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235
#닥터 플레이어 235화
감옥에 갇힌 알프레드는 모든 걸 털어놓았다.
카이른이 독을 주었고, 이번 사건을 뒤에서 부추겼음을 고백했다.
‘공작 살해를 교사한 거니, 왕자라도 충분히 목을 매달 수 있는 죄목이야.’
실제로 지금 수도에서는 로열 나이츠가 나서서 카이른을 감옥에 처넣고 있었다.
카이른은 정식 절차를 거친 후 교수대에 매달리리라.
“그런데 국왕 전하께서 아직 의식을 못 차리셔서 놈을 어떻게 처단하죠?”
왕국 법상 왕족을 재판할 권한은 국왕밖에 없다.
국왕 대행도 안 된다.
오로지 국왕만이 가능하다.
‘세이틸 때와는 다르지. 이번엔 피의자가 왕족인 경우니까.’
문제는 국왕 오든이 언제 의식을 차릴지 모른다는 거다.
곧 깨어날 거로 예상했는데, 계속해서 그 기간이 늘어나고 있었다.
한없이 기다릴 수는 없는 법.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한 가지 예외적 방법이 있습니다. 조만간 있을 귀족 대회의 때 카이른 놈을 처단할 안건을 올리면 됩니다.”
크리스틴은 눈을 크게 떴다.
귀족 대회의!
건국왕 때부터 내려온 전통으로 왕국 상위 30명의 귀족과 왕족들이 모여 대소사를 결정하는 대회의다.
이때 결정한 안건은 국왕도 번복하지 못한다.
‘왕가의 전횡을 막기 위한 제도라 죄를 지은 왕족을 처벌할 안건을 건의할 수도 있어.’
즉, 국왕의 판결 없이 왕족을 처벌할 유일한 방법이었다.
“과연 그렇게 하면 카이른 놈을 처형할 수 있겠네요.”
“네, 맞습니다.”
레이몬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생각했다.
‘난 이제 뒤로 빠지고, 카이른을 처형하는 일은 소피아에게 맡겨야지.’
레이몬드는 생각했다.
‘소피아를 왕세녀로 만들어야 해.’
사실 레이몬드는 최근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러다가 정말 왕위계승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말이다.
‘소피아에게 미룬다고 쉽게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레이몬드는 식은땀을 흘렸다.
‘날 지지하는 목소리가 너무 커.’
사실 얼마 전 세이틸 사건 때 레이몬드는 깜짝 놀랐다.
설마 자신을 위해 그렇게나 많은 백성이 들고 일어서다니.
본인의 인기가 많은지는 원래 알고 있었지만, 열기가 지나치게 과했다.
‘백성들뿐이 아니야. 귀족들이 날 지지하는 기세도 심상치 않아.’
어느덧 돌이켜 보니 그를 지지하는 세력이 장난 아니게 커진 상태였다.
일단 그의 영역인 라팔드 지방.
중앙의 갈먼 공작 일파.
남부의 라이프 공작.
서쪽의 테른 후작.
그리고 이번 일로 래번 공작까지 그를 지지하게 되었다.
사실상 북부를 제외하고는 왕국 대부분 귀족의 지지를 받게 된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거야.’
레이몬드는 떨떠름한 얼굴로 생각했다.
그는 환자를 치료하고 돈을 벌려 애썼을 뿐인데, 지나고 보니 이렇게 되어버렸다.
‘물론 앞으로 돈 벌 일을 생각하면 귀족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게 좋긴 하겠지만.’
문제는 왕위 계승이었다.
이러다가 소피아 말고 그가 왕위 계승자가 될 위험성이 상당했다.
‘안 돼! 난 그냥 꿀 빠는 힐러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릴 거야!’
지난번 생각했던 것처럼 그는 왕이 될 생각이 없었다.
그의 목표는 대륙 최고의 힐러.
그래서 대륙 최고의 부귀영화를 누리는 거다.
‘더 사람들 앞에 나서진 말자. 이제 모든 일은 소피아에게 맡기는 거야.’
그런 의미에서 이번 귀족 대회의는 굉장히 중요했다.
소피아가 왕국의 대귀족들 앞에서 카이른을 처단하면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으리라.
귀족들 앞에서 차기 왕위 감으로 눈도장 찍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럴 수 있도록 나는 조용히 있어야 해. 어떤 존재감도 드러내지 않고.’
레이몬드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귀족 대회의.
마지막 고비였다.
그때만 잘 넘기면 이제 그는 대륙 최고의 힐러의 길에 매진할 수 있으리라.
대륙 최고의 힐러의 길과 함께 펼쳐질 부귀영화의 꽃길을 기대하며 속으로 외쳤다.
‘소피아 파이팅!’
레이몬드는 크리스틴과 함께 셔트폰에 올랐다.
어떻게 소피아를 왕위에 올리고 자신은 부귀영화를 누릴지 고민하려고 눈을 질끈 감았고, 그런 그의 엄숙한(?) 모습에 공작령의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저분이야말로 우리 휴스톤의 빛이야!”
“감사합니다, 빛이여!”
“앞으로 온 휴스톤에 빛을 내려주소서!”
그 함성을 뒤로하며 셔트폰이 날갯짓을 하였다.
* * *
이번 래번 공작 독살 사건은 휴스톤 왕국 전체에 어마어마한 파문을 일으켰다.
왕국 최고 귀족이 독살당할 뻔한 사건이니까.
사건을 해결한 레이몬드를 칭송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대체 그분께 우리는 얼마나 큰 빚을 진 것인지?”
“말해서 뭐 하겠나? 셀 수도 없는데.”
“심지어 이번에 그분은 자신은 아무런 공도 없다며 겸양했다지 뭔가?”
감탄, 경악, 감동.
왕국 백성들 모두가 레이몬드의 이름을 높여 불렀다.
“이제 그분은 라팔드의 빛이 아니야.”
“맞아, 우리 거야! 우리 휴스톤의 빛이야!”
광장에서는 음유 시인 죠셉이 레이몬드를 칭송하는 노래를 불렀다.
아니, 죠셉뿐이 아니었다.
레이몬드 찬미가(讚美歌)는 휴스톤 왕국 음악계의 트렌드였다.
일단 청중들이 가장 좋아했다.
떠돌이 음유시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레이몬드의 업적을 노래했고, 음악계의 거장들도 레이몬드를 소재로 한 영웅 서사시 작곡에 골똘했다.
덕분에 메시지가 끝없이 울려 퍼졌다.
[당신의 업적을 수많은 사람이 칭송합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새로운 칭호를 획득합니다!] [칭호 : ‘휴스톤의 은인(中)’이, ‘휴스톤의 광명’으로 진화하였습니다!] [휴스톤의 광명]설명 : 휴스톤의 찬란한 빛에게 주어지는 칭호
칭호 등급 : 왕국급
부가 효과 :
– + 이전 칭호 효과 유지.
-휴스톤 왕국 모든 백성이 당신과 함께한다는 사실에 행복을 느낍니다!
-휴스톤 왕국 모든 백성이 당신을 강렬히 지지합니다!
-휴스톤 왕국 모든 백성이 당신을 강렬히 바랍니다!
-휴스톤 왕국 모든 백성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휴스톤 왕국 내 당신의 적들은 강렬한 압박을 받게 됩니다!
레이몬드는 입을 다물었다.
무언가 칭호 효과가 많았는데, 하나같이 다 쓸데없는 효과들이었다.
‘……이딴 것 필요 없으니 인제 그만 좀 쌓여, 명성.’
소피아 국왕 만들기 프로젝트에 점점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경쟁자(레이몬드)가 너무 강력했다.
‘아니야. 방법은 있어.’
레이몬드는 굳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결국, 왕위를 결정하는 건 백성들의 지지가 아니다.
왕국을 움직이는 이들.
국왕과 고위 귀족들이다.
‘모든 승부는 귀족 대회의 때 달렸어.’
마침 귀족 대회의가 있어 다행이었다.
‘고위 귀족이 모두 모이는 자리이니 거기서 소피아를 최대한 부각하면 돼.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해 보자.’
레이몬드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 * *
한편, 그때 카이른은 비참한 처지로 몰락하고 있었다.
왕성에서 도망쳐 인근 비처로 도망간 그는 평소와 다르게 완전히 흐트러진 모습으로 통신 수정구를 향해 외치고 있었다.
“제길! 도와준다고 하지 않았나! 날 도와줘! 제발!”
하지만 통신구는 답이 없었다.
카이른은 발악하듯 외쳤다.
“날 도와주지 않으면 너희의 존재를 모조리 폭로할 거다! 십자연맹제국의 모든 이가 너희의 존재를 알 게 하겠어!”
그제야 답이 들렸다.
-……기다려라. 방법을 강구 중이니.
카이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때, 문이 거칠게 열렸다.
로열 나이츠가 결국 여기까지 들이닥친 거다!
“카이른 전하. 당신을 래번 공작 각하 살해를 교사한 죄목으로 압송하겠습니다.”
카이른은 저항하지 않았다.
아직 희망은 있었다.
‘레이몬드, 이대로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라.’
카이른은 끌려가며 섬뜩하게 눈을 빛냈다.
* * *
카이른과 나누었던 통신 수정구 너머.
수 없는 건물이 놓인 장소에서 한 인물이 싸늘한 비웃음을 지었다.
“건방진 놈. 핏줄 외에 어떤 것도 내세울 게 없는 놈이 감히.”
그렇게 말하는 이는 ‘마에스트로’.
마정석 광산 때부터 계속해서 레이몬드와 충돌해 온 이였다!
“제깟 게 뭐라도 되는 줄 안다고. 하찮은 패에 불과한 주제에.”
하찮은 패.
그게 ‘그들’이 카이른을 보는 시선이었다.
‘어쨌든 문제군. 이대로 휴스톤 왕국을 포기할 수는 없는데.’
그는 조직의 ‘마에스트로’로서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프로젝트의 완성을 위해선 휴스톤 왕국을 손에 넣는 건 반드시 필요해. 문제는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건데.’
특히 가장 큰 걸림돌은 레이몬드 놈이었다.
예상보다 놈의 능력이 뛰어났다.
지나치게.
‘놈을 회유해 볼까?’
마에스트로는 생각했다.
놈을 그들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면 커다란 힘이 되리라.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놈은 어떤 욕심도 없는 순수한 성인(聖人)이야. 회유할 수 없어.’
만약 놈이 다른 이처럼 바라는 탐욕이 있다면, 그들은 얼마든지 제공해줄 수 있었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부귀영화. 최고의 명예, 권력까지 말이다.
그들은 그만한 힘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쉽게도 그들이 파악하기에 레이몬드 놈은 어떤 욕심도 없이 남들만을 위하는 진정한 성인(聖人)이었다.
‘아쉽군.’
‘마에스트로’는 혀를 찼다.
레이몬드 같은 부류가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남들만을 위하는 맹목을 지닌 이들을 어떤 타협도 통하지 않으니까.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야. 놈을 제거해야 해.’
사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들의 힘은 단순히 ‘비술’만이 아니었으니까.
‘물리적’ 힘을 동원하면 레이몬드 따위 얼마든지 제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놈 하나를 제거한다고 해결될 상황이 아니야.’
카이른은 지나치게 궁지에 몰렸다. 레이몬드가 없어져도 왕위에 오르지 못할 거다.
마에스트로는 고민에 잠겼다가 곧, 시커멓게 웃었다.
“귀족 대회의를 노리면 되겠군. 그때 카이른의 반대파를 모조리 죽이면 되겠어. ‘신의 분노’를 가장해서 말이야.”
섬뜩한 이야기였다.
신의 분노.
갑작스러운 재앙을 뜻하는 용어다.
즉, 그는 귀족 대회의 때 ‘신의 분노’를 가장해 대참사를 일으키겠다는 거다!
‘이런 방법이 아니라면, 카이른이 왕위에 오를 방법은 없어.’
물론 과도한 방법인 건 알았다.
만약 일이 어긋나면 파장이 어마어마하리라.
‘신중을 기해야겠지. 반드시 성공해야 해.’
문제는 역시 레이몬드 놈이다.
놈이 또 일을 망쳐놓을 수 있었다.
‘가장 최선은 놈이 신의 분노가 내릴 당시 귀족 대회의 장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거겠지.’
마에스트로는 음험한 책략을 짜냈다.
‘차선은 놈이 도착해도 어떤 수도 쓰지 못하게 하는 거고.’
그는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사용하기로 했다.
이러면 레이몬드 놈이라도 절대 이번 참사를 막지 못하리라.
‘이번 일로 다 마무리가 되겠군.’
그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의자에 기대었다.
그간 골머리를 썩이게 했던 휴스톤 왕국의 일이 마무리된다고 생각하니 속이 시원했다.
‘다음은 카탈 왕국이군.’
그는 지도를 바라보았다.
카탈 왕국.
같은 십자연맹제국의 동맹국으로 휴스톤 왕국보다 확연히 앞서는 국력을 지닌 국가였다.
4약 중 수장 격의 국가로, 다른 4약의 국가가 대륙 서남권에 자리하는 것과 다르게, 대륙 중부, 그중 웨스트 트라이앵글이라 불리는 지역에 있었다.
대륙 중부의 국가답게 같은 4약이지만, 훨씬 앞서는 국력을 가진 곳.
‘휴스톤 왕국 이상으로 내 프로젝트 달성에 중요한 곳이지. ‘마술사’ 놈이 대륙 중부 또 다른 곳에서 진행하는 일을 이루기 전, 내가 먼저 프로젝트를 달성해야 해.’
섬뜩한 이야기였다.
지금 마에스트로 말고 또 다른 누군가가 대륙 어딘가에서 비슷한 일을 자행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휴스톤 왕국에 이어 카탈 왕국의 일마저 성공하면 나는 원대한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게 돼. 위대한 상을 받을 수 있을 거야.’
머지않아 다가올 그 순간을 생각하며 ‘마에스트로’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 * *
그때, 또 다른 뜻밖의 장소에서 레이몬드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있었다.
십자연맹제국의 동쪽 반도.
페닌슐라 왕국이었다!
물의 도시 라펜텔 인근의 작은 항구에서 레이몬드의 눈과 똑 닮은 에메랄드 눈빛을 한 인물 두 명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페닌 후작에 대해 짐작 가시는 바가 있습니까, 전하?”
말을 꺼낸 이는 익숙한 얼굴의 젊은 남자였다.
라시드!
일전 레이몬드와 대면한 적 있는 왕자로 레이몬드의 정체를 수소문하고 있는 이였다.
“흠.”
앞에 선 이는 노인이었다.
케일.
리슈테인 왕가의 최고령 원로 중 한 명으로 왕가와 관련한 비사에 가장 정통한 인물이었다.
“한 가지 짐작되는 바가 있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