서 그런 레이몬드의 모습을 보고는,
“제 주군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멋지군요.”
커다랗게 감탄하였다.
“맞습니다. 전설 속 영웅의 모습 같습니다.”
그리폰을 타고 재앙을 막으러 가다니.
휴스톤 왕국 역사상 어떤 영웅도 레이몬드처럼 멋지지 않았으리라.
특히 환자를 생각하며 결연히 눈을 감은 채 깃털을 쥐고 있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일행은 레이몬드의 영웅적인 모습에 벅찬 경례를 올렸다.
“마제스티 레이몬드!”
“주군의 샤이닝 로드에 경배를!”
그렇게 레이몬드는 그리폰을 탄 채 드넓은 창공을 가로질렀다.
* * *
그때, 드로튼 왕국의 수도 남쪽 지방.
작은 성에서 격한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지금에라도 당장 해당 마을을 소거해야 합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전하!”
드로튼 왕국의 신하들이 열띤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
가장 상석에 앉은 어린 국왕, 마카펠 3세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럴 수는 없소. 그들도 모두 짐의 백성. 헛되이 목숨을 거둘 수는 없소.”
왕관이 커다래 보이는 어린 소년이었지만, 그는 백성을 위하는 확고한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신하들은 쉽게 굽히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입니다. 작은 생명에 연연하다가 수많은 백성이 희생될 수도 있습니다.”
보통의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만약 천연두가 왕국 전역에 퍼지면 수많은 희생자가 생길지 몰랐다.
‘하지만 200명이나 되는 백성인데.’
물론 마카펠 3세도 알고 있다.
200명의 생명을 지키려다가 더 큰 희생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이럴 때는 군주로서 모두를 위해 결단을 내리는 게 옳을 수도 있었다.
아니, 그게 옳을 것이다. 다른 방법이 없다면 말이다.
‘하지만 스승님이 오고 계셔. 스승님만 오시면 모두 살릴 수 있을 텐데.’
마카펠 3세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레이몬드!
휴스톤 왕국의 찬란한 빛!
또한, 그의 은인!
그 레이몬드만 오면 천연두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승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어. 자신이 천연두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마카펠 3세는 레이몬드의 말을 누구보다도 굳게 신봉했다.
“아니, 소거는 하지 않겠습니다.”
“전하!”
“일전 지시했던 대로 최고의 격리 태세를 유지해 주십시오. 마을 근방 10㎞ 안에 모든 사람을 퇴거하고 누구도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감시해 주십시오. 이후, 페닌 후작을 기다리겠습니다.”
사실 레이몬드의 지시에만 따라도 마을 밖으로 전염이 퍼질 일은 없었다.
천연두는 사람 간의 전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하들은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페닌 후작의 능력은 물론 압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 라팔드 지방에 있습니다! 이곳까지 오는 데 한참은 걸릴 겁니다.”
“그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