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292
#닥터 플레이어 292화
천 배로 확대한 영상에는 조그만 벌레 같은 생물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플랑크톤이야.’
레이몬드는 속으로 생물체의 이름을 말하였다.
‘플랑크톤의 어마어마한 번식. 역시 적조 현상이 맞았어!’
적조 현상.
그게 강물에 나타난 괴현상의 정체였던 거다!
‘연금술과 마법을 적절히 조합하면 충분히 적조 현상을 일으키는 게 가능해.’
적조 현상의 원인은 강물의 유기물을 증가시켜 미생물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는 거니, 그거에 맞춰 연금술과 마법을 사용하면 구현 가능했다.
특히 조르드 강은 상대적으로 조그만 규모의 강이라 인위적으로 충분히 가능했다.
‘적조 현상이 일어나면 강물이 심각히 오염되니 온갖 수인성 전염병이 발생할 수 있어. 콜레라도 가능해.’
“라이나 님, 강 주변을 탐색해 주십시오. 분명 강 상류에서 수작을 부린 놈들이 있을 겁니다.”
비록 큰 강은 아니지만, 적조 현상을 일으킬 정도면 보통의 수작으로 될 게 아니다.
‘천문술사’ 말고 그 일을 진행한 또 다른 일행이 있을 터. 놈들을 잡아야 했다.
‘어마어마한 유기물과 마법적 작업을 했을 테니, 아예 비밀 근거지를 마련했을 수도 있어.’
라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역시 전하. 감탄스럽군요. 어찌 매번 이리 훌륭하신지, 이 라이나 전하만 보면…… 호호. 어쨌든 맡겨주세요.”
라이나는 끈적끈적한 시선을 보내고는 사라졌다.
갈수록 집착의 농밀함이 짙어지는 것 같아, 레이몬드는 식은땀을 흘렸다.
이번 일이 끝나면 납치라도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제자들이 그런 라이나를 보며 기분 나쁜 반응을 보였다.
“……마스터를 저렇게 불경하게 보다니. 제자로서 기분 나쁘군요.”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크리스틴, 쥬드의 말이었고,
한슨, 엘무드, 미엔도 이렇게 기분 나빠했다.
‘마스터의 빛이 워낙 찬란하니 기이한 이들이 꼬이는구나. 하긴, 마스터의 찬란함은 마성과도 같이 매혹적이니.’
‘주군, 제가 저 못된 마녀와 싸우겠습니다!’
‘갸르릉. 냐옹! 냐옹!’
그렇게 명성 높은 아크 메이지 라이나는 레이몬드를 욕심낸 탓에 일행들 사이에서 ‘이상한’, ‘기이한’, ‘못된’ 마녀가 되어버렸다.
레이몬드도 어색한 얼굴을 하였다.
‘이거 라이프 공작 오면 둘이서 싸우는 것 아니야?’
레이몬드는 식은땀을 흘렸다.
사실 얼마 전 라이프 공작에게서 연락이 왔다. 레이몬드가 카탈 왕국에서 해낸 일을 듣고 연락한 것이다.
-그런 위험한 일을 하시다니.
라이프 공작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레이몬드를 질책했다.
-잊지 마십시오. 전하는 이 라이프의 제자. 전하의 몸은 전하의 것만이 아닙니다.
그러며 라이프 공작은 무섭게 타오르는 눈빛을 보냈다.
레이몬드는 식은땀을 흘렸다.
어찌나 큰 걱정이 담겨 있는지, 누가 보면 마치 레이몬드 몸의 소유권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착각할 만큼 무서운 눈빛이었다!
심지어 라이프 공작은 조만간 시간을 내서 찾아오겠다고 하였다.
카탈 왕국의 정세가 불안정해 도저히 엘무드만으로는 안심이 안 된다는 이야기였다.
‘……진짜 오시려나. 워낙 바쁜 분이라 쉽게 몸을 빼기는 어려우실 것 같은데. 어쨌든 오면 라이나 님과 싸우는 건 아니겠지?’
레이몬드는 헛기침을 하였다.
저 집착 넘치는 라이프와 라이나라면 충분히 싸울 가능성이 있었다!
‘……다 큰 성인이니 둘이서 알아서 하겠지.’
어쨌든 그건 나중의 일.
레이몬드는 말하였다.
“조처를 하겠습니다.”
진단명이 나왔으니, 그다음 해결책은 명확했다.
“일단 수도 백성에게 강물의 음용을 금지해 주십시오. 그러면 괴질이 번지는 것도 잠잠해질 겁니다.”
“네, 알겠어요!”
쥬드는 재빠르게 움직였다.
병사들을 동원해 포고령을 내렸다.
“물을 먹지 말아야 한다고?”
“레이몬드 님, 그분이 말씀하란 거잖수. 당장 따르도록 하세!”
다소 소란이 있었지만, 수도 백성은 착실히 그 명령에 따랐다. 광장에서 레이몬드가 보인 카리스마에 감화된 덕이 컸다.
그사이 레이몬드와 제자들은 환자들을 치료했다.
‘콜레라면 수액 치료를 하면 좋아질 거야.’
죽음의 저주를 보면 알 듯 콜레라는 제대로 된 치료만 하면 대부분 완쾌하게 된다.
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레이몬드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환자들이 사망했다.
제대로 된 수액 처치를 했음에도 버티지 못하고 사망한 거다.
‘뭐지?’
레이몬드는 싸한 느낌이 들었다.
원래 콜레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 회복한다. 그동안 수액 처치를 하며 탈수를 회복하게 하는 거다.
그런데 이 환자들은 전혀 호전되는 게 없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렬한 설사를 하였고, 결국 산 염기 불균형을 버티지 못하고 사망하게 된 거다.
또한, 문제는 그뿐이 아니었다.
-선생님, 큰일이에요!
미엔이었다!
고양이 모습으로 수도를 둘러보다가 다급히 온 듯했다.
-환자들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어요!
“……!”
레이몬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었다.
* * *
‘콜레라가 아닌 걸까?’
레이몬드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하지만 적조 현상으로 오염된 강.
그리고 사망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탈수를 일으키는 어마어마한 양의 설사.
콜레라가 가장 합당했다.
아니더라도, 비슷한 종류의 수인성 전염병일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물을 마시지 않았는데, 어째서?’
확인해 보니 새롭게 발생한 환자들 대부분 강물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만약 콜레라가 아니더라도, 이게 수인성 질병의 일종이면 물을 마시지 않으면 추가 환자는 발생하지 않아야 하는데?’
설명이 되지 않았다.
다시 직접 확인해 보았지만, 환자들은 정말 강물을 마신 적이 없었다.
더구나 사태는 더욱 악화하였다.
순식간에 환자가 불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십수 명에 불과했던 환자들이 무려 백 명 이상으로 폭증했다.
수도가 발칵 뒤집혔다.
“어떻게 된 거지?”
“왜 계속 환자가 늘어나는 거야?”
“정말 신의 진노인 것 아니야?”
그런 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행히 아직는 공황 상태로 번지지 않았다.
레이몬드 덕이었다.
[히든 효과, 구원자의 효과가 발현됩니다!] [사람들이 당신을 굳건하게 믿습니다!]“아직 기다려봐. 건국 시조님의 전인님이 계시잖아!”
“맞아. 레이몬드 님이 해결해 주실 거야!”
사람들은 그렇게 애써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특히 버몬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어떻게 할 겁니까, 전하?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어야 고집을 꺾을 겁니까?”
옆에서 천문 술사가 섬뜩하게 입을 열었다.
“별의 운행을 보면, 더욱 끔찍한 재앙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탐욕을 버리고 물러나지 않으면 수많은 사람이 죽게 될 겁니다. 명심하십시오.”
버몬트가 최후통첩하듯 말했다.
“앞으로 대관식까지 3일. 그 안에 백성을 위한 결단을 내리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하늘의 진노가 카탈 왕국에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일으킬 겁니다.”
쥬드와 레이몬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3일.’
레이몬드는 치료원 안의 환자들을 바라보았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사람이 죽고 있었다.
‘그 전에 꼭 해결해야 해. 환자들을 위해서라도.’
레이몬드는 심각한 산 염기 불균형으로 숨을 몰아쉬는 환자를 보며 주먹을 세게 쥐었다.
‘절대 용서하지 않겠어.’
이번 일의 원흉인 버몬트 놈과, 저 빌어먹을 놈 모두.
모조리 제대로 된 심판을 받게 할 것이다.
* * *
하지만 일은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아무리 분석해도 원인을 찾아낼 수 없었다.
‘뭐지? 내가 뭘 놓치고 있는 거지?’
레이몬드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건 콜레라가 아니야. 콜레라와 비슷한 증상을 나타내는 다른 질환이야.’
레이몬드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그래도 설명이 되지 않았다.
‘콜레라가 아니더라도 수인성 전염병일 텐데. 왜 강물을 마시지 않은 환자들에게서도 발병하는 거지?’
그게 가장 미스터리였다.
그때, 메시지가 떠올랐다.
[의학적 난관을 맞아 ‘의학의 도전자’ 속성이 발현됩니다!] [현 상황상 해당 전염병은 ‘수인성 전염병’일 확률이 ‘무척’ 높습니다!]레이몬드는 헛웃음을 흘렸다.
‘또 도움 안 되는 조언을…….’
하지만 그 순간.
레이몬드는 멈칫했다.
‘무척’이라고 표현했다.
역으로 생각하면, 수인성 전염병이 아닐 가능성도 적지만 있다는 거다.
‘적조 현상에 너무 몰두했어.’
레이몬드는 침음을 삼켰다.
수인성 전염병은 위장관에 염증을 유발해 설사, 구토, 복통을 일으킨다.
하지만 모든 위장관 염증이 물로 유발되는 건 아니다.
‘어쩌면 적조 현상은 눈속임인 것 아닐까? 진짜 원인을 숨기기 위한.’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근거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걸 원점에서 다시 생각할 때였다.
‘적조 현상은 잊어. 진짜 원인이 따로 있을 수도 있어.’
그걸 알아내기 위해서는 역학 조사를 해야 했다.
레이몬드는 지도를 촤악 펼쳤다.
그리고 환자들이 발병한 지역을 지도에서 일일이 확인하였다.
‘특별한 지역적 공통점은 없어.’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발병 환자들 모두 가난한 서민층이라는 것이다.
귀족 중에는 단 한 명도 환자가 없었다.
풍족한 평민들 층에도 발병 환자 숫자가 적었다.
‘가난한 이들은 강물을 식수로 삼는 경우가 많아. 부유층들은 상수로로 따로 공급되는 물을 마시고. 그래서 처음에 적조 물이 원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다른 공통점을 찾아야 했다.
‘주거 환경? 아니야. 비교적 깨끗한 동네에 사는 평민층에도 발병 환자가 있어. 다른 공통점은?’
레이몬드는 골똘히 골몰했다.
귀족층에는 없고, 주로 가난한 빈민층에 많으며, 부유한 평민층에는 드문 것.
그게 무엇인지 알아내야 했다.
그때, 크리스틴이 들어왔다.
“마스터.”
“아, 제자님.”
크리스틴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더니 뜻밖의 말을 하였다.
“조금 쉬세요.”
“네? 괜찮습니다.”
난데없이 무슨 말이지?
상황이 이런데, 무슨 쉰단 말인가?
하지만 크리스틴은 답답한 듯 말했다.
“며칠 동안 한잠도 안 주무셨잖아요.”
“……!”
“지금 죽을 것 같은 얼굴이에요.”
레이몬드는 놀란 얼굴로 거울을 보았다.
정말 시체 같은 얼굴이었다.
‘망할, 지치지 않은 괴물 스킬. 이러다 진짜 갑자기 죽는 것 아니야?’
피로감이 확 주니 더욱 무리하게 된다.
‘으으, 그래도 지금 쉴 수는 없어. 어떻게든 답을 알아내야 해.’
입술을 질끈 깨무는 순간.
크리스틴이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포기했다는 한숨이었다.
“말려도 안 들으시겠죠. 마스터께서 좋아하시는 소고기라도 내오라고 할 테니, 그거라도 드시면서 기운 내세요.”
“네, 감사합…… 소고기?”
레이몬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 가지 생각이 퍼뜩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소고기!”
“……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