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207
#닥터 플레이어 207화
‘그 전에 해야 할 게 있지만.’
레이몬드는 책상에 앉았다.
수많은 일을 하면서 쓰러질 듯 몸이 피곤했지만,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학술 업적 달성이었다.
‘시간이 많지 않아.’
그는 지금 ‘의술의 탑’에 심사 유예 상태이다.
재심사 기간이 끝나기 전에 커다란 학술 업적을 만들어야 했다.
‘반드시 로열 등급을 받아야 해.’
레이몬드는 집필하던 내용을 힐끗 바라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지금 쓰는 내용이 어느 정도의 파문을 낳을지 자신은 없었다.
불안감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저 최대한의 성과가 나오도록 노력할 수밖에.
늦은 밤까지 집필하다가 졸음을 못 이겨 스르르 책상에 잠이 들었다.
한편, 그런 레이몬드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휴스톤 왕국 정계의 귀족들이었다.
그들은 레이몬드가 해내고 있는 일들을 보며 모두 경악하였다.
* * *
레이몬드는 모르고 있었지만, 휴스톤 왕국 정계의 귀족들은 레이몬드의 행보 하나하나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었다.
리머튼 때문이었다.
‘레이몬드가 제대로 된 통치를 해낼 리가 없다!’
리머튼이 이런 악의적인 소문을 잔뜩 퍼뜨렸던 것이다.
실제로 레이몬드가 제후로서 어떤 통치력을 보일지는 다들 의문이었다.
‘여러 공을 세우긴 했지만, 과연 페닌 후작이 제대로 된 통치력을 보일 수 있을까?’
레이몬드는 사생아다.
사생아라 폄훼하는 게 아니라, 명문 귀족이나 정식 왕족들처럼 제대로 된 가르침을 받을 기회가 없었단 것이다.
통치는 단순히 공을 세우는 것과는 다르다.
깊은 학식과 현안이 필요하니 레이몬드가 잘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야말로 완벽하지 않습니까? 라팔드 지방의 백성이 페닌 후작을 완전히 신봉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보셨습니까? 새로 발표한 라팔드 지방의 법령입니다. 그간의 폐단을 없애고, 효율적으로 바꾸었는데, 그야말로 훌륭합니다. 오히려 우리가 참고해야 할 게 많습니다.”
참고로, 이건 메빈슨이 해낸 업적이었다.
처음 등용되었을 때부터 초안을 마련해 이번에 발표한 것이다.
레이몬드는 손 하나 안 대었지만, 원래 수하의 업적은 주군의 업적.
귀족들은 레이몬드의 업적이라 여겼다.
실제로 레이몬드가 메빈슨을 밀어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업적이었을 테니 완전히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더구나 운하 개발이라니요. 개통하면 휴스톤 왕국 교역 시장에 어마어마한 격변이 있을 겁니다.”
“가장 큰 수혜는 라팔드 지방이 보겠지요. 라팔드 지방은 휴스톤에서 가장 부유한 지방이 될 겁니다.”
“백신 사업은 어떻습니까? 대륙 전체를 뒤흔들지도 모릅니다.”
치유의 탑은 레이몬드의 천연두 백신을 부정하였지만, 휴스톤 왕국 사람들은 아니었다.
휴스톤 왕국 사람들은 레이몬드가 지금껏 숱하게 전염병을 해결하는 걸 목격했다.
그러니 이번 천연두 백신도 거짓이 아닐 거라고 여겼다.
“정말…….”
“이건 부정할 수가 없군요. 완벽합니다.”
그 감탄은 계파를 가리지 않았다.
카이른파든, 중립파든, 심지어 리머튼파든.
식견이 있는 이라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업적들이었으니까.
‘반면, 리머튼 전하는 무리한 공사를 진행하다가 파면당하셨지.’
귀족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티류 지방에 물난리를 안정시키러 간 리머튼은 공적 욕심에 눈이 멀어 무리한 공사를 진행했다.
반복적인 물난리가 나는 티류 지방에 거대 제방을 쌓으려고 했던 거다.
공사의 의도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반드시 필요한 공사였으나, 문제는 시기였다.
당장 눈앞에 먹을 식량이 부족한 이들에게 무리한 공사를 시켰으니 원성이 하늘을 찔렀고, 오든은 리머튼을 관리관에서 파면시켰다.
‘이로써 리머튼 전하는 왕위에서 확실히 멀어졌군.’
‘페닌 후작만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어.’
많은 귀족이 다음과 같은 말을 삼켰다.
‘페닌 후작이야말로, 그 어떤 왕자보다 완벽하지 않은가?’
함부로 입 밖에 꺼낼 수 없는 이야기였다.
2왕자 카이른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번 일로 자명해졌다.
레이몬드의 능력이 그 어떤 누구보다도 뛰어나단 것을. 통치 분야에서도 말이다.
이제 누구도 레이몬드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국왕 전하께서는 어떤 생각이신 거지?’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은 그런 의문을 품었다.
국왕 오든이 레이몬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는 모두의 궁금증이었다.
‘단순히 제후로?’
‘더 너머를 생각하고 계신 건 아니겠지?’
하지만 어째서인지 국왕 오든은 어떤 이야기도 없이 자신의 거처에서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단순히 레이몬드에 대해 입을 다문 게 아니다.
재상 갈먼을 대리인으로 세운 채 어떤 공식 행사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신 거지?’
의아함이 정계에 퍼졌다.
* * *
한편, 레이몬드는 자신에 대한 그런 이야기 따윈 신경도 쓰지 못했다.
바로 학술 업적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뭘 집필하고 계신 거예요, 마스터?”
크리스틴이었다.
그녀는 30만 페나를 구해 돌아온 후 페닌 치료원의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아, 제자님.”
레이몬드는 퀭한 눈으로 답했다.
“치유의 탑에 발표할 학술 자료입니다.”
“그 많은 게요?”
크리스틴은 놀란 얼굴을 했다.
논문 수준이 아니었다.
거의 책이었다.
“네, 내용이 조금 많아서…… 그게…… 그러니까…….”
레이몬드는 말을 하다가 끔뻑 졸았다.
참고로 지금 그의 체력 스탯은 85!
어마어마하게 강한 체력을 지니게 되었지만, 최근에는 그런 체력으로도 버티기 힘들 정도로 강행군이었다.
얼마나 강행군이냐면, 중간에 라이프 공작이 한번 찾아왔다가 고개를 절레절레했을 정도였다.
‘도저히…… 가르침을 내릴 상황이 아니군.’
라이프 공작은 예상외로 꼬장꼬장한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오히려 레이몬드가 해내고 있는 일들을 보면서.
‘역시 이 라이프의 제자답군. 힘내거라, 내 자랑스러운 제자야.’
이러고 돌아갔다.
‘하아.’
크리스틴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레이몬드가 저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자신의 무력함에 화가 났다.
‘난 도대체 언제 완벽히 ‘의사’ 수준이 될 수 있는 거야?’
페닌 치료원의 제자 중 가장 뛰어난 건 바로 크리스틴이었다.
그 뒤 한슨, 린든, 메이, 메리 자매가 뒤를 잇고 있다. 그중 메이, 메리 자매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 괄목한 성장을 이루어 앞선 3명에 육박하는 수준이 되었다.
레이몬드는 현재 크리스틴, 한슨, 린든 3인방의 수준을 의대 ‘졸업반’ 급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그중 크리스틴의 실력은 ‘졸업반’ 학생 중 ‘수석급’에 비할 만했다.
초보 의사가 되기에 필요한 지식을 갖추긴 했지만, 아직 정식 의사가 되기에는 살짝 모자란.
그게 그녀의 실력이었다.
‘모라자. 턱없이.’
물론 레이몬드는 어마어마한 속도라며 그녀에게 거듭 감탄하였다.
실제로 벌써 졸업반 급이라니. 주요 제자들의 성장 속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크리스틴은 커다란 초조함을 느낄 뿐이었다.
‘내가 어서 더 힘이 되어야 할 텐데.’
지금 레이몬드는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낮에는 제후로서 백성을 위해 일한다.
이후 제후의 일정이 끝나면 바로 페닌 치료원에 와서 환자들을 치료한다.
제자들이 일차적으로 환자들을 먼저 본 후, 치료하기 어려운 환자들은 밤에 레이몬드가 치료하는 식으로 하고 있었다.
거기에 교육까지!
어지간히 심각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으면, 레이몬드는 교육을 빼먹으려 하지 않았다.
‘제자들이 얼른 커야 나 대신 돈을 벌어주지!’
이런 마음이었지만, 퀭한 얼굴의 레이몬드를 볼 때마다 크리스틴은 화가 났다.
다 그녀가 부족한 탓이다.
그녀가 어서 성장해야 레이몬드의 짐도 덜어질 거다.
‘성장할 거야. 언젠가 그의 곁에 당당히 설 때까지.’
이렇게 뒤꽁무니만 따라갈 생각 따위 없었다.
진정한 그의 협력자가 될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고, 라팔드 지방은 ‘마제스티 레이몬드, 그레이트 라팔드!’를 외치며 거센 부흥의 날갯짓을 하였다.
이윽고 레이몬드의 집필이 완료되었다.
.
그의 학술 발표 제목이었다.
* * *
레이몬드가 준비한 발표 내용은 다름 아닌, 힐과 의학을 접목하는 새로운 치료법이었다.
‘그간 나는 힐의 효용을 계속 간과했어.’
힐을 무시한 건 아니다.
힐은 분명한 치료 효과가 있다.
다만, 레이몬드 본인이 낮은 등급의 힐밖에 사용하지 못하다 보니 힐을 더 적극적으로 사용할 생각을 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이제는 다르니.’
레이몬드는 손을 펼쳐 보았다.
파앗!
환한 빛이 주변에 퍼졌다.
B+등급에 달하는 힐이었다!
지난번 마정석 광산 사태 이후 마나 스탯이 50이 넘으며 힐의 등급이 대폭 오른 것이다.
‘조금만 더 마나 스탯을 쌓으면 A등급의 힐도 가능할 거야.’
상급의 힐을 사용할 수 있으니 힐에 대한 인식도 많은 부분에서 달라졌다.
‘의술과 함께 병용하면 힐은 최고의 치료 효과를 낳을 수 있어.’
혈압이 떨어진 패혈증 환자에서 항생제와 에피네프린만 쓰는 것보다 힐을 병용하면 생존율을 더 높일 수 있을 거다.
큰 수술 후 힐을 같이 쓰면, 회복을 더 빠르게 할 수 있을 거고.
그렇게 힐은 의술의 부족한 부분을 메꿔줄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의술보다 힐이 더 효과적인 치료도 있고.’
예를 들어 정형외과 부분.
골절일 때는 의술보다는 힐이 훨씬 더 빠르고 효율적이었다.
다만, 이것도 개선의 여지는 있었다.
‘무작정 힐을 때려 넣는 게 아니라, 뼈를 올바른 방향으로 고정 후 힐을 사용하면 훨씬 더 확실히 아물 수 있어.’
기존에는 뼈가 어긋난 상태로 힐을 사용해 엇나간 상태로 뼈가 아물거나 하는 일이 흔했다.
이런 부분을 개선하면 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거다.
“마스터, 그러면 이 저술의 내용은?”
한슨이 물었다.
“응, 힐과 의술을 접합해 환자를 보다 효율적으로 치료할 방법을 기술한 거야.”
레이몬드는 생각했다.
‘이 내용이 발표되면, 치유의 탑에 난리가 나겠지.’
이건 힐의 근간을 뒤흔드는 발표였다.
치료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지고한 힐을 다른 치료와 동급으로 놓은 것이니까.
어마어마한 파문이 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