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23
#닥터 플레이어 23화
우지끈!
갑작스레 나무로 만든 창문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부서져 버린 것이다!
“……?!”
“차, 창문이?!”
레이몬드와 한슨은 마른하늘에 떨어진 날벼락에 혼비백산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주먹 반만 한 돌이 창문을 부수고 건물 안에 나뒹굴고 있었다.
“이건…….”
레이몬드의 안색이 하얘졌다.
습격이었다!
누군가 일부러 돌을 집어 던진 것이다!
‘누가? 어째서?’
레이몬드는 혼란에 빠졌다.
그때, 한슨이 다시금 비명을 질렀다.
“서, 선배?! 이것 보십시오!”
문밖으로 나가니, 더욱 경악스러운 일이 펼쳐져 있었다.
대문에 그려진 치료의 지팡이 마크에 새빨갛게 ×자 표시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밑에 문구가 적혀 있었다.
[여기는 애송이들의 놀이터가 아니야.] [죽고 싶지 않으면 꺼져.]마치 피로 쓴 듯 섬뜩한 새빨간 문구였다.
“…….”
레이몬드는 우뚝 입을 다물었다.
뭔가 상황이 뜻하지 않게 흘러가고 있었다.
* * *
“당장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선배! 위험해요!”
한슨은 다급하게 외쳤다.
눈앞에서 이런 꼴을 보았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레이몬드도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에 동의했다.
‘예상보다 사람들의 반응이 훨씬 적대적이야. 이대로 있다면,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겠어.’
누누이 말하지만, 이곳 빈민가는 치안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다.
적개심을 품은 누군가가 해코지를 하려 하면 위험한 상황이 생길 가능성이 충분했다.
솔직히 말해 떠나는 게 현명할지도 모르는 상황.
하지만 레이몬드는 굳게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나는 떠나지 않겠어.”
“선배?”
“네 말대로 위험할 수도 있으니, 한슨 너는 떠나도 좋아. 아니, 그냥 나 혼자 남을 테니, 너는 짐을 싸 떠나.”
한슨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레이몬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나도 무섭고 떠나고 싶지.’
강심장과는 거리가 먼 레이몬드였다.
피로 쓴 듯 새빨간 경고 문구를 보고 나니, 심장이 지금도 벌렁벌렁했다.
하지만 그렇게 떨림에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치료원 차리려고 힐러 론에서 엄청 대출받았단 말이야. 이대로 떠나면, 난 망해.’
레이몬드는 울상을 지었다.
무일푼인 그가 무슨 돈이 있어서 건물을 구하고, 약초, 치료 도구를 비치했겠는가?
모두 힐러 론의 대출이었다.
‘젠장, 건물 사고, 리모델링하는 데 돈 엄청 깨졌는데. 약초를 되판다고 해도 메꿀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레이몬드는 손톱을 깨물었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이자가 붙고 있는데. 무조건 성공해야 해.’
돈 때문에 못 떠난다니 뭔가 웃기고 슬픈 이야기였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힐러 론은 후하게 대출을 해주지만, 이율은 악마 같다.
특히 연체되기 시작하면, 힐러 론이 아닌, 악마 론이 된다.
‘힐러 론 놈들은 치료사를 어떻게든 갈아서 돈을 갚게 만들어. 어떤 끔찍한 꼴이 될지 모르니, 반드시 성공해 돈을 갚아야 해.’
그때, 메시지가 떠올랐다!
[난국을 맞닥뜨려 퀘스트가 주어집니다!] [빈민가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켜라!](인술 퀘스트)
선행도 : 중의(中醫)급
난이도 : 중
퀘스트 설명 : 외부의 악의에 오랜 기간 상처받아온 빈민가 사람들의 마음은 딱딱히 굳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십시오!
클리어 조건 : 빈민가 사람들의 호의를 얻어라
보상 : 보너스 레벨 업, 스킬 포인트 30점
레이몬드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퀘스트가 아니더라도, 반드시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망할 수는 없으니까!
“고작 위협 한 번 받았다고 물러날 수는 없어. 난 남아 있을 테니, 한슨 너는 떠나.”
“…….”
왜일까?
한슨은 입을 꾹 다물었다.
“……어째서 그렇게 빈민가의 환자를 위하는 겁니까?”
무언가 오해한 듯한 물음이었다.
“응? 아닌데? 나는 떠날 수가 없는 사정이 있어서…….”
“빈민가의 환자를 생각해 위험을 무릅쓰려는 것 압니다. 저도 함께 남겠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정말로 난…….”
고개를 저었지만, 한슨은 ‘선배의 진심. 다 알고 있습니다’라는 얼굴이었다.
……오해해도 단단한 오해에 빠진 것 같아 레이몬드는 헛기침을 하였다.
‘어쨌든 그게 지금 중요한 건 아니고.’
레이몬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배?”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상황이 더 악화하기 전에 움직이자.”
가만히 앉아서 기다려 봤자, 상황이 풀릴 가능성은 없다.
오히려 뒤에서 점점 여론이 악화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겠지.
그러니 이럴 때는 선제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절대 이대로 주저앉아 망하지 않겠어.’
레이몬드는 굳게 다짐했다.
고작 이딴 난관 따위.
훗날 누릴 부귀영화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극복해 줄 수 있었다.
반드시 성공의 열매를 움켜쥐고 마리라!
* * *
“어디로 가는 겁니까?”
“빈민가 중심부의 광장.”
둘은 옷 안에 갑옷을 단단히 챙겨 입고 치료원을 나왔다.
“광장이면 사람들이 많아 위험하지 않습니까?”
“아니, 사람이 많아 오히려 괜찮아. 인적 없는 골목길보다 훨씬 나아.”
그렇게 이야기하는 레이몬드도 두려운 마음이 드는 건 마찬가지였다.
‘체인 메일 잘 입혀져 있지?’
레이몬드는 옷 안에 느껴지는 쇠사슬 갑옷의 감촉에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로 돌발 상황이 생기면 체인 메일이 무슨 도움이 될까 싶지만, 그래도 뭔가 마음의 안도가 되었다.
‘어떻게든 빈민가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켜야 해.’
레이몬드는 숨을 들이켜고는 광장에 도착했다.
광장에 있던 빈민가 사람들은 갑자기 나타난 레이몬드를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다.
“누구지?”
“이번에 저기 치료원을 차리겠다고 온 귀족 나리인 것 같은데? 귀한 귀족 나리께서 이런 더러운 곳에는 왜 온 거야?”
사람들의 눈빛이 적대적으로 변했다.
“치료원을 차린다고? 이런 곳에? 왜? 무슨 이유로?”
“또 무슨 남들에게 보여주기식 선전 같은 것 하려고 온 것 아니야? 그 있잖아. 예전에 왔던 왕자님들처럼 말이야.”
“여기를 놀이터로 아는 건가?”
날카로운 시선들이 레이몬드에게 꽂혔다.
쿵. 쿵.
긴장감에 레이몬드의 심장이 요동을 쳤다.
적대 어린 시선을 마주하니,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잘해야 해. 기회는 이번 한 번뿐이야. 이번 기회를 놓치면 더는 귀를 기울이지 않을 거야.’
여기서 물러나 쫄딱 망하면 악마 론의 노예가 되어 또다시 야채 수프 신세를 벗어나지 못할 거다.
그런 생각을 하니, 용기가 솟아올랐다.
레이몬드는 주먹을 불끈 쥐고, 앞으로 나섰다.
천만다행으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빈민가 환자 진료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스킬, 강철의 심장이 발현합니다!]가슴이 한결 진정되었다.
두려움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그걸 극복할 의지가 솟아났다.
“오랜만입니다. 저 레이몬드입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레이몬드.
이곳에서 오래 살았다면 모를 수 없는 이름이었다.
“레이몬드……?”
“정말 그 꼬마 레이몬드라고? 왕성에 간?”
사람들은 레이몬드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많이 변하긴 했지만, 어린 시절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
특히 선명한 에메랄드빛 눈동자는 레이몬드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아 모두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됐어! 다행히 날 기억하고 있어.’
레이몬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과거의 기억이 있으니, 지금처럼 무작정 적대하려고 하지는 않을 거다.
‘일단 추억 팔이 작전으로 간다!’
“오랜만에 베이 구역에 오니, 마치 고향에 온 것 같아 너무 좋네요. 저 뒷골목에서 밥 아저씨랑, 톰 아저씨한테 개처럼 얻어맞던 게 엊그제 같은데…… 하하…… 하.”
그렇게 최대한 추억을 담아 이야기해 보았지만, 불행히도 사람들의 반응은 썩 좋지가 않았다.
“…….”
아무도 레이몬드의 이야기에 답을 하지 않았다.
여전히 모두 싸늘한 눈빛이었다.
그때, 누군가 앞으로 나서며 냉랭히 말했다.
“이곳에 왜 돌아오신 겁니까?”
“……!”
“당신은 고귀한 왕족 아닙니까? 그런데 왜 이런 더러운 곳에 돌아온 겁니까?”
그 물음을 듣는 순간, 레이몬드는 적개심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었다.
‘빈민가 사람들은 이제 날 친근했던 꼬마 아이가 아니라, 왕의 자식으로 여기는구나.’
생각해 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가 빈민가를 떠난 지 무려 15년이 훌쩍 넘었으니까.
추억 속 친근함이 사라지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물론 레이몬드는 고귀한 핏줄은커녕 사생아로 온갖 핍박만 받았지만, 일반 평민도 아니고, 외부와 단절된 빈민가 사람들이 그런 복잡한 사정을 알기는 만무했다.
무지한 빈민가 사람들이 보기에 레이몬드는 다른 귀족, 왕족들과 똑같아 보일 뿐이었다.
‘아니, 난 왕족이 아니라 사생아로 구박만 받았는데. 이게 무슨 억울한 오해야.’
갑자기 울분 섞인 억울함이 불끈 치솟아 올랐다.
그때, 사람들이 말했다.
“무슨 생각으로 오셨는지는 모르지만, 돌아가십시오. 이곳은 당신같이 고귀한 분의 놀이터가 아닙니다.”
레이몬드는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
“전 이곳을 놀이터라고 생각하고 온 것이 아닙니다.”
추억 팔이 작전은 실패니, 이제는 정공법밖에 남지 않았다.
레이몬드는 이를 악물며 말을 이어갔다.
“감히 어찌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전 환자를 치료하러 이곳에 온 겁니다.”
[환자를 위한 호소로 ‘언변’ 스킬이 발휘됩니다!] [환자를 위한 의지가 언변에 실립니다!] [강철의 심장 스킬과 시너지 효과를 이룹니다!]강철의 의지가 언변에 실렸다.
레이몬드의 음성이 묵직해졌고, 비웃음을 던지던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움찔하였다.
“환자를 치료하러 왔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전 가벼운 마음으로 이곳에 온 게 아니라, 이곳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 온 것입니다.”
사람들이 서로를 보며 술렁거렸다.
냉랭히 무시하기에는 레이몬드의 음성에 담긴 의지가 굉장히 굳건했다.
“……어째서 이곳 사람들을 치료하러 온 겁니까?”
“이곳 말고 더 좋은 환경에서 환자를 치료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레이몬드는 속으로 생각했다.
‘레벨 업 하려고.’
하지만 그렇게 답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키는 게 우선이니, 레이몬드는 적당히 진실을 섞어 말하기로 하였다.
“물론 저는 이곳 말고 훨씬 좋은 환경에서 환자를 치료할 수 있습니다. 원한다면, 최고의 치료원에서도 일할 수 있고요.”
“그런데 왜 이런 빈민가에? 어떤 치료사도 이곳에 오려고 하지 않는데?”
“그게 이유입니다.”
“……네?”
레이몬드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언변 스킬 덕분인지, 자연스레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그 어떤 치료사도 오지 않으려고 하기에. 그래서 온 것입니다.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고통받는 여러분을 치료해 드리고 싶어서요.”
“……!”
“가난한 이도 아픈 건 똑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
“전 고작 가난하다는 이유로! 힘이 없고, 신분이 천하다는 이유로 아무런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이가 없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이곳에 온 겁니다. 다른 이유는 없으니, 오해하지 말아주십시오.”
말을 마친 레이몬드는 슬그머니 사람들의 눈치를 살폈다.
‘괜찮나? 너무 오버해서 이야기했나?’
다행히 괜찮은 것 같다.
언변 스킬의 도움으로 한 문장, 한 문장 마음이 담긴 덕인지, 적잖은 사람이 감화한 얼굴이었다.
심지어 한슨마저 감동해 이렇게 중얼거렸다.
“선배…… 당신은 어떻게 그런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