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343
#닥터 플레이어 343화
‘공기가 원인이면 저런 부검 소견이 나올 수 있어!’
레이몬드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기뻐하기는 일렀다.
누가, 어떻게 희생자들에게 공기를 주입했느냐는 것이 문제였다.
‘원래 공기 색전증은 주삿바늘을 통해 혈관을 타고 들어가는 경우가 가장 흔해.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아니야.’
레이몬드는 라이나에게 물었다.
“마법으로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불가능하진 않아요. 마법 운용력이 아크 메이지급이면 가능할지도. 하지만 이런 식의 살인이 가능하다고는 전혀 몰랐는데.”
“일단, 이번 일의 경우에는 아니겠군요.”
“네, 그 정도의 아크 메이지가 손을 쓴 거면 제가 모를 리가 없을 테니까요.”
라이나는 고개를 저었다.
레이몬드는 인상을 찌푸렸다.
‘범인은 마니안 후작이야. 도대체 어떤 수를 쓴 거지?’
이미 그들은 범인을 알고 있다.
마니안 후작이 떠드는 소리를 들은 증인이 있으니까.
문제는 그를 잡아넣을 증거였다.
어떻게 혈관에 공기를 집어넣은 건지 알아내야, 그를 잡아 처형할 수 있었다.
“그냥 일단 잡아서 고문해 보면 어떨까요?”
라이나가 스산한 말에 레이몬드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좋겠지만, 그는 체르만 왕국 최고 귀족에다가, 페닌슐라 왕족이기도 하고…….”
거기까지 이야기한 순간.
레이몬드는 한 가지 생각을 떠올리고는 놀란 얼굴을 하였다.
“……페닌슐라 왕족?”
“전하?”
“있습니다. 이런 일을 일으킬 방법이.”
레이몬드는 답을 말했다.
“혈인 능력. 혈인 능력을 사용하면 이런 일을 일으키는 게 가능합니다.”
* * *
혈인 능력!
페닌슐라 왕족의 고유 능력으로, 사람마다 온갖 다양한 능력으로 발현한다.
보통은 화수풍토 등의 자연력을 발현하는 경우가 많고, 실벤느 왕녀처럼 특이한 예도 있었다.
-충분히 가능합니다. 마니안 후작이 바람 계열의 각성자라면요.
라시드가 통신구로 답했다.
-각성 능력이 씨앗을 발현하는 종류라면, 충분히 비슷한 증상을 일으킬 수 있을 듯합니다.
“씨앗이라고요?”
-네, 지정한 곳에 능력이 발현되는 씨앗을 심는 겁니다. 그러면 시간이 지나면서 그곳에 자연력이 발생하는 거지요.
레이몬드는 설명을 이해했다.
만약 어느 한 지점에 화(火) 속성의 씨앗을 심으면, 시간이 지난 후 그곳에 불꽃이 생긴다는 것이다.
풍 속성이면, 바람이. 뇌 속성이면 전격이,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런 씨앗 능력은 보통 아무런 쓸데없는 쓰레기 혈인 능력으로 여겨지는데…… 이런 식으로 응용할 수도 있군요.
라시드는 놀라 말했다.
레이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모든 전모가 밝혀졌다.
‘만약 마니안 후작이 환자들의 혈관에 바람의 씨앗을 심었으면, 모든 게 설명돼.’
마니안 후작은 페닌슐라 왕가의 피만 이은 게 아니다.
체르만 왕족의 피도 이었다. 즉, 현 국왕 카슬란과 친척 사이였고, 희생된 이들과도 가까운 사이였다.
충분히 그런 씨앗을 심을 기회가 있었으리라.
“혹시 이런 일에 도움이 될 도구가 있습니까?”
-네, 당연하지요. 혈인 능력을 이용한 범죄를 감별하기 위한 도구가 있습니다.
혈인 능력은 굉장히 교묘하고 상식을 벗어난 경우가 많다.
악용할 소지가 크기에 페닌슐라 왕가는 혈인 능력의 흔적을 확인하는 도구를 만들어 놓았다.
혈인 능력의 주체인 ‘혼돈’의 흔적을 확인하는 도구이다.
곧바로 감별 도구를 가져와 희생자들의 시신에 사용해 보았다.
정확히 폐 문맥이었다.
공기 색전증이 일어났던 부위에 도구를 반응시키니,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혼돈의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당장 마니안 후작을 잡아!”
희생자들이 사망 전에 접촉한 페닌슐라 왕족은 단 한 명.
마니안 후작뿐이었다.
마탑과 체르만 왕국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특히 자식들을 잃은 국왕의 분노가 컸다.
마니안 후작은 순식간에 사로잡혀 끌려왔다.
“아, 아니! 전하! 이게 무슨 일입니까? 억울합니다!”
“억울해?”
카슬란 국왕이 싸늘한 얼굴을 하였다.
“이미 다 밝혀졌다. 네놈의 수작으로 내 아들과 딸이 죽었어. 네놈은 절대로 편한 죽음을 맞지 못할 것이다.”
마니안 후작은 얼굴이 굳었다.
레이몬드가 내미는 증거를 본 순간, 모든 게 끝났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그는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크큭, 정말 대단하군. 이렇게나 쉽게 알아내다니. 역시 마에스트로와 로드가 지금껏 애를 먹은 이유를 알 것 같아.”
“……!”
다들 눈을 크게 떴다.
마니안 후작이 자신의 정체를 시인한 것이다!
“역시 네놈도?”
“그래, 난 ‘로드’의 수하. 마술사라고 불리지.”
라이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앞으로 나섰다.
“로드라면, 네놈 말고 남은 잔당이 있다는 거냐?”
“그래, 우리는…….”
마니안 후작, 아니, 마술사는 고개를 저었다.
“더 길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지. 어차피 죽을 놈들한테.”
“……뭐?”
체르만 왕국의 사람들은 황당한 얼굴을 하였다.
곧 처형당할 놈이 저딴 소리라니?
하지만 일부 사람, 지금껏 놈들의 수작에 당한 경험이 있던 레이몬드와 라이나는 얼굴을 굳혔다.
“모두 물러……!”
하지만 늦었다.
“큭큭. 모두 절망 속에서 죽어가라!”
마니안 후작이 손을 펼치는 순간이었다.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장내의 사람들이 갑자기 가슴을 부여잡으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이런, 지난번 카탈 왕국에서 놈들이 사용했던 그 독극물이야!’
레이몬드의 안색이 하얘졌다.
카탈 왕국에서 마에스트로의 수작을 물리쳤을 때.
놈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한 정체불명의 독극물과 비슷한 증상이었다.
문제는 한번 퍼지면, 막을 수가 없다는 거였다.
‘이건 공기로 순식간에 전파되는 독이야.’
“끄윽, 마, 마스터.”
“이건…….”
린든, 엘무드 등도 안색이 하얘져 무릎을 꿇었다. 라이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한가히 그들을 살필 여유가 없었다.
레이몬드도 그들과 똑같은 증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며 순식간에 의식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을 보며 마술사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또 ‘신의 독’을 쓰게 만들다니.”
“……신의 독이라고?”
“그래, 우리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최종 물질이지. 물론 이건 미완성이지만.”
마술사는 고개를 저었다.
“지난번 마에스트로 놈이 사용 후 일부 간신히 재현해 내었는데, 이렇게 다시 낭비하게 되다니. 이렇게까지는 않으려고 했는데…… 레이몬드, 네놈이 날 궁지에 몬 탓에 어쩔 수 없었다.”
마술사도 이런 사태는 원하던 바가 아니었다.
‘신의 독’.
로드와 그들의 비원을 이루어줄 궁극의 물질.
하지만 아직 미완성이었다.
마에스트로가 카탈 왕국에서 대거 사용 후, 간신히 소량 복원했을 뿐이다.
하지만 마에스트로가 기존에 만들어낸 것보다 독성이 약해 아직 개량이 필요한데, 부득불 이렇게 사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도 어쩔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그는 죽은 목숨이었으니까.
마술사는 레이몬드를 노려보았다.
“그래도 네놈을 이 자리에서 해결할 수 있다면, 손해 보는 일은 아니겠지.”
그래, ‘로드’도 그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
레이몬드는 이제 그들의 가장 큰 대적자였으니까.
‘아, 안 돼.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
레이몬드는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점점 더 의식이 흐릿해졌다. 이대로는 얼마 버티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그때, 메시지가 떠올랐다.
[끔찍한 생화학 테러에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생화학 테러를 이겨내라!](의술 퀘스트)
의술 등급 : 식스 메스
난이도 : 상
퀘스트 설명 : 악의 세력이 정체불명의 생화학 테러를 하였습니다! 힐러로서 환자들을 구하십시오!
클리어 조건 : 환자들 전원 생존
보상 : 보너스 레벨 업×3, 스킬 포인트 200점
특전 : 놈들의 흔적
[위기 상황을 고려하여 특전이 주어집니다!] [체력 수치가 일시적으로 50 상승합니다! 더 오랜 시간, 독에 저항할 수 있습니다!]‘아니,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레이몬드는 황당한 얼굴을 하였다.
정확히 어떻게 작용하는지도 모르는 독이었다.
전파 속도도 어마어마하고, 작용 시간도 빨랐다.
그야말로 ‘신의 독’이란 이름에 걸맞은 위력이었다.
체력 조금 올랐다가 해결할 상황이 아니었다.
‘제길, 하지만 해야 해.’
레이몬드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가 안 하면 죽는다.
그도, 주변 사람들도 모두.
‘일단 이 독의 기전을 알아내야 해.’
원인 모를 쇼크.
이게 독의 증상이었다.
레이몬드는 카탈 왕국에서 봤던 환자들의 증상과 교차해서 기전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때보다는 증상이 조금 약해. 의식 혼란도 없고, 열도 나지 않아. 그냥 쇼크 증상만 있어.’
레이몬드는 지금 자신이 느끼는 증상을 관조했다.
가슴이 내려앉는 듯한 느낌과 함께 쇼크 증상이 왔다.
주목해야 할 점은 심장이 느리게 뛰는 서맥이었다.
‘쇼크인데, 심장의 맥이 느려. 이전 카탈 왕국에서도 이랬어.’
특이한 경우였다.
보통 혈압이 떨어지면서 떨어진 혈압을 받쳐주기 위해 심장이 미친 듯 요동치게 마련이다.
이런 경우는 하나였다.
‘심장성 쇼크. 이 독은 어떤 기전에서이든, 심장의 기능을 저해시키는 거야.’
더 복잡한 기전이 있겠지만,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가장 핵심적인 기전은 심장에 문제를 일으키는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에피네프린으로 심장의 기능을 보조해 줘야 해.’
지난번 카탈 왕국에서도 에피네프린이 효과가 있었다.
이번에는 그때보다 독성이 덜한 것 같으니, 에피네프린을 쓰면 독을 버텨낼 수도 있었다.
문제는 역시나 환자의 숫자였다.
지금 이 자리에는 놈을 압송했던 기사들까지 수십 명의 사람이 있었다.
손이 부족해 그들 모두를 구할 수가 없었다.
‘응급 키트에 있는 에피네프린을 사용해도 몇 명 빼고는 다 죽을 거야.’
방법은 하나.
카탈 왕국에서 했던 것처럼 기적을 일으키면 이들 모두를 구할 수 있지만, 이는 불가능했다.
‘이번엔 드래곤 하트가 없잖아.’
레이몬드는 입술을 깨물었다.
카탈 왕국에서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던 건 드래곤 하트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런 사기 아이템도 없었다.
‘제길, 방법이.’
어쩔 수 없이 일부 사람이라도 구하기 위해 움직일 때였다.
라이나가 신음을 흘리며 엉뚱한 소리를 하였다.
“아아. 전하를 믿습니다. 전하의 위대한 선천 마법사로서의 능력이라면 지금 위기도…….”
‘마법사 재능이랑 지금 상황을 해결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야!’
지금은 선천 마법사 할아비가 와도 도움이 안 된다.
그렇게 팍 한숨을 내쉬는 순간,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잠깐. 에피네프린을 대체할 마법이 하나 있잖아.’
레이몬드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버서커 마법!’
광전사화 마법을 걸면 심장의 기능이 폭주한다. 당연히 이번 독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아이템으로 버서커 마법의 숙련도를 최상 등급으로 올리면, 여기 사람들에게 한꺼번에 버서커 마법을 걸 수 있어!’
하지만 레이몬드는 곧 문제점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독은 버텨도 서로 죽고, 죽이겠지.’