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302
#닥터 플레이어 302화
그냥 관용 어구인지 알았는데, 아니었다.
레니스 성자가 남긴 마법진에는 시술자의 내면을 판별하는 기능이 있었던 것이다.
그릇된 이가 힘을 사용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 하.’
에스텔은 허탈한 얼굴을 하였다.
그렇다면 그녀가 힘을 사용하는 데 실패한 것도 당연했다.
세상에서 그녀처럼 추악한 이도 없을 테니까.
‘이, 이렇게 허무하게 죽게 된다니. 어떻게든 놈들에게 한 방 먹이고 싶었는데.’
에스텔은 이를 악물었다.
그때, 그녀의 눈에 레이몬드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저, 저분이라면?’
위대한 빛.
거룩한 바보.
하늘에서 강림한 천사라는 레이몬드라면 드래곤 하트의 힘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에스텔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드래곤 하트를 레이몬드에게 건네주었다.
“저, 저는 자격이 되지 않아요. 당신께서 드래곤 하트를 사용해 주세요.”
“제가 말입니까? 하지만 제 힐은 당신과 비교하면…….”
레이몬드의 힐은 에스텔에 비해서 훨씬 처졌다.
하지만 에스텔은 고개를 저었다.
“기존 힐의 등급은 중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드래곤 하트의 마나를 사용하는 거니.”
“……!”
“무, 문헌의 내용에 따른다면 환자를 위한 숭고함이 깊을수록 더욱 커다란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당신이면 모두를 구해낼 수 있을 거예요.”
레이몬드는 그 말에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에스텔이 무언가 커다란 오해를 하고 있음을 눈치챘다.
‘숭고함? 나 그런 것 없는데?’
그는 사실 속물.
그의 숭고함은 이미지 메이킹일 뿐이다.
‘……사용자의 숭고함을 판명하는 능력이 있으면, 난 안 될 것 같은데?’
레이몬드는 꺼림칙한 얼굴을 하였다.
그때, 에스텔의 스르르 주저앉았다.
“성녀님!”
레이몬드는 에스텔의 상태를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맥박이 분당 15? 혈압도 거의 체크 되지 않아.’
레이몬드는 직감했다.
이제 에스텔은 곧 죽을 거다.
“제, 제발…… 당신의 빛으로 이들을…….”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키고 장내를 바라보았다.
수 없는 사람이 쓰러진 채 신음 흘리고 있었다. 크리스틴도, 쥬드도 쓰러져 있었다.
마스터들은 간신히 버티고 있지만, 그들도 이제 곧 한계였다. 레이몬드 본인도 점점 숨이 가빠왔다.
‘해내야 해. 어떻게든.’
레이몬드는 드래곤 하트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아까 에스텔이 읊던 주문을 떠올렸다.
‘저, 정확히 기억 안 나는데?’
에스텔이 혼잣말로 중얼거린 주문이라 정확히 듣지 못했다.
“저, 저기 주문이?”
“…….”
에스텔은 입을 벙긋거렸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레이몬드의 안색이 하얘졌다.
망했다!
‘제길, 뭐가 이래!’
어쩔 수 없이 기억나는 대로 최대한 비슷하게 따라 해보았다.
“나 숭고한 의지로 환자를 위하나니.”
파아앗!
다행히 빛이 나오기 시작했다.
“환자의 눈물…… 아니, 고통…… 아니, 눈물을 닦고자, 앞에 나섰으니.”
레이몬드는 식은땀을 흘렸다.
주문이 정신없이 헷갈렸다!
이러다가 영창을 못 해 실패할 판국이다.
‘안 돼! 어떻게든 해내야 해! 내가 저 인맥을 만들려고 지금까지 어떤 고생을 했는데!’
레이몬드는 쓰러져 신음을 흘리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라이프, 라이나, 나헬, 쥬드, 크리스틴, 미엔, 엘무드 등등…….
모두 그가 피땀 흘려 만든 인맥들이었다.
‘모두 내 호구들이야! 한 명도 죽지 않게 하겠어!’
아니, 호구들뿐이 아니었다.
이름 모를 병사, 기사들도.
단 한 명도 죽지 않게 하겠다.
이유?
‘힐러가 환자를 살리려는 데는 이유가 뭐가 필요해!’
굳이 따지자면,
‘다 살려서 내 호구로 만들고 말겠어! 이제 휴스톤 왕국뿐 아니라 카탈 왕국에 사는 사람들도 모조리 다 내 호구야!’
그런 마음으로 외쳤다.
“환자를 위해 숭고한 힘을 발현하리니!”
원래의 형태와 하나도 맞지 않는 엉망인 주문이었다.
하지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파아아아아앗!
드래곤 하트에서 어마어마한 빛이 터져 나왔다.
에스텔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마치 눈이 멀 것 같은 광채였다.
“이, 이건?”
레이몬드는 당황해 제 몸을 돌아보았다.
온몸이 빛에 휩싸여 있었다.
광인(光人)이 된 것 같았다.
더욱 놀라운 점은 등 뒤에 날개가 생겨났다!
‘뭐, 뭐야, 이거?’
전설의 천사들이 가지고 있었다는 빛으로 된 날개. 광익(光翼)이었다.
아직 의식을 잃지 않고 있던 일부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눈을 부릅뜨며 감동의 얼굴을 하였다.
‘레이몬드 왕세자님은 정말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셨단 말인가?’
‘아아, 스승님!’
‘마스터. 역시 당신께서는. 나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주군, 역시 천사셨군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천국에서 주군을 만나면 되니까요!’
‘냐옹!’
하필, 아직 의식을 차리고 있던 이들은 원래도 중증 레이몬드 추종들이었다.
그들이 더욱더 경외와 경탄에 눈빛을 하였고, 레이몬드는 당황해 고개를 저었다.
‘왜 갑자기 날개가 생긴 거야?!’
그때였다.
갑자기 레이몬드의 시야가 변했다.
마치 공간을 뛰어넘기라도 한 것처럼 다른 공간이 나타난 것이다!
‘뭐, 뭐야?’
환한 빛에 둘러싸인 곳이었다.
거기에 지금의 레이몬드처럼 빛에 둘러싸인 인물이 서 있었다.
“……!”
레이몬드는 깜짝 놀라 상대를 바라보았다.
카탈 왕국의 건국 시조였다!
‘아니, 수백 년 전에 죽은 인물이 어떻게 해서?’
레니스 성인은 빛 속에서 빙긋 웃었다.
[이건 잔류 사념이란다. 내 후인이 나타나면 내 뜻을 전달할 수 있게 죽기 전 조처를 해둔 거지.]“아…….”
‘그런데 난 후인이 아닌데?’
레이몬드는 그렇게 생각했다.
카탈 왕국의 백성들이 그를 레니스 성자의 후인 어쩌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그냥 별 의미 없는 헛소문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레니스 성인은 이렇게 말했다.
“…….”
레니스 성자는 레이몬드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구나. 오로지 환자를 위하는 그대의 마음이.]“…….”
레이몬드는 입을 다물었다.
저 성자님. 뭔가 초면부터 오해하고 있었다.
[당부할 말이 있어서 잔류 사념을 남긴 건데, 너에게는 필요 없을 듯하구나. 이미 숭고함이 차고 넘치고 있어…… 내 생전에도 이런 인물을 만난 적이 없거늘.]“…….”
레니스 성자는 감탄하며 말끝을 흐렸고, 레이몬드는 입을 다물었다.
이 성자. 아무리 봐도 보는 눈이 없는 것 같다.
‘할 말 없으면 얼른 돌려 보내줘.’
하지만 레니스 성자는 깊은 감탄을 담은 눈으로 다른 말을 하였다.
“……말씀하십시오.”
[너무 남들만을 위한 삶을 살지는 않도록 해라. 때로는 자신을 위할 줄도 알아야 해.]“…….”
1도 도움 안 되는 조언이었다.
레이몬드는 팍 한숨을 내쉬었다.
“저 욕심 많습니다.”
[응?]“세상 최고의 부자가 되는 게 목표라고요.”
평소라면 이미지 관리를 위해 하지 않았을 이야기.
하지만 상대가 잔류 사념이면 어차피 허공에다 대고 이야기하는 거나 마찬가지니 솔직한 속내를 말하였다.
하지만 레니스 성자는 크게 웃을 뿐이었다.
[하하하! 농담도 재미있게 하는구나!]“……진짜입니다.”
레이몬드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전혀, 아니거든?
“최고급 소고기도 먹고, 비싼 와인도 먹고, 랍스타도 먹을 겁니다. 금화 속에서 수영도 해볼 거예요. 성(聖) 로제트 왕국 서쪽 해변가에 별장도 하나 사고요.”
성 로제트 왕국 서쪽 해변가는 십자연맹제국 최고의 휴양지였다.
연맹제국 최고 부자들은 거기에 하나씩 별장을 사놓았다.
‘나도 언젠가 최고로 비싼 별장을 지을 거야. 이왕이면 광휘의 성자보다 더 커다란 별장으로!’
진지하게 생각하였지만, 레니스 성자는 흐뭇하게 웃을 뿐이었다.
아빠 미소였는데, 마치 ‘그래, 그래, 열심히 해보렴. 퍽이나 기대되는구나’ 이렇게 말하는 듯하여 기분이 나빠졌다.
레니스 성자는 레이몬드의 몸에서 나는 광채를 보며 말하였다.
레이몬드는, 그리고 에스텔도 모르고 있었지만, 이 광채는 드래곤 하트의 마나가 깃든 게 아니었다.
영혼이 가진 고유의 빛이었다.
‘내가 남긴 주문은 드래곤 하트의 마나를 끌어와 힐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영혼의 찬란함을 힐로 발현하게 하는 거였지.’
드래곤 하트의 마나는 그저 촉매 작용을 할 뿐이었다.
영혼이 고유의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지금 레이몬드의 영혼이 발하는 빛은 감히 마주 보기 떨릴 정도로 찬란했다.
[어쨌든 후인이 이토록 숭고한 영혼의 빛을 가졌다니 나도 안심할 수 있겠군.]레니스 성자의 몸이 흐려졌다.
[이제 만남을 끝날 때가 되었다. 위대한 후인을 만나 기쁘구나.]잔류 사념이 사라지는 거다.
레이몬드는 퍼뜩 한 가지 생각이 나 다급히 물었다.
“저기, 혹시 드래곤 하트로 힐을 사용하는 건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주문을 외우긴 했지만, 정확한 방법은 모르고 있었다.
레니스 성자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힐을 사용하는 것처럼 하면 된다.]“네?”
[힐을 쓸 때 어떻게 사용하지?]“그건…….”
힐을 쓰는 법.
환자를 치료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상단전의 마나 채널을 움직이는 거다.
[그렇게 환자를 위하면 된다.]레니스 성자는 씨익 짓궂게 미소 지었다.
[마음껏 환자를 위한 네 마음을 내질러라. 기대되는구나. 네 영혼의 빛이 발할 찬란함이.]그것과 동시에 레이몬드는 현실로 돌아왔다.
‘환자를 위하라고.’
그리고 레니스 성자가 말해주었던 것처럼 하였다.
환자를 위해 드래곤 하트를 움직였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파아아아앗!
터질 듯한 광채가 장내에 퍼져 나갔다.
레이몬드의 영혼이 발하는 빛이었다.
‘아아…… 숭고한 빛.’
에스텔은 그 빛을 보고 생명의 마지막 순간, 눈물을 흘렸다.
이미 심장이 멈춘 그녀로서는 어떤 힐을 받아도 살아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최후의 순간.
레이몬드의 힐이 그녀의 영혼을 감쌌다.
한없이 따뜻하면서 마치 그녀의 영혼을 위로해 주는 듯한 힐이었다.
그간 고생 많았다고.
이제 모든 걸 내려놓으라고 말하는 듯했다.
에스텔은 주륵 눈물을 흘리며 환한 얼굴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에스텔뿐이 아니었다.
이 자리의 모두가.
레이몬드의 힐을 받으며 눈물을 흘렸다.
너무나도 따뜻한 빛이었다.
그렇게 카탈 왕국에 위대한 기적이 강림했다.
그리고 레이몬드에게 메시지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